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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콰앙─!!

         

       노천극장을 떠받치고 있던 기둥이 박살나자 천장이 한쪽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

         

       로테가 멍청한 탄성을 내지를 때쯤엔 모든 게 늦어있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버멜이었다. 선서문을 내던진 버멜은 로테의 손목을 잡아끌고는 연단에서 내려왔다.

         

       “따라와!”

       “뭐야? 대체 무슨 일인데!”

       “설명할 시간 없어. 당장 움직여야 해!”

         

       로테는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판단하질 못했다.

         

       혼란으로 점철된 머릿속에서 한 문장만을 겨우 식별할 수 있었다. 이름 모를 한 선생님이 외쳤다.

         

       “마수다! 마수가 나타났다아─!!”

         

       **

         

       “전시 상황이다. 현황 보고해.”

         

       경비를 서고 있던 수십 명의 선생님이 아공간에서 일제히 스태프를 꺼내들었다. 그중에는 클라이스와 메리가도 끼어있었다.

         

       “북방 경비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당장 산에서 아이언 드레이크가 범람하고 있다는 징후를 포착한 적도 없었고요.”

       “그럼 어디서 나타난 건가?”

       “지하에서부터 연성한 모양입니다.”

       “순간이동 마법인가?”

       “아뇨. 그랬다면 공계마도사들에게 탐지됐겠죠. 아마 원격 축조술을 쓴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깡통 새끼들 주제에 머리 좀 썼군.”

         

       클라이스나 메리가를 제외하면 현재 노천극장에 남아있는 최상급 마도사는 없었다. 대부분은 산 입구에 진을 치러 떠났기 때문이었다.

         

       마수들은 그 부분을 허점으로 파고들었다. 몇 개월 전부터 뒷산에 중급 마수를 풀어 산 입구에 경비병력을 집중해놓도록 유도한 뒤, 오히려 예상치 못한 곳에 연성진을 만들어 입학식장을 습격한다는 책략이었다.

         

       “뒤통수 한 번 제대로 엊어맞았어.”

         

       산 입구와 노천극장 사이의 거리는 뛰어서 20분 정도였다. 다른 마도사들이 지원을 와도 늦는다.

         

       그래도 입학식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선생님들은 이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금방 평정심을 되찾고 상황 판단에 나섰다.

         

       아카데미의 교수진은 대부분이 최전선에서 굴러 본 경험이 있던 베테랑 군인들이다. 선생들은 서로의 직함조차 생략한 채 한 사람에게서 받은 보고를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했다.

         

       “현지 시간 9시 58분경, 뒷산을 매개로 중급 300여 채와 상급 10체가 나타났습니다. 근원을 파괴하지 않는 한 계속 출몰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골렘을 다룰 줄 아는 지계마도사들은 속히 학생들을 보호하고, 수계와 화계 전공자들은 기동대를 조직해 상급부터 처리한다. 이의 있나?”

       “없습니다.”

       “없습니다.”

       “공계마도사들은 어떻게 합니까?”

       “언령으로 산 입구에 있는 일부 병력을 이쪽으로 옮기라고 알려. 어디까지나 일부만이다. 지금 교내가 이런 상황이라고 해서 산 감시에 소홀해지지 말라고 전해!”

         

       마수는 인류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약아빠진 존재들이다. 특히 재앙급이나 절멸급에는 지성을 지닌 것들도 많아서 이 다음에 어떤 술수를 벌일지 불확실했다.

         

       그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산의 병력을 전부 아카데미로 옮겼다간 그들이 의도한대로 흘러갈지도 모른다.

         

       “선생님!”

       “오…! 수석으로 들어온 엘프국의 신입생 아니던가? 분명 이름이….”

       “버멜입니다. 버멜 호르데.”

       “그래, 버멜 군. 지금 일손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야. 첫날부터 신입생인 자네에게 이러는 거 염치없지만 우리 좀 도와줄 수 있겠나?”

       “문제없습니다. 현장에서 중급 마수와 싸울 수 있는 학생들을 모아 대처하겠습니다.”

       “좋아! 믿음직스럽군. 잘만 된다면 나중에 표창을 내리겠네.”

         

       몇몇 선생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버멜이라는 남학생은 이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했다.

         

       모든 이들이 버멜처럼 대처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상당수가 패닉에 빠진 뒤였다.

         

       웬만한 새내기들은 하급 마수조차 만나보지 못하고 틸레트에 들어왔다. 아카데미 학생 대부분은 좋은 부모 밑에서 보호받으며 자란 온실 속 화초였으니까.

         

       그런 씨앗들이 막 새싹을 틔우려고 할 때 저런 괴물들을 마주한다면 영영 PTSD가 와 일어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쉬이 치료되는 질병이 아니다. 만약 신입생의 몇 명이라도 이번 사건으로부터 큰 트라우마를 얻게 된다면 나중에 북방 전선에 보낼 수 있는 전력이 크게 깎일 것이다.

         

       국익을 위해서라도…. 아니, 대륙 전체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그 상황만큼은 막아야 한다.

         

       아까부터 버멜의 통솔로 따라다니던 로테는 상황이 대강 이해되자 입을 열었다.

         

       “중급 마수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어. 근처에서 친구들을 도울 수 있게 해줘.”

       “아니, 너에게는 따로 부탁할 일이 있어.”

       “그게 뭔데?”

       “일단 중앙광장까지 가서 얘기해 줄게. 우선 특별반 아이들을 찾아서 역할 분담을 해야 해. 네가 첫 번째야.”

       “하지만 무슨 수로? 우린 서로 얼굴도 모르잖아…!”

       “이 상황에서도 꼭 눈에 띄는 애들이 있어. 걔네가 같은 반 애들이야.”

         

       버멜의 말대로 주변을 둘러보자 아이언 드레이크 두 마리를 혼자서 잡아낸 소녀가 보였다.

         

       그녀는 얼음으로 빚어진 창을 마수의 목덜미에 꽂아넣고 있었다.

         

       ─ 크워어억!

         

       콰직!

         

       “좀 뒤져라, 좀.”

         

       험악한 인상을 한 여학생이었다.

         

       군청색 머리칼에 한쪽 눈을 붕대로 돌돌 감고 있었는데, 가리지 않은 나머지 한쪽 눈은 벽안이었다. 눈빛이 매서웠던 탓에 다가가기 쉬운 인상은 아니었다.

         

       버멜이 그 여학생의 이름을 불렀다.

         

       “이르카!”

       “응?”

       “초면에 미안한데 우리 좀 도와줘!”

       “넌 왜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성도에 난 소문을 들었어. 제2황자가 엘리예프 자작 영애에게 추파를 던졌다가 거절당했다며?”

       “하, 씨발. 이젠 하다하다 다른 나라에서 온 놈까지 그걸 알아? 인생 개같네, 진짜.”

         

       엘리예프 자작 영애, 이르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한 바퀴 쏘아보았다. 패닉에 빠진 학생들이 중앙광장이 있는 남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아카데미 북부는 난장판이었다.

         

       “클리온 그 등신새끼는 진작 튄 모양이고…. 보이면 배에 바람구멍을 내줄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이르카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빙창(氷槍)을 붕붕 돌리며 인상을 구겼다.

         

       “좋아, 도와주지. 내가 뭘 하면 돼?”

       “우선 학생들이 대피할 길을 열어줘야 해. 혹시라도 고립된 애가 없는지 찾아줘.”

       “그쯤이야 금방 하지.”

         

       이르카에게 임무를 맡긴 버멜은 로테를 데리고 헤를라인 교수가 있는 대피소까지 달려갔다. 헤를라인의 주변에는 체구가 큰 상급 골렘이 무더기로 있었기에 그녀를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버멜이 외쳤다.

         

       “선생님, 도와드릴게요!”

         

       헤를라인은 사선에서 학생 무리를 급습하려는 드레이크의 목뼈를 부러뜨리며 대답했다.

         

       “어머, 수석 군 아니니? 여긴 안전하니 어서 합류하렴.”

       “아뇨, 전 다시 가봐야 해요. 대신 여기 키 작은 꼬맹이가 있지 않나요?”

       “어…. 유독 성장이 더뎌보이는 친구가 있었던 것 같긴 한데.”

         

       타타탓!

         

       “누가 키 작은 꼬맹이라는 거야아아아─!!!”

         

       버멜이 물어보기 무섭게 한 아이가 대전차무기를 들고 튀어나왔다.

         

       “다들 귀 막고 고개 숙여!!”

       

       언제 나타난 건지 버멜과 로테의 뒤에는 전신이 풀 플레이트로 무장된 변종 드레이크가 서 있었다. 작은 소녀가 짧은 기합을 내지르며 요술봉을 작동시키자 눈앞에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드레이크의 머리통이 단숨에 날아갔다.

         

       “저, 저 꼬맹이가 한 거야…?”

         

       헤를라인이 연성한 골렘의 비호를 받고 있던 학생들이 다리를 덜덜 떨며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저거 본 적 있어. 수인들이 쓰는 무기야!”

       “하지만 저 꼬맹이한텐 귀도 꼬리도 없잖아….”

         

       버멜은 이르카와 마찬가지로 이 소녀의 이름 또한 알고 있었다.

         

       “네가 프레이구나.”

       “뭐야, 귀쟁이! 날 알잖아! 설마 이 몸의 명성이 벌써 수도에 쫙 퍼진 건가?!”

         

       프레이는 의기양양한 걸음으로 몸통만 남은 드레이크의 앞까지 다가갔다. 걸어가면서 한쪽으로 내던져버린 대전차무기는 마소로 환원되더니 그대로 공중에 흩어졌다.

         

       쓰러진 드레이크의 몸통부에 손을 댄 프레이가 ‘흐앗!’ 하는 깜찍한 소리를 냈다. 그러자 마수가 눈 깜짝할 새에 해체되었다.

         

       한낱 철조각으로 돌아간 마수의 육신은 재조립되어 또 다른 대전차무기로 탈바꿈했다.

         

       “즉석에서 연성을 사용하다니…!”

       “너…. 뭐 하는 애야?”

       “특별반 애들은 다 이런 실력인가……?”

       “이 몸을 잘 기억해 둬라, 얘들아! 드워프의 핏줄은 아직 끊기지 않았으니까!”

         

       프레이의 활약을 본 헤를라인 교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헤를라인을 향해 버멜이 입을 열었다.

         

       “여긴 확인만 하러 온 거예요. 선생님께선 이곳을 지키셔야 해서 움직일 수 없으시죠? 그 부분은 저희가 어떻게든 할 테니 모두를 보호해주는 것에 열중해주세요.”

       “수석 군은 상황 판단이 좋구나. 졸업하고 나면 훌륭한 야전사령관이 되겠는걸?”

       “과분한 칭찬이에요.”

       “어쨌건 다치는 일 안 생기도록 조심해. 상해는 방심하는 순간 생기는 거니까.”

         

       헤를라인은 학생을 끔찍이 아끼는 교사였지만, 그 이전에 대륙 최고의 전투마도사 중 한 명이었다. 위급상황에서 버멜의 실력을 바로 알아보고 도움을 바란 건 무른 판단이 아니었다.

         

       이제 적발홍안의 소녀에게도 할 일을 알려줘야 할 차례였다.

         

       “로테라고 했지?”

       “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지 도와줄게.”

       “혹시 이번에 입학한 금안족 소녀가 어디 살고 있는지 알아?”

       “차석 말이지? 아니, 거기까지는 잘…….”

       “에테르 양이라면 내 저택에서 묵고 있어. 지금쯤 나와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동쪽에 있는 문을 통해 5번가로 나가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아, 감사합니다. 들었지? 걔 좀 꼭 데려와 줘.”

       “으, 응!”

         

       로테는 지축을 박차고 동쪽 문을 향해 나아갔다.

         

       마수의 머릿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해 아무리 해치워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불어났다. 아카데미 내부에 남은 인력만으로는 동쪽 주택가로 빠져나가려는 괴물들을 전부 막을 수 없었다.

         

       동쪽으로 달려가는 로테를 보며 버멜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대로라면 전개가 틀어지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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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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