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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아, 아멜리아. 이게 도대체 무슨···.”

       

       “나도 몰라! 부, 분명 아무도 모르고 있었을 텐데!”

       

       

       클레어 선생님이 사라진 직후.

       

       아멜리아와 시우는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어제 여학생의 속옷을 뒤진 사람을 알고 있었으니까.

       

       아니, 알고 있는 게 아니었다.

       

       실행범과 계획범이니까.

       

       계획부터 실행까지, 모든 걸 시행한 사람들이 바로 두 명이었으니까.

       

       

       “어디서부터 새어나간 거지? ···CCTV? 아니야, 사각지대는 확실히 파악해놨어. 경비원? 아니면 학생?”

       

       

       중얼중얼중얼.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시우의 귓가를 맴돌았다.

       

       ···그런데, 내용이 조금 이상한데.

       

       CCTV의 사각지대를 이미 파악해뒀다고?

       

       아멜리아는 도대체 무엇을 목표로 향하고 있는 걸까.

       

       시우의 표정이 점점 떨떠름해졌다.

       

       어쩌면 아르테를 잡는 게 아니라 그녀를 먼저 잡는 게 사회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닐까?

       

       

       “좋아. ···유시우, 아직 우리의 꼬리가 밟히지는 않았어.”

       

       “어?”

       

       “어떤 경로로 우리의 행동이 들켰는지는 몰라도, 아직 범인이 확정된 건 아니라고. 일단 최대한 모른 척하는 거야. 알겠지?”

       

       

       시우의 마음속 의문이 점점 확신을 얻게 될 무렵.

       

       아멜리아는 시우에게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이미 들킨 게···.”

       

       “아니야. 사건이 벌어졌다는 건 알고 있지만, 누가 벌였는지는 확신하지 못한 게 분명해. 이미 들켰으면 우리는 지금쯤 감옥이라고.”

       

       

       확실히.

       

       여학생의 속옷을 누군가 뒤졌다니, 평범한 일은 아니니까.

       

       범인을 알고 있다면 불순한 의도가 있다며 그 자리에서 체포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부터 최대한 모른 척을···.”

       

       “두 분, 사이 좋아 보이시네요?”

       

       “히약?!”

       

       

       덥석.

       

       소리소문없이 다가온 누군가가, 아멜리아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화들짝 놀라 다리가 풀린 아멜리아의 뒤에 보이는 건 검은 머리카락.

       

       ···아르테.

       

       

       “히, 히이이이···.”

       

       “어라. ···너무 놀라게 했나? 괜찮아요?”

       

       

       아멜리아를 부축해주는 아르테의 모습이 눈에 띄었지만, 시우는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필 이 타이밍에.

       

       나와 아멜리아가 앞으로의 방침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모인 상황에서, 도대체 왜 모습을 드러낸 거지?

       

       그녀가 나를 감시하고 있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최근에는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있었는데.

       

       나와 아멜리아의 비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있지, 아르테.”

       

       “네?”

       

       “여기에는, 무슨 일로···?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도 아닌데.”

       

       “···아하. 제가 밀회를 방해하기라도 했나요? 이거 죄송해서 어떡하죠? 으음,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와중이었거든요. 돌아가는 길에 아는 얼굴이 보이길래, 잠깐 장난을 쳐볼까 해서요.”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이다.

       

       화장실은 이쪽은커녕 반대 방향이라고.

       

       대놓고 거짓말을 한다는 건, 역시 말해줄 생각은 없는 건가?

       

       

       “아하하. 죄송해요. 너무 놀라게 한 모양이네요.”

       

       “아니, 괜찮아. 그렇지, 아멜리아?”

       

       “으, 으응. 하, 하하···. 나는 멀쩡한걸?!”

       

       

       잔뜩 당황한 아멜리아가 자신이 멀쩡하다며 자기주장을 시작했다.

       

       잠깐 미심쩍은 듯한 표정을 짓던 아르테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다행이네요. ···그래도, 조심하시는 게 좋아요. 요즘 범죄자가 아카데미 내부를 돌아다닌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버, 범죄자···?”

       

       “네에. 무려 여학생의 속옷을 무자비하게 뒤졌다던가. 이 어쩜 파렴치한! 천벌 받아 마땅한 존재가 분명해요! ···그렇죠?”

       

       

       싱긋.

       

       아르테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내게 동의를 구하는 건가?

       

       꿰뚫어 보는듯한 시선에 무심코 용서를 빌 뻔했지만, 어떻게든 눌러 담고 그녀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 그렇지.”

       

       “아아, 어떤 용감한 학생이 범인을 잡는다면 정말 좋을 텐데요. 그렇지 않나요?”

       

       

       어떤 용감한 학생이 범인을 잡는다.

       

       ···아르테 이시스가 나를 잡는다, 그런 의미인가?

       

       

       “잡을 수 있다면 좋겠네.”

       

       “어라, 시우 군은 관심 없나요? 여성의 속옷을 뒤진 파렴치한 빌런이에요? 잡는다면 분명 큰 상을 받을 텐데.”

       

       “···뭘 말하고 싶은 거야?”

       

       “아하하. 그게, 시우 군과 함께 범인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싶어서요. 같이 하지 않을래요?”

       

       

       나보고 나를 잡으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아르테에게 거절 의사를 밝히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찰나, 그녀가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

       

       싱긋 웃으며 자연스럽게 허리를 살짝 굽힌 그녀가 내게 질문했다.

       

       

       “어때요?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거다.

       

       아니, 한 달 가까이 욕구를 해소하지 않았어도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당장 어제 느꼈던 그 감촉이.

       

       그 냄새가 문득 떠오르고 말았다.

       

       ···허리를 굽힌 탓에 아르테 이시스의 목에 슬쩍 보인 레오타드가, 시우의 오감을 일깨우고 있었다.

       

       

       “네? 재밌어 보이지 않나요?”

       

       “으, 으응···.”

       

       

       아뿔싸.

       

       시우는 자신이 입 밖으로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실언을 놓치지 않은 아르테가 기쁜 듯이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범인 찾기, 계획이 세워지면 말해드릴게요!”

       

       

       갑자기 등장했을 때와는 다르게, 뚜벅거리는 발걸음을 내며 사라지는 아르테를 보며 시우는 생각했다.

       

       망했다.

       

       그나저나, 저기는 화장실로 가는 방향인데.

       

       대놓고 거짓말을 하다니.

       

       화장실에서 오는 중이었다면 반대 방향이라고.

       

       

       “후, 후으윽···! 주, 죽는 줄 알았네. 심장 아파···.”

       

       “괜찮아?”

       

       “안 괜찮거든? 와아, 진짜 깜짝 놀랐네.”

       

       

       아르테가 사라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아멜리아가 숨을 고르며 쿵쾅대는 심장을 가라앉혔다.

       

       

       “역시, 의심하고 있는 것 같지?”

       

       “응. 틀림없어. 그녀는 우리가 범인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해도, 의심은 하는 것 같아.”

       

       “후우, 예상은 했지만···. 조금 힘들겠네.”

       

       

       아멜리아의 말대로,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결국 선생님께 이야기할 수 있는건 아르테 본인밖에 없으니까.

       

       분명 모종의 방법으로 누군가 자신의 사물함을 뒤졌다는 걸 깨달았겠지.

       

       도대체 무슨 방법인지는 몰라도, 범인이 우리가 아닐까 의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제안, 왜 받은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거절하는 게 나았을 텐데.”

       

       “그, 그건···.”

       

       

       말할 수 없었다.

       

       그녀가 허리를 숙일 때 언뜻 보인 레오타드에 정신이 팔려있다가 나도 모르게 수락해버렸다니.

       

       죽어도 말할 수 없었다.

       

       

       “뭐, 좋아. 이미 지나간 일. 더 생각해봐야 의미 없겠지. 앞으로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 게 더 낫겠지.”

       

       “앞으로 어떻게 하는가···.”

       

       “우선 아르테가 무슨 계획을 세우고 오는지 보고 나서 결정하는 건 어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으니까.”

       

       

       아멜리아의 말에 딱히 이상한 점이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약간의 이상한 점이 있었어도 고개를 끄덕였겠지.

       

       시우는 아르테의 제안을 수락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좋아. 그렇게 하자.”

       

       “후우, 그래. 슬슬 돌아가자고. 도대체 무슨 계획을 들고 올까? ···벌써 무서워지는데.”

       

       

       

       ***

       

       

       

       “후후. 대성공이네요, 작가님. 그렇지 않나요?”

       

       [물론이죠! 학교에 잠입한 빌런을 히로인들과 찾아내고, 빌런을 쓰러트리는 왕도적인 전개···! 이건 히트에요!]

       

       

       유시우가 혹시 거절할까 싶어서 노심초사했는데.

       

       다행히 잠깐 생각하는 것 같더니 수락해주었다.

       

       역시 애니메이션은 틀리지 않았어.

       

       미소녀가 살짝 허리 굽히면서 해주는 부탁은 다 들어주길래 따라 해봤는데, 잘 통하네.

       

       

       [그런데, 계획이 있다니. 생각해 두신 거라도 있으세요?]

       

       “있고말고요. 이런 상황에서 등장하지 않으면 섭섭한 설정이, 이미 나왔잖아요.”

       

       [···?]

       

       

       뭐야.

       

       또 까먹었어?

       

       

       “하아. ···동아리요, 동아리.”

       

       [동아···? 아, 아앗! 기억하고 있었어요! 탐험 동아리! 맞다, 그게 있었···. 흡!]

       

       “이미 들켰거든요.”

       

       [헤, 헤헤···.]

       

       

       진짜 작가님은 내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독자들에게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고 있었겠지.

       

       이 설정은 나와놓고는 왜 안 쓰냐, 맥거핀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에서부터 시작해서 온갖 욕을 얻어먹지 않았을까.

       

       사실 지금도 욕을 먹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긴 한데, 다행히도 멀쩡한 걸 보니 소설은 순항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학교에 잠입한 빌런의 능력은 정해놓지 않으셨죠?”

       

       [네. 그냥 잠입했다는 설정 하나만 부여해놓은 상태에요.]

       

       “위버멘쉬의 능력자니까, 카멜레온 수인은 어떨까요?”

       

       [···!]

       

       

       뭐, 카멜레온이라고 사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주변 환경에 동화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자유자재로 은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체온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 것뿐이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게 항상 고증만 따지지는 않는 법.

       

       카멜레온이 위장의 대가라는 인식이 있는 한, 카멜레온 수인은 언제나 은신의 대가다.

       

       언제 어디서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잠입한 빌런이 사실 카멜레온 수인이었다, 라는 설정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독자님은···신이야! 그녀는 신인가?! 아니, 신이다!]

       

       “또, 또 그러신다.”

       

       [당장 설정할게요! 잠입한 빌런은 카멜레온 수인···. 능력은 환경 동화! 좋아, 끝났어요!]

       

       “좋아요. 그럼 느긋하게 기다리자고요.”

       

       

       그 카멜레온 수인이 다시 일을 벌이기 시작하면, 그때 시우에게 다가가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동아리로 데리고 가면 되겠지.

       

       이번에는 전개가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에,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카데미에 다니는 남학생인 시우.

    너무나도 큰 자극을 받은 경험이 있대요.

    그게 머릿속을 떠나가지 않는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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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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