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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0

    높고 푸른 하늘 위, 한 마리의 하얀 아귀가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뀨힝힝.” 

    그 울음소리에는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실에 누워서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회색 사신이 떠나면서 얻은 하얀 아귀의 평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자신의 힘으로 쟁취한 평온이 아니었기에, 그 평온은 쉽게 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주황 사신들은 심술주머니가 커서 그런지, 요즘 들어 점점 장난기가 심해지고 있었다. 

    장난칠 대상을 찾아 헤매다가, 아귀를 발견하고는 즉시 표적으로 삼았다.

    평소 서로 뭉쳐 다니는 것을 싫어하던 주황 사신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무려 4마리나 함께 모여 아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아귀의 배 속에 달콤한 핫초코를 잔뜩 집어넣은 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능력을 이용해 아귀의 짧은 다리를 하나씩 붙잡고 공중으로 끌어올렸다.

    목적지는 흑설탕 사막이었다.

    주황 사신이 아주 싫어하는 흑설탕 사막!

    다른 미니 사신들은 꽤 좋아하는 장소였지만, 주황 사신들은 솜뭉치 사이로 자꾸 설탕 결정들이 파고드는 흑설탕 사막을 싫어했다.

    그래서 주황 사신들은 뜻을 합쳐서, 흑설탕 사막에서 놀고 있는 미니 사신들에게 장난을 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흑설탕 사막 위를 둥실둥실 떠다니며, 자신들의 장난 대상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모래성을 쌓고 있는 미니 사신들을 발견한 주황 사신들은, 즉시 아귀의 배를 톡톡 두드렸다. 

    “뀨힝.” 

    아귀는 주황 사신의 지시에 작게 울며 입을 크게 벌렸고, 배 속에 가득 차 있던 핫초코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달콤한 핫초코의 폭격은 모래성을 쌓고 있던 미니 사신들을 덮쳤다. 

    마치 전쟁터의 포격을 연상케 하는 광경이었다. 

    애써 쌓아 올린 모래성들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허물어졌다.

    ‘!!!’

    심상치 않은 규모로 거대한 성을 쌓던 황금 사신은 자기 집이 무너진 것처럼 원통해 했다.

    황금 사신 인형 옷을 입고 황금 사신들 틈에서 몰래 자신만의 작고 섬세한 모래성을 만들던 푸른 사신도 눈물을 뚝뚝 흘렸다.

    색이 빨갛고 다른 미니 사신보다 조금 키가 작아서, 회색 사신에게 귀여움받던 붉은 사신의 모래성도 핫초코에 무너져 내렸다.

    설탕을 녹여서 형태를 굳힌 유리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모래성이었지만, 무거운 핫초코가 쏟아져 내리자 버티지 못했다.

    가장 높이 솟아있던 첨탑만이 뒤집힌 고드름처럼 반짝이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상당히 녹아버려서 이제는 첨탑이라 부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주황 사신들은 그 모습을 보고, 회색 사신처럼 히히 웃으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몇몇 황금 사신이 빛의 검을 뽑아 들고 쫓아오기 시작하자, 주황 사신들은 고도를 높이며 황급히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미 쓸모를 다한 하얀 아귀는 그대로 버려졌다.

    떨어진 아귀는 녹아내린 첨탑 위로 떨어져서 배를 꿰뚫려 꼬치처럼 변해버렸다.

    “뀨힝힝.”

    행복할 수 없는 아귀는 슬프게 울었다.

    그런 불쌍한 아귀를 향해 노란 사신이 천천히 다가섰다.

    노란 사신은 음침하게 웃으며 아귀에게 물었다.

    장난을 피할 인형 옷이 필요하지 않냐고.

    그러자 아귀는 배가 꿰뚫린 상태에서도 크게 울었다.

    “뀨!”

    동의의 감정을 잔뜩 담은 커다란 대답이었다.

    ***

    예린은 뭔가 이상한 황금 사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었다. 

    쳐다보고 있으면 이상하지 않았지만, 시선을 떼면 뭔가 이상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황금 사신이었다. 

    이상한 황금 사신은 요즘 세희 연구소에 자주 출몰하고 있었다.

    예린이는 눈을 꼭 감고 곰곰이 생각했다. 

    쳐다보고 있을 때는 이상하지 않고 황금 사신이라는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들어서,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감고 생각해 보니, 이상한 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황금 사신인데 몸에서 황금빛이 흘러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이상해.

    황금 사신이 4족 보행을 하면서 걸어 다니는 게 평소의 모습과 달랐다. 

    분명 4족 보행은 아니었던 것 같아.

    황금 사신이 ‘뀨’하는 이상한 소리를 냈던 것 같았다.

    황금 사신은 아무런 소리를 못 냈었던 것 같은데?

    확실히 이상해!

    그리고 예린은 다시 눈을 떴다.

    눈앞의 황금 사신은 여전히 행복한 표정으로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이상했던 느낌은 눈을 뜨자마자 사라졌다.

    예린은 다시 황금 사신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잠시 헷갈렸던 건 아마도 회색 사신이 없는 격리실에서 낮잠을 자다 막 깼기 때문이리라.

    뭔가 이상한 황금 사신은 예린의 케어를 만끽하며, 우아하게 몸을 세우고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뀨.”

    ***

    [부서진 달. 되풀이되는 과거. 뒤틀린 결말.]

    나는 소라에 귀를 대고 계속해서 이해하기 힘든 소리를 듣고 있었다. 

    힌트도 맥락도 없는 말이었지만, 계속 듣다 보니 떠오르는 것들이 조금씩 생겨났다. 

    <설원의 달.>

    이곳의 환경은 보라색으로 빛나던 설원의 달이 나타나기에 딱 알맞아 보였다. 

    그렇게 ‘설원의 달’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텅 빈 눈밭에서 시선을 떼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거기에 있었다.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희미한 보라색 달이 떠 있었다. 

    평범한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을 만큼 흐릿했고, 내 감각으로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을 상실한 보라색 달이었다.

    도봉구에서 보았던 달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내 기억 속 보라달은 강렬한 정신의 혼란을 뿌리며, 재밌는 형상의 그림자들을 만들어 냈었다.

    그러나 지금의 달은 물질을 통과하는 보랏빛을 내뿜는 것은커녕, 사람의 눈에 보일 정도의 빛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저것도 죽어버렸구나.’

    달 역시 보라색 소라처럼 이미 죽은 상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은 건 아니었지만, ‘이미 죽어 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살아있되 멈춰버린 상태, 그러나 이미 모든 힘을 잃어 금방이라도 존재가 무너질 듯한 상태였다. 

    ‘….’

    달을 오랫동안 바라보자, 꿈이 흐릿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꿈.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보게 되는 주마등 같은 꿈이었다. 

    스스로는 깰 수 없는, 끝없이 이어지는 악몽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울적해지는 달이었기에, 나는 서둘러 파괴 조건을 확인했다.

    <꿈이 올바른 끝을 맺는다.>

    꿈을 조작해야 하는 건가. 

    다행히 나는 꿈속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꿈을 조작해 오브젝트를 파괴했던 경험도 있었다. 

    ‘이번엔 쉽겠어!’

    나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황금 나무의 능력을 사용해 설원의 달의 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꿈속으로 빠져드는 순간, 밝게 빛나는 빛의 고리를 스쳐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꿈속으로 들어오자마자, 온몸이 타는 듯한 고통이 밀어닥쳤다.

    “하아…!”

    입에서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꿈에 들어오자마자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아파!

    도대체 뭐야?

    헤일로를 썼을 때와는 좀 느낌이 달랐다.

    몸이 깨질 것 같은 충격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참기가 힘든 고통이었다.

    그리고 피부를 통해 어디든지 볼 수 있었던 시야가 사라진 상태였다.

    나는 상황 파악을 위해, 고통으로 감긴 눈을 천천히 떴다.

    그러자 눈앞에 놓인 거울에 화상으로 문드러진 인간의 모습이 비쳤다.

    머리털은 당연히 없었고, 흉하게 뒤틀리고 망가진 피부의 인간.

    나는 마치 그 모습을 직접 감상하라는 것처럼 사방이 거울로 되어있는 방 안에 눕혀져 있었다.

    회색 사신의 몸이 아니라, 어떤 인간의 몸으로 꿈속에 들어와 버린 상태로 보였다.

    “흐으으.”

    입을 열어 말하려고 했지만, 말은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바람 소리만 빠져나왔다.

    너무 말을 안 해서, 말하는 법을 까먹은 것은 아니었다.

    혀가 잘려져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떠오르는 녀석들이 있었다.

    계양산의 닌자들!

    전신의 화상과 혀의 절단.

    그건 계양산에서 봤던 닌자들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내가 빙의한 몸이 닌자들이랑 다른 점은 있었다.

    닌자들은 아무런 특색이 없는 검은 천으로 온몸을 꽁꽁 감았지만, 이 육체가 입은 옷은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검은색과 하얀색이 조합된 화려한 옷.

    사실 이 옷은 입은 게 아니라, 입혀진 상태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몸의 손목과 발목은 쇠말뚝으로 꿰뚫려 있었으니까.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그런 내 눈앞에 닌자 하나가 정면에 위치한 거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성녀님, 기침하셨습니까? 아침 기도 시간입니다.]

    그 쪽지를 보는 순간, 몸이 덜컥 굳는 것이 느껴졌다.

    몸이 공포를 기억하는 것만 같았다.

    그와 동시에 방바닥에서 불꽃이 솟아오르며 몸을 태우기 시작했다.

    “흐으읏.”

    절로 폐에서 공기가 새어 나왔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당장 죽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이 몸은 끊임없이 재생하며 죽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런 의문을 품기 무섭게 심장에서 엄청난 양의 장작이 느껴졌다.

    거의 예린이의 두 배가 넘는 양이었다.

    그 장작이 미약하게나마 인간에게도 작용해서 몸을 죽지 않는 수준으로 회복시켜 주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라는 뜻이었으니까.

    ***

    ‘끄으으윽.’

    나는 ‘아침 기도 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손목과 발목에 단단히 박힌 쇠말뚝을 잡아뽑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밖에 있는 닌자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신음 소리를 최대한 억눌렀다.

    온몸이 다 타버리고, 힘줄도 모두 잘리고, 쇠말뚝까지 박혔는데 움직일 수 있는 이유? 

    그건 내가 장작을 다루는 프로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인간의 몸이라도 장작이 이렇게나 많으면 기적 한두 개쯤은 일으킬 수 있으니까.

    절그럭. 절그럭.

    모든 말뚝을 뽑아내자, 몸이 확 가벼워지며 다시 살아난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가슴 속의 장작을 전신으로 퍼트려서 온몸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화상부터 시작해서, 힘줄 그리고 혀까지.

    나는 하얗고 말랑말랑해 보이는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작은 소리로 웃었다.

    “하, 하하. 진짜로 되네.”

    나는 내 귓가에 들리는 생소한 목소리를 들으며, 손바닥을 꾹 쥐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보자, 나는 돌처럼 굳어버렸다.

    ‘?’

    한 10살쯤으로 보이는 ‘예린이’가 화려한 복장을 한 채, 거울에 비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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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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