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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1

       

       

       

       

       

       241화. 심장이 추는 춤

       

       

       

       

       

       누군가 망치로 한 대 내려친 것처럼 머리가 쑤셔온다. 차라리 망치로 내려치는 게 편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이 상황에서 도피할 수는 있을 테니까.

       

       “하. 하하.”

       

       이스칼의 건조한 웃음이 느지막한 오전의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조금 소란을 피운 탓일까.

       

       눈을 찌푸린 프리가가 이불로 얼굴을 싸매며 꿈틀거리더니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으… 우으윽…”

       

       걸쳐둔 이불이 자연스레 떨어진다.

       

       생각보다 가녀린 어깨와 살짝 들어간 쇄골, 그 밑으로 시선을 내리면 하얀 가슴과 봉긋하게 솟은…

       

       “크흠! 흐음!”

       

       애써 헛기침하며 시선을 돌린다.

       

       남자의 본능, 즉 하반신이 맹렬하게 자기 주장하며 당장 고개를 원위치시키라고 아우성치지만.

       그의 이성은 창밖을 보라 외쳤다. 그래서 이스칼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으으… 뭐야, 일찍 일어났네? 아, 거기 물 좀 줄래?”

       “…여기 있습니다.”

       

       잠에서 덜 깬 프리가가 눈을 비비며 잔을 받았다. 연거푸 세 잔이나 마시고 나서야 잠이 좀 깼는지, 눈빛이 살짝 돌아온다.

       

       “으, 아그으… 허리 아파라. 이야, 어제는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 너 이 새끼 생각보다ㅡ 응? 뭐야. 왜 나를 안 봐?”

       “…그, 공녀님. 실례지만, 제, 제가 혹시 어제ㅡ”

       “너 기억 안 나?”

       

       프리가가 작게 눈을 찌푸리더니 벌떡 몸을 일으켰다.

       찬란한 태양 아래 숨김없이 드러나는 그녀의 나신. 이스칼이 황급히 눈을 감았지만, 잔상처럼 남은 외형이 아른거린다.

       

       사박. 사박.

       

       프리가의 발소리가 다가온다. 이스칼은 눈을 감은 채로 호흡을 차분히 하려 애썼다.

       

       “야.”

       “네, 넵.”

       “눈 떠.”

       “하, 하지만…”

       “눈. 뜨라고.”

       

       프리가의 으름장에 이스칼은 어쩔 수 없이ㅡ아마도ㅡ 눈을 천천히 떴다.

       

       그리고 호흡이 멎었다.

       

       가녀린 어깨와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 새하얀 피부의 곳곳에 내려앉은 지난밤 열락의 흔적들.

       그리고 살짝 발갛게 달아오른 프리가의 눈빛, 얼굴, 입술.

       

       그 모든 것들이 햇살을 받아 작게 반짝이며 이스칼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너…”

       

       프리가가 한 걸음 다가오며 이스칼을 꽉 껴안았다.

       부드럽고 탄력적인 가슴이 그 형태를 뭉개며 이스칼의 가슴께를 압박했다.

       

       꿈틀.

       

       이스칼의 남성이 크게 꿈틀거렸다.

       용솟음치며 제 머리를 꼿꼿이 쳐드려는 걸 애써 참았다.

       

       …같은 가슴인데, 어째서 여성의 가슴은 이리도 부드러운 것일까.

       영원토록 풀리지 않을 인류의 난제이리라.

       

       “정말로… 정말로 어젯밤이 기억 안 나?”

       

       속삭이듯 이스칼의 귓가에 말한다. 살짝 귓불을 깨물었을 때는 척추를 따라 한 줄기 전기가 내달렸다.

       

       “…꿀꺽.”

       

       난다.

       어떻게 그걸 기억하지 못할 수 있을까. 정력 왕성한 남자라면 누구나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더군다나 중간부터는 이스칼도 맨정신이었다.

       

       다만, 다만…

       

       “… 고, 공녀님. 잠시, 잠시만…”

       

       애써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에 프리가의 어깨를 살며시 밀어냈다.

       

       “너, 너… 왜? 왜…?”

       

       덜컥 프리가의 몸이 흔들린다. 거절의 뜻이라고 생각한 걸까. 프리가의 눈망울이 크게 흔들렸다.

       

       평소에는 괄괄하게 굴지만, 속은 은근히 여린 그녀다. 그러니 어젯밤 자신을 그렇게 꽉 껴안고 놔주지 않ㅡ

       

       “흠, 크흠. 아니, 아닙니다. 공녀님. 그런 게 아니라… 잠시만…”

       

       주춤주춤 물러난 이스칼이 저 구석에 처박힌 바지의 주머니를 뒤적였다.

       

       이스칼에게도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다. 비록 이런 건 계획에 없었지만…

       며칠동안 고민하며 짠 계획을 살며시 접어서 머릿속 쓰레기통에 던진다.

       

       “너… 그, 그건…”

       “원래는 좀 더 멋있고, 그럴듯한 말도 이것저것 준비했는데.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네요.”

       

       이스칼이 멋쩍게 웃으며 작고 반짝이는 무언가를 내밀었다. 

       작고, 동그랗고, 그 첨단을 장식한 보석이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인다. 

       

       반지였다. 

       프리가의 손이 잘게 떨려왔다. 

       

       “잘 차려입은 다음에 멋지고 화려한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도 하고, 시끄러운 시장도 구경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다가… 그러다가, 달이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그렇게 멋지게 고백하고 싶었지만… 공녀님.”

       

       이스칼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프리가에게 반지를 내밀었다. 반지의 끝에 장식된 하얀 다이아몬드가 반짝인다.

       

       “부디 저와, 함께 해주시겠습니까?”

       “……바, 보야. 이런, 이런 자리에서 그딴 말을 하면…”

       “하하, 하… 화, 확실히 지금 자리가 좀… 그렇죠?”

       

       프리가의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했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눈동자에는 책망, 놀람, 혼란, 의문, 부끄러움, … 그따위의 것들이 한데 모여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스칼이 프리가의 대답을 기다리며 한참을 기다렸다. 프리가는 망울망울 차오르는 눈물을 한동안 찍어 누르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아, 알았어…”

       “저, 정말요?! 정말이죠 공녀님!”

       “그래! 정말로…! 이, 이 멍청한 놈아! 이! 바보 같은 새끼야!”

       “악! 아악! 아, 아파요! 진짜로! 악! 공녀님! 으아악!”

       “이 등신! 머저리! 눈치 없는 놈! 진짜 이 멍청한 새끼야!”

       

       울먹거리던 눈을 돌연 세모나게 뜬 프리가가 이스칼에게 달려들어 그의 등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챱- 챱- 하는 찰진 소리와 이스칼의 비명이 한참이나 울렸는데, 열린 창문으로 그 소리가 전부 새어 나가 길가는 행인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누가! 누가 이 멍청한 놈아! 이 자리에서 고백해달라고 했어?! 어! 이 미친놈아!!! 누가 알몸으로 프로포즈를 하냐고오!!”

       “크악! 아, 아파요! 아아악!”

       “이 미친! 새! 끼! 진짜!! 왜 여기에서 반지를 꺼내는데 등신아!!”

       “하, 하지만! 으악! 뭔가 분위기! 분위기가!!”

       

       쩔쩔매는 이스칼의 입에서 나름대로의 변명이 튀어나왔지만, 활활 불타는 집에 기름만 끼얹은 꼴.

       

       프리가의 손이 더욱 매섭게 움직였다.

       

       “왜 혼자 급발진하는데, 왜! 갑자기 반지가 왜 나오냐고!”

       “아그악! 크아악!”

       “나, 이 반지 못 받아. 아니! 안 받아!”

       “네, 네?!”

       “나는 이런 고백 못 들은 거야. 난 아무것도 못 들었어. 못 봤고, 아무것도 안 받았어. 알겠어?”

       

       순 억지나 다름없는 프리가의 말.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 이글거리는 불길은, 북부의 전사이기 이전에 여자인 프리가로서의 분노였다.

       

       겨우, 겨우 이런 허름한 여관에서! 그것도 알몸으로! 온몸에서 술 냄새 풀풀 풍기는 채로 받는 반지가!

       이게 내 인생의 프러포즈라고?!

       

       아니. 인정할 수 없어.

       난 이런 프러포즈, 받은 적 없는 거야.

       

       “… 아, 알겠습니다.”

       “……후우ㅡ”

       

       겨우겨우 우격다짐으로 반지를 되돌린 프리가의 한숨이 길게 이어졌다. 일어나자마자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돌연 현타가 깊게 몰려온 프리가는 길게 늘어진 머리를 한 차례 강하게 헝클었다.

       어쩌다 이런 눈치 없는 등신 놈한테 빠져서는…

       

       “…야, 이스칼.”

       “……네. 공녀님…”

       

       구석에 쭈그려서 바지춤에 반지를 넣는 이스칼의 어깨가 살짝 침울해 보인다.

       

       “뭐야. 어깨는 또 왜 그렇게 축 늘어트리고 있어. 삐졌어?”

       “…아뇨, 아닙니다. 그, 공녀님ㅡ”

       “프리가.”

       “…프리가 님께서ㅡ”

       “프리가.”

       “……프리가가 반지를…”

       “뭐?”

       

       잠시 벙찐 프리가가 멍하니 이스칼을 바라보다가, 픽 웃었다. 

       설마. 

       

       지금 저 고백을 못 들은 걸로 말했다는 걸, 거절의 뜻으로 받아들인 건가?

       여섯 신 맙소사.

       

       프리가는 실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아야 했다.

       

       “야, 야. 이리 와봐.”

       “…”

       

       프리가는 말없이 다가온 이스칼의 품에 쏙 들어갔다. 단단한 사내의 근육이 만져진다.

       상대방의 살짝 차가운 피부와 맞닿으며 기분 좋은 촉감이 뇌리를 자극한다.

       

       상대방의 어깨에 가만히 턱을 올려두고는 그 감촉을 만끽했다. 피부를 타고 상대의 두근거리는 심장이 느껴졌다.

       

       내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뛰나? 아. 빨라진다. 이제 비슷하네. 

       

       심장끼리 손을 맞잡고 한바탕 춤을 추는 것 같다.

       

       나른하게 눈을 감은 프리가가 작게 속삭였다.

       

       “이스칼 이스칼… 이 눈치 없는 놈아.”

       “으흡…!”

       “내가 정말로 네 고백을 거절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으응? 일부러 그러는 거야?”

       “아, 아닙니닷…”

       “그렇지? 응? 내가 만약에 정말 너한테 마음이 없었으면…”

       

       손을 뻗어 이스칼의 날개뼈 언저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붉은 실선이 양옆으로 그어진 상처가 보였다.

       지난밤 자신이 이스칼에게 박아 넣은 흔적. 마치 제 것이라 표시한 것 같아 제법 마음에 들었다.

       

       “이런 걸 남겼겠어?”

       허나, 이것으로 만족하기에는 아쉬웠다.

       

       “윽!”

       

        살짝 이빨을 세워 이스칼의 어깨를 깨물었다. 피가 날 상처는 아니지만, 흔적은 남을 정도로.

       

       “너는…”

       

       프리가가 붉은 혓바닥으로 어깨의 상처를 핥으며 나지막하게 선언했다.

       

       그래.

       이건 선언이자, 선포였고, 낙인이었다.

       

       “이제 내 거야.”

       “…꿀꺽.”

       “그리고 나는…”

       

       프리가의 긴 검지 손가락이 이스칼의 심장 언저리를 쿡 찔렀다.

       

       “나는 이제… 네 거고.”

       

       나는 결코 너를 놓치지 않을 것이고, 너도 감히 나를 놓을 수 없다는.

       그러한 선언이 뚜렷한 이빨 자국과 함께 이스칼의 심장에 새겨졌다.

       

       이스칼은 감히 반항할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프리가의 눈동자와 그 까만 눈동자에 비치는 멍청한 표정의 자신만 보일 뿐.

       

       무언가에 홀린 걸까.

       홀린 것이라면 필시 프리가의 까맣게 반짝이는 밤하늘과도 같은 눈동자에 홀린 것이리라.

       

       “알겠습니다… 프리가.”

       

       또 무어라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미 자신의 심장에 그녀가 이리 새겨 놓았거늘.

       

       가만히 팔을 움직여 품에 들어온 프리가를 끌어 안았다. 가녀린 몸이 팔뚝 안에 들어온다.

       

       이스칼은 쿵쿵거리는 제 심장과 맞닿은 프리가의 심장 박동을 느끼고, 가만히 눈을 감으며 프리가와 호흡을 맞췄다.

       

       호흡은 조금 더 빠르게, 심장은 아주 살짝 느리게.

       

       눈을 감고, 호흡을 맞추고, 머리를 기댄다.

       

       그렇게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을 보냈다.

       

       말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는 것도 있는 법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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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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