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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1

     [제국력 98년 12월 31일 오후 11시 34분, 지브롤터령 바르셀로나 지구 총독부.]

     밤은 깊어가고, 한창 사람들이 침대에 누워 잠에 들 시각.

     까ㅡ앙, 까ㅡ앙, 까ㅡ앙.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땅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

     혹은 곡괭이로 광맥을 캐는 소리.

     저기 광산에서 주로 울려퍼지며, 간혹 사람이 흥얼거리는 소리가 깡깡거리는 음과 함께 박자를 맞춘다.

     한창 자는 사람 옆에서 틀면 깨어나서 욕지기를 내뱉을 소리.

     하지만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이 맑고 고운 소리는 이 집무실에만 울려퍼지고 있으며, 소리를 내는 원흉은 내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진 마도 녹음기니까.

     음성녹음 마법이 저장된 마도구.

     소리의 진동을 마나의 떨림으로 파장을 읽어내, 그 소리를 파장으로서 재생하는 특별한 물건.

     노스트럼의 마법이 당시 저장된 소리를 그대로 담았다가 출력을 낮추어 방출한다고 한다면, 제국의 마도구는 그 당시의 소리는 아니지만 최대한 비슷한 파장의 정보를 저장해뒀다가 방출하는 형식이다.

     까ㅡ앙, 까ㅡ앙.

     

     그 소리의 내부, 점차 이질적인 소리가 엮여들고 있다.

     -흐흐, 여기까지 왔으면….

     -찾았다! 이 쓰레기자식!

     사람의 고함소리.

     나는 광질에 묻혀 나오는 아주 미약한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자, 잠깐만! 지, 진정해! 나는 이걸 결코…!

     -노스트럼의 황금을 캐다가 제국에 바치려고 한 민족의 배신자!

     -배, 배신이 아니야! 그저 나는-

     다툼과 분노, 그리고 황금 울리는 소리.

     푸ㅡ욱.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잔인하고도 잔학한 살육의 소리.

     “굳이 더 재생할 필요도 없군.”

     나는 녹음기의 재생을 멈췄다.

     “내일 재판은 이거 하나로 충분하겠어.”

     “괜찮은 겁니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누가 누굴 죽였는지 자명하지 않은가.”

     집무실 소파의 뒤에 선 로버트가 걱정어린 목소리로 말했으나, 나는 그에게 솜누스 차가 든 잔을 드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작업 중에 금을 훔치려고 했으면 죽는 거지. 바르셀 후작령이었을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지금은….”

     “그래, 그래. 이런 도둑질을 하려는 이들조차 광맥으로 들어가고 있지. 로버트 경. 명심하게. 사람이 많이 꼬이면 결국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고, 그게 돈과 관련된 거라면 무조건 확산되게 되어 있어.”

     나는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진 파일첩 하나를 집어들었다.

     “한 달 월급 가지고도 죽고 죽이는 사고가 발생하는데, 하물며 금덩어리라면 오죽하겠는가.”

     제국식 종이 분류법으로 엮인 파일첩 겉에는 [12월 30일, E4 구역 광부 집단 살인 사건]이라는 나의 글씨가 적혀 있다.

     “별 거 없다네. 광부 중 하나가 캐낸 금덩어리를 훔쳤고, 그걸 본 다른 상급 광부들이 고발하기도 전에 집단 린치로 죽여버린 것 뿐이야.”

     안에는 사망자에 관한 정보, 사망 시각, 용의자 등이 잔뜩 적혀있다.

     내가 쓴 필체는 아니지만, 300명의 총독부 행정관 중 일부가 조사한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일주일 전에 일어난 사건과 비슷하지.”

     “…….”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을 하지 못했나?”

     “그, 아뇨. 제가 답답한 건 이번 사건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서류철은 하나가 아니다.

     “정말이지, 어떻게 이렇게 많은 ‘범죄’들이 끊이지를 않는 걸까요?”

     “그야 당연히….”

     “단순히 금광에 채광하러 온 이들이 많아졌다고 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있지만-”

     “그저 노스트럼 사람들이 일으키는 사고가 지금까지 ‘범죄가 아니었다’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어서라고 해도, 사건이 일어나는 양상이 너무 과합니다.”

     “그거야-”

     “죽일 것까지도 없고, 죽이는 과정에서 매국노라거나 배신자라거나 운운하며 죽일 이유도 없죠. 이건 그냥 죽이려고 하는 거에 아무 명분이나 가져다 붙이는 겁니다.”

     “…….”

     로버트가 내가 하려는 말을 족족 다 빼앗아가버렸다.

     

     “로버트 경.”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괜찮아. 아직 100점 남았거든.”

     “…남았다고요?”

     “내가 마지막을 장식하게 해주는 배려가 아니었나? 뭐, 어느 쪽이든 고맙네.”

     나는 사건이 기록된 서류철을 책상 아래로 밀어넣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광맥은 누구의 구역이지?”

     “하르마니아 자작가입니다.”

     “그거, 세이레네 백작가로부터 양도받은 거지?”

     “예. 그렇습니다. 두 가문 사이에 큰 거래가 있었는데, 하르마니아에서 관리하는 삼림을 세이레네로 넘겨준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하르마니아 자작가의 삼림.

     기억에 있는 지역이다.

     “거기에 제국식 별장 하나 지어지겠군.”

     세이레네 백작은 금광 채광권을 사기 위해 별장에 왔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여러 구역에 대한 채광권을 사들였으나, 동시에 연회가 열린 별장 자체를 훑어보며 새로운 돈 벌이를 구상했을 것이다.

     “배를 타고 넘어온 제국의 큰 손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별장 말이야.”

     모든 사람이 무능왕처럼 어리석지는 않다.

     어쩌면 무능왕도 나름은 마냥 멍청하지 않을 수 있다.

     황금여명이 남겨둔 별장을 보고 자신도 그런 휴양지를 만들어 접대하려는 곳으로 만들려고 하는 이도 있고.

     별장에서 모종의 만남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닫고 웃돈을 주고서라도 금광 채광권을 사들이려고 하는 이들도 있고.

     탄광 개발에 대한 권리 자체를 판매하여, 그걸로 구매자로부터 돈이든 땅이든, 혹은 자식이든 다른 가치로서 이득을 보는 이들도 있다.

     “별장에 온 제국 큰 손들을 보고 자기도 그런 사업을 하려고 하다니. 역시 백작 자리는 허투루 지키고 있는 게 아니야.”

     “도…백작님.”

     로버트는 도련님이라는 칭호가 여전히 익숙한듯 잠시 어색해했으나, 곧 공식적인 칭호로 나를 바꿔부르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들’을 동원할까요?”

     “…….”

     “필요하다면 [황금향]을 당장이라도….”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나는 단호히 고개까지 가로젓는 걸로 내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로버트 경. 자리가 생기고 권위도 생겼지. 롤랜드 후작가나 세이레네 백작가였다면, 자네의 판단이 맞을 거야.”

     “이미 제가 걱정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해결책은 다 마련해두신 겁니까, 백작님?”

     “그렇지.”

     “하지만 저는 계속 도련님께 제 걱정을 말씀드릴 겁니다. 놓치시지는 않겠지만, 제 시각에서 바라보는 인상도 하나의 정보로서 파악하고 계시니.”

     “경도 슬슬 정치인들 특유의 ‘복잡한 말하기’를 할 수 있게 되었군.”

     “누구 덕분에요.”

     아주 간단하게, 3줄로 요약하자면.

     -저도 짬 좀 찼는데 훈수 해도 됩니까?

     -나대지마라.

     -예.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하겠습니다.

     라고, 조금은 상스럽게 정리할 수 있겠지.

     “걱정하지 말게. 매국노로 몰려서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당장은 큰 문제는 없을 거니까.”

     “제국인, 아니 제국을 향한 혐오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같은 노스트럼 사람을 매국노로 몰아서 죽일 만큼.”

     “실제로 그런 감정이든 아니면 그걸 변명의 수단으로 쓰고 있든, 제국 자체에 대한 분노와 혐오가 황금 광맥과 함께 드러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지.”

     “제국인들이 와서 밤낮으로 광맥을 두드리고 있으니까요?”

     “그렇기도 하고.”

     깡, 깡, 깡.

     실제로 들린 소리는 아니지만, 귀에서 환청처럼 금광을 곡괭이로 캐내는 소리가 울린다.

     “지금까지는 황금여명이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어서 몰랐는데, 이렇게 막상 수천 수만 명이 곡괭이 들고 까보니까 엄청난 게 발견되기 시작하는 거지.”

     거대한 덩어리를 캐내고, 그 덩어리를 쪼개고 쪼개어 금 덩어리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러다가 간혹 ‘금맥’ 자체를 찾아내고.

     “금인 줄 알았는데 그냥 황이었다거나, 고갈되지 않을 줄 알았던 금광이 사실은 말라가고 있었다거나….”

     “가문의 묘지 아래에 금맥이 있어서 지금 묘지 전체가 파헤져지고 있다거나?”

     “후손 입장에서는 복권이 당첨된 건가? 조상이 후손을 위해 황금을 넘겨주려고 무덤으로 위장을 하고 있었다는 의견도 있어.”

     “덕분에 손자손녀라는 작자들이 다 나타나서 난리도 아닙니다.”

     “그렇긴 하지.”

     있던 금은 고갈되고.

     없던 금이 생겨나고.

     “정말, 인간에 대한 혐오감이 듭니다. 금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사람은 위치에 따라 시각이 달라지는 법이지. 로버트 경이 지브롤터의 기사가 되기 전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작업복 주머니에 금가루라도 어떻게 흘려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지금쯤 삽들고 광질이나 하고 있었겠죠?”

     “그런 거야.”

     금인지 황인지 아니면 금색의 마석인지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상황.

     “제국에서는 지금 이곳의 상황을 두고 [바르셀로나 골드러시]라고 표현을 하더군.”

     “제국 금값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의 막대한 금이 나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칼럼에서요?”

     “왕국의 금화를 몰래 빼돌려서 위조한 작자들이 이제와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우습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죄다 싫어하지는 말게.”

     로버트 경은 지금 분노와 혐오에 물들어있다.

     “모든 인간이 쓰레기는 아니야, 경.”

     “비율로 따지면 대략 몇 %될 것 같습니까?”

     “제국의 어떤 학자는 인간 본성에 대해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게 태어난다’라고 주장하고 있지.”

     “그 말, 앞으로 지지하게 될 것 같습니다.”

     성악설을 믿게 될 수밖에 없다.

     “아니, 솔직하게 까놓고 이야기해서, 채광권 팔고 불과 몇 달도 안 지났는데 하루에도 5건 씩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것도 금광 관련된 걸로!”

     “그러게 말이야.”

     바르셀로나는 현재, 범죄가 시도때도 없이 발생하고 있다.

     “시민들이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습니다! 도련님이 총독으로 와서 땅을 다 팔아버렸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거라고!”

     “저런. 안타까워. 집에 있는 곰팡이를 지적하여 청소하려는 사람에게, 저 인간 때문에 곰팡이가 늘어났다고 하는 걸 들으면 말이지.”

     “그러니까요! 바르셀 후작가 시절에는 뭐 이런 일이 없었겠습니까. 젠장. 단지 그 때는 냅다 황금여명 기사들이 모가지를 쳐내고 그랬으니까 그런 거지.”

     “그래. 제국식으로 법률에 의한 판결을 내렸다가는, 내가 아스타시아와 함께 해야 하는 소중한 시간이 전부 범죄자들이 떽떽거리는 걸 들어주는 시간으로 끝날 지도 몰라.”

     지금까지 누구도 ‘문제다’라고 지적한 적이 없던 걸 문제라고 말하고 있기에, 그걸 해결하는 것은 곧 총독과 300명의 제국행정관들에게로 쏠리게 되었다.

     “후우. 도련님. 뭔가 대비책은 있으시죠? 그, 차라리 ‘전통’에 의한 처리를 하라고 할까요?”

     “전통? 하. 흰 장갑 대신 광부용 글러브 던지고, 랜스 대신 삽을 들고 정정당당히 승부해서 이긴 사람이 금덩어리를 차지하라고 하라고?”

     “덤으로 시체까지 그 삽으로 치우라고 하는 겁니다.”

     “괜찮군. 하지만 금덩어리 위로 시체 썩고 그러면 금이 오염되니까 내키지 않는군.”

     “금도 오염이 됩니까?”

     “금 위에 구더기 끓고 핏물 묻어있던 ‘정보’가 남게 되지. 잘 닦아서 팔아치우면 아무도 모르겠지만.”

     “하하….”

     재판이 아닌 결투.

     차라리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말하고 싶다.

     “하여튼 이 사건은 그렇게 정리하지. 후. 새해 넘어가는 시간을 로버트 경과 함께 보내다니.”

     “그렇다고 오로솔로 가실 것도 아니고, 아스타시아 황녀님을 이곳으로 부를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렇지. 적이 많다는 건 언제나 힘들기 마련이니까.”

     그도 그럴게, 나는 지금 금이 원인이 된 살인에 신경을 쓸 수가 없다.

     “아. 슬슬 시간이 되었군. 로버트 경, 한 살 더 먹은 걸 축하하네.”

     “성인까지 앞으로 1년 남은 거, 축하드립니다. 도련님.”

     제국력 98년의 연말에도 총독부 집무실에서 로버트 경과 둘이 있는 이유.

     “새해를-”

     와장창!

     

     유리창을 깨뜨리며 안으로 날아든 무언가.

     동그란 구체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우리의 발치 앞에 떨어졌다.

     서걱.

     로버트가 허리에 찬 검을 한 번 건드린 순간, 구체가 반으로 갈라졌다.

     “…거 참, 아주 화려하게 축하해주는군요. 도련님.”

     “아직 안 끝났다네, 로버트 경.”

     나는 천천히 깨진 유리창을 향해 다가간 다음, 지팡이를 가볍게 빙글 돌리며 뒤로 넘겼다.

     “방심하면 이렇게 한 번 더 날아오거든.”

     구체 하나가 나를 향해 날아오려던 순간, 나는 그대로 지팡이를 휘둘러 구체를 받아쳤다.

     콰ㅡㅡㅡㅡ앙!

     허공에서 일어난 폭발.

     무언가 투명했던 것이 모습을 드러내며, 곧 아래로 검은 형체 하나가 아래로 추락했다.

     “제국인들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비룡에 의한 익스플로젼 마석 투하 공습이라. 하하. 오랜만이군.”

     “13일 만인데요.”

     “나에게는 그 13일이 13년 같아서 말이야.”

     테러다.

     “새해 자정부터 정말이지, 거하게 축하해주는군.”

     나는 현재, 테러에 시달리고 있다.

     “스스로 백은이 되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아서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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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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