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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0

        

       그런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윌리엄의 꿈을 보고 있자면 이상한 점이 하나 보였다.

         

       사람의 꿈이라는 것은 중구난방이어야 정상이다.

         

       어떤 날에는 기르던 개가 사람처럼 말 할 수도 있고, 어떤 날에는 자신이 끌어안고 자던 베개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지퍼로 뺨을 때리면서 ‘숨을 못 쉬겠으니까 그만 눌러!’라고 소리를 칠 수도 있고, 어떤 날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법사 카피바라 무리와 무공을 쓰는 이족보행 오리너구리 천마가 싸움을 할 수도 있다.

         

       꿈이라는 것은 ‘이것이 바로 꿈의 공식이다.’라고 딱 정해놓을 수 없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어야만 했다.

         

       그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윌리엄이 꾸는 꿈은 모두 ‘소녀’라는 존재와 관련이 되어있었다.

         

       아무리 무의식에 남은 상흔이 커다랗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하나의 주제만 나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아무리 무의식중에 커다랗게 각인이 되어있다고 한들 사람의 뇌는 항상 그때그때 집중하는 것이 달라지고, 평소에 얻는 정보가 다르기 때문이다.

         

       꿈은 무의식만을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벌써 공격이 시작되었군.’

         

       진성은 이것이 인위적인 수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윌리엄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주술사는, 예언이 오기 전에도 꾸준히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집요하게 트라우마를 후벼파서 정신력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정신을 흔들어놓고 귀신을 꿈에 집어넣는다…. 악령을 주로 다루는 강령술사의 방식인데.’

         

       악령은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사람을 홀리거나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신을 깎아 제대로 저항할 수 없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악령들은 갖가지 창의적인 방법으로 사람의 정신을 빼놓았는데, 강령술사는 이러한 악령들의 수작을 보면서 귀신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곤 했다.

         

       즉, 이러한 수작을 부리는 사람은 악령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 같았다.

         

       ‘흠. 이해는 있으되 기본에서 벗어나지는 않았구나. 기상천외한 방법 대신에 쓰는 것이 기본이라. 정공법이 가장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흠, 정공법을 중요시하는 자인가, 경지를 넘지 못한 것인가?’

         

       다만 이해도가 있다는 것이 곧 실력을 의미하지는 않는 법.

       윌리엄을 공격하는 주술사의 방법은 기본에는 충실했으되 진성의 기대에는 걸맞지 않은 것이었다.

         

       진성이 기대했던 ‘강력한 강령술사의 저주 방법’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정석에 가까운 무언가였기 때문이다.

         

       ‘저주까지 사용했으니 괜히 위험부담을 더 짊어지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인가?’

         

         

         

         

        * * *

         

         

         

       철-썩.

       철-썩.

         

       소리가 들렸다.

       귀가 아닌 머리로 느껴지는 소리.

       뇌에서 갑자기 귀가 돋아나 들리는 듯한 소리, 바닥에 누워있지만, 진동에 몸이 부르르 떨리며 소리가 온몸을 엄습하는 느낌이요, 눈을 감고 있자면 눈꺼풀 너머로 누군가가 속삭이듯 말을 하는 것만 같다.

       어둠이 매질이 되어 입 안으로 들어가 소리를 치는 듯하고,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공간 자체가 놀이공원의 놀이기구처럼 거세게 흔들리며 괴롭히려는 듯 움직인다.

         

       철-썩.

         

       물웅덩이 위를 채찍으로 후려치는 것처럼 날카롭고 커다란 소리가 퍼진다.

         

       철-썩.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소리, 물이 파문을 일으키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소리, 철썩거리는 소리를 중심으로 파도가 일어나는 소리.

         

       그 모든 소리가 윌리엄의 몸에 똑똑히 들리고 있었다.

         

       철썩거리는 소리와 물방울이 비산하고 떨어지는 소리, 자그마한 조각배에 거센 풍랑에 흔들려 언제든 뒤집힐지 모른다는 그 끔찍한 공포, 자신이 있는 곳이 배 안의 선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뒤집히고 흔들리기를 반복하는 어둠까지.

         

       그 모든 기이한 감각 속에서 윌리엄은 생각했다.

         

       ‘Fuck.’

         

       또 시작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짜증을 냈다.

         

       ‘이 빌어먹을 악몽은 대체 왜 계속되는 거야?’

         

       철-썩.

         

       저 빌어먹을 철썩거리는 소리.

         

       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항상 악몽이 찾아온다.

         

       ‘철썩, 철썩, 철썩. 빌어먹을 철-썩. 내가 여자 엉덩이 두들기는 소리도 아니고, 저딴 소리가 왜 계속 튀어나오는데?’

         

       저 철썩거리는 소리가 처음 났을 때, 윌리엄은 ‘어떤 빌어먹을 놈이 움직이지 못하는 내 몸을 발가벗기고 내 엉덩이를 두들기고 있는 거 아냐?’하는 생각 때문에 공포에 질렸었다.

       때마침 저 철썩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날이 도수 높은 술을 진탕 마시고 인사불성이 된 채 기절하듯 잠든 날이었던데다가, 그가 꼬시려고 했던 모델이 친구랍시고 데려온 사람들이 죄다 게이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악몽?

       꾸기는 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났더니 내 옆에 발가벗은 남자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서 오는 공포가 더 강했고, 그 덕분에 윌리엄은 악몽보다도 더 악몽 같은 가능성을 떠올리며 식은땀에 흠뻑 젖은 채 공포에 질린 채 기상을 했었다.

         

       그렇게 일어난 윌리엄은 아주 다행히도, 정말로 다행히도 자신의 옆에는 아무도 없고 자신이 자기 전에 입고 잔 옷에는 아무런 흐트러짐이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방 안의 물건을 이것저것 다 깨부수며 화풀이했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꼬시려던 모델을 그대로 차단해버렸다. 게다가 반쯤 잠든 채 떠올렸던 가능성이 너무 끔찍했던지라 한동안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고, 시간이 지난 후에도 도수가 높은 술은 되도록 자제하고 맥주로 대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윌리엄 기준으로 ‘대단한 노력’을 했음에도 저 철썩거리는 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눈을 감고 잠이 들까 싶으면 저 소리는 반드시 들렸고, 술기운에 못 이겨 기절해도 저 소리는 또렷하게 들렸다. 게다가 저렇게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있음에도 잠에서 깨기는커녕 깊숙한 곳에 끌려들어 가기라도 하듯 항상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되었고, 그 끝에는 항상 악몽이 기다리고 있었다.

         

       악몽.

       끔찍한 악몽.

         

       윌리엄의 과거의 트라우마를 후벼파기라도 하듯, 어릴 적 그와 친하게 지냈던 소녀 ‘메리’가 나타났다. 게다가 잔잔한 영화처럼 아름다운 추억을 그렸다가도 그 끝에는 반드시 윌리엄이 어린 시절에 목격했던 소녀의 퉁퉁 불어 터진 시체 같은 몰골을 보게 된다.

         

       철-썩.

         

       ‘Fucking Arsehole!’

         

       몸을 진동시키고 정신을 뒤흔드는 듯한 철썩거리는 소리.

       물이 출렁이는 소리와 파도가 치듯 물이 터져나가는 소음.

         

       윌리엄은 이번에도 악몽이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엿 같은 예언을 봐서 그런가? 악몽 더럽게 많이 꾸네.’

         

       놀랍게도 윌리엄은 이것이 누군가의 공격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평소보다도 악몽을 많이 꾼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빌어먹을. 요새 좀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으로서는 ‘얼마나 멍청하면 악몽이 이렇게 연속적으로 나오는데 눈치를 못 채냐?’라고 타박할만한 상황이었지만, 윌리엄에게는 이러한 상황이 일상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린 시절, 소녀가 퉁퉁 불어 터진 시체로 나타난 것을 목격했을 때부터 악몽이라는 것은 윌리엄의 일상이었으니까.

         

       잠에 들 때마다 수시로 나타나는 것이 소녀의 얼굴이요, 기괴한 조형물에 대한 악몽이었다.

         

       특히 목격 직후에는 몇 주 내내 소녀와 ‘더 크리스마스’ 관련 악몽을 꾸었을 정도였고, 이후 심리치료를 한 이후에도 잊을만하면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 계속해서 튀어나오며 윌리엄을 괴롭히곤 했었다.

         

       윌리엄에게 있어 소녀와 ‘더 크리스마스’가 나오는 악몽은 일상이었고, 그의 삶의 일부였으며,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지금 꾸는 꿈 역시 그것의 연장이라고 여겼다.

         

       다만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저 철썩거리는 소리였는데….

         

       ‘쯧. 악몽보다 저 철썩거리는 소리가 더 짜증 나네.’

         

       윌리엄은 그것 역시 별것 아니라며 그대로 넘어가 버렸다.

         

       그냥 악몽이 진화한 것이라고.

       악몽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을 짜증 나게 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그저 그렇게만 여겼기 때문이다.

         

       철-썩.

       철—썩.

         

       그렇게 철썩거리는 소리는 윌리엄의 또 다른 일상이 되었다.

       소리는 그의 ‘엿 같은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악몽의 또 다른 부산물이자, 문을 열고 가게에 들어갈 때 울리는 종소리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저 철썩거리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어둠이 흔들리는 것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한 채 말이다.

         

       철-썩.

       철-썩.

       두-웅.

         

       그렇게 재앙은 온전히 완성되어 윌리엄에게 찾아왔다.

         

       철-썩.

         

       『 …붉은 몸, 붉은 뺨, 붉은 머리, 붉은 볏, 붉은 배, 붉은 등. 하얗되 피에 젖어 붉게 변한 이빨,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피에 항상 붉게 젖어있는 목구멍, 피가 들어차 있는 위장, 꼬리가 움직일 때마다 튀는 핏물, 핏물이 떨어지며 물들이는 새빨간 바다. 줄무늬를 타고 흐르는 피를 껴안고 나타나는 야만의 징벌! 』

         

       윌리엄의 낙관적인 태도는 게으름이었다.

         

       『 한 점의 고깃덩이도 먹을 수 없으니 그 까닭은 고기 자체가 피에 절어 끔찍한 혈향이 풍기고 있음이고, 그 피 하나하나에 먹은 인간의 원한이 들어차 독처럼 작용하기 있기 때문일 것이오. 존재 자체가 곧 저주이자 재앙이니, 흐발네스! 흐발네스! 피의 재앙이여! 끝이 없는 악의를 품은 재앙이여! 한없이 거대한 거품과 불길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 모습을 드러내어라! 붉은 볏을 휘날리며 불길한 폭풍우와 나타나 보금자리를 부수라! 』

         

       철썩거리는 소리에 이상함을 느껴서 주술사에게 자문했다면 자신이 당하고 있는 것이 저주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테니 이렇게 무방비하게 노출되지는 않았으련만.

         

       『 붉은 볏의 고래여, 꿈의 바다를 헤엄치고 파도를 일으켜 안락한 꿈의 배를 부수라! 광기 어린 모습으로 변화했던 것처럼 사악한 마법의 힘으로 헤엄을 치고, 요정의 저주를 움직여 현실과 정신의 경계를 깨부수고 헤엄쳐 마땅히 찢어먹어야 할 것을 쫓아라! 이곳에 감히 그대의 영역에 들어왔다가 나간 무도한 자가 있으니, 꿈의 바다를 헤엄쳐 끝이 없는 악의를 담아 토막을 내도록 하라! 파도를 일으켜 배를 뒤집고, 꼬리를 쳐서 배를 조각을 내고, 이끌고 다니는 고래들에게 그 피와 육신을 먹여 그 끝이 없는 악의에 피를 축이라! 』

         

       철—썩.

       콰-앙!

         

       『 징벌하라! 부숴라! 조각내라! 배를 무너뜨리고 사람을 끌어내어 갈기갈기 찢어라! 부서진 틈새에 끌고 온 고래를 넣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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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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