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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1

       한가람을 움직이기 시작한 영향은 곧 나타났다.

        

       며칠이 걸린 것도 아니다. 바로 다음 날, 무려 윤다호가 교실 앞까지 찾아왔다.

        

       하긴, 그런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게다가 어제는 내가 직접 교실로 찾아가기까지 했고.

        

       여학생들은 내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었지만, 아직 남학생들에게 그 감정이 전염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굳이 그렇게 할 이유도 느끼지는 못했다. 기억 속에서도 사라를 따돌린 애 중에서 남자애들의 비중은 아주 작았으니까.

        

       초등학생 때야 남자애들도 같이 따돌리긴 했지만, 그걸 인제 와서 다시 찾아내는 것도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정말로 부모 말에 막 휘둘리던 나이이기도 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도 남녀 공학이었으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뭐, 여자애들이 나에 대해서 나름대로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호기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 또한 아니었다.

        

       ……특히, 일단 외모만 봐서는 잘생긴 윤다호 같은 애가 오면.

        

       “뭐야.”

        

       아무리 기다려도 윤다호가 직접 들어오지는 않을 것 같아, 결국 나는 교실 밖으로 나가 물었다. 기왕이면 어제의 윤다호처럼 책상에 앉아서 몹시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올려다보며 대답하고 싶었지만, 뭐 본인이 안 들어오니까.

        

       하긴, 여학생이 남학생 교실에 들어가는 것과 남학생이 여학생 교실에 들어오는 것에는 꽤 큰 차이가 있다. 성평등이니 뭐니 해도 여전히 인식의 차이가 있어서, 남자가 여자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쪽이 훨씬 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여자애들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을 거고.

        

       그렇다고 내가 밖으로 나가 만나주지 않으면 얘는 내가 나올 때까지 올지 몰랐으니까. 어차피 한 번은 대화를 나눌 거, 미뤄봐야 좋을 일도 없었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내가 이 학교에서 그를 만났을 때처럼, 윤다호는 창문 앞에 기대고 서서 말했다.

        

       “그만두는 게 좋을 거 같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할아버지를 적으로 돌려서 좋을 게 없으니까.”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를 무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퍼진 지도 한참 지났다. 예전이라면 모른 척하면서도 귀를 이쪽으로 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대놓고 호기심을 드러내며 시선을 보내는 애들이 한가득하였다.

        

       “내가 너희 할아버지랑 싸우면 질 것 같다는 소리야?”

        

       “…….”

        

       윤다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하긴, 아직 고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산전수전 다 겪은 대기업 그룹의 전 회장과 기 싸움을 하겠다고 하면 기가 막히기도 할 거다.

        

       “돈이 많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야. 할아버지는 분명히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게 있다고.”

        

       “……응?”

        

       윤다호가 하는 말이 조금 이상해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경고하려고 왔다는 거야? 협박하려는 게 아니라?”

        

       윤다호의 말투가 조금 이상하긴 했다. 묘하게 내가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 그렇구나.

        

       내가 윤다호 할아버지에게 지게 되면, 나와 얘의 약혼이 깨질 일은 없게 된다. 결국 둘은 결혼하게 되겠지. 재산 문제야 그 이후가 되겠지만, 윤다호는 아무래도 그게 엄청나게 싫은 모양이었다.

        

       “경고건, 협박이건 뭐라고 생각해도 좋아.”

        

       “그렇다면, 근거는?”

        

       그래도 말싸움에서 지는 것은 싫어서, 나는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

        

       그리고, 단순히 자존심 문제뿐만이 아니라 굉장히 중요한 확인 과정이기도 했다. 윤다호가 나에게 경고하건 협박하건, 내가 그 사실을 믿기 위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으니까.

        

       “물증이라면, 없어.”

        

       흠.

        

       물증이 없으면서도 굳이 나한테 경고하러 왔다는 말인가?

        

       “내가 너희 할아버지와 대립하지 않으면, 파혼은 어떻게 하는데?”

        

       “……이제 와서 따지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냐? 이제는 약혼이고 뭐고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아?”

        

       윤다호의 시선이 나의 뒤를 향했다. 그곳에는 소희와 하늘이가 서 있었다. 안타깝게도 수아는 다른 반이라서 당장 여기 있지는 않았지만.

        

       뭐, 인제 와서 따지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긴 하지.

        

       얘 할아버지가 끝까지 손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그래도 양쪽에서 더 이상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못은 박아야 할 거 아니야. 나는 잊을 만 하면 너희 할아버지가 찾아와서 약혼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은 싫어.”

        

       “…….”

        

       “아니면, 니가 직접 너희 할아버지한테 말해주겠어? 나와 결혼하는 것이 싫다고?”

        

       “……내가 말 안 해봤을 것 같아?”

        

       윤다호가 조금 으르렁거렸다.

        

       “너도 약혼하기 싫다고 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약혼이 흐지부지해졌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는데, 너희 할아버지가 굳이 나를 건드릴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뭔데? 증거가 없더라도 너 나름대로 생각하는 근거가 있을 거 아니야.”

        

       “…….”

        

       나의 말에, 윤다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길을 걷다가 은근슬쩍 멈추어 서거나, 걸음을 느리게 하고 있던 아이들이 흠칫 놀라서 얼른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몇은 얼굴에 대놓고 아쉽다는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에 대해서 호기심을 드러내는 건 그렇다 쳐도, 윤다호에게 이런 호기심을 드러내는 것은 조금 신기하긴 했다. 학기 초만 해도 이놈은 나름대로 추종자도 끌고 다니는 놈이었는데. 여전히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같기는 하지만, 뭔가 왕자님 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윤다호를 바라보던 아이들은 이젠 거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윤다호에 대한 환상이 꺼졌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아마 나의 영향이라고 보는 쪽이 옳겠지.

        

       윤다호는 나와 마주칠 때마다, 다른 학생들 앞에서 대놓고 망신당하는 일이 많았으니까. 본인은 평정을 유지하고, 나름대로 나에게 파혼하려면 열심히 해보라고 하는 등 나름대로 기가 꺾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리 봐도, 내가 압도적으로 강하니까. 솔직히 시가 총액은 둘째치고 개인 자산으로 비교해도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수준이었다.

        

       대중의 시선이라는 게 참 이상하게도, 실제로는 자기보다 한참 돈 많고 사회적인 명망이 있는 사람이라도 공개적인 망신 몇 번만 당하면 마치 그 상대가 찌질이라도 되는 듯 구는 경우가 있다. 내 생각에는, 윤다호가 그런 상황이었다.

        

       그리고 본인의 인상이 학기 초보다 조금 유약해진 탓도 있었고.

        

       ……아.

        

       생각해보니, 윤다호 얘도 남주인공이다. 아무 공략 없이 게임을 시작하면 매우 높은 확률로 첫 공략 상대가 되는, 거의 튜토리얼 격 캐릭터.

        

       원작에서도 윤다호는 도중에 자신감을 팍 잃는 부분이 있었다.

        

       전 회장에게 온갖 지랄을 당하고, 그러면서도 예사라와의 약혼은 깨고 싶고, 유하늘을 좋아하는.

        

       마침내 유하늘의 격려를 받고 각성해서 해피엔딩을 맞는.

        

       정작 윤다호의 진짜 집안 상황은 끝에서나 잠깐 나오고, 루트 대부분은 윤다호 멘탈 관리에 가깝긴 했지만.

        

       그래서 스트리머가 공략하는 내내 엄청나게 극혐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윤다호가 내내 징징거렸으니까.

        

       지금 상태가 그런 상태인 걸까?

        

       케어해주는 역할인 하늘이가 내 곁에 있어서?

        

       그렇다고 별로 미안하지는 않았지만.

        

       “……감이야.”

        

       “……감?”

        

       실로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라서,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래. 요즘 할아버지의 기분이 몹시 좋아 보이거든.”

        

       “할아버지의 기분이 좋아 보여……?”

        

       내가 벙쪄서 대답하자, 윤다호는 기분 나쁘게도 얼굴을 붉혔다. 쪽팔린 말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너는 이해 못하겠지만, 할아버지는 자기 일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고 확신할 때나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니까.”

        

       “…….”

        

       하긴, 그 노인네가 실실 쪼개고 다니면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다고 생각은 하겠지만.

        

       “그럼, 그 일이 나와 관련돼 있을 거로 생각한 이유는?”

        

       내 질문을 들은 윤다호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뭐. 왜. 뭐.

        

       애초에 사람의 표정이 근거라는 것 자체가 이상하잖아. 아니, 나름대로 상속받을 예정인 회사 일을 감으로 알아차리는 게 말이 되냐고—라고 생각하다가, 원작에선 육감이라는 시스템이 있었다는 것을 좀 뒤늦게 떠올렸다.

        

       “…….”

        

       내가 자기 얼굴을 빤히 바라보자, 윤다호는 시선을 슥 피했다.

        

       ……남자가 얼굴 붉히고 눈 피하지 마라. 기분 더러우니까.

        

       물론 본인이야 정말로 쪽팔려서 그러는 거겠지만.

        

       아무튼, 뭐.

        

       문제는 그거다.

        

       이 감이라는 게 진짜 육감이라는 것을 내가 모르겠다는 점.

        

       그리고, 애초에 육감이라는 게 모든 캐릭터에게 확실하게 있다고 표현된 적도 없다는 것.

        

       적어도 내가 본 하이라이트 영상에서는 윤다호에게 육감이 있다는 내용은 없었다.

        

       없긴 했지만……

        

       “……스읍.”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일단, 어느 정도 감을 잡은 이상, 그걸 그냥 놓칠 수는 없었다. 특히 지금처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는 특히.

        

       나는, 지금 이놈이 하는 말이 진실인지, 아니면 그냥 설레발인지 꼭 알아야겠다.

        

       그렇기에, 엄청나게 말하기 싫은 것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후우.”

        

       나는 숨을 크게 내쉬어 마음을 조금 가라앉혔다.

        

       그리고,

        

       “……그 이야기, 조금 자세하게 듣고 싶은데, 혹시 방과 후에 시간 있어?”

        

       내 뒤에 서 있는 하늘이와 소희가 기겁할만한 소리를 내뱉었다.

        

       아, 나도 싫다니까.

        

       진짜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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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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