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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드라마 티저 사이트에 뜬 공식 광고영상.

       1분 남짓 되는 영상의 반응은 서연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뜨거웠다.

       

       수아가 밤새 호들갑 떨면서 말했을 정도니까.

       

       “우리 딸, 너무 예쁘게 나왔다!”

       “그러네요.”

       “그치? 내일 학예회에서 난리도 아니겠어.”

       

       그런가?

       서연은 컴퓨터 화면에 비친 드라마 광고 영상을 보며 눈을 깜박였다.

       하필 학예회 전날 영상이 뜬 타이밍은 가히 놀라울 정도였지만 티저 영상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일지는 그다지 짐작되지 않았다.

       

       “애한테 너무 부담 주지마, 뉴스 못 봤어? 아역들이 오래 활동 못하는 이유.”

       

       호들갑 떠는 아내의 반응에 주영빈은 작은 목소리로 지적했다.

       괜히 아이가 부담을 느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건 알긴 아는데…… 서연이는 은근히 이런 거 좋아해요.”

       “……좋아해?”

       “네. 은근히 남이 띄워주는 거 되게 좋아해요.”

       

       수아는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답했다.

       이전에는 잘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딸아이는 배우 일을 하며 이전보다 감정 표현이 또렷해졌다.

       

       컴퓨터 책상에 앉아 무표정하고, 담담한 얼굴로 마우스를 드륵드륵 움직이며 영상을 보는 건 전과 같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자기가 나오는 파트만 열심히 돌려보는 게 보였다.

       

       “……그쵸?”

       “어음. 하지만 악플도 있고…….”

       

       그렇게 말하는 순간 무언가를 보았는지, 딸아이가 혼자 이상한 행동을 시작했다.

       모니터로 총을 쏘거나 하트를 날리거나…….

       

       “저건 뭐야?”

       “좋은 댓글을 보면 저래요. 본인 말로는 리액션 연습이라나.”

       “무슨 리액션인데?”

       “그건 저도 모르죠. 하꼬일 때는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꼬는 또 뭐야.”

       

       주영빈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딸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자세히 보면 확실히 수아의 말처럼 표정과 달리, 상기된 볼이나 묘하게 들썩이는 몸이 보였다.

       

       ‘확실히 기분 좋아 보이네.’

       

       분명 악플도 있을 터인데,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내일 학예회에선 걱정 안 해도 되겠군.’

       

       주영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아역 일은 활동할 수 있는 시기가 한정되어 있다.

       

       특히, 큰 히트작이 있는 아역은 더더욱 그렇다.

       

       ‘물론 일을 찾는다면, 또 충분히 할 수는 있겠지만.’

       

       영빈은 되도록 서연이 바라는 대로 할 수 있게 도울 생각이다.

       그게 아버지의 역할이니. 

       

       그리고 서연은, 나름대로 이에 대해 답을 내린 것 같았다.

       

       ***

       

       아롱다롱 유치원의 학예회.

       이 근방에서 가장 큰 유치원인 만큼, 그 학예회도 규모가 컸다.

       우선 유치원 내가 아닌 강당을 대여해서 진행될 뿐더러, 원아의 숫자가 300명이 훌쩍 넘는 만큼 참석한 부모의 수도 가히 바글바글했다.

       

       “아시죠? 여기 햇님반에 그 아이가 있대요.”

       “아, 연화공주…… 이름이 뭐였죠?”

       “그 아역 이름을 말하는 거면, 아마 서연이었을 거예요, 주서연. 우리 딸도 같은 반이거든요.”

       

       뻘쭘하게 서 있는 남편을 두고, 무리를 지어 이야기하는 어머니들의 주제는 대체로 그런 것이었다. 자신의 아들 딸이 제일이길 바라는 게 부모이니, 유독 눈에 띄는 아이에 대한 화제는 당연히 언급될 수밖에 없는 거다.

       

       “애가 연기를 아주 잘하던데. 보면 사인이나 받아둘까 봐요.”

       “광고라서 그럴 수도 있잖아요. 아니, 뭐…… 딱히 비방하는 건 아니고 아역이라는 게 다 비슷비슷하니.”

       “그쵸. 듣기론 오늘 햇님반은 연극이라고 하던데…….”

       

       듣기론 햇님반에 아역이 둘이라던가.

       그중 하나가 이번에 TV에 나온, KMB에서도 띄워주는 아역이라면 이번 학예회에서 관심을 독차지 할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서연이 등장하길 바라며 오매불망 기다리는 부류도 있었고.

       

       “듣기론 연극은 백설공주인데, 그 애는 거울 역이라고 하던데요? 배역을 양보했다나.”

       “아, 그래요?”

       

       거울역이라는 말에 안도 반, 아쉬움 반.

       아무튼 이래저래 서연은 현재 학예회에서 여러모로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그야 바로 어제 그런 티저가 뜨지 않았는가!

       평소에도 알음알음 퍼져있었던 소문이, 이번 학예회에 참여한 부모라면 한번씩 입에 담을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여보도 저기 끼어서 좀 대화하고 그러지 그래?”

       

       그런 학부모들의 대화를 멀찍히 떨어져 듣던 주영빈이 아내에게 그리 말하자, 수아는 슬슬 고개를 저었다.

       

       “저번에 부녀회 한번 참여했다가 얼마나 눈치 받았는데요.”

       “그, 그래? 크흠!”

       

       얼핏 영빈이 그에 대해 사실을 전해 듣기는 했다.

       딱히 눈치를 줬다기 보단, 그냥 눈이 갔다 던가.

       아내를 보면 또 그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서연이는 괜찮으려나.’

       

       물론 그런 영빈의 생각을 알리 없는 수아는, 그저 딸을 걱정하며 강당 안쪽을 보았다.

       지금쯤 한창 준비를 마무리 짓고, 순서에 맞춰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딸.

       

       비록 거울이지만…….

       아니, 거울이라 묘하게 더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가끔 엉뚱한 딸아이는 이상한 곳에서 지나치게 힘을 넣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

       

       “주서연.”

       “왜.”

       “오늘 내가 제대로 보여줄게.”

       

       뭘 제대로 보여준다는 걸까.

       나는 힐끔 지연을 보았다. 화려한 색 배합이 인상적인 공주님 드레스였다.

       묘하게 백설공주보단 다른 공주가 어울리는 복장이다.

       

       “근데 너는 따로 분장 안 해도 돼?”

       “난 판자 뒤에 서 있으면 되는 걸.”

       

       거울이 무슨 변장을 하겠는가.

       두터운 종이로 만들어진 판자 뒤, 은박지로 꾸며 만든 거울의 뒤에 서서 말만 하면 된다.

       어찌보면, 주서연. 첫 버튜버 데뷔 되시겠다.

       

       ‘애들은 확실히 다들 긴장했구나.’

       

       마냥 해맑게 웃는 애들도 있는 반면, 긴장한 애들도 보였다.

       특히 가장 긴장한 것 같은 아이는, 왕자님 역의 남자아이였다.

       

       묘하게 비중이 있으면서 없는 왕자님 배역.

       그 탓에 남자애들이 기피한 탓에,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된 아이였다.

       

       “배, 배가…… 으으.”

       

       심지어 얼마나 긴장했는지, 안색이 좋지 않았다.

       저거 괜찮나?

       하지만 이해는 갔다.

       지금 강당에 가득 찬 사람의 숫자를 보라.

       

       ‘유치원 학예회라는 게 예상보다 훨씬 크네.’

       

       어렴풋이 예상하긴 했다.

       원아의 숫자가 300명이 넘는 시점에서, 상당한 규모라 예측했지만 이런 느낌일 줄이야.

       유치원 학예회도 만만히 볼 게 아니다.

       

       뭣보다 부모가 거의 전원 참가라는 시점에서, 어떤 의미론 중고등학교 보다 관심도가 높은 것 같기도 했고.

       

       “연극은 우리 반이랑, 새싹반 뿐이래.”

       “그쪽은 뭔데.”

       “리어왕.”

       

       생각도 못한 극의 제목이었다.

       아니, 애들이 할 수 있는 연극은 맞아?

       

       백설공주랑 리어왕은 그, 약간 연령대가 많이 다르지 않나…….

       아무튼 아롱다롱 유치원의 반은 총 열 개.

       

       그중 꽃님반의 순서는 딱 중간인 다섯 번째였다.

       그렇게 잠시간 기다리고 있자.

       

       “얘들아, 곧 나갈 시간이야. 준비해! 다들 열심히 연습했으니까 실수해도 괜찮아! 파이팅!!”

       

       햇님반 선생님 민아가 그리 이야기하자, 아이들이 와~! 하고 큰 소리로 답했다.

       우리 앞 순서는 가벼운 율동 및, 노래를 섞은 무대였다.

       

       짧지만 애들의 귀여움은 보여주기 좋은 구성이라고 해야 되나.

       

       “서연아, 판자 옮길 때 말해. 선생님이 도와줄게.”

       “아뇨, 괜찮아요.”

       

       거울역인 나는 이 종이 판자를 들고 다녀야 했다.

       애들 근력에야 무거울 수 있겠지만, 내 입장에선 말 그대로 종이 판자.

       

       같은 크기의 철판도 들 수 있는데 종이 정도야.

       내가 그것을 번쩍 들고 돌아다니자, 민아 선생님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서, 서연이는 힘도 쌔구나. 배우라 그런가?”

       

       그건 딱히 배우랑은 상관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또 변명할 말도 없어서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자, 그럼 햇님반 파이팅!”

       

       이윽고, 민아 선생님의 응원과 함께 극이 시작되었다.

       판자 뒤에 숨은 나로선 큰 부담은 없었지만, 강당의 좌석에 앉은 학부모들의 시선이 무대 위로 일제히 날아와 꽂혔다.

       

       ‘이건 또…… 드라마 촬영과는 또 다르네.’

       

       이건 이것 나름대로 맛이 있다.

       어린이 뮤지컬 같은 것도 나중에 해볼까?

       

       하지만 뮤지컬을 하려면 노래도 배워야 하고……, 이게 또 버튜버는 가창도 필요한 법이니 나중에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

       

       “이 반이래요.”

       “아, 그 아이가 참여한 연극이요?”

       

       그 아이, 그것이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오늘 어머니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오갔던 이름.

       

       어제 ‘태숨달’ 티저가 공개되며 주목 받은 연화공주 역의 주서연이다.

       

       “듣기론 거울 역이라던데.”

       “아쉽네요.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지 보고 싶었는데.”

       

       티저에서 보았던 것처럼 그리 연기를 잘할지 궁금했다.

       동시에 진짜 ‘배우’인 아이가 끼면 다른 애들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이해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렇게 관심 속에 시작된 꽃님반의 연극.

       조명이 꺼지며, 작은 불빛이 무대 위를 비추며 연극이 시작되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아이들 연극 답지 않게, 배경 음악도 나직하게 깔려 분위기가 썩 그럴싸했다.

       또한 왕비역을 맡았던 아이 역시, 이번 연극을 위해 많은 연습을 한 게 여실히 느껴졌다.

       

       본래 이지연과 함께 공주역을 두고 다투었으나, 안타깝게도 밀려 왕비 역을 맡게 된 아이였다.

       그런 왕비의 열연에, 거울 또한 그에 걸맞은 연기로 화답했다.

       

       「오, 당연히 아름다운 왕비님입니다.」

       

       묘하게 중성적인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학부모들은 순간 흠칫하며 술렁였다.

       

       “역시 배우는 배우네요. 뭔가 다르지 않아요?”

       “발성……이라고 하죠? 이거? 느낌이 확실히 다르네요.”

       

       술렁이는 부모들 틈에서, 수아 역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번에 성우 학원도 다니고 싶어 하더니. 혼자 연습하던게 이거였나봐요.”

       

       연기와 달리, 이 발성 부분은 서연이 더 어렸을 때부터 한참 해온 것이었다.

       연기가 순수한 재능의 산물이라면, 목소리 쪽은 오랜 연습의 결과라고 해야 할까.

       

       덕분에 드라마에서도 서연의 목소리는 아이답지 않게 또렷한 부분이 있었다.

       아이들의 연극이라고 웃으면서 보던 학부모들은, 점차 극에 몰입했다.

       

       이어 차분히 진행되는 연극.

       모두가 아는 백설공주의 내용답게, 백설공주가 태어나며 늘 왕비를 아름답다 칭송하던 거울의 말은 달라졌다.

       

       「눈처럼 하얀 피부를 지닌 아름다운 공주, 그 이름은 백설입니다.」

       

       

       귀에 쏙 박히는 청량한 음성이 귀를 즐겁게 했다.

       평범한 아이들의 연극임에도, 묘하게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목소리였다.

       

       ‘휴가가, 휴가가 눈앞에!’

       

       햇님반 민아 선생님은 환희에 몸을 떨었다.

       이대로 라면, 휴가는 자신의 차지가 될 테니까.

       

       확실히 무대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그때까지는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앗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닷 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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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I Want to Be a VTuber

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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