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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2

       제아무리 하이엘프라고 해도 아카데미에 학부생으로 있는 이상 업신여겨선 안 되는 존재가 있다.

       

       설령 대통령 자식이 입학한다고 하더라도 예외는 없다.

       

       “교, 교수…?”

       

       그런 존재에게 대들었다간 대학 생활은 물론이고, 커리어 전체가 뒤틀릴 수도 있었다.

       

       “교수라고? 당신이?”

       

       리케는 자지러지며 뒷걸음질을 쳤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눈앞의 인간은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지금 내가 거짓말하는 걸로 보이냐? 입을 열지 않아도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꿀꺽. 리케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거, 거짓말하네. 끽해 봐야 나랑 비슷비슷한 나이 같은데, 교수라니! 거짓말을 할 거면 조금 더 그럴듯하게 하시지?”

       

       여자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녀가 입을 열지 않을수록 다급해지는 쪽은 리케였다.

       

       원래의 리게라면 자기 또래가 교수라는 말을 늘어놓았을 때 헛소리 말라며 비웃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리케는 보이지 않는 기세에 눌려있었다. 머리에 거대한 모래주머니를 얹은 것처럼 척추가 찌르르 울렸다.

       

       “제가 지금 거짓말을 하는 걸로 보입니까.”

       

       여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어느덧 말투도 존대로 바꾼 뒤였다.

       

       대하는 태도는 공손해졌지만, 그 탓에 불안감만 더욱더 커질 뿐이었다.

       

       리케는 몰래 유피엘을 흘겨보았다. 조금 전까지 트집을 잡아 괴롭히던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하이엘프라고 해서 다 같은 편인 건 아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피어바인 가문과 사이가 좋지 못하다. 민주화 이후로도 둘이 다른 당파에 속했던 탓에 갓난아이 때부터 서로 견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릴 적부터 지도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철저하게 받는다. 그 탓에 하이엘프 대부분은 심성이 억세고 잘 굽힐 줄을 몰랐다.

       

       리케가 알기로, 유피엘도 마음만 먹으면 자신처럼 드세게 나올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저, 그…….”

       

       유피엘은 입술을 쫑긋거리다가 이내 포기했다.

       

       그녀답지 않은 나약한 모습.

       

       유피엘의 저러한 태도는 한 가지 사실을 방증한다.

       

       그녀보다 눈앞의 인족 여자가 이곳 일리야드에서 서열이 높다.

       

       쿵쿵쿵쿵.

       

       심장이 격하게 뛰었다.

       

       “…교, 교수라는 증거 있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새파란 년이 명문 학교의 교직원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심지어 인간은 엘프보다 노화가 빠르다. 이 정도면 외모면 최대한으로 잡아 봐야 대학원생인데.

       

       어째서.

       

       어째서…!

       

       “아틸레스관 208호로 오십시오.”

       

       어째서 이런 대답을 내놓는 거지?

       

       너무나도 예상 밖이었다.

       

       “리케 로스차일드 학생.”

       “네, 네헷?!”

       

       갑작스러운 호명에 혀를 씹고 말았다. 찔끔, 하고 눈물이 나왔다.

       

       “마침 학생 눈동자도 빨갛군요. 광산에서 막 캐낸 홍옥과도 같습니다.”

       “아, 그, 저……”

       “리케 학생, 혹시 화계마도이론에 관심 있으신가요?”

       “어, 어, 아….”

       “학부생 인턴은 언제라도 받고 있으니 시간 날 때 제 연구실로 찾아오시면 됩니다. 참고로 오피스 타임은 지금부터 세 시까지입니다.”

       

       리케의 세상이 눈 오는 날의 들판처럼 하얗게 물들었다.

       

       여자가 내뱉는 모든 말에서 전율이 느껴졌다.

       

       이거, 학부생이나 대학원생은 흉내 못 내는 말과 행동이다.

       

       “호, 혹시 성함이…?”

       “아스테야 하이젠버그.”

       “하이젠…….”

       

       한파보다도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듣도 보도 못한 가문이었지만, 리케는 전혀 여자를 업신여기거나 할 수 없었다.

       

       아스테야 하이젠버그라고 하면 이번에 특별반으로 부임한 교수 아닌가. 워낙 일처리가 빠르고 머리도 잘 돌아간다면서 리케네 반 담임이 칭찬하던 기억이 있었다.

       

       젊다는 소리를 듣긴 했는데, 설마.

       

       “선생님….”

       

       유피엘이 여자의 옷자락을 슬쩍 잡아당겼다.

       

       “전 괜찮아요. 그러니까….”

       

       저걸로 끝이었다.

       

       저 유피엘이.

       

       저 대학원 가고 싶어서 안달인 공붓벌레가, 똑똑한 교수 눈에 띄고 싶어서 발악하는 유피엘 피어바인이.

       

       아무에게나 굽히지 않는 긍지 높은 하이엘프 일족이, 눈앞의 여자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굴종적인 자세를 보이다니!

       

       “시, 시, 시, 실례했습니다……!”

       

       리케는 고개를 숙이며 손수건을 꺼냈다.

       

       “제가 교수님을 몰라뵀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게 아스테야의 구두를 광택이 나도록 닦아준 뒤 패거리를 데리고 부리나케 튀었다.

       

       리케는 물 위를 걷는 바실리스크 도마뱀처럼 총총거리며 도망쳤다.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교수의 시야각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조졌다, 조졌다, 조졌어…!”

       “하아, 하아…! 왜 그러는데…?”

       “몰라서 물어? 이대로라면 로스쿨에 못 가!”

       

       그녀는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검찰총장에 오르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려면 일단 법학대학원에 진학해야만 했다.

       

       로스쿨에서 보는 것은 학벌과 학점, 그리고 적성고사. 그 외에 여러 스펙도 필요하지만, 일단 시험과 학점이 가장 중요했다.

       

       리케의 본 전공은 화계마도였고, 아스테야도 화계마도이론 전공이었다.

       

       “혹시 마주치면 어쩌지? A0라도 맞으면 끝장인데…. 아니야, 잘못하면 B를 맞을 수도 있나? 그렇지만 발을 밟아버렸는데…. 어쩌면 D를 줄 수도….”

       

       휴학하거나 가문의 힘을 써서 아스테야와 마주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휴학한다고 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촉박하다. 검찰직에는 나이 제한이 있어서, 총장을 하고 싶으면 용퇴 압박을 받기 전에 빨리 올라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로스차일드의 힘을 쓰는 것도 안 된다. 지금 그놈의 마수 때문에 전국적으로 개혁과 쇄신을 하고 있다. 잘못하면 마수로 몰려서 가문 전체가 풍비박산날 수도 있었다.

       

       결국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

       

       한 번은 아스테야를 만나야 한다는 건데.

       

       이 지랄을 해놓은 이상 그녀가 자신에게 A+를 줄 리 만무했다.

       

       “만약 떨어지면 어떡하지? 부모님 얼굴은 어떻게 보지? 국민들이 날 멍청이로 볼 거야. 호적에서 파일지도 몰라! 아, 아악, 아아악…!”

       “리케, 정신 좀 차려!”

       

       보다 못한 다른 엘프가 리케의 등을 툭툭 쳐댔다. 리케는 악몽이라도 꾼 것처럼 숨을 헐떡거리며 그대로 근처 벤치에 쓰러졌다.

       

       

       **

       

       

       “꼬시다.”

       

       유피엘은 통쾌한 표정을 지었다. 에테르는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슬그머니 정자에 앉았다.

       

       현재 계절은 가을. 하늘은 민천(旻天)이라 높고 푸르르며 또한 공활하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유피엘이 곁에 앉으며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고마워요.”

       “아니다.”

       

       유피엘은 멋쩍으면서도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었다. 로테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풋풋한 웃음이었다. 에테르는 입꼬리를 올리며 가식을 부렸다.

       

       여기서부터 시작이구나.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담임으로서 조금 알아야겠구나.”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를 틔웠다. 유피엘은 떡밥을 문 물고기처럼 좋아라하며 청산유수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차마 가식으로만 들어줄 수가 없었다.

       

       “저는 ‘마나 고갈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어요. 선천적으로 많은 마소를 몸에 저장하지 못해요. 그래서인지 아무리 노력해도 상급 이상의 마법을 못 쓰겠더라고요.”

       

       그런데도 소녀는 노력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일리야드에 성적장학금까지 받아가며 입학했다.

       

       “그 이후로도 열심히 공부했어요. 전투라도 못 익히면 이론이라도 익히자, 하고.”

       

       에테르는 저도 모르게 동질감을 느꼈다.

       

       사실 1천 년 전 자신도 유피엘과 같았으니까.

       

       ‘너는 전투에 어두우니 이론 연구에만 집중하도록 하라. 이론만 완벽하면 마력초 한 모금만 물더라도 전장을 휩쓸어 버리는 날이 올 것이다.’

       

       마왕이 마왕이라고 불리기 전, 자신에게 했던 말.

       

       그 말을 받들어 전계마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해안가에서 자석을 발견하고, 유리에 헝겊을 문질러서 전기를 발견하고.

       

       그렇게 발견하고 발견하고 또 발견해서, 이론으로 한데 묶어 최초 네 개의 기본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그때부터이기도 했다. 금안족이 마왕군을 창설하고 여신에게 반역한 것은.

       

       “리케는 저나 레니냐라는 금안족 친구를 사사건건 괴롭혀 왔어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면서 공부를 못하게 막았고요.”

       “너희 둘이 공부를 잘했나 보네.”

       

       유피엘은 씁쓸하게 웃었다. 동시에 쑥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이번엔 세계수 건으로 트집을 잡은 모양이구나.”

       “네. 그럴 거예요.”

       “왜지?”

       “저희 가문에서 세계수를 관리하니까요.”

       

       유피엘이 말하길, 현재 자기 친족 중에 국회의원만 열 명에 숙부는 국회의장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리케 말도 맞아요. 별다른 일이 아니라면 저희 쪽에서 예산 통과하는 건 금방금방 하니까요.”

       “허어.”

       “그도 그렇잖아요. 세계수 관리비를 늘리겠다는데 반대할 엘프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세계수는 엘프들의 국목이다. 정령이다. 힘의 원천이었다. 또한 여신 그 자체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신목을 잃어버려선 안 된다. 옹이구멍에 박혀 있는 로드스톤을 마왕군이 가져가도록 해선 안 된다. 세계수가 불태워지는 것 또한 막아야 한다.

       

       나머지 세 로드스톤을 모조리 빼앗긴 상황. 세계수를 지켜내지 못하면 마왕은 부활하고 세상은 암흑기로 접어든다.

       

       현재 카우렐리아의 수도 메르헤름은 아렌스 대륙 최후의 보루였다.

       

       “가문에서 어렴풋이 들은 것도 있어요.”

       

       머지않아 마왕군이 쳐들어올 것이다. 얼마 전에 크푸넬 천문대에서 지진파를 관측했는데, 이상한 파형이 관측되었다. 등등.

       

       “이상한 파형이라니?”

       “방향은 엘랑카야 산맥 위쪽이라고 추측했대요. 전문가 말을 들어보니 마왕군이 무시무시한 마법을 테스트했다고…….”

       

       유피엘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그 마법이 낸 폭발 한 번에 세계수가 그냥 사라질 거라고 해요.”

       “설마, 그런 마법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역시 그렇겠죠…?”

       

       이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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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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