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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0

       “상황이 어떻게 굴러갔건, 결국에는 로티의 실력으로 얻어낸 거라는 말. 로티는 그게 조금 충격적이었던 모양이야.”

        

       로티는 이제 제이크의 소매를 살짝 잡고 있었다. 그만 좀 하라는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제이크의 입은 멈출 줄 몰랐다.

        

       아니, 오히려 지금의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다고 해야 할까.

        

       제이크는 로티 쪽을 내려다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인 뒤 내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솔직히, 그때의 상황은 누가 봐도 네가 억지로 만들어낸 상황이긴 했어. 사냥도구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능력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잖아. 그때는 그렇게까지 느끼지 못했지만, 간밤에 네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확실하게 알았어. 그때 그 사냥터에서 너는 일부러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거야. 거리까지 다 계산해서.”

        

       그건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했다.

        

       짐승이 달려드는 거리를 한눈에 계산해서 그 자리에 있을 만한 능력이 나에게는 없었다.

        

       다만, 그걸 확인할 능력,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되돌릴 능력이 있어서 부담이 없었을 뿐이다.

        

       나는 제이크의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로티는 생각한 거지. ‘저 사람은 어째서 나를 이렇게 도와주는 걸까?’ 하고.”

        

       “제이크.”

        

       제이크가 하는 말을 막고 싶다는 듯 로티가 무심코 그렇게 말했다가, 얼른 손으로 입을 가렸다.

        

       오호라.

        

       로티를 보는 내 눈이 아주 조금 가늘어졌다. 로티도 그 사실을 느꼈는지,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한 손으로는 제이크의 소매를 잡은 채였다.

        

       ‘제이크’라.

        

       원래는 단둘이 있을 때도 제이크라는 말을 직접 쓰지는 않았다. 설령 쓰더라도 뒤에 다른 호칭을 붙였고. 그런데 당황해서 무심코 이름만으로 부를 정도라면, 그만큼 두 사람이 엄청나게 친밀해졌다는 뜻이리라.

        

       “처음에는 정치적인 이점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더라.”

        

       실제로 나는 그 ‘정치적 이점’을 내세워서 린드버러 공작을 설득했다. 그게 ‘그냥 그러고 싶어서’보다는 훨씬 더 잘 먹힐 테니까.

        

       “그래서 마음 놓고 호의를 받을 수 없었던 거지. 혹시라도 자길 도구로 써서 나를 이용하려 드는 것은 아닌가 했을 테니까.”

        

       “그렇다는 건, 그때부터 이미 당신이 로티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로티 본인도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까?”

        

       목소리에 감정을 담지는 않았다. 조금 가늘게 떴던 눈도 다시 원래대로 돌렸고.

        

       하지만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미소녀가 앞에 있으니 괜히 놀리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흐음, 글쎄. 적어도 나는 한 번도 숨긴 적은 없는데.”

        

       그렇다고 대놓고 좋아한다고 말한 적도 없긴 하지만. 사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마음을 드러내는 법은 많으니 굳이 그런 태클을 걸지는 않았다.

        

       “뭐, 이렇건 저렇건, 그래서 너를 잔뜩 경계하고 있었는데 그때 네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그렇게 말한 거지. 손에 있는 것이 있다면 그냥 전부 활용해버리라고. 그리고 그제야 네가 단순히 호의로 그 ‘이용할만한 것’을 들려줬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거야.”

        

       그리고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을 것이다. 그 이후에 로티의 어머니를 그 집에서 빼 왔던 것이 대표적이다. 그 일은 말 그대로 나한테는 이득이 하나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이쯤에서 원작의 로티를 생각해보자면, 아마 로티는 제이크 옆에 ‘자기 힘으로’ 서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러니 정실이니 뭐니 하는 자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거다. 결국 그 옆에 자기가 설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로티에게 내가 한 말은, ‘네 손에 들어온 것이라면 전부 네 힘’이라는 말이었다.

        

       남이 쥐여준 힘이라도 내가 쓰면 내 힘이다. 그런 말을 그 힘을 준 사람이 했으니, 로티는 고민 끝에 그 말을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제 와선…… 그 기사 작위가 있다면 더 좋긴 하겠지만, 없어도 상관없어. ‘내가 로티를 좋아하게 된 것’ 자체가 로티의 능력인 거잖아? 이미 힘을 가졌으니 나머지는 있어도 그냥 옵션일 뿐이지.”

        

       제이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 둘은 이 시점에서는 그냥 염장 커플이라는 소리다. 신분의 차이에서 오는 이어질 수 없는 사랑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그냥 가뿐히 무시하기로 했으니까.

        

       “무엇보다, 나도 로티도 너와 그 전투를 헤쳐나왔으니까. ‘누가 봐도’ 황녀의 최측근 아니겠어? 세상에는 굳이 작위로 나타내지 않아도 되는 위치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그렇습니까.”

        

       ‘찾아오면 반갑게 맞이해줄’ 사람이 황족이라면 신분의 높고 낮음은 둘째치고 다른 귀족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가 된다. 안 그래도 수가 적은 황족이니 만나서 대화를 나누려면 일정을 조율하고 줄을 서야 하는데, 제이크와 로티는 그런 것 없이 그냥 바로 가서 만날 수 있으니까.

        

       황실에 직접 읍소할 수 있는 창구가 있다는 사실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레이스 가가 고작 남작가이면서도 다른 귀족가가 대놓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거기 있다. 뭐, 자세하게 따지면 조금 다른 사례이긴 하지만.

        

       “그래. 그래서 말인데, 우리는 네가 갈 전투에 따라가기로 했어.”

        

       “…….”

        

       제이크가 갑자기 이야기를 휙 돌려서, 나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게 그 이야기와 연관될 이유가 있습니까?”

        

       “말했잖아. 함께 전투를 이겨낸 사람들이니 다른 이들이 우리 관계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못한다고. 그렇다면…… 음, 사실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명백하게 세상의 명운이 달려있을 법한 상황에서 네 옆에 서 있는다면 우리 입지가 앞으로 더 탄탄하게 다져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마냥 틀린 소리는 아니다. 평민 병사라도 귀족 장교와 함께 전장을 구르다가 전우애가 생기고, 결과적으로 그 귀족과 친구처럼 지내게 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평민을 다른 이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되고.

        

       하물며 그 ‘귀족 장교’의 역할이 황녀라면 그 무게감이 더하다.

        

       “조금 전 당신 입으로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다’라고 하셨습니다만.”

        

       “그야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음.

        

       그 말에는 나도 할 말이 없긴 했다.

        

       “애초에 우리 두 사람에게 그 말을 하러 온 거 아니었어?”

        

       “그보다는, 참가하고 싶은지 아닌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러 왔습니다만…….”

        

       “그럼 됐네. 이렇게 들었으니까.”

        

       허.

        

       뭐, 그래도 제이크가 내민 이유는 샤를로트의 이유만큼 감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제이크의 이 시원시원한 태도 때문인지, 뭔가…… 그런 이유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다.

        

       “제가, 이번에는 정말로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그때까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있던 로티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다시 내 쪽으로 돌린 얼굴은 여전히 조금 붉었지만 그래도 제이크가 한창 좋아한다느니 뭐라느니 염장을 지르던 때보다는 훨씬 나아져 있었다. 여전히 제이크의 소매를 꼭 잡고 있긴 했지만.

        

       “만들어진 기회가 아니라,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습니까.”

        

       나는 로티의 말에 가만히 대답했다.

        

       “그리고 아무리 너라고 하더라도 혼자서 그 전투를 끝낼 수 있는 건 아닐 거 아니야. 그래서 우리를 이렇게 찾아온 거잖아?”

        

       제이크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혼자서 어떻게든 할 수 있다?

        

       글쎄, 만약 저 안에 나의 힘을 제어할 수 있는 지보가 있다면, 혼자서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이번에도 어떻게든 ‘뚫어내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만큼 몸에 무리가 가고, 아픈 만큼 생각도 복잡하게 하기는 힘들다.

        

       그때 나를 확실하게 도와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여겨지긴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전장에서 평생을 구른 베테랑 병사나 기사가 훨씬 더 안전한 선택일 텐데.

        

       이상하게도 나는 나를 도울 사람으로 내 친구들을 먼저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말을 바꿀 수는 없다. 그건…… 모두의 기대를 배신하는 거니까.

        

       내가 어떻게든 하면, 어떻게든 하면 된다. 모두를 살리는 것이 처음의 목표였으니, 온 힘을 다해서 모두를 지키기로 하자.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이크와 로티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나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도움은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뭘, 우리도 도움을 크게 받았는데.”

        

       제이크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기 소매를 잡고 있던 로티의 손을 확 털어내고, 그 팔을 그대로 로티의 등 뒤로 보내 허리를 확 끌어안았다.

        

       화들짝 놀란 로티가 제이크의 팔을 찰싹 때렸다.

        

       ……조금 전까지의 훈훈한 분위기가 단번에 날아갔다.

        

       지금 저거, 자랑하고 있는 거지?

        

       아주 은혜를 원수로 갚는구만. 애인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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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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