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4

        

       아침 식사가 끝나고, 모두 제 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방으로 돌아온 진성은 어색했던, 하지만 분명히 자신을 존중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씨 가문은 원래 이러했지.’

         

       굴러들어온 돌이자 어찌 보면 호국회와 애국단 둘 모두에게 불편할 수 있는 존재인 진성을 이렇게 대우해주는 것은 분명 이들의 심성이 선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주술에 미쳐서 제대로 정을 쌓지도 않은 그에게 이렇게 어색하게나마 계속 다가오려 하는 것 역시 그들의 따뜻한 심성일 터였고.

         

       특히 온몸으로 어색하다는 분위기를 풍기는 이세린과는 달리 이아린의 경우 적극적으로 그에게 다가오며 가족으로 받아들이려는 모습이 보였다. 당장 조금 전만 해도 오라비, 오라비 하면서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던가.

         

       그랬기에 진성은 이아린이 일본에 당첨되기를 바랐다.

       적어도 저택을 나가 독립하기 전에 선물 하나는 주고 싶었으니까.

         

       모두가 행복한 일이 아니던가.

         

       진성은 자신이 일본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 세우는 운명을 두 자매를 이용해 비껴낼 수 있고, 이세린은 신물(神物)을 얻을 수 있고, 이아린은 각종 무가의 비급과 실전경험을 할 기회를 얻는다.

         

       윈-윈(Win-Win)이 아닌가!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흠.’

         

       그것은 바로 이아린의 정신 상태였다.

       이세린이야 회귀 전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교토를 초토화하는 것을 보았으니 트라우마나 PTSD에 시달릴 걱정 따윈 없다 쳐도, 이아린은 회귀 전에도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적어도 진성의 귀에 들어올 정도의 두각은 없었다. 회귀 전에 누군가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으니 소시민처럼 조용하게 살았거나, 무슨 일을 겪고 좌절해서 무인의 길을 포기했다는 이야기인데.

         

       전자라면 일본에서 얻어줄 수 있는 것이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후자라면 이아린의 성장세를 당장 꺾어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ॐ गम गणपतये नमः.”

         

       용병 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이들을 많이 보았다.

       충분한 힘을 갖추고 있고, 몸 상태도 좋은 데다가 혈기도 왕성한 신병들이 첫 임무를 나간 다음 악몽에 시달리다 그만두는 경우. 그들은 육체는 충분히 강했지만, 정신은 강하지 못했고, 정신을 단련하는 법도 나약한 정신에 딱딱한 갑옷을 씌우는 법도 모르는 풋내기였다.

         

       정신.

       위대한 정신.

         

       오직 그것의 중요성을 모르기에 벌어진 일이다.

         

       아무리 육체가 중요하다 한들 그것은 생명에 한한 것. 단련된 육체가 있다고 한들 그것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삼류 무공을 익히고 있으면 의미가 없으며, 장수할 수 있는 수명을 타고났다고 한들 게으름에 찌든 정신이라면 굴러다니는 고깃덩어리만 못한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닌가.

       정신은 병든 육체를 초월해 움직이게 하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수명에 저항할 순 없어도 정해진 종말까지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무형의 힘이다.

         

       당장 진성만 하더라도 시체나 다름없는 몸을 이끌던 것이 오직 정신, 정갈한 정신이 아니었던가.

         

       하나를 마음으로 원하고, 진심으로 바라면 자연히 정신은 단련되는 법.

         

       “ॐ गम गणपतये नमः.”

         

       이아린은 어느 쪽인가?

         

       진성처럼 정신을 하나로 단련할 수 있는 사람인가?

       세린처럼 결여된 정신에 갑옷을 씌워 살아가는 사람인가?

         

       “ॐ गम गणपतये नमः.”

         

       진성은 과거를 떠올렸다.

       서로 족쇄가 되는 미래를 피하고자 박차듯 저택을 나왔던 그때를.

       그때에는 가진 것이 없고 제 앞가림을 하기 바빠 선물 하나 제대로 주지 못했다. 그 이후에는 오직 초월만을 바라보며 쉼 없이 달렸고, 훗날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주술과 함께 산화하였으니.

         

       새롭게 얻은 삶에 어떠한 일이 있을지는 모른다.

       다만 미래가 달라지고 능력이 생겼으니.

         

       선물 하나 정도는 챙겨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아린은 선물을 받아야 한다.

       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한들 그것 역시 해결해주면 그만이 아닌가.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역시 선물이 되리라.

         

       다만 선물이라는 것은 원하는 것이어야 하니, 이아린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 필요는 있을 것이다.

         

       입에서 내뱉어지는 소원이 아닌, 눈에서 발하는 소원이 아닌.

       오로지 마음에서 바라고 진심으로 원하는 소원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를 조금 더 쥐어짤 필요가 있으리라.

         

       패는 많을수록 좋고, 정보는 쌓일수록 좋으니.

         

       ‘그야말로 무형의 황금이로다.’

         

       끼-익.

         

         

         

         

        * * *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이세린은 이아린에게 말했다.

         

       “일본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뭐?”

         

       맥락도 없이 튀어나온 말에 이아린은 자신의 동생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세린은 진지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눈을 그녀와 마주 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일본 말고 다른 데 가.”

         

       아린은 그게 무슨 말이냐며 다시 물으려 하다가, 그녀의 표정이 생각보다 진지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른 것을 물었다.

         

       “왜?”

         

       원래 묻고자 했던 것보다도 더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세린은 무어라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녀를 자신의 방으로 끌고 가서 침대에 앉혔다. 얄팍하기 짝이 없는 팔은 잘 단련된 이아린을 끌고 갈 힘이 있을 리가 만무하건만, 이아린은 무언가 홀린 듯 그 팔에 잡혀서 질질 끌려갈 뿐이었다.

       그것은 직감이었을까, 아니면 이세린이 계약한 악마의 힘이었을까.

         

       이세린은 그녀를 침대에 강제로 앉힌 후 입을 열었다.

         

       “이아린. 내 말 잘 들어. 악마가 말했어. 뭔가 깊숙한 곳에 숨겨놓은 비밀이 있는데, 도대체 뭔지를 모르겠다고. 지푸라기에 덮인 햇빛이랑 쇠의 냄새가 난다고….”

       “햇빛? 쇠?”

         

       이아린은 그녀를 쳐다보며 머리를 박박 긁었다.

         

       “아니, 그. 하…. 나는 그런 상징학 모른다고요~ 그냥 쉽게 설명해주면 안 돼?”

       “무식한 이아린.”

       “뭐?!”

         

       세린은 숨 쉬는 것처럼 비난을 내뱉었다.

         

       “지푸라기라는 건 일용하고도 남은 은혜이자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것. 즉, 이로운 형태로 다변(多變)하는 형태를 뜻하는 거야. 가축에게 먹이면 먹이가 되고, 꼬아서 형태를 만들면 짚신이 되기도 하고 평범한 밧줄이 되기도 해. 태워서 장작으로 쓸 수도 있고, 옷 속에 형태를 채워 허수아비의 몸체를 구성하는 거야.”

       “오~”

       “오, 가 아니라…. 아, 가 나와야 하는 거 아냐…? 이거 1학년 교양필수 때 배웠잖아….”

       “그런 게 있었구나.”

       “그런 게 있었구나가 아니야…. 생활과 상징 기억 안 나…?”

         

       충격에 빠진 이세린의 얼굴과는 달리 이아린은 해맑게 웃었다.

         

       “몰라. 1학년 때는 맨날 잤는데?”

         

       그 청순하기 짝이 없는 발언에 이세린은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냥 대충 말할게…. 우리에게 도움이 되긴 하는데, 마냥 도움만 될 것 같지는 않다는…. 그런 거야.”

       “도움이 되는 거면 되는 거지~도움만 되지 않는 건 뭐야.”

       ‘무공 익히는 사람들 되게 머리 좋던데…. 왜 이아린은….’

         

       익힌 무공이 문제인 걸까?

       본능과 감각으로 익히는 무공 때문에 생긴 부작용인 걸까?

         

       이세린은 1차원 이상으로 생각하려 하지 않는 그녀의 청순한 뇌에 한숨을 쉬었다.

         

       ‘가끔 보면 사람이 아니라 단순한 짐승 같아….’

       [ 저런 것이 귀엽지 않으냐? 무릇 쓸데없이 영악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이 귀여움을 받을 때도 많은 법이니라. ]

         

       지푸라기.

       햇빛.

       쇠.

         

       이세린은 귀엽다 귀엽다 말하는 악마를 무시하곤,  세 가지 단어를 머릿속에 각인했다.

         

       ‘무언가를 얻는 대신 무언가를 지불한다…? 무언가를 얻는 대신 그만한 위기를 겪는다? 대체 뭘까….’

         

       이세린은 대체 악마가 자신에게 말한, ‘진성이 감춘 비밀의 냄새’의 의미가 무엇인지, 진성이 말한 ‘좋은 정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좋은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얻어냈는지.

         

       그 모든 것을 알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같이 일본에 간다면 알 수 있지만…. 비밀의 냄새가 찝찝해…. 그렇다고 모르는 건….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는데….’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 제 방 침대인 양 뒹굴뒹굴하는 이아린을 쳐다보았다.

         

       ‘뺑뺑이로 나오는 나라…. 그래. 어떤 나라가 나오든, 내가 따라가면 되겠지….’

         

         

         

        * * *

         

         

         

       지푸라기는 이로운 형태의 다변을 말한다.

       짚이라는 것은 땅에서 난 것을 먹고 살았던 이들에게는 선물이요 자재였으니. 그것은 머무는 집이 되기도 하고 입는 신발이 되기도, 서로 묶이고 엉켜서 만들어지는 가방이 되기도 하였다. 장작이 없을 때는 불을 붙이고, 장을 담그는 필수용품이며 태워 만든 잿더미마저 쓸 수 있는 참으로 요긴한 물건이었다.

       다만 이 이로움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라는 함의 또한 내포되어 있음이니. 그 상징성엔 분명히 ‘사람’이라는 것이 들어있다.

         

       사람에게 이로운 것.

       이로운 것.

       바뀔 수 있는 것.

       하지만 사람에게 이로운 것.

       형태가 끊임없이 바뀌고 또 바뀌어도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듯, 지푸라기는 작고 볼품이 없다 한들 반드시 사람에게 이로워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되든 반드시.

         

       “ᄉᆡᄫᆞᆯ ᄇᆞᆯ긔 ᄃᆞ래 밤드리 노니다가 드러ᅀᅡ 자리 보곤 가ᄅᆞ리 네히어라. 가ᄅᆞ리 네히어라. 가ᄅᆞ리 네히어라.”

         

       지푸라기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사람에게 이로울 것이란 조건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주술적 의미를 담은 형태가 될 수 있으니. 참으로 사용하기 쉽고 좋은 물건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촘촘하게 짜이고 묶여 오롯이 지푸라기로만 만들어진 형상이 진성의 눈앞에 있었으니.

         

       밝은 횃불의 빛에 아른거리며 음영을 드리우는 사람의 형상이었다.

         

       이를 일컬어 제웅이라 한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