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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 * *

       

       

       운게른은 아시아 기마사단을 소집했다.

       

       밤이긴 하지만 안톤 데니킨 중장에게 사람을 보내 말해 두면 군대를 움직여 야습을 감행할 것이다.

       

       

       “이놈들아!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대가리 수만 많고, 무기도 제대로 들지 못한 변변찮은 오합지졸들이다! 이제 우리가 놈들의 뒤를 시원하게 쑤실 것이다! 모두 준비해라!”

       

       

       수천 명의 기마사단이 밤중에 몰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몰래 지켜보던 이가 있었다.

       

       

       ‘저놈 기세가 만만치 않군.’

       

       

       조지 S. 패튼은 아나스타샤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러시아 백군 보조역할을 맡던 미군을 데리고 남러시아까지 내달려왔다.

       

       그런데 밤중에 수천 명의 기마사단이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조지 S. 패튼의 전공을 빼앗으려는 간악한 슬라브 족속의 계략이 분명했다.

       

       비록 미군의 숫자는 적은 편이었으나, 그래도 그렇지 저 운게른이란 놈에게 날뛸 기회를 잃는 것은 싫었다.

       

       그렇다면 뻔한 것이 아닌가?

       

       

       “우리도 간다! 유럽에서 떨친 미합중국의 용맹함을 저 빨갱이들에게도 보여주자!”

       “그저, 저희는 무기가 없습니다만.”

       “거 남는 거 있잖아! 그리고 트럭 위에 대충 기관총 설치해!”

       “트럭이 부족합니다만.”

       “마차에 설치해!”

       

       

       말도 안 되는 패튼의 요구에 전투 병력도 아닌, 그저 보조만 맡으러 온 소수의 미군은 울면서 최소한의 요구를 맞춰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패튼의 뒤를 얼떨결에 뒤따라온 미군도 그렇게 운 게른의 뒤를 쫓게 되었고.

       

       

       “저것들이? 여기서 마저 양키놈들에게 패할 수 없다!”

       

       

       눈치를 봐야 했던 패전국 독일의 의용군도 눈에 불을 켜고 그 뒤를 따랐다.

       

       의지가 굳이 없는 자들이 있다면.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요.”

       “근데 쟤들 가면 평화롭지 않냐.”

       “싸움보다는 나은 듯?”

       

       

       세계대전을 흐지부지하게 끝내 불만이 가득하던 프랑스 의용군뿐이었다.

       

       그리고.

       

       

       “운게른 이 작자는 미친놈인가?”

       

       

       밤중에 대뜸 대군을 움직이라며 통보를 받은 안톤 데니킨 중장은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중장한테, 고작 수천 명의 군대만 끌고 온 놈이 이래라저래라 한다고?

       

       하지만 안톤 데니킨이란 인물은 남러시아에 처박혀 있으면서 키운 눈치로 알아챘다.

       

       운게른에 이어 미군과 독일군까지 움직이고 있다.

       

       미군과 독일군은 황녀의 부탁에 따라 러시아 제국 군복을 입고 있지만. 어쨌든 그 미군과 독일군까지 움직이고 있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자신이 공을 세울 기회는 없어질지도 모른다.

       

       안톤 데니킨은 남러시아 백군의 총병력을 움직였다.

       

       펑 퍼엉! 타다당! 타앙!

       

       키예프(키이우)의 인근에 주둔 중인 볼셰비키는 새벽에 들려오는 포성과 총소리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런 반동 놈들이 치사하게 야습을!”

       “니들이 할 말이냐 더러운 바퀴벌레 놈들아!”

       

       

       키예프 함락을 앞둔 볼셰비키는 운게른의 야습에 혼란에 빠졌다.

       

       숫자는 볼셰비키가 많지만, 전투 경험이 출중한 5천의 기마사단은 무척이나 강력했다.

       

       여기에 뒤늦게 도착해서 각기 다른 방향에서 공격해 오는 미군과 독일군 역시 볼셰비키가 반동들이 대군을 끌고 야습해 왔다고 착각하기에 충분했다.

       

       이제 막 마흐노가 남겨둔 게릴라들을 겨우 격퇴한 시점에서 새로운 악재에 빠져든 것이다.

       

       

       “주.죽기 싫어!”

       “나는 항복할래!”

       “내 총에 죽고 싶나! 얼른 싸워라!”

       “네놈이 나가서 싸워!”

       

       

       밤중에서 사방에서 들쑤시고 오자 상대의 전력을 알지 못 하는 징집병들은 쓸려 나가는 전우를 보고 경악해서 항복하기 일수였다.

       

       분명 혹시모를 야습에 대비는 해뒀지만, 전방위적으로 들려오는 적군의 함성에 적군은 겁을 집어먹었다.

       

       병사들을 협박하던 정치장교들이 총을 쏘자, 반대로 정치장교들을 살해하는 병사들까지 있었다.

       

       

       “헬로?”

       “저 새끼 미군이다! 황녀가 외국군을 들였다! 컥!”

       

       

       한밤중의 혼란이 계속 이어질 때쯤, 마무리를 짓기 위해 안톤 데니킨의 군대가 공격했고, 하룻밤 사이 볼셰비키의 군대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놀랍게도 이 붉은 군대의 총사령관은 트로츠키였으며, 스탈린 견제로 인해 직접 오지 못했다.

       

       그렇게 군대를 이끌고 온 자는 알렉산드로 예고로프, 러시아제국의 대령이었다가 붉은 군대로 갈아탄 야전사령관이었으며, 처음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적군의 남부 사령관을 맡은 미하일 프룬제와 함께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

       

       그렇게 얼마 전까지 영국군을 밀어붙이고 우크라이나 중부까지 장악했다.

       

       그러나 이 대규모 야습에는 그라도 감당할 수 없었다.

       

       

       “이 망할 반동들이!”

       

       

       안 그래도 머릿수로 몰아붙이던 전투였다.

       

       그 머릿수만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예고로프는 잘 이끌었으나, 야습에는 도무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애초에 야습을 해 올 거라 어떻게 짐작이나 하겠나.

       

       그것도 말이나 타고 오는 놈들이 있을 줄 어떻게 알았을까.

       

       당연히 훈련 하나 제대로 되지 않은 병사가 태반인 붉은 군대는 밤중에 대지를 두들기는 기병대 수천을 당해내기란 어려웠다.

       

       더군다나 전투가 좀 진행되자 밤중에 어디서 어떻게 쏴대는 건지 몰라도 기관총소리에 다들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기 바쁘다.

       

       그의 휘하에 있던 세묜 티모센코나 세묜 부됸늬는 열심히 싸웠지만. 이미 무너지는 병력은 어쩔 수 없었다.

       

       미하일 프룬제의 군대가 알렉산드로 예고로프를 지원하기 위해 왔지만, 이미 예고로프의 군대는 무너진 지 오래였고. 프룬제는 그들을 수습하여 철수해야만 했다.

       

       결국 우크라이나 장악을 위해 출병한 붉은 군대는 그렇게 퇴각해야만 했고.

       

       

       “우크라이나마저 실패했다는 말인가!”

       

       

       이 공격을 계획한 트로츠키 역시 정치적 타격은 피할 수 없었다.

       

       

       * * *

       

       

       

       트로츠키는 우크라이나 전역의 패배를 보고받고 이를 악물었다.

       

       

       “젠장. 예고로프 동지가 안톤 데니킨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는 말인가!”

       

       

       어쩔 수 없었다.

       

       브로실로프는 여전히 협력하지 않는다.

       

       겨우 회유와 협박을 수십 차례 하면서 제정 시절 장교들도 포섭하고 장군들도 붉은군대로 들였다.

       

       예고로프도 그중 한 명이었다.

       

       사실 트로츠키 본인이 직접 우크라이나로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

       

       내부에서 스탈린이 대놓고 자기 자리를 노리고 있으니까.

       

       심지어 레닌 동지도 이전만 못 했다.

       

       총기가 흐려지기라도 한 건지 왜인지 모르지만. 레닌 동지는 저 반동 세력에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다.

       

       레닌 동지가 스탈린을 좀 제압해주면 좋으련만.

       

       레닌은 지금 당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였다.

       

       오히려 당의 간부들을 포섭하는 스탈린을 공산당을 안정시킨다면서 넘기고 있고.

       

       

       ‘소련이 무너지고 있다.’

       

       

       혁명이 무너진다.

       

       기껏 세운 이 소비에트가 무너져 버린다.

       

       애초에 소련의 성립과정을 본다면, 지금까지 온 것이 기적에 가깝긴 하지만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정말 거의 다 왔는데, 이건 좀 심했다.

       

       정말 거의 다 왔는데, 저 아나스타샤란 년만 없었다면 저 반동 세력은 저들끼리 싸우다 무너졌을 텐데!

       

       대체 저 아나스타샤란 계집이 뭔데, 자신들의 혁명을 막는다는 말인가.

       

       그나마 발트쪽으로 보낸 붉은 군대는 백군을 격파하긴 했지만, 애초에 그쪽은 황녀와도 닿지 않는 독자적인 백군이었고 주력도 아니었다.

       

       그리고.

       

       트로츠키는 예카테린부르크에 이어 우크라이나에서의 실패를 레닌에게 보고해야만 했다.

       

       비록 사령관은 예고로프였으나, 어쨌든 그것을 명한 사람은 자신이었다.

       

       자랑거리도 아닌 이것을.

       

       소련에게 큰 위기가 닥쳤음을 의미하는 패전을. 레닌에게 말해야만 한다.

       

       

       “트로츠키 동지.”

       “예. 레닌동지.”

       “이번 우크라이나 전역에 대해할 말이 있나?”

       “그것이.”

       “괜히 열강들만 건드린 꼴이 되어 버렸어.”

       

       

       완벽히 제압하고 우크라이나를 취했다면 모른다.

       

       제아무리 제국주의자 놈들이라고 해도 이제 막 전쟁을 끝난 마당에 러시아에 지원할 병력이 있을 리 없다.

       

       당장 내부의 공산주의자 발흥을 조심해야 할 처지 일 텐데. 그들이 살판나게 군대를 보낸다는 선택지를 취할 리 없다.

       

       해서 우크라이나 장악은 분명해볼 만한 도박이었다.

       

       우크라이나를 장악하고 반동들을 격파하면 다시금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그 풍족한 우크라이나 땅을 기반으로 남러시아를 격파하고 저 황녀를 시베리아에 처박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밀어붙일 장대한 계획이었다.

       

       무엇보다도.

       

       승리해서 인민의 마음을 돌리고, 소비에트를 하나로 결집하려 했다.

       

       그렇게만 해도 붉은 군대는 몇 번이고 재건할 테니까.

       

       하지만 실패해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하필이면 제국주의 열강도 아닌, 백군 반동들에게.

       

       이러면 안 그래도 흔들리는 소련은 밑동부터 황녀가 도끼로 찍어 버린 꼴이 될 거다.

       

       

       “레닌 동지. 하지만 우리에겐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취해야 할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무엇인가. 실패하지 않았나? 차라리 내부를 더 다스려야 했어. 아직 백군 반동들에게 넘어가지 않은 지역만 따져도 충분히 우리는 재건 가능했네.”

       “이건 혁명의 정당성을 위해, 혁명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제국주의자 놈들 사이에서 꼬리를 말고 있었으면 우리의 혁명을 거기서 끝입니다.”

       “당분간은 군대를 단속하게.”

       “레닌 동지.”

       “얼마 전에 니즈니노브크라드가 표트르 브란겔에게 넘어갔네.”

       

       

       니즈니노브그라드가 넘어갔다.

       

       니즈니노브그라드는 모스크바에서 가까운 도시였다.

       

       그곳이 넘어갔다는 것은 모스크바까지의 길이 뚫렸다는 의미.

       

       

       “그럼!”

       “지금은 모스크바 방어선을 강화할 때라는 것이야. 모스크바를 잃게 된다면 우린 페트로그라드 가야 하네.”

       

       

       모스크바는 사실상 최후의 보루였다.

       

       이곳을 잃는다면 소련의 힘은 크게 약화될 것이다.

       

       

       “끄응.”

       

       

       트로츠키는 이를 악물었다.

       

       

       “방어만 한다면, 모스크바만 어떻게 지켜낸다면 제국주의자 놈들에게 휴전을 맺을 수 있도록 할 수 있겠지.”

       

       

       그나마 계속 이쪽이 방어만 할 수 있다면.

       

       그 방어선을 기반으로. 고착화해서 휴전까지 가능할 것이다.

       

       물론 최악의 수단이지만, 시간을 벌려면 어쩔 수 없다.

       

       

       “일단 인민들을 계속 다독이고 설득하고 선동하게. 쳐들어올 황녀는 다시 차르정의 압제에 밀어 넣을 거라며 선동하란 말일세.”

       “알겠습니다.”

       

       

       트로츠키는 레닌의 집무실에서 터벅터벅 힘없는 발걸음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옆에서 다른 동지들과 함께 있는 스탈린을 노려봤다.

       

       

       “스탈린! 반동들과의 휴전이야기가 왜 레닌동지의 입에서 나온다는 말인가?”

       “현실을 보게. 자네가 실패해 버려서 남은 선택지 일 뿐이니까.”

       “뭐라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차리친 방어에 실패한 것이 어디의 누구인데!

       

       그것도 저리 뻔뻔하고 평온한 얼굴로 저런 말을 하는 것인가!

       

       

       “차리친을 공격하는 황녀의 군대에 전차가 있더군.”

       “전차?”

       

       

       그 소리는 듣지 않았나.

       

       그 전차가 무서워서 도망쳤다는 것까지 다 알고 있는데 뭘 똑같은 소리를 하는 것인가.

       

       

       “그래. 러시아 제국깃발을 단 전차였어. 이미 영프가 작정하고 전차까지 지원하고 있다는 뜻이지. 그 전차에 순식간에 참호가 뚫렸지. 현실을 인지해야 하네. 열강들이 이미 깊숙이 개입했어. 우리가 살 방법은. 황녀를 지원하는 그놈들이 지칠 정도로 백군 반동의 공격을 박아야 한다는 거네. 인민의 목숨을 갈아 넣어서 말이지.”

       

       

       트로츠키가 바란 것은 이런 혁명이 아니다.

       

       이런 아무것도 아닌 혁명. 제국주의자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이 현실이 싫었다.

       

       이렇게 될 바엔 죽을 때까지 싸우는 편이 나을 것이다.

       

       레닌 동지도 이상하고 스탈린 이놈은 그걸 이용하고 있다.

       

       반동들과의 휴전이라니.

       

       남러시아까지 확보한 반동이다.

       

       극동지역에 있는 볼셰비키들은 반동들에게 토벌당한 지 오래다.

       

       물론 아직 이대로 휴전만 한다면 언제든 소련이 다시 기사회생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이 내전의 승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황녀는 위험한 존재다.

       

       혁명을 무너뜨리는 상징적 존재다.

       

       휴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지금 혁명은 미완성이라는 뜻이다.

       

       이 뼈아픈 현실을 뒤집으려면 어떻게든. 모스크바를 사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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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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