Switch Mode

EP.24

       우리는 새 매트리스와 박스를 들고 천막으로 돌아왔다.

       정유나가 마법으로 매트리스를 들어 주었기에, 어떠한 힘도 들이지 않고 올 수 있었다.

       

       “우와.”

       

       팡-! 팡-!

       

       손바닥으로 매트리스를 두드리자, 매트리스 특유의 탄력이 손을 밀어냈다.

       푹신하고 부드러워서 아무리 세게 때려도 손이 아프지 않았다.

       

       ‘굉장하다.’

       

       박스따위와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고급스럽다.

       나는 한참 동안 매트리스를 바라보다가, 근처에 놓인 냉장고 박스를 주워들었다.

       잠자리가 불편하다는 소피아에게 박스를 양보하기 위함이었다.

       

       “저기요. 이거 박스 쓸래요···? 커다래서 되게 좋은 건데···”

       

       “요 녀석이.”

       

       딱-!

       소피아가 지팡이로 내 머리를 두드렸다.

       가벼운 충격에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아, 아까 박스 달라고 해서 한번 물어본 거예요··· 매트리스는 그쪽이 쓰세요···”

       

       그래, 뭐.

       매트리스는 몸 불편한 사람에게 양보하는 게 맞는 거겠지.

       아쉬움에 매트리스만 툭툭 두드리고 있으니, 소피아가 그 위에 털썩 드러누웠다.

       

       “되었다. 침대가 크니 둘이 누워도 될 테지.”

       

       “둘이요···?”

       

       “그래. 너도나도 조그맣지 않더냐.”

       

       확실히.

       둘이 누워도 공간이 많이 남기는 했다.

       그럼에도 내가 쉬이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이유는, 같은 침대에서 잠을 청한다는 게 이상한 탓이었다.

       

       “모르는 사람이랑 같이 자면 안 되는데···”

       

       “잘 배웠다만, 이제 우리는 아는 사이이지 않더냐.”

       

       “그, 그런가?”

       

       만난 지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이런 걸 아는 사이라고 할 수 있나?

       

       미간을 찌푸려가며 혼자서 고민하고 있으니, 정유나가 대뜸 우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매트리스 또 주울 수 있지 않을까?”

       

       “불가능해요. 이런 매트리스는 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거예요.”

       

       “그, 그래? 우리 집 근처에도 분리수거장 있는데. 한번 알아봐야겠다.”

       

       후후.

       정유나가 왠지 모를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근처에 놓인 냄비를 집어들었다.

       

       “저기요. 차 마실래요?”

       

       “차?”

       

       “네. 민들레 꽃차 맛있어요.”

       

       그녀가 억지로 따라온 거긴 했지만, 도움을 받은 건 맞았으니까.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보답은 해야 하는 법이었다.

       

       민들레 꽃차 정도면 충분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보답이 되긴 하겠지.

       나는 잘 가공된 민들레 꽃을 높이 들어 올렸다.

       

       “응. 그럼 한 잔만 줘볼래?”

       

       “네에···”

       

       슬슬 민들레 꽃차도 다 떨어져간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간이 화로를 이용해 민들레 꽃차를 끓였다.

       차 위에 둥둥 떠다니는 꽃이 아름다운 차였다.

       

       “꽃이 핀 차로구나.”

       

       “예쁘네.”

       

       “그, 그쵸···?”

       

       소피아와 정유나 그리고 내 것까지 석 잔을 만드니 꽃잎을 담아둔 통이 바닥을 드러냈다.

       

       꽃잎을 새로 만들고 싶은데, 근처에 민들레가 있었던가?

       나는 천막에 난 구멍을 통해 바깥을 둘러보며 차를 홀짝였다.

       

       “이거 생각보다··· 응···?”

       

       “음···?”

       

       차를 홀짝인 소피아와 정유나가 약속이라도 한 듯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크게 숨을 들였다 내 쉬는 모습이 뭔가 이상해 보였다.

       

       “왜요? 맛없어요?”

       

       “아, 아니, 맛있는데, 마나가 왜···?”

       

       “마나요?”

       

       차를 마시다 말고 왜 갑자기 마나 타령이지.

       이상한 말을 내뱉는 정유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니, 그녀가 다시금 차를 한 모금 홀짝였다.

       

       “어머?”

       

       정유나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얼마나 크게 떴는지 눈동자 위아래의 흰자가 다 보일 정도였다.

       내가 끓인 차 때문에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왜, 왜요?”

       

       “이거, 민들레 차 마시니까 마나가 증가했는데···?”

       

       “흠··· 본녀도 그러하구나.”

       

       “네···?”

       

       차 한잔을 마셨다고 마나가 증가하다니.

       내가 마셨을 땐 그런 효과 없었는데?

       당황스러움에 컵 위에 둥둥 떠다니는 민들레 꽃을 콕콕 눌러 보았다.

       예쁘기는 했지만, 특별함 없이 평범한 민들레였다.

       

       “마실수록 마나가 요동치는구나.”

       

       “그건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괜찮다. 긍정적인 방향이니까.”

       

       후우.

       소피아가 숨을 내쉬자, 입에서 파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녀가 브레스를 뿜은 것 같아 조금 멋있었다.

       

       “아무래도 네게 버프 계열의 능력이 있는 것 같구나.”

       

       “버프요?”

       

       “그래. 가장 희귀한 능력 중 하나지.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능력을 지닌 것만으로도 귀족 대우를 받았단다.”

       

       “우와···”

       

       귀족 대우라니.

       기분 좋은 말에 마음이 붕 떠오르다가, 지구는 계급 사회가 아니라는 걸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지구와 저쪽 세계의 차이점이 있을 테지.

       딱히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기대한 만큼 실망감만 더 커질 테니까.

       오랜 경험을 통해 배운 삶의 지혜였다.

       

       ‘···그나저나, 버프 효과는 어떻게 생기는 거지?’

       

       음식을 통해 버프를 주는 그런 느낌인가?

       의문스러움에 민들레 꽃차를 한 모금 더 들이키는 그때.

       정유나가 활기찬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 정도 마나라면 가능하려나···?”

       

       뭘 하려고 저리 신나 있는 걸까.

       평소 그녀의 사나움을 알고 있던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나 잠깐 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 어디 좀 다녀와도 될까?”

       

       “아, 네···”

       

       다시 오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말을 속에다 꾹꾹 눌러 담았다.

       오래 살기 위해선 항상 말조심을 해야 하는 법이었다.

       

       

       **

       

       여명 길드 본사 건물에는 길드 마법사들을 위한 실험실이 있었다.

       정유나는 그곳으로 이동하면서 제 몸상태를 살폈다.

       

       ‘굉장하다.’

       

       고작 차 한잔에 마력이 삼십퍼센트 가량 증가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이가 걸어준 버프가, 다른 버프 물약과 중복 적용이 가능하다는 거였다.

       

       각각의 버프는 하나씩만 적용된다는 지금까지의 규칙을 무시해버린다.

       이 정도 마나량이면 이론으로만 가능하리라 여겼던 마도구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

       

       ‘차 말고 다른 것도 있으려나?’

       

       여러모로 확인해 보고 싶은게 많다.

       정유나가 빠른 걸음으로 실험실로 향하는 순간, 복도 저 끝에서 익숙한 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길드 마스터인 강진호와 동료 한여름.

       그리고 아이의 곁을 지키던 늑대 수인 엔시아와 도마뱀 아르고였다.

       

       “마스터?”

       

       강진호가 답지않게 들뜬 모습으로 복도를 걷고 있었다.

       너무나도 놀라운 상황이라 정유나가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유나야.”

       

       정유나를 발견한 한여름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파괴적인 실력과는 달리 겉모습은 참 귀엽다.

       정유나는 속으로만 그리 생각했다.

       

       “여름아, 이게 무슨 상황이래?”

       

       “아, 겨울이 때문에.”

       

       “겨울이?”

       

       “응. 겨울이를 잘 돌봐주는 조건으로 한반도 수인족들이랑 동맹을 맺었거든. 꽤 긍정적으로 끝났어.”

       

       “어머.”

       

       숲 속에 숨어 살며, 정부의 부름조차 무시하는 수인족과의 동맹이라니.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공식적으로는 전 세계 최초일지도 몰랐다.

       비공식적으로는 또 모를 일이었지만.

       

       “수인족 쪽에서 기술 지원도 해준대. 엄청나지 않아?”

       

       “그, 그건 진짜 엄청나네···”

       

       숲에 사는 수인족들이 현대 사회에서 귀빈 대우를 받는 이유.

       바로 수인족들이 지닌 고유의 기술 덕분이었다.

       

       “정말 겨울이가 복덩이다.”

       

       “그러게··· 난 애한테 못된 짓만 했는데.”

       

       “아, 음···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까.”

       

       “응. 천천히 노력해 볼게.”

       

       정유나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버프 효과도 그렇고, 수인족과의 동맹도 그렇고.

       도움을 주기로 했으면서 오히려 받기만 했다.

       

       정유나는 눈을 감은 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되새겼다.

       아이를 돕기 위해 늘어난 마력으로 아이를 위한 마도구를 제작해 보기로 했다.

       

       

       **

       

       

       “헤헤.”

       

       이거 되게 푹신하다.

       

       나는 할 일 없이 매트리스에 누워 있었다.

       일을 해야 하는데, 매트리스의 푹신함이 너무 좋아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몇 년 만에 느껴보는 푹신함이라 더 게을러지는 걸지도 몰랐다.

       

       “이 녀석아, 훈련은 언제 할 생각이더냐.”

       

       “조, 조금만, 조금만 더 누워 있을래요.”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듯 매트리스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런 내 팔을 소피아가 잡아당겼다.

       

       당겨지지 않기 위해 저항했으나, 소피아의 힘이 내 생각보다 센 탓에 이겨낼 수가 없었다.

       

       “빨리 일어나거라.”

       

       “네에···”

       

       푹신함을 더 느끼고 싶은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매트리스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에 소피아는 목이 말랐는지, 주전자에 있는 물을 컵에 따랐다.

       

       “그나저나 물은 어디서 구해오는 게냐? 근처에 물을 마실만한 곳이 없던데.”

       

       꿀꺽-

       그리 말한 소피아가 물을 들이켰다.

       목이 많이 탔는지 쉬지도 않고 단숨에 마셨다.

       

       상어면 소금물을 마셔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만 킥킥 웃었다.

       

       “저, 연못에서 떠왔어요.”

       

       “푸읍!”

       

       내 말이 뭔가 이상했던 걸까?

       소피아가 마시던 물을 허공에 내 뿜었다.

       켈룩거리는 그녀의 얼굴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응?’

       

       값비싼 정화 아이템이 담긴 연못이었다.

       물고기가 사는 연못이 겉보기에는 더러웠지만, 바로 마셔도 될 정도의 청정수 물이었다.

       

       그러니 물이 더러워서 그런 건 아닐 테고 사레가 들린 걸까?

       이유는 모겠으나, 일단은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기로 했다.

       목에 물이 걸리면 엄청 괴로울 테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나 힘이 돼요!

    깨끗해도 뭔가 거부감이 드는 것들이 있죠.
    예를 들어 수돗물이라든가…

    ───
    굴뚝새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딩딩딩님 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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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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