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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대미궁이 열린 지 6일째가 되는 아침.

        시련 종료까지 단 하루를 남겨 놓은 시작의 층은 유난히도 조용했다.

        강의실에서도, 구내식당에서도, 기숙사에서도.

        로브를 쓴 채 돌아다니는 마법사들은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위치노트만을 보고 있었다.

       

        모두의 관심은 오직 두 가지였다.

        글레시아, 미티어를 비롯하여 대미궁으로 들어간 0년차 문하생들의 생환 여부.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갤러리를 비운 채 사라져 버린 주딱.

       

        누군가는 우연의 일치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은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마탑의 행정부조차 건드릴 수 없는 미궁의 문을 그가 열고 들어 갔을지도 모른다고.

       

        만약 그렇다면 지금까지 갤러리에서만 장난삼아 불러댔을 뿐.

        한 번도 직접 드러난 적 없는 주딱의 정체를 저 문이 열리는 순간 확인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금껏 갤러리에 글을 써본 적 없는 마법사들까지 위치노트를 손에 들고 새로운 소식이 들려오길 기다리는.

       

        고요한 아침이었다.

       

        ====

        [대미궁 출구 아직도 안 열림?]

       

        진짜 안에서 뭔일 있나 보네

        이젠 진지하게 좀 무서운데

       

        — 미티어 애들 들어간지 삼일 밖에 안 지남

         ㄴ 그니까 하루밖에 안 남았잖어

        — 끝까지 지켜보긴 해야지

        — 이미 행정부에서 긴급 원탁회 개최함

         ㄴ 그거 아무 결론도 없이 윗선에 보고하겠다 도르로 끝남

         ㄴ 순혈 가문들이 나서기엔 너무 늦었지

         ㄴ ㄹㅇ 이제 와서 미궁 열려고 해도 하루 안에는 불가능함

        — 만약에 다 죽었으면 ‘검은별’ 탄생 이후 최악의 참사 아니냐

         ㄴ 프리나나 : 그 새끼들 언급하지 마 등신아

         ㄴ 왜?

         ㄴ 해주학파라서 찔리나 봄 ㅋㅋ

        ====

        ====

        [그보다 지금 주딱 갤러리 접속 안한 지 벌써 80시간째임]

       

        나 입탑하고 한 번도 이런 일 생긴 적 없었는데

        이러다 갤 망하는 거 아님?

       

        — 하루 20시간동안 갤 관리하던 애가 안 보인다라…….

        — 진짜 파딱 구하러 미궁 들어갔나?

        — 주딱 죽으면 갤러리 폐쇄됨?

         ㄴ 아직 한 번도 안 죽어봐서 모르긴 해

         ㄴ 탑주가 죽으면 마탑이 무너지는 건 당연함

        ====

        ====

        [주딱 어디갔어? 나 추워…….]

       

        파딱들의 차단에는 사랑이 담겨있지 않아

        주딱이 직접 때려줬으면 좋겠어…….

       

        — 응 곧 11층 문 열고 나올 거야~

        — 갑자기 죽어있던 파딱들 다 살아나서 일하는 거 보면 뭔가 지령 받은 거 같긴 함

        — 수상하다 수상해

        — 죽은 주딱이 산 파딱들을 채찍질하는구나…….

        ====

        ====

        [주딱이랑 초천재금발미소녀 <- 미궁에서 농밀찐득교미하고 있을 거 같으면 개추]

       

        둘 다 사라진 시기도 미묘하게 겹치고

        이번에 얘 뽑고 오프모임 계획했을 때부터 수상했으면 개추

       

        [추천 942 / 비추천 889]

       

        — 넌 씨발 눈치가 없냐?

         ㄴ 왤캐 예민함 원래 이런 갤이었는데

        — 주딱 처녀성 의심하지 마라

        — 만약 그러면 벌써 6일째네? 역시 주딱…….

         ㄴ 6일 ㄴㄴ 4흘이지

         ㄴ 3흘도 아니고 4흘은 또 뭐야

        ====

       

        시간이 흐를수록 미궁 안에 들어간 이들의 생환 가능성은 낮아졌기에.

        미묘한 글 리젠과 의미없는 떡밥만이 가득하던 무거운 분위기의 갤러리.

       

        그곳에 마침내, 한 유저의 글이 올라왔다.

       

        ====

        마린이58

        [씨발 살았다!!!!]

       

        페르젠 자작가 삼남이 18년 인생 시작의 층도 못 벗어나고 종치는 줄 알았네

        망자 새끼들한테 안 들키게 마수들 시체 속에 숨어있었는데 신성학파였으면 진작에 냄새맡고 뒈졌을 듯

       

        경고하는데 다음부터 대미궁 절대 먼저 들어가지 마라

        아사 직전에 구조대 와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나도 절대 못 나왔다

       

        — 오 

        — 오?

        — 생존자 떳냐!!!!?

        — 뭐야, 어그로 아니고 진짜임?

        — 망자가 있다고? 대미궁에?

        — 다른 생존자 더 있음?

        — 빨리 썰 풀어!!! 추천 줄 테니까 당장!!!

        — 구조대는 무슨 소리임?

        — 안에 주딱 있냐? 

         ㄴ 그거부터 일단 말해!!! 주딱 봤어!!!?

        .

        .

        .

        ====

       

        대미궁에서 살아 나왔다는 마린이58의 글에는 1초에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유동인데다 진위를 판별할 수 없었기에 초기엔 단순한 분탕의 장난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마탑에 존재하는 모든 마력 승강기가 11층을 향해 움직이고.

        수업을 듣던 정보부 소속 마법사들이 급히 강의실을 뛰쳐나갔다는 제보가 이어지자.

        정말로 생존자가 있었으며, 미궁의 출구가 열렸다는 주장이 급속도로 힘을 얻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없어 보이는 마린이58의 글이 갤러리에 올라왔다.

       

        ====

        마린이58

        [대부분 살아있음]

       

        구조대는 글레시아랑 미티어 말한 거고

        나도 들은 거지 직접 본 건 아닌데

        어떤 미친놈이 미궁 박살내고 다닌다더라

       

        근데 주딱은 왜? 무슨 일 있었음?

        ====

       

       

       

        *

       

        콰아아앙——!!

       

        어둠 속으로 창이 날아간다.

        폭음과 함께 조각난 시체의 파편이 줄을 잇는다.

        구석에 숨어있던 생존자를 발견해 응급 처치 후 후발대에 합류시킨다.

        이미 사라져 버린 클락을 뒤쫓아 다시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전력을 다해 뛴다.

       

        이 모든 과정을 며칠 간 반복한다.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헉, 허억…… 저게 고작 금 등급 모험가라고?”

        “말도 안 돼, 괴, 괴물이잖아요……!”

       

        창을 회수해 피를 닦는 클락을 보며 아르투르와 세라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시련이 무사히 끝나면 마탑의 모든 학파가 그를 주시할 것이다.

        탑은 결코 무력만으로 올라갈 수 없지만, 마법 이외에도 쓸만한 무기를 가진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명백하다.

        두 사람도 해주고 뭐고 기회만 되면 그를 영입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명, 마리엘만큼은 다른 이유 때문에 클락을 뒤쫓았다.

       

        “관리인!”

        “네?”

        “조금 전 출구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러니 이제 그만이어요!!”

       

        이미 여섯 개의 안개가 중첩된 그녀의 컨디션은 극히 나빴다.

        4일차엔 시야가 어둠에 먹혀 버렸고, 5일차부터는 마력이 회복되지 않았으며, 6일차가 되었을 땐 심한 생리통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더듬거리는 손으로 클락을 붙잡은 순간, 마리엘은 그가 자신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에서도 멈추지 않고 있음을 알았다.

       

        모험가는 자신의 ‘기감’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그 과정에서 생기는 공백을 동료에게 맡기는 직업.

        그러나 세 사람이 클락을 보조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투창이 장기인 그가 전위를 맡고 수색도 하며 대부분의 적들을 상대한 결과.

        망자들의 끓는 피는 창대를 따라 손아귀를 적셨고, 때론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마수에게는 공격을 허용하기도 했다.

       

        “이제 나가는 것이에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기로 하고 우선 절 따라오세요.”

        “안 됩니다.”

        “어째서요!?”

        “문을 부수지 않으면 미궁에 남은 이들이 출구로 향하는 길이 다시 막힐 테니까요.”

       

        출구는 직전에 지나친 갈림길에 있었으나 명계의 문 또한 지척이었다.

        클락은 아직 앞이 보이는 아르투르에게 두 사람을 맡기며 먼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가라고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좁은 길목이니 혼자서도 갈 수 있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이제 돌아가시죠.”

        “그럴 순 없다. 우리가 먼저 빠져나가면 너 뿐만 아니라 남은 문하생들을 볼 면목이 없어지니까.”

        “그럼 후발대에 합류해 아직 헤매고 있는 이들을 도와주시죠. 저는 혼자서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아르투르가 망설이자 클락은 위치노트를 꺼냈다.

        이번엔 파충류로 할까-.라며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그는 곧장 몸을 180도로 돌렸다.

       

        “아, 알겠다! 내가 꼭 책임지지!”

        “부탁합니다.”

        “관리인…… 클락!”

       

        어두운 통로를 따라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를 듣자 마리엘은 가슴이 욱씬거림을 느꼈다.

        그것은 몸 속에 깃든 신비의 파편이 그녀로 하여금 새로운 원칙을 적립하려 하고 있음과 더불어.

        두 번이나 자신을 구하러 온 클락에 대한 감정이 만들어낸 통증이었다.

       

       

       

        *

       

        아오, 드디어 갔네.

       

        나는 한결 가벼운 걸음으로 미궁의 최심부를 향해 이동했다.

        세라와 아르투르는 몰라도 마리엘과 떨어지니 앓던 이가 빠진 것마냥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사흘 간 입은 상처 중 대부분은 그녀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전위를 서주겠다고 근처에서 얼쩡거리다가 날아오는 공격을 신비로 죄다 피해 버렸기 때문이다.

       

        ‘다음부터는 절대 같이 등반하지 말아야지.’

       

        이제라도 보내버린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통로의 끝에는 망자들을 꾸역꾸역 뽑아내는 명계의 문이 보였다.

       

        표면에는 거대한 묵빛의 조각상들이 조각되어 있고, 그들 모두가 명계의 왕을 수호하는 기사들이었다.

        한때 대륙에서 가장 위대했던 다섯 검사로부터 시선을 올린 나는 문의 상단에 놓인 거무튀튀한 보석을 향해 창을 던졌다.

        미티어 학파에서 빌린 창들은 모두 부러지거나 부식되어 껌칼과 밀대로 쓰던 녀석이었지만 문을 부수기엔 충분했다.

       

        팍!

       

        기감을 이용해 펼친 필중(必中)과 필관(必貫)의 묘리가 실린 창날이 보석을 꿰뚫었다.

        굉음을 내며 무너진 명계의 문 뒤에서 찾고 있던 마지막 표적을 발견했다.

       

        “이거였군.”

       

        미궁의 핵.

        마리엘, 명계의 문과 함께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계속 기감에 걸리던 것 중 하나.

        세라의 말대로 미궁 전체의 안개를 조율하는 일종의 마도구로 보였다.

        부순다면 지금 온몸을 휘감고 있는 저주들이 사라지겠지만 전리품으로 챙겨가면 다른 쓸모가 있겠지.

       

        벽에 붙은 핵을 갈무리해 챙긴 나는 시험삼아 위치노트를 켜봤다.

       

        ====

        [그럼 으3주딱으 어디간 그입?@ 

       

        진자 즉은느!?

       

        — 휴그라도 간나브지

        — 다들 건그하 어드

        =

       

        출구에서 가깝기 때문인지 잠깐씩 신호가 잡혔다.

        글자가 죄다 깨져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어찌저찌 갤러리가 잘 돌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배도 없고 핵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분탕들도 설치지 않고 있다.

       

        거 봐 이 새끼들, 시키면 잘 할 거면서 지금까지 괜히 농땡이 핀 거였잖아.

        파딱 셋이 힘을 합쳐 갤 관리를 하고 있음을 본 나는 잠시 고민하다 관리자 게시판을 열었다.

        평소에는 공명정대하고 자비롭지만, 가끔 이런 식으로 얄미운 녀석들의 뒤통수를 때려주는 것도 주딱의 품격이었다.

       

        ====

        관리자 : 연회를 개최하겠습니다

        관리자 : 장소는 대미궁의 최심부

        관리자 : 일시는 지금입니다

        ====

       

        일방적인 통보 후 위치노트를 닫았다.

        시련이 진행 중인 공간을 비집어 침투하는 것은 어지간한 고위 마법사도 버거워하는 일.

        나중에 따진다 해도 마리엘은 왔는데 너희가 참석 못 한 거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남은 창 한 자루와 미궁의 핵을 챙긴 내가 출구를 향해 나가려 할 때.

       

        쿵——!

       

        “응?”

       

        마탑 전체를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Liosy 님 후원 감사합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체력이 허락되는 한 1일 1연재만큼은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갤러리물을 쓰면 집필이 빠를 줄 알았는데, 갤러리 반응과 스토리 진행을 동시에 하다 보니 글자 수만 더 많아졌네요
    그래도 한 편 한 편에 즐거움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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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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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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