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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0

       [삼진아웃.]

       

       또 다른 자신은 그리 얘기하며 능청을 부렸다.

       

       “삼진아웃?”

       [말 그대로 기회를 세 번 주겠다는 거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했다. 세계수에 퍼부을 원자폭탄이 완성될 때까지 세 번의 기회를 주겠다. 그 안에 ‘에테르’가 마수인 걸 알고도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인간이나 엘프, 수인이 세 명 나타난다면 깨끗하게 혼을 물려주겠다는 것이다.

       

       [우선 프레이 한 명은 됐네. 삼진아웃이라고는 해도 앞으로 두 명밖에 남지 않았어.]

       “잠깐, 뭘 멋대로 정하는 거냐.”

       

       에테르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제안이었다. ‘에테르’는 에테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본관에게 자비를 베푸는 거지?”

       

       ‘에테르’는 지금 이 제안이 마뜩잖았다.

       

       한 번 맺은 계약은 철저하게 지켜져야 하며, 도중에 바뀌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에테르’의 신념이었으며, 1천년간 바꾼 적 없었던 행동 지침이었다.

       

       [계약서 쓴 것도 아니고 말로만 한 계약인데 너무 깐깐하게 구네.]

       “언약이라도 계약은 계약. 예외는 없다.”

       [거참 까다로우시네.]

       

       머릿속에서 픽, 하고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도 ‘에테르’는 마음을 다잡은 뒤였다.

       

       “원한다면 여기서 본관의 영혼을 취하라. 구질구질하게 변명하며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각오는 이미 되었다.

       

       죽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일평생의 신념을 깨뜨려가며 추하게 목숨을 연장하느니, 눈 감고 밤하늘의 별똥별처럼 사라지는 편이 더 영예로울 것이다.

       

       어차피 미련이랄 것도 없다. 자신이 죽거나, 세상을 멸망시키거나. 그녀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현재 두 가지뿐이었다.

       

       [누가 그래? 선택지가 둘뿐이라고.]

       “뭐라?”

       [어휴.]

       

       또 다른 자신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댔다.

       

       [옛날의 나를 보는 것 같구나. 그러니까 친구가 없지. 연구밖에 모르는 바보 멍청이야.]

       “…….”

       [시간 됐다. 나머지는 갔다 와서 생각하라고.]

       

       그러면서 에테르는 멋대로 대화를 종료했다.

       

       잇새에서 쌍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찌 이리도 뻔뻔한지….”

       

       난처했다. 도대체 ‘포석’이라는 걸 몇 겹이나 쌓아 놓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억지로 몸의 주도권을 내어 주고 사라질 수도 없었다. 저쪽에서 완강히 거부하는 중이었다. 

       

       결국 대화를 포기하고 수업 준비나 해야만 했다.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학생부를 주웠다. 탁탁 털어내고는 학생부에 적힌 이름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모르는 이름뿐이었다.

       

       “…그렇군.”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하기를 잠시, ‘에테르’는 또 다른 자신이 본인과 같은 방법으로 스스로를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개월이라는 시한, 3번의 기회.

       

       마왕이 부활하기 전까지 인류를 상대로 1천 번의 기회를 내렸던 자신과 그 방침이 닮아있었다. 

       

       “애초에 한 명으로 트집 잡을 생각은 없었던 거로군.”

       

       에테르는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허탈한 감정이 들었다.

       

       이 또한 이상한 일이었다. 어지간한 말에는 당황하지 않는 것이 금안족인데. 분명 마왕이 감정이란 열등한 족속들이나 가지는 것이라면서 내다 버리라고 명령했던 것이 감정이었는데.

       

       지금 이렇게나 선연하게 느끼고 있다. 하나는 탈력감이었고, 다른 하나는… 잘 모르겠다.

       

       답을 내리지 못한 채로 연구동을 빠져나왔다.

       

       교실에 들어서자 몇몇 학생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에테르는 가볍게 목례하며 인사를 받았다. 어찌 된 일인지 교실은 평소보다 차분한 분위기였다.

       

       “출석 부르겠습니다.”

       

       에테르는 하나씩 호명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네, 네, 네. 그런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무심하게 체크 표시를 했다.

       

       “프레이 폰 파스트렌드.”

        “…….”

       

       여기서 대답이 끊겼다.

       

       “프레이 어디 갔는지 아는 학생?”

       “오늘 아프다면서 빠진대요.”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에테르는 입에 가뭄이 드는 것 같았다. 혓바닥에 바늘이라도 돋은 것처럼 입술을 달싹일 수가 없었다.

       

       “제가 연락할까요?”

       “아뇨. 파스트렌드는 나중에 따로 찾아가서 병결 처리를 하겠습니다.”

       

       원래라면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도 않았을 텐데, 정신을 차려보니 학생의 물음에 그리 답하고 있었다.

       

       심장을 대체하고 있는 기관이 아려왔다. 울혈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꽉 막힌 느낌이 들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이 감각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에테르는 잠시 머뭇거리며 내면으로 빠져들었다. 이것이 어떤 감정인지를 계산하고 추량하며 가장 가까운 해답을 도출하고자 애를 썼다.

       

       도대체가, 모르겠다.

       

       [죄책감.]

       

       ……이게?

       

       이런 게, 그런 감각이라고?

       

       “……진도를 나가도록 합시다.”

       

       상념을 털어냈다.

       

       일단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교과서를 펴내고 칠판을 내렸다. 분필을 잡자마자 필기구 뒤적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에테르는 버멜과 로테를 거쳐서 교실을 한 바퀴 홱 둘러보았다. 학생들의 표정은 가지각색이다.

       

       로테는 집중하는 것 같았다. 버멜은 자신의 표정을 관찰하는 듯하였다. 그 외에 나머지는 무심한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레니냐라는 금안족 소녀는 멀뚱거리는 눈으로 팔짱을 꼈다. 유일하게 필기구를 손에 쥐지 않고 등을 살짝 뒤로 뺀 모습이다.

       

       에테르는 딱히 그 태도를 나무라지 않았다. 저번도 그렇고, 이번 가르칠 내용도 그렇고. 딱히 필기할 것 없이 쭉 듣기만 해도 한 번에 이해되는 내용뿐이었으니까. 솔직히 ‘에테르’는 자신이 강의 자체는 쉽게 하는 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혹시 저번 주에 내준 에세이는 다 했나요?”

       

       몇몇 학생만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에테르는 대강 알겠다고 답했다. 어차피 중요한 건 숙제 그 자체가 아니었다.

       

       “오늘은 패리티에 관해 이야기할 겁니다. 우선 대칭과 반대칭부터…….”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한 지 5분이 되었을 때였다.

       

       대칭군과 교대선형사상을 사용하여 행렬식을 설명하고 있자니 엘프 하나가 몇 번에 걸쳐 손을 들었다.

       

       “선생님,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유피엘 피어바인. 아까 출석을 부를 때 가장 자신만만하게 답하던 아이였다.

       

       평소에는 차분하게 있는데, 수업 시간만 되면 폭주해서 질문을 하는 학생이었다. 

       

       다른 학생은 유피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수업에 별 관심이 없었던 에테르는 그럭저럭 그녀와 질의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려운 질문이 수 차례 오갔다. 로테나 레니냐 정도만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머지는 멍청한 얼굴 그대로였다.

       

       “더 질문 없나요?”

       

       “…….”

       “질문 없으면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에테르가 분필을 내려놓자 여러 곳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학생 대부분은 수업을 포기한 것 같았다. 

       

       당장 오늘만 해도 수학과 대학원 수준의 선형대수와 물리학과 대학원 수준의 양자역학 개념을 동시에 공부했다. 액기스 중에서 액기스만 모아서 두 시간으로 압축한 것이었으니 학부 2학년생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면 오늘 과제는…….”

       

       안 그래도 피곤에 찌든 학생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일변했다.

       

       에테르는 과제를 내려다 말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던졌다.

       

       로테와 버멜.

       

       프레이가 알 정도이니 둘도 이미 눈치챘겠지. 어쩌면 자기 몰래 대화를 나눴을지도 모르겠다.

       

       그땐 정신이 없어서 멍청하게 행동했다. 생각해 보니 그룹 스터디라도 했으면 무용지물이었다.

       

       에테르는 한숨을 쉬며 손을 내저었다.

       

       “…과제는, 교재 13장에 있는 문제 1번부터 10번까지 풀어오는 걸로.”

       

       참고로 그녀가 선택한 교재는 솔루션이 없었다.

       

       

       **

       

       

       “아, 미친. 담임 잘못 만났어.”

       

       여학생 하나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책상 위로 엎어졌다. 그녀의 탄식에 다른 학생들도 잇달아 볼멘소리를 터뜨렸다.

       

       “개같은 거, 과목 하나 때문에 장짤되겠네.”

       “진짜 재수 없어. 조금만 쉽게 가르쳐 주면 어디 덧나나?”

       

       이것들도 최대한 자중한 표현이다. 동급생들 사이에서 아스테야 하이젠버그 교수의 평판은 나락으로 가 있었다.

       

       실력이 부족한 교수도 아니고, 꼰대도 아니다. 오히려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한 사람. 그러나 제 맡은 과목을 뒤지도록 못 가르친다는 흠결 하나 때문에 모두가 입을 모아 최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솔직히 진도가 너무 빠르긴 했어.”

       

       로테도 필기하다 만 노트를 팔랑거리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후우.”

       “후우.”

       

       버멜과 아카샤는 동시에 날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멜은 아카샤와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저게 에테르가 말한 쌍둥이 여동생이구나, 하며 조금 경계했다.

       

       ‘어느 정도 학기가 안정되면 아카샤 언니를 찾아가. 내가 편지를 써 줄 테니까 이것부터 주고. 틀림없이 도움이 될 거야.’

       

       로즈마리와 계획을 짰을 때 나누었던 이야기.

       

       아직은 때가 아니다. 학기가 안정되지 않았다. 지금은 아카샤보단 프레이가 우선이었다.

       

       그 꼬맹이가 어디 있는지는 안다. 버멜이 프레이를 다독이러 떠난 사이, 아카샤는 픽 웃으며 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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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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