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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1

     

     

    루크는 칠흑보다 더 어두운 검은색의 공간의 파편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달그림자를 벼려내는 것은 가능하지만, 필요한 수준에 도달하기엔 부족했다.

     

    이 월영석에 담긴 마법적가치는 루크가 새로 만들어낸 마법에 충분히 부합할 정도로 대단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쉽군. 내가 8서클이었다면 이 월영석으로도 충분했을텐데.”

     

    역시 정당하게 서클로 얻어낸 권한이 아닌, 자격없는 자가 클래스를 이용한 꼼수이기 때문에 원하는 결과에 닿을 수 없는 것 같다.

    이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는 두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째, 더욱 좋은 품질의 월영석을 구한다.

    그러면 현재 이 수식과 마법진만으로도 충분한 달그림자를 만들 수 있다.

     

    어찌 보면 너무나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그건 방식과 말이 쉬울 뿐, 그만한 월영석을 구하는 것은 현재 자신의 처지상 쉽지 않다.

    일단 월영석의 비싼 값이 문제다.

    돈이야 벌면 된다지만, 구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빠른 시일 안에 가능한 방법도 아니다.

     

    그럼 두번째, 더욱 실험을 반복해 수식을 다듬어 정확한 계산을 마친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도 어렵다.

    아무리 리엔느 숲이 마력폭풍이 흔히 발생하는 지역이 되었다지만, 더 이상 리엔느 숲에서 마나를 썼다가는 다른 사람들이 ‘이상’을 감지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더 이상 마나를 뽑아내는 것도 숲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고.

    애초에 필요한 마나량도 충족하지 못해 더 실험을 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이제 아이스크림 안 사주면 진짜 싫어 할꺼야!”

     

    일단 그 실험을 할 수 있게 하는 정령이 파업을 선언하고 있다.

    더 이상 메루루와 아이스크림을 미룬다면 폭동이라도 일으킬 것 같은 느낌이다.

     

    자신의 압도적인 정령감응력 따위는 이제 파이리스와의 관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꽤 많이 부려먹기는 했지…….’

     

    루크의 품에서 컴퓨터를 받아들고선 몇걸음 떨어졌다.

    마치, 자신이 컴퓨터를 빼앗기라도 한다는 듯한 모습.

     

    “하아…….”

     

    루크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더 이상은 공간의 파편을 만드는 작업이 순탄치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루크는 노을지기 시작한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그래 내가 미안하다. 일단 밥을 좀 먹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가자꾸나, 거기에서 컴퓨터로 메루루를 보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자.”

    “그 말, 진짜지! 꼭이야! 약속이야!”

     

    파이리스는 그렇게 또 강요하듯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루크는 마지못해 손가락을 걸어 엄지손가락까지 맞춰 주고는 말했다.

     

    “당연하지. 혹시 뭐 먹고 싶은 거 있느냐?”

    “치즈돈가스! 나, 치즈 돈가스 먹고 싶어!”

    “그래, 그러자꾸나. 그거 꽤 훌륭한 선택이로군.”

    “응!”

     

    파이리스는 이제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았다.

     

    먹는 것이 그렇게 좋을까?

    물론 좋겠지, 자신도 이 시대의 맛에는 이미 매료당한 상태이니.

     

    ——–

     

    제라드는 하루치 마력 수급량이 정리된 그래프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또 리엔느 숲인가…….’

     

    몇 달 전 있었던 리엔느 숲의 사태이후, 아슬아슬하게 안정기에 접어들 줄 알았는데 또 한번 마력폭풍이 있었다.

    다행히 그리 강한 폭풍이 아니었고, 덕분에 다른 공급량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큰 재해도 아니라 별다른 이상은 없을 정도.

     

    마력폭풍의 영향인지 리엔느 숲의 마력 자체는 크게 줄어들기는 했지만, 어차피 리엔느 숲에 존재하던 시설들은 첫 폭풍 이후로 모두 정지상태.

    게다가 세계수의 마력보조는 루크숲에서 충분히 충당하고 있으니 피해를 볼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더이상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뭐, 리엔느 숲이 하루이틀 그런 것도 아니고.”

     

    리엔느 숲 사태의 초기를 생각하면 지금은 아주, 아주 안정된 상태나 다름없다.

     

    게다가, 리엔느 숲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마력상황은 전체적으로 양호한 편이고.

    세계수의 마력 공급량에도 문제는 없으니 일단 ‘이상없음’이다.

    안 그래도 생각할 게 많은데, 이런 사소하고 일상적인 문제에 들일 신경은 없으니까.

     

    그렇게 하나씩 시설의 점검을 이어나가던 중, 제라드의 전화기가 울렸다.

     

    “어, 루크구나. 무슨 일이야?”

    -제라드, 하나만 묻지. 그, 연구소 컴퓨터에 혹시 ‘매직파인더’ 설치가 되어 있는가?”

     

    매직파인더란 현존하는 연구용 마법계열 계산프로그램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능으로 유명한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대체 그 이름은 어디서 들었는지, 지금 그것이 컴퓨터에 깔려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뭐, 당연히 설치되어있기는 하다.

    세계수를 관리하는 곳인데, 그런 마력, 회로 종합 계산 프로그램하나 없을 리 있겠는가.

     

    “그야 당연히 깔려 있기는 한데……. 왜?”

    -계산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가면 사용할 수 있게 해주겠나? 그대가 좋아하는 차도 달여갈 터이니…….

    루크의 말에 제라드는 잠깐 생각해보았다.

    루크가 벌써 그런 걸 써야 할 정도로 어려운 걸 배우는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따로 매직 아카데미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으니까, 사용하는 것이 마냥 이상한 건 아니다.

    오히려, 벌써 그 정도의 계산기가 필요할 정도로 공부를 했다는 것이 놀랍고, 칭찬해 마땅한 일이겠지.

     

    게다가, 개인이 쓰기엔 너무 비싼 값 때문에 보통 불법적인 루트로 구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루크는 굳이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정품을 쓰겠다는 마음가짐도 꽤 기특하고.

          

    쓰고 싶다면 쓰게 해줘도 문제는 없다.

    ……당연히, 그 차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고.

     

    “그래? 필요하면 쓰게 해줄 수 있지. 언제 올건데?”

     

    그러자 루크는 한결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고맙군. 그럼, 내일 학교 가기전에 들리겠네! 준비해주게!

    “어, 그렇게 일찍?”

     

    ——–

     

    “어, 왔구나.”

     

    마력발전소에 도착한 루크는 정말로 학교에 가기 전에 들린 것인지 교복차림이었다.

     

    제라드는 그 모습을 보니 루크의 성장이 눈에 딱 들어오는 것 같아서 왠지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알게 된 시간이 시간인지라, 이제는 루크가 조카처럼 보이고 있는 지경이니 말이다.

     

    아이들은 빠르게 자란다고 하던가.

    수인족 아이들은 훨씬 더 빨리 자란다.

     

    제라드는 잠깐 추억에 잠겼다.

     

    처음 루크를 보았던 게 언제였더라, 생각해보니 저번 겨울이 처음 본 날이었으니 이제 거의 일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털코트에 목도리를 두르고 아장아장 걷던 걸 생각하면 꽤 몰라볼 정도의 변화다.

    마법사가 되고 싶다며 무작정 찾아왔을 때는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싶었는데.

    그 때는 마냥 어리게만 보였는데, 이렇게 교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엄청난 성장을 한 것만 같아 뿌듯한 느낌도 들었다.

    당시의 루크는 마법을 보여주기만 해도 눈을 빛내며 감탄을 하던 순수한 꼬맹이였다.

    지금도 그 열정과 마음가짐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나보다.

     

    루크는 제라드에게 꾸벅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미안하네, 요즘 피로회복의 차는 아침시간이 부족해서 가져올 수 없었어. 대신에 이번엔 쉽게 타서 마실 수 있게 찻잎을 미리 말려 둔 것을 가져왔다.”

    “아유, 내가 이런거 좋아하는 줄은 또 어떻게 알고.”

     

    제라드는 여느 때와 다름 없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루크의 찻잎을 받아들었다.

     

    “그럼, 계산용 컴퓨터는 어디에 있지?”

    “아, 바로 안내해줄게.”

     

    ————-

     

    루크에게는 더 이상 공간을 벼려내는 실험을 진행할 여력이 없었다.

    일단 파이리스가 ‘이제 그거 안해.’라며 거부를 하는 것이 첫번째이고, 그만한 마력을 타인의 눈에 띄지 않고 충당할 곳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만들어진 수많은 공간의 파편조각을, 하나로 뭉쳐서 사용할 방법이 없을까?’

     

    과거라면 그래도 어렵사리 가능했을 작업이다.

    하지만, 파편을 만드는 것과 합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규칙, 따라서 필요한 수식과 법칙도 달랐다.

    루크 정도의 지식을 가진 천재여도 일주일은 걸릴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건 순수하게 암산과 수기로만 작성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

     

    루크는 컴퓨터에 앉자마자 곧바로 수식을 적어온 노트를 펼쳤다.

     

    ‘좋아, 다중배열 자동추적분석. 여기서 사용하는 버전은 가능하군.’

     

    그건 체험판에서는 사용할 수 없던 기능이다.

     

    시험삼아 더미로 값을 입력해보니, 연산되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컴퓨터와 이 발전소의 컴퓨터는 당연히 계산능력에 수준차이가 나기도 했으며, 동시에 이 최적화된 계산 매커니즘이 그 속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키고 있었다.

     

    직접 시뮬레이션하기엔 고려하고 계산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아서 현재 루크가 그 값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암산으로 최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이 다중배열 자동추적분석이라는 기능을 이용하면 그 시간을 반나절도 안되는 기간으로 단축하는 것이 가능했다.

     

    어쩌면, 이전의 실패들은 이 기능의 부재 탓이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좋아, 아주 마음에 들어!”

     

    루크는 계산되는 값과 그래프, 그려지는 회로도를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이론이, 이 계산식으로 더욱 완벽해지고 있었으니 환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치 바보들만이 가득한 마을에서 살다가, 마침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대화가 가능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다.

     

    루크가 가져온 찻잎으로 머그컵에 차를 타서 가져온 제라드가 모니터를 바라보곤 의문을 표하며 말했다.

     

    “그런데 루크, 지금 뭘 계산하고 있는 거야?”

     

    화면에 뜨는 값이 꽤 심상치 않다.

    아무리 매직아카데미라도 이런 걸 배울 것 같지는 않은데.

     

    “그냥 내 개인적인 공부일세. 신경쓰지 말게나.”

    “흐음, 그래……?”

     

    10살의 개인공부 치고는 꽤 복잡한 것 같긴 한데.

     

    사실은 그것이 10살의 기준이 아니라 세계의 기준으로 보아도 엄청난 수준의 마법식을 계산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고 해도 모니터에 뜨는 값만 보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것은 불가능했다.

    몇번 더 물어봐도 루크는 그냥 두루뭉술하게 대답할 뿐이라, 제라드는 더이상 질문을 하는 것을 그만두고 가만히 루크가 컴퓨터를 쓰는 걸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나저나, 계산기 잘 쓰네. 그 기능은 나도 잘 안 쓰는 건데. 알고 쓰는거니?”

    “그런가? 이 기능이 체험판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빌린 거네만. 이 좋은 기능을 대체 왜 안쓰나?”

    “하하, 그냥. 여기선 쓸 일이 별로 없어서.”

    “흠. 그럴 수도 있겠군. 하긴, 이 기능은 딱히 마나량 생산이나 소비량 계산 마법식에는 쓸 일이 없겠지.”

    “그래, 맞아.”

     

    제라드는 속으로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크는 그런 업계 사정까지 꿰뚫고 있는데다, 벌써 매직파인더 사용하는 법을 마스터하다니.

    그것도 10살인데.

    마법사로서 엄청난 인재였다.

     

    제라드는 농담처럼 말했다.

     

    “너, 나중에 학교 졸업하면 꼭 우리 발전소에 와. 그럼 바로 세피로-02 담당 마법사로 취직시켜 줄게.”

    “그 말, 정말인가?”

    “그럼, 정말이지.”

     

    제라드는 웃었다.

    루크가 졸업할 즈음도 이 발전소에 자신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 말은 솔직한 진심이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말이 씨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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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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