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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0

        

         “으으음….”

         

         얕은 신음소리가 고막을 때렸지만 내가 흘렸다는 자각조차 들지 않았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멍하니 명상을 할 때, 정처없이 시야 안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쫓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로 눈이 살짝살짝 굴러갔다.

         

         단지 사색할 때 이루어지는 그것과 지금 내 행동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라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무거나 대충 골라서 관찰한 게 아니라, 엄연히 고민과 관련되어 있는.

         

         더 정확히는 고민거리 그 자체인 녀석을 바라보고 있던 거니까, 신체 주요 기관을 이중 삼중으로 활용한 훨씬 효율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암 그렇고 말고.

         

         –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

         

         “…응, 그래.”

         

         실수로 긁거나 짜증나서 쥐어뜯는 게 아닌 이상 나는 머리카락도 잘 안 빠지기에 주변을 그렇게 더럽히는 것도 아니오, 서구권 애들처럼 신발 신은 채로 실내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닐진대.

         

         문을 열고 닫거나 택배를 받을 때마다 딸려 들어오는지 꾸준하게 발생하는 잔먼지를 치우고자 청소하는 제로를 배려해 바닥에 있던 두 발을 소파 위로 올려 쪼그리고 앉았다.

         

         무릎에 손을 얹고 거실 TV 앞쪽을 쓸고 닦는 그를 계속 구경했다.

         분명 처음에는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얻는 마이홈이라는 뿌듯한 감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뭔가… 뭔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점차 글러먹은 막둥이 포지션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에이, 설마.

         

         우리집 가장이 나니까 큰 건을 무사히 넘긴 만큼 몸을 낮추고 기다릴 겸 일하지 않을 때는 조금 쉬는 거다! 제로야 본인이 적극 원하기도 했고, 말린다고 들을 생각도 없어서 내조…? 하여간 생활 방면에서 적극 어시스트 하는데 집중하는 거고.

         

         음, 틀림없다. 내 가설에 허점 따위는 보이지 않아.

         

         – 점심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구비해두신 인스턴트 카트리지 중 선호하셨던 제품 하나를 조리할까요? 별도로 색다른 게 당기신다면 현재 영업 중인 배달 음식점 목록을 정리해서 올려드리겠습니다. –

         

         “밥… 먹어야지. 먹어야 하고 말고. 실패할 수가 없는 분야의 녀석으로.”

         

         이번에는 주방 쪽. 고개를 돌리지 않아서 추측이기는 한데 아마 매일같이 쓰는 식기 세척기와 표준형 푸드 카트리지 조리기 근처에서 들린 목소리에 대꾸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컴퓨터와 휴대폰만을 사용한 사회 참여를 시도해본 적 없는 외향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이 식사라는 행위만큼 체내 시계를 굳혀주고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게 없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몰랐다면 부디 이 기회에 확실히 알아주길 바란다.

         

         내가 괜히 메뉴 고민까지 해가며 챙기는 게 아니라니까?

         물론 여건이 되면 식도락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밖으로 나돌긴 한다만.

         

         “…역시 햄버거. 고기 많이 들은 거에 사이드도 포함된 세트로 적당한 곳에 좀 부탁해.”

         

         – 확인했습니다. 플라자 내부, 주민 전용 편의 시설 중 바클레이 프라임 다이닝(Barclay Prime Dining)에서 치즈 스테이크 브리오슈 버거와 바나나 푸딩 크림 브륄레(Crème Brûlée; 그릇에 담긴 커스타드 크림에 올린 설탕을 녹여서 코팅한 디저트)를 주문 완료했습니다. –

         

         “…….”

         

         음, 장하다.

         거 기름진 포장지와 찌그러진 모양새부터 떠오르는 친근한 패스트푸드를 염두에 두고 말한 내가 이상해 보일 정도로 너는 냅다 검증된 레스토랑과 수제 버거부터 떠올렸구나.

         

         ‘아니, 요 녀석이…?’ 하는 눈길을 담아 제로를 째려보았다. 안 그래도 요새 라면 자주 먹는 걸 아니꼽게 보는 것 같더라니, 자율권을 약간 넘기자마자 냅다 평균 식비를 천장 너머로 날려버릴 줄이야.

         

         내 지출 목록에 고급품만 도배되어야 한다는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잔고에 꽤 여유가 있어도 그런 곳의 가격표를 보면 조건 반사적으로 마음이 불편해진다니까 또 그러네.

         

         당장 영수증을 외면하게 만든다고 내 찝찝함까지 근본적으로 사라지는 건 아니래도? 하아.

         

         – 현재 거주지와 은근하게 자리매김하신 사회적 위치에 따라 걸맞은 소비를 하시는 게 더 자연스럽고, 잡배들의 접근을 원천 차단하는데도 유리할 거라 판단했습니다. –  – 그리고 손이 심심하시다고 자꾸 권총을 탄창 결합한 상태로 여기 두시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만.

         

         “오히려 그런 식으로 젠체하면 용병 업계나 마켓 쪽에서 엮일 인간들은 재수없다고 더 시비 걸 것 같은데. 또 총은 내가 움직임이 그렇게 빠른 편이 아니니까 만일을 대비해서 일부러 침대 근처에 둔……. 아이씨! 너 진짜,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말고 어떻게 하나로 통일해!!”

         

         – 실례했습니다.

         

         얘기가 길어질 기미를 보인만큼 기껏 거실 청소를 하던 제로에게서 머리를 돌려 주방을 담당한 제로를 향했더니.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침구를 정리하던 드로이드가 뒷말을 이어받아 떠든 탓에 또 고개를 팩! 휘젓던 내가 결국 참지 못하고 지적하고야 말았다.

         

         그랬더니 실내에 널린 드로이드 중 한 대가 아니라 홈 시스템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대답하는 건… 날 얼마나 어지럽게 만들 생각이냐고!

         

         시선 처리를 어찌 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니까!?

         

         다소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지만. 진심으로 짜증이나 화를 낸 건 아닌지라 공기는 금세 이완.

         

         제로도 나도 아직 적응하는 도중이었고 이편이 맞다는 건 충분한 설명을 토대로 납득했기에, 서로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해프닝인 셈이리라.

         

         그래, 며칠간 계속된 내 고민의 원인은 역시 제로다.

         

         자기가 무슨 소라게도 아니면서 자아를 담은 껍데기가 나를 보좌하기엔 충분하지 못하다며 셀프 업그레이드, 내지는 초진화(Evolution)를 멋대로 감행한 바보.

         

         원래도 대규모 시설 통제를 위해 최적화 알고리즘을 잔뜩 장비하고, 다중 연산에 특화된 면모를 보이던 강인공지능이 그릇을 부수고 나왔다.

         

         거창한 묘사일지도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론 진짜 이렇게 표현한 것도 많이 축소해서 담백하게 정리한 거라 생각한다.

         

         처음에 자기 상태를 뭐라고 했었더라.

         

         일단 ‘급한대로’ 연결이 닿는 모든 중앙 처리 장치와 메모리를 경유해 제한되었던 기존 데이터 처리 능력 임계점과 접속 제한을 해제. 단일 기기에 집중되었던 퍼포먼스 영역을 확장하였으며.

         

         이제는 일개 로봇 파손이나 단말 피해는 자신에게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데다가, 설령 대파괴(Catastrophe)급 순항 미사일이 틀어박혀서 엔지니어 플라자 일대가 물리적으로 증발한다 하더라도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다시 내 곁을 지킬 방도가 있다나?

         

         어… 그러니까 한마디로, 그래도 CPU가 부서지면 속절없이 죽던 정보 생명체가 다중 네트워크로 승천한 반불사신이 되었다는 소리지.

         

         ……그리고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선 그런 걸 성공한 인공지능은 폐쇄 도시는커녕 엘리시움에도 없다. 응.

         심지어 그쪽 애들은 언젠가 이걸 알게 되면 눈이 뒤집어질 것 같은데 참.

         

         나야 당연히 동네방네 떠벌릴 생각 따위는 없고, 드로이드가 탈취당하거나 연결이 끊어진다 하더라도 안에 남긴 미니미 제로(Mini-Me ZERO) 메커니즘 -그게 대체 어떤 건지는 정말 모르겠지만!- 에 따라 수습한다니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걱정되는 건 그거다.

         제로가 ‘제로’해버린 건 어쩔 수 없다. 다시 램프 안으로 돌아가라는 가혹한 말을 할 생각도 없었고.

         

         헌데 이런 특수한 속성을 많이 가지게 된 애가 떡하니 존재하는 게.

         아무리 내 그림자 속으로 활동 범위를 한정하고 꿈틀거린다 쳐도 거시적 관점에서 네오 헤이븐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 것인가.

         

         음….

         으음…….

         

         “……나 없는 자리에서 사고치면 진짜 안 된다? 어디 가거나 누구 만날 때마다 몰래 뒤에서 드로이드 운용해 놓고 나중에 ‘위협을 배제했습니다~’ 같은 소리도 하면 안 돼. 알았지…??”

         

         – 정보가 새어 나가는 것 이외의 위협에 관해서는 생포와 관측, 아샤님 주도 협상을 통한 비폭력적 대응을 기조로 삼겠습니다. –

         

         아무래도 전과 10범쯤 되는 녀석이다 보니 냉큼 돌려주는 대답을 들었어도 그렇게 막 안심되지는 않았다.

         

         벌써 ‘생포’와 ‘비폭력’이 공존하는 것 좀 봐라. 아마 뒤통수에 총을 들이밀고 제 발로 내 앞까지 걸어와서 자진 납세하게 만드는 것쯤은 허용 범위라고 여기는 거겠지.

         

         …어라? 그 정도면 폭력의 형태만 수만 가지로 존재하는 세계치고는 굉장히 신사적인 대응 같기도 하고?

         

         레오나르에게 대리 보관을 좀 부탁했던 연구 시설산 경비 드로이드를 몇 대 돌려받자마자, 이렇게 집안일에 투입하여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은 사실 썩 든든했던 만큼 양심의 가책도 덜어내니 나쁠 게 없어 보였다.

         

         아, 맞다. 근래 달라진 점을 얘기하는데 또 빼놓기 어려운 게 우리의 중간 보스 씨와 관련된 후일담이다.

         

         그가 많이… 예상보다도 많이 고마움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여러 방면에서 따로 챙겨줄 정도로.

         

         본의 아니게 개인사에 깊게 연관될 걸로도 모자라, 생사고락의 현장을 함께 극복한 터라 레오나르 기준으로 믿어도 괜찮을 인간으로 분류된 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 글쎄, 그 매드 사이언티스트랑 가벼운 농담 따먹기까지 했다니까?

         

         일련의 사건으로 혹시 성격이 다르게 변했나 찔러볼 요량으로 던진 거긴 한데 아무튼.

         

         왜 하필 그런 비틀린 여자와 사귀었냐 물었더니 자신과는 반대로 성격이 적극적인 여성을 소개받은 결과라 하소연하질 않나.

         그럼 턱시도까지 차려 입고 결혼한 건 뭐냐 슬쩍 추궁했더니, 자기는 분명 정장을 입은 적도 혼인한 적도 없다는 굉장히 오싹한 속사정을 들려주기까지 했다. …아유, 무서워라.

         

         “야, 제로 너도 고민거리나 난제가 있으면 털어놔야 한다? 괜히 오래 붙들고 있으면 속병 나.”

         – ……. –

         

         분명 기반 성능이 밀릴 텐데도.

         양도받아서 커스텀 한 다른 노획 드로이드보다는 내가 구입한 케어봇에 애착이 더 가는지, 어느새 0호기로 소파 뒤에 시립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그에게 충고를 던지곤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자, 집안 문제에 대한 고찰은 여기까지 해 두자.

         

         슬슬… 내가 여태 안방이 아니라 거실에 나와있던 이유. 알아서 정리되기를 바라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지만, 결국 해결되기 어려워 보이는 바깥 문제를 책임지러 나가봐야 할 것 같으니까.

         

         

         [ 테러의 여진은 이제 막 시작? 실수한 건 기업, 책임은 시민 몫?? ]

         

         [ 극비 시설에서 흘러나왔다는 심각한 전자 바이러스, 민간으로 확산되기 전 일대를 격리했다가 실패했다는 의혹에 엑사테크 코퍼레이션은 더는 무근거한 비방과 왜곡을 참아 넘길 수 없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 ]

         

         [ 긴급 특보! 폭주한 청소기에 습격 당해서 발가락이 골절된 익명의 피해자 인터뷰 단독 보도!! ]

         

         [ 일각에서는 더 큰 사회 문제와 재산 피해로 발전하기 전에 수도 일부를 폐쇄 구역으로 지정하고 소각 작전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

         

         [ 밤하늘을 수놓던 배송 드론. 현재 일부 구역에선 창문 파쇄의 주범이나 다름없어 논란. ]

         

         

         ……뉴스 헤드라인들이 기가 막히시네 아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것마저 한참 전에 내다보셨던 분들이 계셔서 전 너무 두렵습니다. (오들오들)

    외전 때문에 여러모로 주기가 꼬인 거, 정기 휴재일로 좀 잘 조절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엥? 모르고 그 외전을 시원하게 휴일에 올려버렸네요?? 어??? 이럼 내 수면 시간은 어디로????

    어흑마이깟.

    임채호_874 님의 관대한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더… 더 담아 드리고 싶은데 밥솥이 비었어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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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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