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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1

       버멜이 프레이를 진정시키는 덴 반나절이 꼬박 걸렸다.

       

       애가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혼자서는 안 돼서 로테까지 불러 토닥여주어야 할 정도였다.

       

       그나마 샤인 머스켓이랑 청포도 사탕을 간식으로 사주고 나니까 얼굴에 웃음기가 돌아온 모양새였다.

       

       “…쉽지 않겠군.”

       

       버멜은 로즈마리와 공동으로 세운 계획을 점검했다.

       

       하스펠트 공작의 뒷배를 받아 세계수의 방비를 강화했다. 단련도 웬만큼 했다. 틈틈이 돌아다니며 히든피스도 모았다.

       

       남은 목표는 두 가지.

       

       에테르를 설득하는 것과 마왕을 무찌르는 것.

       

       에테르를 설득하는 건 한 번 가지고는 안 될 일이다. 적어도 서너 번에 걸쳐서 호소해야겠지. 개심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괜찮아, 프레이. 에테르는 반드시 돌아올 테니까.”

       “흐윽, 저, 정말……?”

       “그럼.”

       “아, 알았어….”

       

       훌쩍이는 프레이를 다독여 준 버멜은 다시 한번 결의를 다졌다.

       

       세계수의 방비를 강화했으니 이제 에테르는 내부로 침입해서 로드스톤을 빼돌리려고 할 것이다.

       

       그러니 다음 목표는 세계수를 직접 관리하는 피어바인 가문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선 학급 친구 한 명을 마킹할 필요가 있었다.

       

       

       **

       

       

       평소 에테르와 아카샤는 함께 식사를 한다. 밥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작전 회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암호문구를 외우지도 않았고, 소통에 필요한 쪽지도 가져오지 않았다.

       

       쌍둥이 자매는 서로 멀리 떨어져서 밥을 먹었다. 아침에 프레이를 두고 대판 싸운 것 때문에 동생 면상을 보기가 껄끄러웠다.

       

       그 탓에 생판 모르는 사람 곁에서 식사해야만 했다. 포크로 돌돌 말아서 먹은 스파게티의 맛은 별로였다. 오죽하면 조리사에게 항의하고 싶어질 정도다.

       

       쓸쓸한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한낮이었다. 분명 장마철이라고 들었는데, 오늘따라 햇볕이 잘 들었다.

       

       에테르는 소화도 할 겸 캠퍼스를 천천히 거닐었다.

       

       ‘어떻게, 어떻게 네가 나한테 그럴 수 있어…!’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그런 환청이 들려왔다. 이른 아침에 들은 요호족 꼬맹이의 울음소리였다.

       

       머리가 아팠다. 길라흐의 면상을 한 시간이나 보고 있었을 때보다 더 진득하고 우악스러운 두통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에테르는 걷는 속도를 높였다.

       

       [프레이 병결 처리한다며. 친구 찾으러 안 가?]

       

       내면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결은, 나중에 알아서 할 거다.”

       [개소리 말고 지금 하러 가.]

       “…싫다.”

       

       ‘에테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요호족은 네 친구지 내 친구가 아니다.”

       [언제는 너랑 나랑 똑같은 존재라더니.]

       “…….”

       [입 닫고 산책이나 마저 하세요. 누가 보면 혼잣말하는 미친년인 줄 알겠어.]

       

       한숨이 나왔다.

       

       뒤이어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푸념이 들려왔다. 답답해 죽겠다느니, 자기 머리를 캘리퍼스로 찍어버리고 싶다느니, 그러니까 맨날 통수만 맞은 거라느니. 하나같이 듣기 싫은 소리뿐이었다.

       

       듣다 못해서 으름장을 놓았다.

       

       “그럴 거면 지금 몸을 가져가라.”

       [싫어.]

       “어디까지 본관을 능멸하려는 거지?”

       [마왕을 족칠 때까지.]

       

       말하는 족족 능청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더는 머릿속의 자아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 입씨름을 벌이느니 차라리 다른 생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연구. 차라리 연구에 관해 생각하자. 어떻게 하면 흑주를 더 빨리 개발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떠올려 보는 것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사고실험을 하며 오솔길을 내려오던 중이었다.

       

       “야, 너희 부모님한테 얘기 좀 해봐. 80억 엘랑이 뭐냐?”

       “맞아! 세계수 보호라지만 너무 돈을 많이 쓰는 거 아니야?”

       

       노송나무 아래 정자에서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였다면 애새끼들이 대낮부터 별 지랄을 하는구나 하며 넘어갔겠지만, 하필이면 단어 하나가 귓바퀴에 데구르르 들어오고 말았다.

       

       “세계수?”

       

       에테르는 숨을 고르고 청각에 집중했다.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 새끼처럼 살금살금 걸어가며 수풀 뒤에서 학생 무리의 대화를 엿들었다.

       

       “예산이 어디 땅 파서 나오는 줄 알아? 그거 다 혈세야, 혈세.”

       “저리 가.”

       “어쭈, 얘 봐라? 고명한 하이엘프끼리 대화 좀 하자니까?”

       “나 공부하고 있는 거 안 보이니? 저리 가라니까!”

       

       여러 학생이 여학생 하나를 둘러싸고 따돌리는 구도였다.

       

       시선이 자연스레 따돌림당하고 있는 여학생에게로 향했다. 

       

       양쪽으로 땋아 내린 녹색 머리카락과 일류 세공사가 빚어낸 사파이어처럼 맑은 푸른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소녀였다.

       

       [뭐야, 우리 반 학생이네.]

       

       유피엘 피어바인.

       

       항상 에테르에게 무언가를 질문해서 일주일 만에 머릿속에 각인된 하이엘프 여학생이었다.

       

       “공부는 무슨 공부야? 혹시 로스쿨 준비?”

       “아니, 마도학 하는 중.”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여학생들이 실실거리며 웃었다. 기어코 유피엘의 머리를 헤집듯이 쓰다듬는 녀석도 있었다.

       

       “너 마력도 얼마 못 담는 체질이잖아.”

       “우리 솔직히 얘기하자. 그 몸으론 전투는커녕 이론마도사 되기도 힘들다니까?”

       

       계속되는 괴롭힘에 유피엘은 역정을 부렸다. 그럴수록 학생들의 시비는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태풍처럼 거세져만 갔다.

       

       피어바인은 하이엘프 가문. 제아무리 민주주의 국가라지만 하이엘프 자녀에게 저렇게까지 막 대할 수 있는 동급생은 몇 없을 것이다.

       

       결국 똑같은 하이엘프가 괴롭히고 있다는 소리인데.

       

       내분인가 싶으면서도 일단 발을 내뻗었다. 저벅, 하고 풀 밟는 소리가 나자 학생들이 시선도 한쪽으로 모였다.

       

       “뭐야?”

       “인간?”

       

       괴롭힘을 주도하던 여학생이 의아해하며 다가왔다.

       

       “누구니?”

       “그쪽부터.”

       

       에테르는 태연하게 되받아쳤다.

       

       “리케 로스차일드. 한 번은 들어봤지?”

       “아니.”

       

       자신을 리케라고 소개한 소녀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미리 말하는데, 이거 괴롭히는 거 아니다?”

       

       가던 길 가라는 소리로군.

       

       물론 순순히 꺼져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에테르의 시선이 유피엘을 향했다. 유피엘은 명백히 당황한 표정이었다. 교수님이 거기서 왜 나오세요? 그런 얼굴이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다시 돌렸다.

       

       “아까 그 세계수 이야기 말인데.”

       “아, 세계수?”

       

       그 물음에 학생들이 벌떼처럼 몰려와서 물었다.

       

       “쟤네 가문이 세계수를 관리하는 가문이거든? 그런데 이번에 시설 증강비에만 80억을 들이겠대. 무려 80억을!”

       “뭔가 뒤가 구리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리케 패거리의 얼굴에는 장난기 어린 비소가 고여있었다.

       

       무슨 의도로 한 질문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곧 적당한 답안이 떠올랐다.

       

       “……예산 일부를 빼돌린다거나?”

       “그래!”

       “너 말 좀 통하는 친구구나?”

       

       유피엘이 책을 탁 덮으며 발끈했다.

       

       “모함이야!”

       

       한껏 억울한 표정이었다.

       

       “모함은 무슨 모함. 우린 사실을 말한 건데?”

       “안 그래? 인간족 친구야?”

       

       리케는 에테르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시시덕거렸다. 제 딴에는 친근함의 표시인 것 같은데, 하는 행동이 시정잡배와 다를 게 없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기회다.

       

       의심을 사지 않고 세계수에 접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저 친구 말이 맞다. 너희는 지금 모함하고 있어.”

       “뭐?”

       

       리케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흐응, 하고 심심한 콧소리를 내며 팔짱도 꼈다. 어디 한번 지껄여 보라는 듯한 태도였다.

       

       “국가에서 내린 결정에 불만이 있으면 저기 국회라도 가서 꼬장부려라. 애꿏은 친구 하나 괴롭혀서 못살게 굴지 말고.”

       “뭐라고?”

       

       이제 리케는 불편한 기색을 숨길 생각도 없었다. 그녀가 씩씩거리며 말을 되받아쳤다.

       

       “지금 이 얘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모른다.”

       “그러면 네 갈 길이나 가.”

       “싫어.”

       

       에테르는 다시 한번 유피엘과 눈을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나섰다. 저벅, 저벅. 풀이 즈려밟히는 소리가 났다. 어느덧 에테르는 리케의 지척까지 와 있었다.

       

       리케가 신경질 부리듯이 물었다.

       

       “너 내가 누군지는 알아?”

       “아니.”

       “나는 로스차일드 본가의 적자야.”

       “그래서?”

       “진짜 모른다고?”

       

       이래서 유학생이란. 리케는 혀를 쯧쯧 차며 웃었다.

       

       “우리 아버지는 경무국장이야.”

       “좋겠네.”

       “전화 한 통이면 쟤네 가문이 어떤 비리를 저지르는지 곧바로 수사할 수도 있어.”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네 부모님이 대단하신 거랑, 네가 친구 괴롭히는 거랑 도대체 무슨 상관인데?”

       “난 괴롭히지 않았어. 예산 낭비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 것뿐이지.”

       “뻔뻔한 거 봐라.”

       “너야말로 진짜 웃기는 애구나.”

       

       에테르의 주변을 패거리가 둘러쌌다. 도망치지 못하도록 가둔 뒤 리케가 직접 나서서 발을 꾹꾹 밟아대기 시작했다.

       

       “너, 어디 가문 출신이야?”

       “하스펠트? 살리에르? 로베스피에르? 아니면 셀레스턴?”

       “그 정도도 안 되면 말을 말든가.”

       

       발을 밟는 압력이 살짝 늘어났다.

       

       슬슬 이쪽도 성깔이 올라왔다.

       

       “뭐, 뭐야.”

       

       에테르는 리케를 쏘아보았다. 

       

       단지 그것뿐이었지만, 리케는 온 체중을 실어 찍어내리던 구두 굽을 거두었다.

       

       그녀가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며 입을 털었다.

       

       “뭘 그리 꼬나보는데?”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에는 약간의 살기가 담겨있었다. 제아무리 변장하고 있다지만, 근본적인 격의 차이는 쉬이 숨길 수 없었다.

       

       위압(威壓).

       

       절멸급 마수들이 공통으로 지니는 패시브 스킬이었다.

       

       “뭐, 뭘 그렇게 쳐다보냐고…!”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이젠 독사에게 물린 개구리처럼 빌빌거리고 있다.

       

       “배짱 한번 좋구나. 교수 발을 다 밟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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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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