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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1

        

       두-웅!

       두—웅!

         

       둔중한 소리가 퍼진다.

         

       심해의 깊은 곳에서 돔을 묵직한 것으로 후려치는 것처럼.

       속이 비어있는 금속 재질의 공을 망치로 때렸을 때 울리는 소리처럼.

         

       종 속의 미물을 깨부수려는 듯 육중한 소리와 진동이 사방으로 퍼지고, 그때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윌리엄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어둠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러한 사이사이에 성별조차 알 수 없는 기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수면 위로 내려치는 망치! 물속에서 튀어나오는 배를 부수는 징벌! 흩날리는 배의 파편과 핏물! 인간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고래의 도끼! 흐발네스여! 흐발네스여! 용맹을 노래하는 선원을 갈기갈기 찢어 수장시키고 고래들의 먹이로 삼아라! 얼어붙은 바다부터 괴물이 맴도는 바다까지 항해하였던 용감한 배를 조각내어 그 무용함을 증명하라! 사악한 마법으로, 사악한 그 힘으로 몸을 두른 방패를 까부수고 알몸으로 내던져 갈기갈기 찢도록 하라! 』

         

       기괴한 목소리는 고저도, 어투도 기괴했다.

       높아져야 하는 부분에서는 낮아지고, 낮아져야 하는 부분에서는 높아졌다. 높아졌다가 낮아졌다가 평탄했다가를 반복하며 말이라기보다는 음악에 가까운 모양새였고, 어투 역시 사투리에서부터 표준 발음, 옛사람들이 했을 법한 발음을 이리저리 오가며 주언을 외우는 사람이 어디의 사람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더 기괴한 것은 집중해서 들으려 하면 제대로 들리지 않고, 집중하지 않으려고 하면 귓가에 모기가 앵앵대는 것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외면하면 할수록 주언은 또렷하게, 더 크게 들렸고 종국에는 천둥과 같은 외침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천둥은 벼락을 함께 불러왔으니.

         

       철-썩!

       콰아아아아—앙!

         

       아까는 그저 진동에 불과했던 소리는 굉음이 되었고, 흔들리는 것으로 그쳤던 어둠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며 붉은색의 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것이다.

         

       붉은색.

       붉은 갈대와 닮은 그것은 뻣뻣한 털을 이리저리 휘날리며 어둠의 바깥을 헤엄쳤고, 어둠에 만들어진 자그마한 틈새로 들어오려는 듯 연신 몸을 부딪치며 쿵쿵 소리를 내었다.

         

       쿵-

       쿵-!

         

       『 고래를 넣으라-! 시체를 주워 먹는 고래를 넣어라-! 』

         

       쿵-!

         

       『 고래가 안에 들어가 사람을 끌어내게 시키라-! 』

         

       쿵-!

         

       『 여기 고래가 있다. 이승을 헤엄치는 망령이 있고, 악령이 되어 인간의 바다를 헤엄치는 가련한 고래들이 있노라. 이 자그마한 고래를 집어넣어 본분을!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만들고, 사악한 마법으로 그들을 부려 주제도 모르는 인간을 끌어내게 시켜라! 』

         

       쿠—-우우웅!

         

       틈새로 들어오려던 거대한 무언가는 자신이 들어갈 수 없음을 깨닫자 짜증이 났는지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힘차게 어둠에 몸을 부딪쳤고, 저 멀리 물러나더니 희끄무레한 무언가를 틈새 안으로 쑤셔 넣기 시작했다.

         

       [ 끽. ]

       [ 끼기긱. ]

         

       부—오—오오오오오오—–!

         

       희끄무레한 것들은 구깃구깃 접히고 납작하게 변하며 틈새에 들어오느라 기괴한 비명을 내었다. 하지만 어둠 바깥에 존재하는 붉은 볏의 괴물은 심해에서 괴물이 울부짖듯 불길한 울음소리를 내며 재촉하였다.

         

       [ 끼이이이, 히히히히. ]

         

       그런 재촉 덕분이었을까?

       희끄무레한 것들은 그 틈새를 통해 윌리엄의 정신에 침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구깃구깃 접히고 비틀린 몸을 이끌고 기괴한 모습으로 윌리엄에게 다가갔고, 옴짝달싹 못하는 윌리엄에게 길쭉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손 여러 개를 이용해 입을 문짝처럼 크게 벌린 뒤….

         

       꿀꺽.

         

       그대로 삼켜버렸다.

       

       

         

        * * *

         

         

         

       윌리엄이 눈을 떴을 때, 그는 일상 속으로 와 있었다.

         

       사람 열 명은 너끈히 누울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침대.

       천장에 달린 거울.

       왕실에 납품하는 브랜드의 최고급 이불과 매트리스.

       곳곳에 전시된 고가구들.

         

       그리고 파티에서 그냥 몸만 보고 대충 꼬신, 이름도 모르는 여자가 알몸으로 누워있는 것까지.

         

       평소와 전혀 다를 것 없는 풍경이었다.

         

       “아으, 씨발. 무슨 꿈이….”

         

       윌리엄은 평소와 다름없는 풍경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자기 몸을 흠뻑 적신 식은땀이 기분 나쁘다는 듯 이불을 들어 제 몸을 쓱쓱 닦았고, 잠을 자면서 땀을 흘린 탓인지 축축하게 젖어있는 베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집어서 문 저편으로 휙 집어 던졌다.

         

       꿀꺽.

         

       그리곤 침대 근처에 놓아두었던 맥주를 따서 거침없이 마셨다.

         

       “크으.”

         

       윌리엄은 맥주가 목을 넘어가는 짜릿한 느낌과 배에 들어차며 몸을 따끈따끈하게 해주는 그 감각을 맛보자 자신이 꿈에서 깨어났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악몽을 꿨던 탓이었을까?

         

       악몽 때문에 숙면하지 못한 탓인지 머리는 멍했고, 평소 관계를 맺고 나서 찾아오는 기분 좋은 나른함이 아닌 역겹고 짜증 나는 나른함이 그의 몸에 퍼져있었다. 게다가 식은땀을 대충 닦기는 했지만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운데다가 끈적거리기까지 했고, 거기다가 관계를 맺고 샤워하지 않은 탓인지 이곳저곳에서 고약한 냄새까지 풍기고 있었다.

         

       평소라면 거슬리지 않았을 냄새였지만….

         

       왜일까.

         

       지금은 이상하게 거슬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옆에 자는 여자의 뺨을 때려서 깨운 뒤 샤워장에 집어 던지고 씻으라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퉤.”

         

       하지만 윌리엄은 여자의 뺨을 때리는 대신에 목에 들끓은 가래를 침대 바깥에 뱉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렇게 함부로 대하기에는 윌리엄과 등을 돌린 채 옆으로 누워있는 저 여자의 몸매가 너무 훌륭했으니까.

         

       그냥 한 번 관계를 맺고 끝맺기에는 너무 끝내주는 몸매였으니까.

         

       저 정도 몸매라면 옆에서 잤을 때 악몽을 꾼 것 정도는 한 번은 봐줄 의향이 있었다.

         

       물론 두 번 꾸게 되면 예외 없이 욕설을 내뱉으며 내쫓겠지만.

         

       ‘악몽, 악몽이라.’

         

       윌리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여자의 옆에 다시 누우려다가, 문득 자신의 꿈자리를 사납게 했던 악몽에 대해서 생각이 미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평소에는 현실처럼 생생해서 자고 일어나면 너무 또렷하게 남는 덕분에 기분을 더럽게 만들었던 악몽이, 이상하게도 지금은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물안개에 덮여버린 것처럼 말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윌리엄은 이 이상한 일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꿈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였으니까.

         

       꾸기 싫다고 울부짖어도 꾸는 게 악몽인데, 그깟 기억이 안 나는 게 뭐 그리 대수일까 싶었다.

         

       하지만 악몽에 생각이 미치자 은근슬쩍 2차전을 할 생각이 싹 사라지고, 그 대신에 찝찝한 느낌과 함께 어서 씻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를 잡았다.

         

       “쯧.”

         

       윌리엄은 기분이 잡쳤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침대 밖으로 내려왔고, 샤워실에서 옷을 벗어놓는 것조차 귀찮았던 것인지 그냥 가는 도중에 옷을 버려가며 샤워실 안으로 들어가 샤워하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아니, 씨발. 이거 뭔데?”

         

       하지만 샤워기를 틀자마자 나온 것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물이 아닌, 뼛속까지 얼려버릴 듯 끔찍하게 차가운 찬물이었다.

       심지어 묘하게 짠 냄새까지 나는 것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물이 아니라 바닷물이 분명했다.

         

       “허.”

         

       윌리엄은 그 사실을 깨닫자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수십 년 지난 해변의 간이 샤워장 시설도 아니고, 5성급 호텔의 스위트룸의 샤워기에서 바닷물이 튀어나온다고?

         

       도저히 윌리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뭔가 수도에 문제가 생겨서 그렇다고 여기기에도 말이 안 되는 것이, 이 호텔은 내륙에 있는 곳이었다.

         

       바다를 가려면 몇 시간 동안이나 차를 운전해서 가야 하는 호텔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수도에 문제가 생겨서 바닷물이 들어온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단 하나.

         

       “감히 나에게 엿을 먹이려고 해?!”

         

       누군가가 윌리엄을 노리고 짓궂은 장난을 했다는 것.

         

       윌리엄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감히’ 장난을 쳤다는 사실에 격분했고, 그 분노를 참지 않고 샤워기를 붙잡아 그대로 벽에 후려쳤다.

         

       콰앙!

       콰아앙!

         

       몇 차례 후려치자 샤워기는 박살이 나버리며 물을 질질 흘리는 신세가 되었다.

       윌리엄은 그것마저 짜증이 난다는 듯 그 위에다가 침을 퉤 뱉었고, 아무 옷도 입지 않은 채 그대로 밖으로 나가 호텔 프론트 데스크에 연락했다.

         

       따르르르-

       철컥.

         

       『 안녕하십니….』

       “You Arsehole sucking motherfucking cunt!”

         

       전화를 건 윌리엄은 그대로 욕설부터 박았다.

       그것도 아주 끔찍한 욕설을 말이다.

         

       『 무슨 일….』

       “Shut Your Fucking Mouth, bloody faggot!”

       『 …. 』

         

       난데없이 욕설을, 그것도 평생 몇 번 듣지 못할 끔찍한 강도의 욕설을 듣게 된 직원은 어이가 없는 것인지 입을 그대로 다물었다.

         

       하지만 입을 다물어도 윌리엄의 욕설을 끝나지 않았고, 직원은 입을 꾹 다문 채 얌전히 윌리엄의 욕받이 샌드백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욕을 뱉은 윌리엄은 화가 가라앉자 그제야 용건을 꺼냈다.

         

       “샤워기에서 바닷물이 나오잖아, 개자식아!”

       『 아, 바닷물…. 때문이시군요. 』

       “근처에 바다도 없는데 바닷물이 왜 나와? 이 새끼야, 돈을 얼마나 처먹고 나를 골탕 먹이려고 한 거야?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여? 이 윌리엄이! 아르투아 가문이 우습게 보이는 거야?! 아니지, 너 같은 찌꺼기 놈이 어떻게 이딴 장난을 칠 수 있겠어? 당장 지배인 불러! 아니, 지배인도 됐어. 오너 불러, 오너—!”

       『 자, 잠시만 진정해주시겠습니까? 아마 수도의 문제로 인해 바닷물이 들어온 모양입니다. 호텔 보수 업체에 전화해서 즉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

       “뭐? 장난쳐? 여기 바닷가가 어딨다고? 이 Son of-”

         

       윌리엄은 가라앉은 화를 다시 돋우는 직원의 태도에 다시 분노가 들어차는 것을 느꼈고, 분노에 그대로 몸을 맡긴 채 다시 한번 욕설을 내뱉으려고 했다.

         

       『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바로 옆에 바닷가가 있지 않습니까? 』

       “뭐?”

         

       하지만 장난을 친다기에는 너무나 진지한 직원의 태도에 윌리엄은 잠시 욕설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치 상식을 말하는 것처럼 억울하다는 듯한 직원의 말투.

         

       『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의심되시면 창문을 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

         

       위화감.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든다.

         

       윌리엄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스마트폰을 놓고 창문으로 움직였고, 일부러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쳐 놓은 암막 커튼을 확 걷어버리고 밖을 바라보았다.

         

       “씨발?”

         

       바다.

       바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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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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