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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어머?”

       

       이브가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요나 씨는 나이에 비해 참 조숙하시군요? 덕분에 대화가 즐거울 것 같네요.”

       

       어른스럽구나(X)

       발랑 까진 것. 누나랑 좋은 거 할래?(O)

       

       “……?”

       

       고장난 뇌내 번역기. 그런데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정말 그런 의미로 들린단 말이지.

       

       당황해 고개를 휘휘 저으며 덧붙였다.

       

       “이브 씨의 가슴이 아니라, 걸고 계신 목걸이를 말하는 거예요!”

       

       “아하? 제가 착각했나 보네요. …아쉬워라.”

       

       착각한 게 부끄럽다(X)

       까비아깝송(O)

       

       이브가 원래 이런 캐릭터였던가…?

       

       뇌내 번역기가 맛이 간 건지, 이브가 맛이 간 건지 알 수 없어 한숨만 내쉬는 것도 잠시.

       

       이브가 자신의 목걸이를 잡아당겨, 가슴골에 파묻힌 황금색 보석을 꺼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정교하게 세공된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그대로 경매에 올려도, 최소 20골드는 나오지 않을까?

       

       다만 저 목걸이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

       

       장사 수완이 부족한 이브가 근근이 벌어 먹고사는 가장 큰 이유, 무려 운을 높여주는 마도구니까.

       

       이번에 번 돈으로 가챠를 지를 생각인 내겐 무엇보다도 필요한 물건이다.

       

       목걸이의 효과를 잘 알고 있을 이브가 황금색 보석을 손에 올린 채, 방긋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요나 씨가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건 제게 정말 중요한 마도구랍니다. 그리 간단히 넘겨줄 수는 없죠. 설령 이런 상황이라도 말이에요.”

       

       날 죽이고 가져가라. 할 수 있다면(X)

       조건이 있다(O)

       

       “조건만 맞으면 넘겨줄 생각은 있다는 거죠?”

       

       이브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그 긍정적인 반응에 나 또한 마주 웃어 주었다.

       

       “우후후….”

       “아하하!”

       

       옆에 있던 리디아가 식겁하고, 레몬이 눈치 보고, 애플이 전전긍긍했지만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

       

       요정과 은화로 돌아가는 길. 만족스레 웃으며 가슴팍의 목걸이를 쓰다듬었다.

       

       “이야. 정말 좋은 거래였네요! 이브 씨도 좋은 사람 같았고.”

       

       “…요나 눈은 옹이구멍이야?”

       

       “리디아 님.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된다구요? 물론 이브 씨가 좀 수상쩍게 생겼고, 단어 선택도 뭔가 있어 보이는 것만 골라 하긴 하지만…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사람을 쉽게 믿으면 안 돼.”

       

       “쉽게 믿은 건 아니에요. 감이 좋았어요 감이.”

       

       “…그게 쉽게 믿는다는 거야.”

       

       리디아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팔꿈치를 두드렸다.

       

       “설마…지금 질투하시는 건가요 리디아 님? 아이참. 이건 기쁘면서도 당황스럽네요. 제겐 이미 엘리가 있는데 말이죠!”

       

       “그런 거 아냐.”

       

       “아니긴요. 제가 이브 씨랑 사이좋게 우후후 아하하 웃으니까 괜히 기분 나빠진 거잖아요.”

       

       “…마지막의 그건 누가 봐도 놀랐을걸.”

       

       입술을 삐죽이는 리디아. 뭐…사실 그녀도 머리로는 알고 있을 거다. 이브와의 거래는 나쁘지 않았다는 걸.

       

       현금은 2골드만 챙겼으나, 그 대신 아무리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마도구를 받았다.

       

       솔직히 말해 4,600연챠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깝긴 하지만…어차피 지금 당장 전부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몇 년에 걸쳐 조금씩 돌리는 것 아닌가.

       

       차라리 상급 마도구, 그것도 행운을 가져다주는 녀석을 챙기는 게 더 낫지. 그동안 나는 강해질 테고, 그만큼 수입도 늘 테니 말이다.

       

       거기에 마지막에 내건 조건. 이것도 말이 조건이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내용이었다.

       

       에덴에서 물건을 사면 조금 할인해 주는 대신, 모험가로 활동하며 여기저기에 홍보하거나 다른 손님을 소개해 달라던가.

       

       레몬과 애플을 싼값에 부려 먹게 해줄 테니, 시간 나면 2층 모험가 수준까지 성장하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었으니까.

       

       일종의 파트너쉽 제안이다. 보통은 이름있는 모험가들에게나 들어오는 건데…나를 좋게 본 건지, 내 뒤에 있는 리디아를 노린 건지 그런 조건을 내밀더라고.

       

       솔직히 말해 이브의 상태가 갑자기 이상해져서 조금 야한 조건이라도 내걸 줄 알았다.

       

       그건 그것대로 좋았겠지만…뭐, 이브와 장기적인 관계를 맺을 생각이었으니 지금의 조건도 나쁘진 않지.

       

       아무튼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리디아가 뚱해 있는 이유는 역시 둘밖에 없나.

       

       하나는 그냥 이브가 의심스러워서 이대로 돈독한 관계를 맺는 게 맞는가 하는 불안함.

       

       그리고 두 번째는 어쨌든 2골드는 받았으니, 그대로 리디아의 빚을 갚아버릴 것이라는 초조함.

       

       전자는 시간이 흘러 이브의 진가를 알아주길 바라야 하지만…후자는 지금 당장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문제였다.

       

       “리디아 님.”

       

       “…왜.”

       

       “저번에 가불해주신 데이트 비용. 조금 나중에 갚아도 될까요?”

       

       “……!”

       

       살짝 밝아지는 리디아의 안색. 이제 보니 입가가 평소보다 느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는 듯, 표정을 가다듬은 리디아가 말을 이었다.

       

       “상관은 없어. 어차피 금방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했으니까. …그런데 오늘 번 돈까지 합치면 꽤 될 텐데 어디에 쓰려는 거야?”

       

       “그거야 정해져 있죠!”

       

       “역시 장비? 잘 생각했어. 요나도 써봐서 알겠지만 좋은 무기는 부족한 신체 능력을 커버할….”

       

       “당연히 도박이죠! 3배로 따올 테니까 기대해 주세요!”

       

       “…….”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라도 본 것처럼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린 리디아.

       

       하지만 이걸 허락하지 않으면, 내가 자신에게 진 빚을 전부 갚고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버릴 거라 생각한 걸까. 결국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래. 요나 돈이니까 어디에 쓰건 내가 상관할 수는 없지.”

       

       말은 그리하면서도 어떻게든 나를 뜯어말리고 싶어 하는 눈치. 이해는 한다. 며칠 전까지 거지였던 애가 갑자기 큰돈을 벌어 주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겠지.

       

       …틀린 말은 아니네. 하지만 애초에 내가 이만한 돈을 벌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가챠 덕분이잖은가.

       

       2골드를 전부 꼬라박아도 3성 하나만 더 뽑으면 이득이다!

       

       빨리 돌아가서 가챠 돌려볼 생각에 싱글벙글 웃고 있자니, 돌연 리디아가 내 목덜미를 주시하며 물었다.

       

       “그 목걸이.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네? 아 부작용 말인가요?”

       

       “응. 조금 특이한 부작용이었잖아.”

       

       이브가 파는 물건은 하나같이 성능은 뛰어나지만, 요상한 부작용이 붙어있다.

       

       예를 들어 물을 만들어 내는 마도구는 뛰어난 용량을 자랑하는 대신, 악취를 풍기는 물이 나와 마시기 힘들다거나.

       

       일정 시간 동안 주변의 풍경을 투명하게 만들어 안전지대를 만들어 주는 마도구는 소음이 심해 은신의 의미가 없다거나.

       

       뭐, 대충 그런 느낌이려나. 괜히 에덴이 허름한 게 아니다. 이러니까 아무도 안 사는 거지….

       

       이번에 얻은 목걸이. 럭키 스트라이크도 마찬가지다.

       

       착용하고 있으면 행운이 찾아오지만, 그 행운의 종류와 크기는 완전한 랜덤이다.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낮은 확률로 복잡한 일에 휘말릴 수도 있기에 행운 하면 떠오르는 인생 날먹이 불가능한 마도구.

       

       대신 결과적으로는 언제나 이득이 되기에 문제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감수할 보람이 있는 마도구가 바로 이 럭키 스트라이크다.

       

       …그리고 어쩌면 이브가 흑화하게 되는 사건이 럭키 스트라이크 때문에 발생한 문제를 견뎌내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금 있었고.

       

       이브의 물건 중에 가장 잘 만들어진 녀석이고, 본인이 애용하기도 하는 거라 이렇게 쉽게 내어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목걸이가 있을 가슴팍을 매만지며 히히 웃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아무 일도 없이 평온한 인생을 누릴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거든요.”

       

       “요나….”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리디아. 어린애가 벌써부터 우중충한 소리를 하니 여러모로 복잡한 것 같네.

       

       다만 나는 진심이다. 같은 남자가 봐도 감탄스러운 외모인데 남녀역전 세계의 여자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겠는가.

       

       하물며 나는 지구의 정조 관념을 가진 것은 물론, 이 세계의 핵심을 창조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아무런 풍파 없이 평범한 삶과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겠는가.

       

       “어차피 사는 게 고통과 사건의 연속이라면 그 끝에 뭐라도 얻어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행운은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그래. 요나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뭐라고 안 할게. 어서 돌아가서 엘리 선배에게 오늘 있었던 일이나 자랑하자.”

       

       “좋죠! 다만 그전에 잠깐 한 군데만 들렀다 가죠.”

       

       “어디 가게?”

       

       “속옷 가게요.”

       

       “…헉.”

       

       리디아의 가느다란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빨간 눈동자가 빠르게 내 전신을 스캔하는 것을 보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명백했다.

       

       “리디아 님. 지금 야한 생각 했죠.”

       

       “아, 아닌데.”

       

       “흐응. 그렇게 고상하게 구시던 분이 지금 제 속옷 차림을 상상하신 건가요?”

       

       “…….”

       

       이제는 아예 고개를 돌려 대답을 피하는 리디아. 하지만 여기서 멈추는 건 재미없지 않나.

       

       살짝 까치발을 들어 리디아의 볼을 붙잡아 내 쪽을 돌아보게 했다.

       

       복잡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는 리디아의 모습이 한차례 키득이고는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엘리가 좋아해 줄지, 아닐지 자신이 없는데…먼저 봐주실래요?”

       

       “……!”

       

       차마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입만 뻐끔거리는 리디아. 그녀는 몇 번이고 머릿속의 무언가를 언어로 정제하려 들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대신 가늘게 뜬 눈으로 내 머리를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요즘 자주 해주는 쓰다듬이나, 달콤한 스킨십 같은 게 아니다. 아이언 클로다.

       

       꽈아악-

       

       “아파파팟! 리디아 님! 아파요! 놔주세요!”

       

       “안 돼. 안 놔줘. 놔줄 생각 없어.”

       

       “이런 식의 집착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집착 아냐. 교육적 지도.”

       

       “끄아아앙! 알겠어요! 솔직히 말할게요! 사실 제 속옷이 아니라 엘리 속옷을 사러 가는 건데, 리디아 님 반응이 재밌어서 한번 놀려봤어요!”

       

       “……응?”

       

       순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리디아.

       

       그래. 이해할 수 없겠지. 애초에 판 대륙의 여자들은 속옷에 큰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남자 속옷은 쓸데없는 장식이 달려있거나, 시스루라거나, 물에 닿으면 녹는 등. 이것저것 있는 주제에.

       

       여자 속옷은 수수한 단색 천 쪼가리밖에 안 팔더라. 심지어 그나마도 짝짝이로 입는 경우가 많고!

       

       저번에 엘리의 방을 급습했다가 위아래 색이 다른 속옷을 입고 뒹굴거리던 엘리의 모습에 얼마나 실망했는지 알아?!

       

       예쁜 속옷으로 포장해야 하는 대상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뀌었다는 건 이해하지만…그래도 난 엘리가 개쩌는 속옷을 입은 모습이 보고 싶단 말이다!

       

       “제 속옷 차림을 상상하고 흥분한 리디아 님이라면 절 이해하시죠?!”

       

       “전혀 모르겠는데. 그리고 흥분 안 했어.”

       

       “힝.”

       

       하긴. 그걸 이해하면 리디아가 레즈레즈였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레즈레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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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남녀역전 세계의 가챠 중독자
Score 8.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acha – Civilization’s Ultimate Game. Spin now for a shot at fortune. Spending that doesn’t disrupt your lifestyle? That’s virtually free-to-play. Keep spinning until you strike gold – success is guaranteed. … … Today, yet again, I’m at the gacha wheel. “Did I get a 5-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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