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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0

       주식을 끌어모으는데 대단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아무리 시총이 내 재산과 비슷한 그룹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전 재산을 다 들여 사 모으기 시작하면 주식값이 끝도 없이 올라갈 테니까.

        

       그렇다고 나 혼자 유의미한 수준의 주식을 가지고 있겠다고 해도 총회 때 엄청난 영향을 끼치기는 어렵다. 이미 그 그룹 내에 형성되어있는 파벌이 있을 거고, 나는 거기서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못한 깍두기가 될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냥 무시하기는 힘들겠지.

        

       정말 중요한 순간에, 의견이 거의 반반으로 갈려서 누군가가 지지하는 쪽이 이기는 상황에서.

        

       혹은 시총에 직접 나와서 발언하기 시작하면 쏠릴 시선.

        

       이것저것 다 생각하면 내가 주식을 사다 모으는 걸 마냥 무시할 수도 없을 것이다.

        

       뭐,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윤다호네 찾아간다고 해도 절대 거절하지 않고 들여보내 주긴 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나대로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마음 놓고 개기질 못하지.

        

       회사 시총이 그만큼 차이 나는 만큼, 집안의 재산도 그만큼 차이가 날 테니까.

        

       그리고—

        

       “우리 아버지 회사의 주식을?”

        

       “그래.”

        

       물론, 하늘이 아버지께서 다니시는 회사가 하늘이 아버지의 회사는 아니다. 하지만, 회사 자체를 돕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 법이니까.

        

       회사가 어째서 망하는가?

        

       이유는 몇 가지 있지만, 그 모든 이유를 하나의 단어로 나타낸다면 당연히 ‘돈’이었다.

        

       돈이 없어서, 혹은 돈을 속여서. 어쨌거나 필요한 순간에 돈을 내지 못하면 회사는 망한다. 아마 호명 그룹에서 하늘이네 아버지께서 다니시는 회사를 압박하는 방식도 ‘돈’일 거고.

        

       그렇다면 그 상황을 타개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돈’이다.

        

       나는 한가람에게 그 상황을 알아보고 돈으로 메꿀 수 있는 법을 찾아서 메꿔달라고 했다.

        

       돈만을 보고 사는 사람답게도, 한가람은 그 지시에도 엄청나게 기뻐했다. 하긴, 막대한 자금으로 대기업을 상대하는 일이었으니 기쁘겠지.

        

       “하, 하지만, 그러면 돈을 너무 많이 쓰게 되는데…….”

        

       참, 걱정도 팔자다.

        

       하늘이는 이런 상황에서도 나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친구 사이에 이렇게 많은 도움을 받으면— 아니, 좋아하는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으면, 자기가 돌려줄 것이 너무 작아 보여서, 받은 만큼 돌려주지 못할 것 같아서 걱정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고 보면, 하늘이는 지난번에도 이런 반응을 보였다. 어떻게든 혼자 처리하려고 했고, 내가 신경 쓰지 않기를 바라고, 걱정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한숨을 푹 쉬면서 머리를 쓸어올린 뒤,

        

       그대로 양손으로 하늘이의 양 볼을 감싸 쥐었다.

        

       손에 힘을 줬기 때문에, 하늘이의 얼굴은 조금 붕어처럼 되었다. 그래도 귀엽긴 했지만.

        

       “내가 널 도와주는 게 무슨 대가를 바라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

        

       “어, 으에…….”

        

       얼굴이 찌부러져 있어서 그랬던 걸까? 하늘이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내가 평소에 내던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냈다.

        

       손이 닿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늘이는 이마까지 빨갛게 변한 상태였다.

        

       나는 그런 하늘이의 얼굴에 내 얼굴을 바싹 들이밀면서 말했다.

        

       “내가 너를 도와주는 이유는, 그냥 도와주고 싶기 때문이야. 친구니까. 여기서 얻은 소중한 인연이니까. 잃어버리고 싶지 않으니까. 불행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으니까. 알았어?”

        

       하늘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그랗게 뜬 눈은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내가 도와주지 않아서 너희 아버지 회사가 망하면, 그때도 안 도와줄 것 같아? 절대 아니지. 혹시라도 너에게 무슨 일이 있어서 도와줘야 하면 어차피 그때도 도와줄 거야. 그럼 차라리 귀찮아지기 전에 미리 처리해버리는 게 서로에게 좋은 거 아니야? 안 그래?”

        

       하늘이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가까운데도 어째 숨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매번 하늘이가 얼굴을 들이댈 때면 부드러운 숨결이 느껴지곤 했었는데.

        

       뭐, 제대로 고개 끄덕이고 있는 걸 보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러니까, 앞으로, 한 번만 더, 다 갚지 못하겠다느니 너무 큰 도움을 받아서 미안하다느니 하는 소리 하지 마. 아니, 그런 소리뿐만이 아니라 불편한 기색도 보이지 마. 만약 한 번만 더 그러면…….”

        

       ……더 그러면?

        

       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이 아이들을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기는 하다. 어차피 우리는 서로 친구이고, 친구라는 관계는 마냥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었으니까. 내가 무슨 얘네들의 주인인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러면, 평생 몸으로 다 갚게 만들어버릴 테니까. 알았어?”

        

       “…….”

        

       그리고 나는 하늘이의 얼굴에서 손을 떼었다.

        

       하늘이의 얼굴은 이제는 전체가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내가 꽉 쥐고 있었던 손자국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

        

       그리고, 나는 그런 하늘이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입만 뻐끔거리고 있는 하늘이는,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 저, 하늘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하늘이를 보고 나서야, 나는 화들짝 놀라서 하늘이의 어깨를 잡고 외쳤다.

        

       “하늘아, 숨 쉬어! 숨!”

        

       그렇다. 아까 얼굴을 그렇게 가까이 대고서도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하늘이가 숨을 멈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 후우…….”

        

       내가 하늘이의 어깨를 잡고 몇 번 정도 흔들고 나서야 하늘이는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뒤로 축 늘어져서,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아아.”

        

       그리고,

        

       “이젠 죽어도 좋아…….”

        

       그런 어이없는 소리를 했다.

        

       ……성인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 아니었어?

        

       그런 실없는 소리를 하는 하늘이를 보고 나서야 마음을 놓은 나는 숨을 길게 내쉬면서 이마에 흐른 땀을 손으로 훔쳤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으엫.”

        

       내 쪽으로 얼굴을 바싹 붙이고 있는 소희와 수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왜, 왜 그래……?”

        

       순간 철렁하고 떨어질 뻔한 심장을 부여잡고 그렇게 물어보자 먼저 반응한 쪽은 소희였다.

        

       “아, 아아, 나도 사라한테 받은 게 너무 많아서 다 갚지 못할 것 같은데……!”

        

       대놓고 과장된 연극 톤으로 말을 해서, 그게 나한테 장난을 거는 건지, 아니면 하늘이처럼 미래를 걱정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연기하려다가 그냥 연기력이 없어서 그렇게 나온 건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소희가 내가 하늘이에게 해준 말을 그대로 듣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이었다.

        

       “…….”

        

       음, 소희가 나한테 받은 게 많기는 하지.

        

       많기는 한데…….

        

       “저, 소희야. 너는 이미 몸으로 다 갚겠다고 말한 적 있는 거 아니었어?”

        

       그렇다. 소희는 일단 일하면서 받은 뒤, 만약 모자라면 평생 일하면서 갚겠다고 이미 말을 했었다.

        

       “흐, 흐읏……!”

        

       하지만 어째서인지 소희는 내 그런 말에도 반응했다.

        

       그리고 하늘이처럼 뒤로 픽 쓰러졌다.

        

       “…….”

        

       아니 뭐 어쩌라고.

        

       벙찐 표정으로 그런 소희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하나 남아있었다.

        

       수아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말없이 수아를 바라보자, 수아는 앉은 자세 그대로 안절부절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래, 뭐, 하늘이랑 소희는 내가 일방적으로 도울 수 있다고 쳐도.

        

       수아는 일단 상속녀잖아. 물론 기업 크기로는 큰 차이가 있지만…… 웬만해서는 기업 자체가 망하지 않을 정도로 큰 회사였다.

        

       그런데 수아에게 막 일방적으로 도와주고 몸으로 갚으라고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도와주는 금액은 대부분 갚을 수 있을 테니까.

        

       실제로 자기 돈만으로 기자 한 명을 고용해서 아직도 도움을 받고 있기도 했고.

        

       그렇다고 반대로 내가 받은 도움을 갚겠다고 해도, 하늘이나 소희만큼 감동하기 힘들다. 나는 그냥 돈으로 갚아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음…….”

        

       그런데 그래도 수아 한 사람에게만 그런 말을 안 해주는 건, 뭔가 따돌리는 것 같아서 싫은데.

        

       난봉꾼.

        

       너도 있다가 밤에 비슷한 거 해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으에?

        

       ……딱히 몸이 없어도 의식 안에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저 소리는 사실 몸 때문에 나는 소리가 아닌 건 아닐까?

        

       나도 꿈속에서 저런 소리를 내나?

        

       “수아, 너도, 필요한 부탁이 있으면 해도 좋아. 나라면 너가 해결하기 힘든 일이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그, 그그그, 그리고…….”

        

       수아는 조금 촉촉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에, 내가 그걸 다 갚을 능력이 안 되면……?”

        

       “…….”

        

       얘네들 약간 취향이 위험한 거 아닌가? 아니면 혹시 그런 건가? 남주인공이 벽쿵해주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가짐…….

        

       뭐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생각하는 게 영 귀찮아졌다.

        

       “……원한다면, 뭐, 하늘이나 소희처럼 몸으로 갚아도 좋아.”

        

       “흐으…….”

        

       결국 내가 한 말에, 수아도 녹아내렸다.

        

       분명히 소희나 수아나 둘 다 내가 하늘이한테 했던 말보다는 훨씬 짧고 덜 감정적인 말이었는데도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아예 머리 안에 대사를 바로잡아주는 메커니즘이 있는 모양이다.

        

       “……씻으러 갈까.”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다가, 나는 그냥 세 사람을 내버려 두고 일어나 샤워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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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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