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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1

       거대한 지하 공동의 천장에 박힌 수십 개의 쇠사슬에는 수만 명은 올라설 수 있는 거대한 발판이 매달려 있었다.

       허수아비는 TT3에서 원더스타인과 치른 최종전을 떠올리며 그곳을 걸었다.

         

       저 아래에 있는 혼돈의 눈은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감겨 있었다. 그나마 남은 하나도 게슴츠레한 것이 막 잠들락 말락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저기에다가 샌드맨이 준 잠 모래를 뿌리면 되는 것이다.

         

       허수아비는 어제 오베론이 기어 올라왔던 발판의 가장자리를 살폈다. 그곳에는 두꺼운 밧줄이 대못에 고정된 채 바닥을 향해 그 몸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붙들고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바닥에 착지하니 주변에 보이는 것은 온통 암회색의 살덩어리뿐이었다. 뾰루지라 생각했던 것이 작은 동산만 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던 것과 달리 아래에서는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를 안내할 한 가지 지표가 있기 때문이다.

         

       -끽끽끽.

       -키득키득.

         

       키클링들의 웃음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 그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뛰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니 목표물이 나타났다. 수천 마리의 키클링이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눈을 둘러싸고 낄낄대고 있었다.

         

       허수아비는 그 옆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자루의 입구를 열고는 안에 담긴 것을 눈을 향해 쏟아부었다. 샛노란 모래들은 눈의 막에 닿자 스르르 녹아 없어졌다.

         

       그는 실수로라도 그것을 흡입하지 않도록 조심했다. 샌드맨의 잠 모래에 담긴 힘은 강력해서 한 줌만 뿌려도 수십 명의 사람을 잠재울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그런 것을 한 포대나 들이부으니 아무리 마신이라 해도 버틸 재간이 없었다. 혼돈의 눈은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스르르 닫히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송출되던 영상이 사라졌고, 근처에 있던 키클링들도 웃음을 뚝 그쳤다.

         

       이것으로 임무 완료였다. 허수아비는 다시 위로 올라갈 채비를 했다. 그러나 그는 곧 한 가지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여기가 어디지?”

         

       이곳에 올 때, 그는 키클링의 웃음소리를 따라서 무작정 걸었다. 그래서 막상 돌아갈 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늘을 올려다봐도 보이는 건 거대한 발판뿐이었다. 그가 타고 내려온 밧줄은 살덩어리 둔덕들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근처에 있는 언덕 위로 올라가 주변을 살펴봤다. 다행히 저 멀리 밧줄이 보였다.

         

       “내가 이만큼이나 걸어왔었나?”

         

       그는 그곳을 눈에 담아둔 뒤 둔덕 아래로 내려갔다. 길이라는 게 없는 울퉁불퉁한 살덩어리 위였지만, 그는 최대한 시선을 한 방향으로 고정하고 일직선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다음 둔덕 위에 올라갔을 때, 그는 자신이 밧줄이 있는 방향에서 40도가량 틀어서 걷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그는 가야 할 방향에 있는 몇 가지 특징적인 것들을 지표로 삼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다음 둔덕에 올랐을 때, 그는 자신이 밧줄이 있는 위치에서 더 멀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주변을 관찰한 그는 바닥이 위아래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가 밟고 있는 것은 고정된 땅이 아니었다. 거대한 생물의 피부 위였다. 그렇기에 호흡이나 약간의 뒤척임에 따라서 둔덕의 높이나 주름 같은 것이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크기 차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이러니 뭔가를 지표로 삼는다고 해도 계속 방향이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허수아비는 상태창을 살폈다. 아직 퀘스트 성공 알람이 뜨지 않았다.

         

       “보상을 기다려야 하나.”

         

       그렇게 한참을 서성이고 있는데, 갑자기 그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그는 푸드덕거리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봤다. 그의 등에는 어느새 4장의 반투명한 날개가 자라나 있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요정의 날개?”

         

       아르노의 환상 마법이 왜 여기 나타난 것일까.

       그가 고민하는 사이 날개는 그를 수백 미터 상공으로 치솟게 했고, 그는 이윽고 발판이 있는 곳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그는 눈앞에 나타난 존재를 보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곳에는 하늘거리는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은빛 머리카락의 요정이 톡 쏘아 보는 자세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멍청이. 밧줄을 허리에 묶고 갔어야지.”

       “루미 씨가 어떻게 여길……?”

         

       요정은 뾰족한 귀를 까딱이며 우쭐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걱정되어서 도와주러 왔지. 분명 정신 공격에 사경을 헤매고 있을 거라 여겼거든.”

       “절 못 믿은 겁니까? 자신 있다고 했잖아요. 보세요. 봐봐. 멀쩡하죠?”

         

       몸을 흐느적거리며 까부는 허수아비의 행동에 루미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그래서 그 결과가 키르쿠스의 여드름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는 거야?”

       “어, 그건……할 말 없군요.”

         

       부끄럼을 타는 것처럼 시선이 계속 엇갈리던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러나저러나 서로의 활약이 고마운 둘이었고, 다시 만나게 되어서 반가웠다.

         

       “일행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애들은 오베론과 매 조장이 보호하고 있어. 웃, 뭐, 뭐 하는 거야!”

         

       루미는 그가 갑자기 자신을 끌어안자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설마 이 타이밍에 고백?

         

       그러나 허수아비는 새삼스럽게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어차피 또 업어달라고 할 거잖아요.”

       “어, 그, 그, 그렇긴 하지만…….”

         

       루미는 애꿎은 그의 몸통을 쥐어뜯으며 말을 더듬었다.

       그녀는 자신이 순간적으로 했던 기대가 너무 어처구니없다는 걸 깨달았다.

       고백이라니. 자신들 사이에 뭐가 있었다고.

         

       그렇지만 잘 안다는 듯 자신을 챙겨주는 그의 태도는 그녀의 가슴을 상당히 설레게 했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속마음과는 반대되는 말이었다.

         

       “키, 키르쿠스 냄새가 나서 머리가 어지럽잖아! 떨어지지 못해!”

       “아, 그런 것도 느낄 수 있나요?”

         

       허수아비는 이해했다는 듯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루미는 아쉬움에 작은 탄식을 내뱉었지만, 금방 표정을 다잡았다. 키르쿠스 냄새 어쩌고 한 것은 거짓말이었지만, 이런 일을 자제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돌아가서 실수하지 마. 이렇게 덥석덥석 안거나 하면 곤란하다고. 잊지 않았겠지? 밖에 나가면 나는 다시 아르노야. 이름 부를 때도 조심해.”

       “아쉽군요. 루미 씨의 이름이 입에 붙으려던 참인데…….”

         

       루미는 잠시 주저하다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두, 둘이 있을 때 그렇게 부르겠다면 어쩔 수 없지.”

       “아니요. 루미 씨의 말 대로 괜히 실수할 수도 있으니까, 그냥 아르노 단장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아, 그, 그래……?”

         

       루미의 더듬이와 귀가 축 늘어졌다.

         

       다시 위로 올라가려던 두 사람은 곧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3명의 사도가 계단 앞을 막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크레이지 해터, 다아이몬드 퀸, 스트라우스가 굳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다들 무사하셨군요. 해터 님은 전장에 계시지 않았습니까? 벌써 싸움이 끝났나요?”

         

       모자를 겹겹이 겹쳐 쓴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계속되고 있소. 나는 사법 극장 안에 사신이 침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빠져나온 거요.”

       “놈들 때문에 자장가 연주가 중단되긴 했지만, 제가 잠 모래를 뿌린 덕에 다 해결됐습니다.”

         

       허수아비의 말에 다이아몬드 퀸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사신과의 격전에서 결국 공격을 몇 번 허용한 모양인지 페르소나 여기저기가 손상되어 있었다.

         

       “아니, 아직 100% 감긴 건 아니야.”

       “네? 하지만 분명…….”

         

       그의 시선을 받은 스트라우스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카누바들의 침공 때문에 원더랜드에 있는 극장의 95%가 공연을 못 하고 있네. 그 때문에 계산이 어긋나 버린 걸세.”

         

       그가 부러진 지휘봉으로 허수아비가 올라왔던 곳과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눈 하나가 아주 희미하게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 그럼 어떻게 하죠?”

         

       그때, 루미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소리쳤다.

         

       “나와 클라라가 가져온 모래도 있잖아! 그거 홀에 있을 텐데…….”

         

       스트라우스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홀은 무너져 버렸네. 그 폐허 속에서 찾기는 힘들지. 설사 찾는다고 해도 그사이에 눈은 더 떠지고 말 텐데…….”

         

       허수아비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두 포대를 짊어지고 내려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저 서두르는 데만 집중한 탓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감기면, 될 거 같은데…….”

         

       루미는 안타까운 듯 발을 동동 굴리며 아래를 바라봤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세 명의 사도는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은 어딘가 씁쓸하고 불편한 눈빛들을 주고받았다.

         

       “있긴 있네.”

       “뭐죠?”

       “여기서 즉석 공연을 하는 것이지.”

       “네?”

         

       허수아비는 어리둥절했다. 공연이 키르쿠스를 잠재울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 거대한 눈 하나를 잠재우는 데 얼마나 많은 공연이 소비되는지 지켜본 그였다. 저 정도 뜬 것을 감게 하려면 적어도 큰 공연 몇 개는 필요했다.

         

       사도들은 설명하는 대신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들은 포위하듯 그를 둘러싸고는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자네 같은 영웅에게 할 대접은 아니지만 미안하네.”

       “페르소나는 시간을 들이면 복구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

       “네? 그게 무슨…….”

         

       크레이지 해터는 대답 대신 모자를 휘둘렀다. 날카로운 챙 끝으로 허수아비의 오른팔이 잘려 나갔다.

         

       “어?”

         

       동시에 다이아몬드 퀸이 날린 카드가 허수아비의 왼팔을 잘라냈다.

         

       삽시간에 두 팔이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그가 어떤 상황인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스트라우스가 지휘봉을 휘둘러 그의 두 다리를 잘라버렸다.

         

       털썩.

       허수아비는 몸뚱이만 남은 채 바닥을 굴렀다.

         

       “이게……무슨…….”

         

       하지만 사도들은 그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뻥 걷어차더니 그가 데굴데굴 굴러가도록 했다. 그리고는 저 아래에 있는 단 한 명의 관객을 향해 소리쳤다.

         

       “하하, 우습지 않습니까? 저 팔다리 없는 꼴 보라죠.”

       “인스피라도 없는 하층 거주자 주제에 감히 사도들과 눈을 맞추다니.”

       “구더기 주제에 여자나 끼고 다니고 말이야.”

         

       셋 다 그렇게 말하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루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허수아비를 향해 달려갔다.

         

       “야! 괜찮아? 정신 차려!”

       “어, 없어졌어……. 어, 없어져…….”

         

       그녀는 허수아비의 상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항상 여유롭고 유쾌하던 그가 이렇게까지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처음 봤다.

         

       페르소나는 시간이 지나면 복구되는 것을 분명 그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를 충격에 빠트린 것은 공격 그 자체가 아닌 배신감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루미는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계속 다독이다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사도들을 노려봤다.

         

       “무슨 짓이야, 이 새끼들아!”

         

       그들은 어느새 웃음도 멈추고 씁쓸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하오.”

       “하지만 이게 제일 빠른 방법이었어.”

         

       그들의 뻔뻔한 변명에 루미를 이를 갈았다.

         

       “개소리!”

         

       허수아비는 계속해서 뭔가를 중얼거리며 몸을 떨어댔다.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망가지다니.

       루미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 노란 구체들이 두 사람을 둘러쌌다.

       키클링들이 사지가 잘린 허수아비를 보며 낄낄거렸다.

         

       “보시오.”

         

       크레이지 해터가 공동 아래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막 눈꺼풀을 들어 올리던 눈이 다시 감기고 있었다. 그는 사도들이 허수아비의 팔다리를 잘라내고 걷어차고 비웃는 영상을 보고 크게 만족한 듯했다.

         

       “이게 우리가 숨겨왔던 것이라네. 우리의 신은 저열하지. 잔인하고 음습하고 깔보고 비웃는 걸 좋아한다네. 그렇다고 전쟁이나 학살은 또 관심이 없어. 어디까지나 신도들이 벌이는 여흥만을 즐기시지.”

         

       스트라우스가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보다시피 효율은 어지간한 공연보다 수십 배는 좋아.”

         

       다이아몬드 퀸은 차마 두 사람을 바라보지 못하고 딴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십 년 전부터 지상의 공연이 키르쿠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약해져 갔다고 말한 걸 기억하시오?”

         

       루미는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얼버무렸었다.

         

       “사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소. 이제 그대도 아시겠소?”

         

       그녀는 허수아비가 당한 일을 떠올렸다.

       어딘가 익숙한 상황이었다.

       자신도 어렸을 적에 겪은 적 있는…….

         

       그녀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설…마……?”

         

       크레이지 해터는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토하듯 말했다.

         

       “괴물서커스가 사라져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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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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