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41

       아무리 내가 내 주변 사람들을 ‘모두 내 친구’라고 생각해도, 그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모두 다른 법이다. 평소에는 무척 친해 보이고, 내가 있으면 나름대로 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농담을 주고받더라도 내가 빠지는 순간 바로 침묵에 들어가는 사이도 있다.

        

       특별히 사이가 나빠서 그렇다기보다는, 애초에 나라는 매개를 통해 친구가 되었기에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나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 뿐이고, 괜히 마음 놓고 아무 이야기나 하다가 서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걸 해버려서 상대방과 나의 관계까지 망가질 수 있다.

        

       그렇기에 거의 본능적으로 언행을 조심하게 되는 법이다. 보통은 서로서로 완전히 친구라고 생각할 때까지는 그 미묘하게 어색한 사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어째서 황녀님을 미행하고 계셨던 겁니까?”

        

       “딱히 미행한 건 아니라고 아까부터 계속 말하고 있는데요.”

        

       딱히 서로를 싫어할 만한 이유가 없으면서도 싫어하는 경우도 있고, 사소한 오해 때문에 처음부터 관계가 틀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제일 골치 아픈 것은 나다. 어느 한쪽이 대단히 큰 잘못을 해서 나도 정이 떨어져 버리거나 손절해야 할 상황이라면 차라리 그냥 인연을 끊어버리는데, 내가 보기에는 딱히 큰 잘못이 아닌 이유로 사이가 틀어지면 중간에 낀 내가 엄청나게 불편해진다.

        

       그나마 내가 두 사람을 알기 전부터 두 사람의 사이가 갈라졌던 것은 아니라서 다행이었지만.

        

       제이크, 로티와의 대화를 마치고 테라스 밖으로 나와 얼마 가지 않은 곳에서, 소피아와 레나가 입씨름하고 있었다.

        

       소피아야 ‘일단은’ 벨부르 사람으로 되어있고, ‘일단은’ 신분이 확실한 인물이라 그냥 그렇다 쳐도, 레나는 벨부르 기준으로는 머나먼 나라의 사람이었다. 제국 끝과 끝에 위치하여 제국을 아예 가로질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국 기준으로 동쪽에 존재하는 벨부르와 북쪽에 존재하는 리클란트 자치국은 거리상 결코 가까운 나라가 아니었다.

        

       게다가 자치국은 제국 외의 다른 나라와 본격적으로 외교를 하기에는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었고. ‘자치’국이라는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뭔가 대단한 왕정을 가지고 있거나 역사가 깊은 나라가 아니다. 만약 국제 정세에서 발언권이 있다면 거의 제국의 거수기 역할이나 하게 되겠지.

        

       레나가 아카데미에 오게 된 이유는 나와 제국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레나 본인이 나에게 친근함을 보이고 있으니, 벨부르 기준으로 레나 또한 다른 제국인들처럼 감시 대상이었다.

        

       실제로도 복도에는 사용인이 한 사람 있었다. 그렇다고 레나와 소피아의 말싸움에 끼어들지는 않았지만.

        

       “이야기에 제 이름이 나오는 것 같은데, 무슨 일입니까?”

        

       어차피 두 사람도 찾아갈 생각이었던 나는 그대로 곧장 두 사람 쪽을 향해 걸으며 말했다. 내 목소리에 소피아의 표정에 한순간 당황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레나는 여전히 소피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여기 계신 이분이 황녀님을 미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미행이 아니래도…….”

        

       레나의 말에 조금 전과 똑같은 대답을 반복하는 소피아였지만, 이번 목소리에는 조금 전의 앙칼짐이 조금 줄어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나를 앞에 두고 같은 대답을 하기에는 조금 켕겼던 모양이다.

        

       미행한 거 맞네.

        

       이미 머릿속으로는 그런 결론을 내린 나였지만, 그렇다고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다.

        

       사실 나를 미행한 존재가 소피아 하나뿐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애초에 레나도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 이런 식으로 마주칠 이유가 없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무표정을 유지하면서 말했다.

        

       “마침 잘되었습니다. 두 분 다 한 번은 만나서 대화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두 사람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소피아의 표정에는 다시 한번 작은 불안이 스쳐 지나갔고, 레나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무표정한 얼굴 안에서도 나를 보는 눈은 조금 빛나는 것 같았다.

        

       레나가 나에 대해서 가진 환상은 날이 지나도 식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는 것 같다. 하긴, 레나 앞에서 내가 날뛸 때마다 적이 우수수 넘어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건 소피아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실력만으로 대련하면 나는 소피아를 이길 방법이 없겠지만…… 소피아는 바로 지난밤에 내가 성당 기사들을 무더기로 쓰러뜨리는 것을 보았다. 시간을 돌리는 편법이었다고는 하지만 결과 자체는 내 승리였으니, 이렇게 긴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두 분 다, 따라오시죠.”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불만을 내뱉었다가는 굳이 시간을 들여서 두 사람을 따로 만나야 하는 상황이 올 것 같아, 나는 불만이 나오기 전에 얼른 그렇게 말했다.

        

       굳이 소피아나 레나의 방으로 갈 필요는 없겠지. 애초에 본인들이 계속 쓰던 방이 아니라서 둘 중 한 곳을 방문해봐야 특별히 볼 것도 없었다.

        

       두 사람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걷기 시작하자, 아주 잠깐의 텀을 두고 내 뒤를 따르는 발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의 발소리 중 더 나중에 들린 것이 아마 소피아의 발소리였으리라.

        

       여기서부터 내 방까지는 거리가 조금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는 건 그사이에 하면 되겠지.

        

       *

        

       “두 분은 모두 제국의 사람이 아닙니다.”

        

       내 말에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조금 서투르긴 하지만 나름대로 차도 타서 두 사람 앞에 한 잔씩 두었지만, 양쪽 모두 차를 마실 기분은 아닌 모양이었다.

        

       소피아는 방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바짝 긴장해 얼어붙어 있었고, 레나는 그런 소피아를 감시라도 하듯 날카로운 분위기였다.

        

       그 태도를 지적하는 것이 옳을까 잠깐 고민했다가, 차라리 모른 척하고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로 했다. 대충 얼버무리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다소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말로 안일한 생각이었다.

        

       “그러니, 굳이 저의 부탁을 들어주실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리 아카데미 학생의 신분이고, 그동안은 제국의 사관생도와 같은 취급이라고 하더라도,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정체성을 버리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

        

       두 사람 다 대답은 없었지만, 적어도 시선은 내 쪽을 향했다.

        

       “레나는 자치국에서 유학을 온 입장입니다. 사실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 자체가 잘못이었을지도 몰라요. 한 명의 유학생 신분으로 너무 깊은 곳까지 옭아매 버렸습니다.”

        

       내 말을 들은 레나는 뭔가 말하고 싶은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얼른 뒷말을 이어서 그 말을 미리 막았다.

        

       “당신이 제국으로 유학을 온 이상, 그리고 당신의 부모님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생각해본다면, 자치국이 레나 당신에게 원하는 바가 있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저는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서 함구해달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자치국의 국익에 정면으로 대치하는 일일지도 몰라요.”

        

       “…….”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레나도 쉽게 ‘그래도 따라가겠습니다’라고 하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레나의 부모가 레나에게 정말로 그 임무를 직접 말했을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말을 하건 하지 않았건, 레나를 굳이 제국까지 유학 보낸 이유는 나를 감시하고 동향을 보고하는 것 하나밖에 생각할 수 없다. 방학 때 학교생활을 물으며 나에 대해 은근히 떠봤을지도 모르고, 아예 대놓고 보고할 것을 명령했을지 모른다.

        

       레나는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신의가 깊은 성격이었지만, 그런 부모의 명령을 모두 거부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원작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처럼 ‘주인공이 보지 못하는 곳’까지 볼 수 있었다면 그 성격을 백 퍼센트 믿을 수 있었겠지만, 레나는 내가 플레이한 게임 안에서는 등장한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비밀이 너무 중요하니 당신을 데리고 갈 수는 없어요’라는 말은 아니었다.

        

       “제게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힘을 가진 사람은 제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기도 합니다. 레나, 당신은 제가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불리한 조건을 달아서 염치없지만, 저를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레나의 실력은 확실하게 믿을 만 했다. 단순히 컨셉만 잡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전투 방식을 바로 옆에서 보고 흡수하여 자기만의 방식으로 발전시킨 유일한 사람이 레나였다.

        

       그리고 총을 쓰는 레나가 그런 식으로 나를 보조해준다면 내가 싸울 때 정말 유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기왕이면 마지막 순간에 내 옆에서 함께 싸우는 사람 중 하나가 되어줬으면 한다.

        

       ……게다가, 뭐. 솔직히 레나가 황제의 계획을 알고 나서 다른 이들한테 그 이야기를 하고 다니면 또 어떻겠는가.

        

       애초에 벨부르 귀족들은 죄다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설령 자치국이 상황을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무력으로 제국을 치지는 못하겠지. 이미 국경지대에서의 포격전을 보았으니까.

        

       설마 황제는 그걸 생각하고 그런 작전을 벌였던 걸까.

        

       나는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