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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0

       어제 한 번 가봤던 길이었다. 내 발걸음이라면 홀에서 공동까지 대략 10분 정도 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은 생각했던 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홀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사도와 사신이 싸우고 있는 현장과 맞닥뜨렸다.

         

       “언제까지 요리조리 피하기만 할 생각이지?”

         

       흉흉한 기세로 낫을 휘두르는 사신의 목소리는 젊은 여성의 것이었다.

         

       그녀를 상대하는 사도는 다이아몬드 퀸이었다. 그녀는 카드 마술의 기초를 닦은 사람으로 한때 베가스의 모든 카지노에서 출입 금지를 당한 적이 있을 정도로 눈썰미와 손놀림이 뛰어났다.

       그녀는 하나밖에 없는 눈으로도 상대의 버릇과 움직임을 모조리 간파해내고는 좁은 길목에서 상대의 낫질을 여유롭게 피해냈다.

         

       “겨우 이 정도야? 이렇게 낫을 못 다루는 애는 처음 보네. 무기를 휘두르는 게 아니라 무기에 휘둘리고 있잖아? 너 서커스단에 있었으면 나한테 많이 맞았다.”

         

       그 유려한 동작과 상대를 열받게 하는 말솜씨는 로드 판타스틱의 스승다웠다. 사신은 눈동자를 붉게 빛내며 더 거세게 공격을 가했다.

         

       둘이 싸우는 길목은 매우 좁았다. 이 부실한 몸뚱어리로는 한 방이라도 스치는 순간 끝장이었다. 육체가 아니라서 그렇게 되면 데볼루트로도 복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빙 둘러 반대편 계단을 찾아 내려갔다.

         

       아래층에는 내가 잘 아는 장소가 있었다. 게임에서 나왔던 곳이기도 했고, 우리가 맨 처음 계획했던 공격 목표이기도 했다. 바로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이었다.

         

       양옆 절벽으로 난 수천 개의 굴. 그곳에는 모두 쇠창살이 달려 있었는데, 그 안에는 죄수복을 입은 자들이 한 명씩 들어가 있었다. 가장 앞쪽 굴에 있던 자가 나를 보더니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뭐야, 넌 누구지? 사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러자 다른 죄수들도 그의 목소리에 반응해 달려 나왔다.

         

       “누가 들어왔나?”

       “이봐, 이 소음은 뭐지?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혹시 침입자인가? 그렇다면 우리 좀 꺼내 주시오!”

         

       그곳에 있는 죄수들의 수는 100여 명 정도 되어 보였다.

       부두교 마도사들을 제외하고도 마귀, 요정, 페르소나, 다른 마신의 신도 등 그 면면은 가지각색이었다.

         

       “어이!”

       “이보게!”

       “밀짚모자!”

         

       나는 그들을 빠르게 지나쳤다. 단장들을 탈출시킬 계획을 짤 때는 그들을 이용한 계책이 몇 가지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일이 더 급했다.

         

       그러나 몇 발자국 가지 않아 나는 발을 멈춰 서고 말았다.

       진단 기능에 감지되는 산 사람들은 모두 부두교의 마도사들이었다. 상태창은 그들의 몸에 한 가지 공통된 특성이 적용되어 있음을 내게 알려왔다.

         

       그때, 내가 내려온 통로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옥, 감옥……아, 찾았다!”

         

       그게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감옥 입구 바닥에서부터 살얼음이 번져왔기 때문이다.

         

       나는 재빨리 죄수들을 둘러봤다. 그리고 그들이 갇힌 굴 중 하나를 택해 몸을 숨겼다.

         

         

       ***

         

         

       사신 패호매트, 친구들에게 보통 패티라고 불리는 그가 목적지에 늦게 도착한 것은 길을 잃은 것도 누군가와 싸워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오늘 임무는 평소라면 꿈도 못 꿨을, 마신의 영역을 공격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흥분한 나머지 키르쿠스의 손길이 느껴지는 곳이면 닥치는 대로 달려들어 때려 부숴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광장으로 뛰쳐나가 더 크게 날뛰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친구에게 혼날 거라는 생각에 그는 부랴부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감옥에 들어선 그는 죄수들을 둘러보고는 외쳤다.

         

       “여기 부두교 애들 손!”

         

       어비스에서도 이름 높은 고위 마귀인 사신의 등장에 놀란 죄수들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중 몇몇이 부두교라는 단어에 반응해 창살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밖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움과 이어지는 외부인의 등장에 뭔가 일이 터졌다는 걸 느낀 것이다.

         

       “저, 저희가 부두교 소속입니다만…….”

       “너희가 다야?”

       “여, 여기 또 있습니다!”

       “저도…….”

         

       일부 뻔뻔한 마귀나 요정이 자기도 부두교 소속이라고 손을 들었지만, 이미 산 인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패티는 그들을 무시하고는 의뢰 대상에만 집중했다.

         

       “의뢰인의 부탁을 받고 왔어.”

       “의뢰인이라면……?”

       “당연히 너희들이 속한 곳이지.”

         

       사신의 말에 마도사들은 서로를 둘러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사, 살았다!”

       “부두교 만세!”

       “크윽, 우리를 위해 이렇게까지…….”

         

       사신은 기뻐하는 그들을 향해 싸늘한 눈웃음을 쳤다.

         

       “그런데 너희 대단하다. 하나, 둘, 셋……와, 한 명도 안 죽었네?”

         

       마도사들은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나서 떠들어댔다.

         

       “원더랜드 녀석들이 무르지 않습니까. 육체적 고문 같은 건 안 하더군요.”

       “체포할 때도 무조건 생포하려고 하고…….”

       “물론 형벌을 받을 때는 정신이 나갈 뻔했지만…….”

         

       패티는 그들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는 대신 고개를 저었다.

         

       “난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닌데.”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비웃는 것처럼 들렸다. 그제야 마도사들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입을 딱 다물고는 서로 불안한 눈길을 교환했다.

         

       “한 명도 두목의 이름을 안 불어서 놀랐어.”

         

       패티는 몸을 감싸고 있는 펄럭이는 검은 천을 넓게 펼쳐서 몸을 감쌌다. 이렇게 하면 그는 단단한 갑옷을 두른 것처럼 방어력이 몇 배는 증가했다.

         

       “어……그게…….”

       “어, 어떻게 아셨죠?”

       “그게 사망자가 없는 거랑 무슨 관계가……?”

         

       어리둥절해하는 마도사들을 향해 패티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너희 몸에는 생체 폭탄이 부착되어 있대. 키워드를 듣는 순간 그게 작동한다나 봐.”

         

       방금까지 희희낙락하던 감옥에 싸늘한 정적이 찾아왔다.

       생체 폭탄이라고?

       믿을 수 없는 소식에 굳어 있던 그들은 패티가 입을 열려고 하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며 고함과 비명을 질렀다.

         

       “사, 사신님!”

       “자, 잠깐!”

         

       사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두교 측에서 가르쳐준 이름을 외쳤다.

         

       “프랑크 원더스타인!”

         

       엄청난 압력의 폭풍이 몰아치면서 굉음이 동굴을 뒤흔들었다.

         

       10여 명의 마도사가 풍선처럼 몸이 부풀어 오르더니 동시에 폭발해버린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갇혀 있는 굴들을 무너뜨리기 충분한 위력이었다. 수천 개의 굴 중에 죄수들이 갇혀 있는 곳은 편의상 한쪽에 몰려 있었기에 다른 죄수들 역시 몰살을 면치 못했다.

         

       패티는 무너진 동굴과 조각난 피와 살점들이 즐비한 광경을 한 번 쓱 둘러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캬하하! 성공! 역시 부수는 거는 재밌단 말이야. 그럼 캇피 있는 데나 놀러 갈까?”

         

       그는 그렇게 외치고는 이곳을 떠났다.

       그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졌던 굴 한쪽의 잔해가 들썩거렸다. 그리고 곧 두 명의 사람이 거친 숨을 내쉬며 그곳에서 기어 나왔다.

         

       한 명은 허수아비였고, 다른 한 명은 감옥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부두교 마도사였다.

         

       “크윽, 설마 우리를 버리는 패로 쓸 줄이야.”

         

       마도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등을 만졌다. 그곳에는 거북이의 등껍질 같은 것이 딱딱하게 자라나 있었다. 이것이 없었다면 자신도 폭발에 휘말려 죽을 뻔했다. 아니, 애초에 몸에 있는 폭탄이 해체되지 않았다면 그 역시 몸이 부풀어 올라 터져버렸을 것이다.

         

       그는 명치 아랫부위를 더듬었다. 육체적 능력을 향상해 준다면서 간부들은 그곳에 무언가를 심어 놓았다. 그것이 주는 이물감은 이제 깨끗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헝겊과 지푸라기로 이루어진 우스꽝스러운 페르소나를 돌아봤다. 그는 사신이 들이닥치기 직전에 자신의 감방으로 들어왔다. 폭탄을 제거한 것도, 등에서 거북이 등껍질이 자라난 것도 그가 손을 대자 일어난 일이었다.

         

       “믿을 수 없군. 별빛도 없이 데볼루트로 만든 것을 없앨 수 있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아니, 잠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마도사가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허수아비는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그의 추측을 확인해 주었다.

         

       “제 이름을 끝까지 불지 않아 주셔서 고맙군요.”

       “아, 아아, 여, 역시, 다, 당신은……?”

         

       마도사는 허수아비 앞에 엎드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교주가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었다.

         

       “어, 어째서 저를……?”

         

       허수아비는 조심히 말을 골랐다. 여기서 쓸데없이 사정을 꾸며내려 할수록 자가당착에 빠질 확률이 높았다. 자신은 그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자 그가 속한 조직의 우두머리였다. 굳이 그를 이해시키지 않아도 그를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었다.

         

       “제가 없는 동안 간부들이 재밌는 일들을 하는 모양이더군요.”

         

       솔직히 허수아비도 어디까지가 원더스타인이 시킨 일인지 어디까지가 간부들이 자율로 하는 일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슬쩍 다 아는 척 찔러보면 상대가 알아서 반응할 것이라 여겼다.

         

       그의 추측대로 마도사는 뭔가 알겠다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그, 그렇습니다.”

       “그중 일부는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마도사는 부두교 안에서 지위가 높지 않았다. 그는 명령에 따르는 행동대원이지 간부는 아니었다. 그래서 교에서 벌이는 일을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러나 얼마 전에 벌어진 일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평소에는 비밀주의를 고수하던 간부들이 그 일만은 섬 전체가 떠들썩하게 정보를 공유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베르그송 상회에 대한 것이었다.

         

       베르그송 상회는 부두교에 대해 적대적으로 나왔다. 상회의 정보력을 동원하여 교의 비밀들을 캐내 각국의 수사기관에 넘기거나 교의 자금줄을 막고 용병들을 고용해 교의 비밀 사업장을 공격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교주는 왜 그것을 방치하는 것일까?

       그의 행보를 이해할 수 없던 간부들은 그래서 그 몰래 베르그송을 대상으로 뭔가 음모를 진행했다.

       그가 지적하는 것 중에 그것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제, 제가 무얼 하면 됩니까?”

         

       뭔가 집히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허수아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알아서 판단하고 움직이세요. 다만, 다음에 만날 때는 저를 위한 선물을 가져와야 할 겁니다.”

         

       상사를 두려워하는 부하에게 세세하게 명령을 내리는 것은 좋지 않았다. 혹시나 처벌받을 게 두려워서 딱 그 시킨 틀 안에서 절대 벗어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수아비는 최대한 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어차피 자신은 부두교 내부 사정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쓸데없이 아는 척을 하다가 상대의 의심을 사는 것보다 이게 낫다고 여겼다.

       거기다 이렇게 하면 상대를 통해 정보가 새도 자신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부두교 측에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여러모로 쏠쏠한 전략이었다.

         

       마도사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계약한 마신의 신도들은 부두교 안에서도 소수였다. 그들은 가진 능력도 집단의 운영에는 별로 쓸모가 없어 이런 몸 쓰는 일에만 동원되는 처지였다. 솔직히 평소에도 불만이 많았는데, 건사할 식구들을 생각하며 참고 지냈다.

         

       그런데 몸에 폭탄을 장치하다니?

       그나마 자부심을 가지던 충성심도 바닥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교주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직접 임무까지 내려주면서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검은 마도사의 직속 부하가 될 수 있는 기회였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이야기를 마친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나갈 수 있습니까?”

       “조금 있으면 원더랜드를 둘러싼 결계가 일시적으로 해지될 겁니다. 그때, 탈출하세요. 극장을 나가는 건 이쪽의 통로를 이용하십시오. 북쪽 하층 지역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밖은 지금 혼란스러우니 몸을 숨기기 좋을 겁니다.”

         

       다시 길을 재촉하려던 허수아비는 문뜩 제일 중요한 것을 묻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 당신의 이름은 어떻게 되죠?”

       “벤 설리반이라고 합니다, 교주님.”

       “……밖에서는 단장님이라고 불러야 할 겁니다.”

       “넵! 단장님!”

       “그럼 나중에 봅시다.”

         

       부하의 배웅을 뒤로하며 허수아비는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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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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