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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

       

       드디어 이 말을 해 본다.

       

       나는 푹신한 침대에서 눈을 떴다.

       

       사실 눈을 뜨지는 못했다.

       

       눈이 너무 아프니까···.

       

       “죽겠네 진짜…”

       

       어찌 되었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무려 푹신푹신한 침대 말이다.

       

       그것도 귀족들이나 쓰는.

       

       “이걸 이제 주네…”

       

       역살을 날린 나의 상태는 아주 좋지 않았다.

       

       온몸에 힘이 쭉 빠져 있었고, 눈은 실핏줄이 죄다 터져 버리는 바람에 뜨지도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신을 모시는 무당이라는 놈이 저주를 다뤘으니 당연한 꼴이라 할 수 있다.

       

       “생각보다 심하네.”

       

       썩을 놈이 건 저주를 썩을 놈 한테 돌려보냈다고 몸이 이 지경이라니.

       

       아주 만신창이가 따로 없었다.

       

       눈 뿐만이 아니라 오른쪽 손목도 너무 아프다.

       

       “내가 일어난 건 또 어떻게 알고…”

       

       두 영감들이 걸어오는 게 느껴졌다.

       

       노인들이라 그런지 아침 잠이 없나보다.

       

       “크리스, 일어났는가?”

       

       “들어가겠네.”

       

       방으로 들어온 클로셀 영감이 답답하다는 듯이 나에게 말했다.

       

       “포션 한 병이면 금세 나을 것을….”

       

       “그렇게 해도 어차피 다른 데가 아프다니까요….”

       

       클로셀 영감은 굿이 끝난 후부터 포션을 들고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몇 방울만 눈에 뿌리면 씻은 듯이 나을 거라나···.

       

       문제는 그것이다.

       

       이 고통이 금방 사라져서는 안 된다.

       

       일종의 응보라고 할 수 있다.

       

       저주를 다뤘으니 나도 고통을 받아야 한다.

       

       온전히 내가 다 아파야 끝나는 업보라는 말이다.

       

       “무당이라는 것도 할게 못 되는 구만…”

       

       “원래 그런 팔자예요.”

       

       “그거 그만두고 마법이라도 배워 보는 게 어떻겠나?”

       

       마법?

       

       아주 좋다.

       

       준귀족의 대우를 받고, 제국에서 꼬박꼬박 월급도 보내준다.

       

       경지만 높아지면 부자가되어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고 살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마법사도 직업아니예요? 저는 못해요.”

       

       “잘 생각해 보게. 나이가 늦었지만 내가 어떻게든 해주겠네.”

       

       “아마 다시 태어나야 할걸요?”

       

       “끄응…”

       

       클로셀 영감이 한 발 물러나자 이번에는 파라몬 영감이 입을 열었다.

       

       “검술은 어떤가? 이건 배워도 직업이 아니니 괜찮지 않겠는가?”

       

       “라몬, 크리스는 배우려면 무조건 마법을 배워야 하네.”

       

       “저번에 눈을 감고 고블린과 싸우는걸 보지 못했는가? 이런 사람이 검을 배워야지.”

       

       “아, 글쎄 둘 다 안 된다니까요…”

       

       안 그래도 온 전신이 아파 죽겠는데 영감들까지 이러니 피로가 배로 몰려왔다.

       

       제발 둘 다 나가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는 침대 옆에 둔 물을 컵에 따라 마셨다.

       

       “자네 눈을 못뜨는것치고는 잘 사는구만? 저번처럼 다른 눈으로 보는 것인가?”

       

       “예…뭐 흐릿하게 보고 있기는 하지만…”

       

       대충 윤곽정도만 느끼는 정도?

       

       다행히도 나에겐 눈 말고도 주변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영안에 집중을 하면 보이기는 한다.

       

       문제는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는 것도 한 두 시간이지 온종일 그러고 있으니 머리만 더 아팠다.

       

       온전히 영안으로만 세상을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하여 나는 선명한 세상을 바라보는 대신 흐릿하게 보는 걸로 합의를 봤다.

       

       이 정도라면 영안을 써도 버틸 만 하니까.

       

       “다시 말하지만 검술을 배우겠다면 내 책임지고 알려주겠네.”

       

       “아 글쎄 안 된다니까 자꾸…”

       

       그때, 한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발렌 남작, 왔는가?”

       

       “예, 파라몬님…!”

       

       발렌 남작.

       

       나에게 푹신한 침대를 제공해준 일등 공신.

       

       듣기로는 파라몬 영감의 후배의 자식이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귀족과는 안어울리게 잔뜩 군기가 들어 있었다.

       

       “허험…침실은 편안했는가?”

       

       “덕분에요.”

       

       “…그럼 되었네.”

       

       나를 경계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평민인 내가 소드 마스터와 대 마법사의 비호를 받고 있으니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남작이라는 사람.

       

       어딘가 불편한 것 같다.

       

       “혹시 어디 다치셨나요?”

       

       “….파라몬님께 가르침을 받았다네.”

       

       저번에도 후배들을 챙기겠다고 다녀오더니 이번에도 남작을 챙겨 준 모양이다.

       

       덕을 쌓는다는 건 무조건 좋은 일이니 영감의 앞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영감님, 그건 잘 넣고 다니고 있어요?”

       

       파라몬 영감의 점사는 아직도 나오지가 않았다.

       

       그래서 특단의 대책을 챙겨 줬다.

       

       바로 액운을 막아주는 부적이다.

       

       “허허…늙은이 속옷까지 건드는구만 그래…”

       

       부적을 곱게 접어 속옷안에 넣고 다니라고 했다.

       

       그래야 효과가 확실할 테니 말이다.

       

       거리낌 없는 대화에 남작이 나의 정체에 대해 더 궁금해진 것 같았다.

       

       “호…혹시 두 분과 이 친구의 관계에 대해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흐음…관계라…”

       

       클로셀 영감과 남작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조용히 귓속말을 하는 영감.

       

       감춘다고 했겠지만 내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심지어 피부로도 들린다.

       

       “내 손녀사위가 될 친구네.”

       

       “로셀, 그건 내가 할 말인듯싶군.”

       

       이 영감탱이들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왜 남의 장가를 자기들이 결정하는 걸까?

       

       영감들의 말을 들은 남작의 뜨거운 눈초리가 느껴졌다.

       

       “불편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게. 이참에 방도 내 방으로 옮기는 게 어떻겠나?”

       

       “…필요 없어요. 그리고 왜 제가 손녀사위가 되나요?”

       

       “말 나온 김에 어떤가? 지금 가서 손녀를 데리고 오겠네. 워프 한 번이면 순식간일세.”

       

       나는 평민이다.

       

       귀족 중에서도 특급 귀족인 이 영감들이 탐을 낼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귀족과 평민의 사랑이라니.

       

       “아니 그러니까 저를 왜 손녀사위로…”

       

       파라몬 영감이 흐뭇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줄 모르는군. 거기다 개인적으로도 마음에 쏙 드네.”

       

       “자네는 마법학계를 뒤집어 놓을 인재일세.”

       

       무당 팔자에 대단한 사람이 되어 봤자 좋을 게 없다.

       

       애초에 대단한 사람을 목표로 살아가는 업도 아니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난 영감들의 손녀라는 사람들과 얼굴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직 결혼할 생각도 없고···.

       

       애초에 내가 여기서 인연을 맺은 사람이라곤 할아버지 둘과 할머니 엘프 하나뿐이니···.

       

       아이린은 젊어보이니 그래도 괜찮다.

       

       거기다 솔직히 예쁘기까지 하다.

       

       “아이린은 어디로 갔어요?”

       

       “가지가 어쩌고 하더니 따라가더군.”

       

       “흠…”

       

       아이린이야 어찌 되었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았다.

       

       방금 잠에서 깬 환자인데도 이렇게 일이 많다니···.

       

       “도와주신다는 분은 언제쯤 도착하시나요?”

       

       “아마 곧 올걸세.”

       

       레이스가 된 한스아저씨의 영혼을 처리하려니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파라몬 영감님이 마침 신전에 아는 성기사가 있다고 하니 도움을 요청드렸다.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까지 레이스를 퇴치하기만 했지 원래대로 되돌린 전례는 없었다고 한다.

       

       “어우…머리야…”

       

       “껄껄.”

       

       파라몬 영감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기만 했다.

       

       갈수록 웃음이 자연스러워지는 게 나쁘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직도 어색한 기색이 남아 있지만 말이다.

       

       클로셀 영감이 흐뭇하게 그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환자일수록 밥을 잘 챙겨 먹어야 하는 법이네.”

       

       “그렇고말고. 이보게 발렌.”

       

       “예! 파라몬님! 하명하십시오!”

       

       “식사를 부탁하지.”

       

       발렌 남작의 태도는 거의 신을 영접한 사람의 것과 비슷했다.

       

       하기야 검을 익힌것처럼 보이는데 파라몬 영감이 소드 마스터라고 했으니···.

       

       “고기 위주로 부탁하네. 자고로 고기가 몸에 좋은 법이야.”

       

       “예! 알겠습니다!”

       

       발렌 남작이 힘차게 대답하고 방에서 나갔다.

       

       오버하는 모습이 마치 남작령안에 있는 고기란 고기는 다 가져올 기세였다.

       

       파라몬 영감이 중얼거렸다.

       

       마나를 담아서 아주 웅혼하게 말이다.

       

       “날씨가 좋으니 술이 생각나는군.”

       

       달려가던 중이었는지 멀찍이서 남작의 대답이 들려왔다.

       

       “허허…들으라고 한 건 아니었는데 말이야.”

       

       이 영감 가끔 보면 꼰대의 기질이 있는 것도 같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니 당연한 이야기이려나···.

       

       파라몬 영감이 나를 불렀다.

       

       “내 몇 가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네.”

       

       “말씀하세요.”

       

       왜인지 모르게 진지한 목소리였다.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잡고 할 이야기면···.

       

       역시 네크로맨서에 대한 이야기려나?

       

       “자네 이상형이 어떻게 되나?”

       

       “…..”

       

       어째 난 노인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것 같다.

       

       당장 몸주가 된 신령님의 힘을 빌릴 때도 보면 지긋한 어르신인 느낌을 많이 받는다.

       

       신도 어르신.

       

       동료도 어르신.

       

       심지어는 자기 손녀랑 결혼을 시키려고 하다니···.

       

       무당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이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나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예뻐요?”

       

       “예쁘네.”

       

       “얼마나요?”

       

       “나를 꼭 빼닮았지.”

       

       “다음!”

       

       클로셀 영감이 자신 있게 나섰다.

       

       “우리 손녀도 예쁘네. 먼저 간 내 마누라를 꼭 빼닮았지. 참고로 제국에서 알아주는 미인이었네.”

       

       “언제는 자네를 훨씬 더 닮았다고 하지 않았나?”

       

       “라몬, 자네는 어차피 자식들이랑 안 친하지 않은가!”

       

       “이번에 돌아가면 친해질 참이네!”

       

       누가 오래된 친구 아니랄까 봐 점점 싸움이 유치해지는 것 같다.

       

       어쨌든 둘 다 예쁘다는 거 아닌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집안에 무속인이 있으면 신줄이 이어진다.

       

       무당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다.

       

       “영감님들, 안타깝지만 저는 결혼은…”

       

       내 말을 자르며 클로셀 영감이 말했다.

       

       “왔군.”

       

       누군가 방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성기사라고 하더니···.

       

       아주 찬란한 빛을 머금은 사람이다.

       

       눈이 부실만큼 말이다.

       

       “…꽉 막히겠네.”

       

       다가 올 수록 빛이 강해졌다.

       

       중요한 건 그 빛 때문에 흐릿하게 보이던 앞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영안이 빛으로 꽉 막혀 버렸다.

       

       무당이 성직자들을 만났을 때 점사가 안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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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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