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40

   달피론 쥬논.

     

   크라슈도 그에 관해서는 그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제국이 무너진 날.

   그 자리에서 같이 끝을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황가의 검이라는 이명답게 그의 마지막 또한 그와 같았다.

     

   ‘무엇보다 워낙 지리적 위치에서 차이가 나니까.’

     

   당시 크라슈는 창공의 세대에서도 저주받이 취급이었다.

     

   모진 일들을 겪고, 비뚤어진 크라슈는 입이 험했으며 주위에 막말을 일삼았다.

   그러니 창공의 세대에서도 크라슈라는 인물은 여러모로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제국파라 하면 극심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다 보니.

   더욱이 쥬논이라는 인물과는 연관될 일이 적었던 것이다.

     

   그런 지금.

   크라슈는 회귀 전과 연관 없던 인물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라는 인물상에 관해 얼추 알 뿐.

   모든 것을 아는 게 아닌 만큼 크라슈도 꽤나 긴장된 기분을 느꼈다.

     

   천하십강 앞에서도 몇 번이고 당당히 섰던 크라슈였으나.

   달피론을 눈앞에 두자 천하십강이라는 자리와 천상사강의 자리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약할 때는 벽 따위 보이지도 않으니 몰랐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고 나니 겨우 어렴풋이 보이는 벽이 얼마나 높은지 깨달았다.

     

   머리를 최대한 등 뒤로 젖힌다고 한들.

   구름 사이에 낀 벽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세계의 최강자들과 자신 사이에 있는 드높던 벽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서는 이런 인간들보다도 위로 올라간 거였나.’

     

   후에 창공의 세대도 결국 천상사강의 위에 도달하게 된다.

     

   특히 아서를 중심으로 모인 세 명의 여성진은 독보적인 위치였다.

     

   ‘지금이야 그런 꼴인 녀석들이어도.’

     

   그들 또한 정상에 도달한 것은 사실이었다.

   당시 지옥 같았던 처절한 전투에서 성장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힘을 얻었음에도 멸망을 막지 못했다.

     

   ‘시그린이 자신의 훈련에만 전념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이유겠지.’

     

   검황의 유산에 손을 대고, 다른 잡다한 것들을 구하고 있는 시그린도 크라슈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 또한 본인만의 힘과 지위만으로는 멸망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단지, 그 방향이 오로지 멸망을 대비하기보다는 자신의 위치를 보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버렸지만 말이다.

     

   “네가 크라슈 발하임이로군.”

     

   크라슈가 긴장으로 딴생각에 빠지던 순간.

   달피론의 입이 열렸다.

     

   찻잔을 천천히 내려둔 그는 금색의 머리카락 사이로 크라슈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눈은 크라슈의 내면을 샅샅이 훑어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젊은 영웅이라더니 겉보기와는 다른 느낌이군.”

     

   그리고 그는 정말로 크라슈를 꿰뚫어 본 것 같았다.

     

   그 또한 무황 발록 발하임과 같이 반신에 오른 몸이다.

   반신에 오른 만큼 그 또한 신안을 개안한 것이었다.

     

   “몸에 그런 걸 쌓다 보면 명이 짧아질 거다.”

     

   혹시나 해 크라슈는 세계 침식의 힘을 모두 아우라로 치환시켜 놓았다.

     

   그러나 신안은 다른 것조차 꿰뚫어 보는 것일까.

   크라슈는 겸연쩍은 반응을 보였다.

     

   “길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언제나 전심전력으로 말이다.

     

   달피론은 잠시 동안 크라슈의 눈을 바라보았다.

   크라슈의 눈동자 속에 담긴 진심을 읽은 것이다.

     

   “오래는 못 살겠군.”

     

   사람 앞에서 덕담은 못 할지언정 모진 인간이다.

     

   하지만 오히려 잘됐다.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것은 곧 크라슈가 진실만 말한다면 믿어준다는 소리일 테니까.

     

   “이야기는 4황녀님을 통해 들었다.”

     

   이번 자리를 주선한 것은 시즐리다.

   다행히 사정을 아는 그녀는 달피론에게 적극적으로 크라슈의 이야기를 해두었다.

     

   크라슈가 시즐리 쪽을 힐끗 보자 그녀가 찡긋하고 윙크를 해왔다.

   어서 빨리 자신의 노력을 칭찬하라는 의미였으나 크라슈는 무시해두었다.

     

   “에파니아 황가의 병. 백석증.”

     

   황가와 깊이 관련된 극소수만이 아는 병명.

     

   백석증.

   몸 장기 내부가 새하얀 돌로 변해가는 오직 황가에만 내려오는 병.

     

   크라슈는 이 병이 왜 발생했는지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크라슈가 직접 시그린을 치료했기 때문이었다.

     

   시그린이 한때 걸렸던 저주, 인귀상반.

   인귀상반은 몸에 지닌 병이나 안 좋은 부분을 극대화하는 저주다.

     

   그렇다 보니 인귀상반에 걸리자 시그린은 그동안 몸속에 잠자고 있던 백석증이 깨어나고 말았다.

     

   그녀의 내부는 삽시간에 새하얀 돌이 되어갔고, 그녀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

   그 병을 훔쳐 주었던 것이 다름 아닌 크라슈였다.

     

   그리고 훔치고 나서야 크라슈는 깨달았다.

   왜 수많은 고위 신관과 성녀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그린의 백석증을 치료할 수 없었는지 말이다.

     

   이러한 백석증은 황가가 절대 바깥에 알리지 않은 병이었다.

     

   그런 백석증을 달피론이 직접 거론한 시점에서.

   크라슈가 만약 황제의 치료에 실패한다면 그냥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돌아가려는 크라슈에게 그의 스킬이 반드시 발동될 테니까.

     

   ‘메모리투라.’

     

   그가 지닌 기억을 삭제하는 스킬이다.

   그리고 이 능력을 통해 그는 지옥선녀에 관한 모든 정보와 기억을 지웠을 것이다.

     

   ‘회귀 전 내가 지옥 선녀에 관해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겠지.’

     

   익시온은 백석증 치료를 실패한다.

   황제는 결국 백석증으로 인해 사망했고, 달피론은 그에 관한 모든 기억과 사실을 지웠다.

     

   황가의 치부는 앞으로도 계속 숨겨져야만 했으니까.

     

   “치료 방법을 묻지.”

     

   달피론은 오직 진실만을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러니 크라슈는 그에게 증거를 보여주듯 손을 들어 올렸다.

     

   달피론의 시선이 크라슈의 손을 따라 올라간 순간.

   그의 앞에 있던 찻잔이 어느샌가 크라슈의 손에 들려 있었다.

     

   달피론의 눈이 미묘하게 떠졌다.

   그 또한 그것이 스킬임을 읽은 것이다.

     

   “……스킬?”

     

   그가 의문을 담아 묻자 크라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 스킬입니다.”

     

   스킬 블랙후드.

   대상이 자신이 지닌 것을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조건 혹은 조건 없이도 빼앗을 수 있는 스킬.

     

   조건만 맞았다면 무엇이든 훔칠 수 있는 이 스킬이라면 백석증마저 훔쳐 올 수 있었다.

     

   달피론이 잠시 동안 침묵하며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크라슈 또한 조용히 그의 뜻을 기다렸다.

   그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 한 황제에게는 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만 묻지.”

     

   그리고 잠시 후 달피론의 무겁던 입이 열렸다.

     

   “그건 정말 스킬인가.”

     

   다음 말은 크라슈로서도 의문을 자아내게 했다.

     

   정말로 스킬이냐니.

   신안을 개안한 그라면 분명 크라슈가 사용한 블랙 후드를 꿰뚫어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저런 물음이라니.

     

   “……그게 무슨 뜻인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나는 반신에 올랐다.”

     

   그건 크라슈도 아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그는 한 가지를 보여주듯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손아귀에서 금빛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무척이나 따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눈을 홀리는 힘이 있었다.

     

   신기.

   신계의 힘이었다.

     

   어떻게 보면 스킬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힘.

     

   그것을 보인 달피론은 손을 쥐어 빛을 흩뜨렸다.

     

   “그리고 스킬 또한 방금 보인 신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건.”

   “네가 방금 전 보인 스킬은 신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

     

   크라슈의 눈이 꿈틀거렸다.

   왜냐하면 지금껏 들어 본 적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반신에 오른 이들 말고도 신을 직접 마주한 적도 있었는데.’

     

   분명 그때도 그런 소리를 하는 이는 없었다.

   하물며 크라슈에게 녹스를 준 밤의 신 또한 크라슈의 힘을 보며 신의 힘까지 빼앗고 다니는 신의 스킬이라며 평했을 뿐.

     

   그것이 신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지 않다는 말을 한 적 없었다.

     

   ‘설마.’

     

   크라슈는 얼마 전 자신에게 스킬을 준 그녀를 만난 것을 떠올렸다.

     

   갑자기 자신의 앞에서 훌쩍 나타났던 이름 모를 그녀.

   그녀는 여전히 의미 모를 말들만을 하고, 이름조차 가르쳐 주지 않은 채 떠나갔다.

     

   ‘그때 무얼 한 건가?’

     

   그것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자기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크라슈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뭐가 다른 건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달피론이 보았다면 말해줄 수도 있을 터.

   크라슈가 질문하자 그는 무표정하게 말하였다.

     

   “폐하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말해주지.”

     

   일종의 거래라 이건가.

     

   대가가 없었다고 한들 황제의 병은 치료할 작정이었다.

   크라슈에게는 전혀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물며 거래라는 조건을 올린 만큼 보다 믿음을 줄 수도 있을 터.

   무작정 치러지는 호의보다는 거래를 신뢰하는 게 사람이니까.

     

   “좋습니다.”

     

   크라슈는 기꺼이 그의 거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의 진실한 눈을 맞이한 달피론은 그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타론은 앞으로 계속해서 부강해지겠군.”

     

   그는 마주한 크라슈를 통해서 얼핏 미래를 본 듯하였다.

     

   크라슈는 강인한 인물이었다.

   반신에 이른 달피론의 앞에서도 한 치의 꺾임 없이 소신 있게 자기 말을 하였다.

     

   보통 신안을 깨우친 자신을 꺼리는 것이 보통이건만.

   오히려 그 점을 이용해 진실함을 말할 수 있었다.

     

   이런 인물은 나이와 성별을 떠나서 흔하지 않다.

     

   스타론은 제국과 가장 인접한 왕국이자 세계 최강의 가문 발하임을 보유한 만큼 늘 제국의 잠재적 적이기도 했다.

     

   그런 스타론에 또다시 별이 태어났다.

     

   ‘반면에 제국은.’

     

   황제가 병세가 악화하기 시작한 시점.

   황가는 난리가 났다.

     

   황제라는 자리를 찬탈하기 위해 모두가 검을 빼어 들고, 형제들끼리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차지하지 않으면 결국 제거될 운명이니까.

     

   달피론이 시선을 옮겨 시즐리를 바라보았다.

   세계 최고의 두뇌라고 평한 그녀는 처음부터 이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던 듯 은근한 웃음과 함께 크라슈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불어 시즐리는 진작부터 황위 쪽에서는 발을 뗀 인물이기도 했다.

   비록, 몇 년 전 황족 시해에 휘말릴 뻔하긴 했으나 그 이후로도 여전히 황제의 자리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최근 그녀의 움직임이 조금씩 달라졌다.

   황위를 욕심내는 것은 아니나 제국의 흐름을 읽고, 거기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변화였다.

   시즐리는 조금이라도 황가가 덜 흔들리기 위해 스스로 황위에서 멀어진 이였으니까.

     

   ‘그 변화를 만들어낸 건.’

     

   달피론의 시선이 다시금 크라슈에게 닿았다.

   크라슈 덕분이겠지.

     

   달피론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는 황제의 검이자 차기 황제를 정하는 데 황제 다음으로 큰 권한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만약, 시즐리가 황제가 된다면 어떨까.

     

   적어도 시즐리가 재위한 몇십 년간 제국은 세계 최고의 부강함을 자랑하게 될 터였다.

   그녀는 그럴 능력을 갖춘 자였으니까.

     

   지금도 그렇다.

     

   1황자는 일부러 한 발짝 방관한 채 먹잇감들이 틈을 보이기를 기다리고 있다.

   1황자는 좋은 머리와 좋은 육체를 지녔으나 어느 것을 논하여도 딱 중간인 것이 아쉬웠다.

     

   밸런스가 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살짝씩 모자란 재능이 제국 전체를 이끌 카리스마가 조금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2황자는 황가의 핏줄이라 생각 들지 않을 만큼 멍청하고 아둔하며 욕심이 많다.

   달피론은 진작부터 그를 황제의 자리에서 제하고 있었다.

     

   3황녀는 가장 적극적이고 세력 불리기에 여념이 없다.

   머리 쪽은 평범하나 육체 능력만큼은 가장 백룡의 핏줄을 진하게 받은 이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만함과 자존감이 너무 높았다.

   그러한 점들 탓에 그녀는 누군가를 이끄는 힘이 부족했다.

     

   마지막으로 4황녀 시즐리 에파니아.

   오만함도 자존감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가장 철저히 이해하고 있으며 어느 위치에 올라간다 한들 최상의 결과를 가져올 이.

     

   단, 타고난 몸이 너무 약한 탓에 잦은 병치레는 황위를 불안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점을 제외한다면 황가를 가장 잘 이끌 수 있는 이이기도 했다.

     

   그의 눈이 천천히 떠지기 시작했다.

   시즐리와 크라슈는 꽤나 사이가 좋아 보였다.

     

   만약 시즐리를 황제로 만들고, 반발은 있겠으나 크라슈를 남편으로 들인 뒤.

   둘의 아이를 낳게 한다면.

     

   어쩌면 제국은 영원토록 부강할지도 몰랐다.

     

   ‘아쉬운 짓을 했군.’

     

   거래 선상에 이걸 올리는 것도 꽤 괜찮은 선택이었을 텐데 말이다.

     

   ‘아직은 이르다.’

     

   크라슈의 평가 이전에 시즐리가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결심이 중요했으니까.

     

   조금은 먼 미래.

   그러한 미래를 잠시 그려보던 달피론이 몸을 돌렸다.

     

   그러한 먼 미래를 오게 하려면 바로 앞에 있는 현실을 먼저 해결할 시간이었다.

     

   “가지.”

     

   황제를 치료한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