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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1

        

         수도권에서 시청 가능한 방송의 폭은 굉장히 넓다.

         따라서 느지막한 아침부터 점심 식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새로운 소식을 쫓아서 계속 채널을 돌린다면 한가지 주제에 관한 이야기와 논평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 아직 외곽 지역에 국한된 기현상이나, 자유 비행이 가능한 드론도 감염된 점을 고려하건대 자칫 범지구적 재앙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음을 기억해야…. ]

         

         “……웃겨 아주.”

         

         뜨끔한 속내를 감추듯, 짐짓 삐진 것처럼 혀를 가볍게 찼다.

         

         도를 넘은 호들갑 하고는!

         따로 사람을 공격하라고 프로그래밍 된 것도 아니오, 그냥 가까이 있는 아무 기계나 붙잡고 으쌰으쌰 해서 증식하려는 단순한 보노보 같은 코드인데.

         

         물론… 시간이 더 흘러서 위험한 변이라도 일으킨다면 모를 일이기는 하지. 음.

         그렇지만 벌써부터 저렇게 아무런 검증없이 과장을 섞어서 공포감을 선동하는 건 너무하다고 본다. 적어도 나로서는.

         

         [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폭주 징조를 보인 제품군을 모조리 회수 및 폐기. 한편으로는 전용 백신 개발 또한 염두에 두고 있다며 관련 기업들은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세간에서는 ‘그래도 얘들이 발빠르게 움직여줘서 다행.’, ‘근데 정작 보상금은 왜 아직도 안 들어오냐…?’ 등의 긍정적 반응이 잇따라…. ]

         

         “에이씨…!”

         

         그래, 저거. 나도 처음엔 철썩 같이 저 말을 믿고 아무 짓도 안 하고 기다리려고 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목격담이 많아지고, 엑사테크 시설 붕괴와 일련의 사건에 대해 보도하는 채널이 늘어남에 따라 모른 척 눈치보고 있기가 불편해졌으니.

         

         딱히 논리 회로가 존재하는 기기 문제나 결함이 아니기에 엑사테크를 비롯한 로봇 관련 기업들이 전량 리콜 같은 무의미한 자충수를 꺼내 들지 않은 건 이해한다.

         

         암, 십분 이해하고 말고!

         

         그러나 자체적으로 해결하려 고집부리기보단 가급적 소프트웨어나 사이버웨어 전문 업체 쪽에 협업 요청이나 의뢰를 넣어서라도 빠르게 이상 현상을 묶어 놨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알아서 잘 대응하는 것으로 내가 -범인이- 나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말이다.

         

         [ 최근 대두하고 있는 사이비 종말론자들은 ‘정보 생명체라는 탄소 유기 화합물의 상위종이 언제까지고 인간 밑에 있으리라 믿은 게 잘못’ 이라며 다가올 최후의 날에서 살아남고 싶은 자는 아래 나올 번호로 연락을… 야!! 누가 실시간 방송으로 좆 같은 포교 권유를 송출해!? 대본 담당 누구야! ]

         

         삐—… 하는 소리와 함께 스크린 조정 중에 송출하는 대기 이미지로 화면이 돌아갔다.

         

         와, 점마들은 벌써부터 난리구나?

         하긴 나쁜 일이면 옳다구나 하고, 좋은 일이면 또 좋은 일대로 머리를 들이밀고 어그로를 끄는 게 사이비 신도들이긴 하다.

         

         시나리오적으로도 1페이즈의 빌런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니… 지금쯤 한창 목소리를 키우고 있으면 시기가 얼추 맞긴 하겠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TV에 집중하는 날 배려해 가만히 침묵을 지켜주고 있던, 혹은 다른 몸으로 실내를 윤기나게 관리하느라 바쁜 동거인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본디 나는 외출해서 마신 콜라 한 캔이나 사탕 껍질 하나도 끝까지 들고 다니다가 쓰레기통에 버리는 타입이지, 떠난 자리가 아름답지 못하게 어질러 놓고 다니는 스타일이 절대 아니었거늘.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분명 애타게 호스트를 찾아 모여든 시끄럽고.

         어찌 보면 귀엽게(?) 삐약거리는 기계 감염체들을 싹싹 정리한 다음 일부는 안전 가옥에 보관, 나머지는 시선 끌기 용으로 교전 명령을 업데이트해주고 장렬하게 산화하는 것까지 확인했었다.

         

         그렇지만 방송을 탄 저것들은 아웃 오브 바운더리.

         어찌 된 영문인지 내 인지 범위 바깥으로 빠져나간 안타까운 유실물들이 있었던 모양인데.

         

         천만다행이도 네트워크 유포가 아닌 목표 포착 후 물리적 합선을 통한 감염을 우선시하는 형태로 만들었던 녀석이라 확산이 느렸기에 망정이지, 반대였으면 진작 튀어 나가서 수습에 매달려야 했을 것이다.

         

         하여간 여기저기 민간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하는 만큼 이제는 내가 도의적으로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제로의 논리적인 고견을 구해본 건데.

         

         – 확실히. 아샤님의 작품이 가진 완전성을 찬양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그렇다고 사회 기반망을 멀쩡히 온존시켜 준 자비에 감사하지도 않는 건 상당히 건방진 태도라 여겨집니다. 그럴 의도가 있으셨다면 한가롭게 방송거리로 삼을 엄두조차 못 냈을 터인데. –

         

         “아니 넌…… 그냥 말을 말자.”

         

         왜 다짜고짜 ‘살아남은 걸 감사히 여기십시오, 휴먼.’ 같은 무지막지한 대사가 나오는 건데 이 놈아.

         

         양심의 가책이나 인과는커녕 오로지 내가 만든 바이러스와 뉴스 속보만을 각각 개별적으로 평가하려는 바보의 답변에 중립적인 조언 구하기를 포기했다.

         

         생각해보니 애당초 얘는 현장에도 없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바이러스를 살포하게 된 경위나 목적조차 모르겠네. 참고인으로 쓰기엔 객관성이 부족했어.

         

         삑!

         

         치우라는 의미로 손을 내젓자, 도통 조정 화면에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채널을 제로가 재깍 돌렸다.

         아무래도 제작진 중에 있던 종말론자를 색출하는데 생긴 분란이 좀 길어질 모양이다.

         

         일반 대중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숨겨지는 비밀도, 관련된 사람이 아니면 모르는 이면 정치도 많은 동네인만큼 앉아서 세상의 흐름을 전부 파악하는 건 무리겠지만.

         

         며칠간 꾸준히 시청한 결과, 기업 쪽에서 알아서 하길 더 기다렸다간 이목이 쏠려도 지나치게 쏠리겠다 싶으니 물밑에서 조용히 덮어야겠다~ 하는 게 내 최종 견해라고. 응,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엥? 이미 아침 저녁으로 대문짝만하게 특보까지 탔는데 너무 늦은 게 아니냐고?

         

         어차피 조회수와 시청률만 빨 수 있다면 뭐든지 하는 게 이 친구들이다. 사람들에게 어필하는데 더 네거티브가 먹어주는 만큼, 이슈가 잦아들기 시작하면 또 다른 문제를 물어서 시끄러울 테니 걱정 없다.

         

         그리고 원인을 끝까지 더듬어 봤자 결국 나오는 건 전 엑사테크 연구원 L 모씨의 피로 얼룩진 복수극일 텐데 뭐.

         

         해커 아나스타샤? 저는 브로커조차 안 거친 지명 의뢰 같은 걸 함부로 받은 기억이 전혀 없답니다? 아하하하.

         

         

         [ 아직도 거주지를 얻지 못한 난민을 비롯해, 시민들은 아직 폐쇄 도시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엑사테크는 하루빨리 자존심을 내려놓고 엘리시움에 자문을 요청하길 바라며 오늘의 오전 뉴스 이만 마치겠습니다. 메모리얼 타임즈의 에린 스컬리였습니다. ]

         

         

         사뿐, 하고.

         최근 애용한 24시간 뉴스 채널에서, 아침반 유명 아나운서 씨가 강경한 태도로 기업을 비판하는 척하며 인기몰이 하는 걸 배경음 삼아 소파에서 뛰어내렸다.

         

         거의 병 주고 약 주는 꼴이 되겠지만 외면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오랜만에 외출할 시간이다. …원래는 못해도 한 시간 전에 나가보려고 했는데, 그 놈의 수제 버거가 뭐라고.

         

         그냥 육즙 좀 넘치고, 빵도 고기도 녹아내릴 정도로 부드러울 뿐이었는데 한 입 먹은 순간 이성이 약간 흐릿해져서 꾸역꾸역 먹어 치우곤 여태 포만감을 이기지 못하고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역시 미국이 사라졌어도 햄버거엔 존나 진심인 땅덩어리의 위용을 느꼈달까… 아, 또 먹고 싶어지네. 쓰읍.

         

         “칩 샵(Chip Shop)에 가자. 직접 돌아다니면서 일일이 바이러스를 회수하는 건 무리지만 막을 수단을 팔아주는 정도의 노력은 해야지.”

         

         –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

         

         내가 무슨 어디 귀족도 아닐진대 사방을 둘러싸고 외출복을 입혀주려는 제로와 한바탕.

         게다가 드로이드가 이젠 양옆으로 따라붙을 예정인지라, 별도로 부른 중형 택시가 밖에서 대기 요금을 정산하기 시작했단 소식에 또 우당탕탕 채비를 마치고 복도로 나왔더니.

         

         “아.”

         

         우리집과 똑같이 생겨 먹었고 겉보기엔 달라진 점 하나 없는데도 새삼스런 느낌을 주는 건너편 출입문을 마주했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길에 이런 관문도 있었지 참.

         

         솔직히 그 에다마츠 상임이사님. 그러니까 쇼우가 내비친 집착이 정말 보통이 아니었던지라 아론이 뒷수습까지 하고 왔다고 말했을 때도 사실 긴가민가 했는데, 기어이 경호원 명목으로 추적자를 붙인 걸 알게 된 지금은… 기분이 묘했다.

         

         초인 스토커가 바로 뒤에 붙었다라.

         사생활을 담보로 일신의 안전을 조금 확보했다 생각하면 그렇게 나쁜 거래는 아니라 생각하지만, 등쪽이 영 서늘한 건 어째서일까?

         

         원작 개연성아 제발 조금만 더 무사히 버텨주렴. 나는 가급적 구석으로 빠져있을게.

         

         “……댁도 고생이 많아 아주. 마사나리, 수고해.”

         

         닫힌 문을 향해 무심코 나지막한 인사를 던져 놓고도 상대가 들었는지 확신이 없었으나, 추적자의 청각이라면 충분히 들었을 거란 제로의 보장에 손을 마저 흔들어주고 몸을 돌렸다.

         

         좋은 거 마음껏 챙겨 먹고, 사야 되는 물건들도 다 사려면 돈이나 열심히 벌러 가야지.

         

         머리 한구석에서 ‘엄연히 네가 만들어낸 악성 코드인데, 해결책을 돈 받고 팔겠다는 건 어디서 배워 먹은 악마적 발상이냐!’ 같은 지적이 떠올랐지만 애써 무시했다.

         

         이게 직접 해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또 엄밀히 따지자면 나름 200년 가량의 전통이 있는 사업 방식이거든요?

         그리고 내가 먼저 수상쩍은 방식으로 접근한 게 아니고 당한 사람들이 애타게 바랬다니까? 정말로!

         

         ….

         …….

         

         에이씨, 피해자가 더럽게 많다고 하면 대충 무료 소프트웨어로 풀어버리던가 해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해커(진)의 길을 걸을 뻔한 누군가.

    띠링띠링 님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고봉밥에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분량이 너무 들쑥날쑥하는 건 지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제 머리통(단단함)은 관리하기 힘들다고 하네요… 네.
    김세영_888 님의 1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239화에 감사를… 그런 연재분도 있었나요? 윽! 머리가….

    IF 형태의 외전을 ?화로 공통 분류했는데 그로 인해서 많은 분들이 ‘헉 ㅁㅊ 이게 머야!’ 하고 놀라셨던 것 같습니다.
    본편과 연관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는 부분을 개인의 상상에 맡기고자 소제목을 모호하게 적었었는데 역시 더 직관적으로 표기해두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혼란을 유발한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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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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