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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2

       “……그렇다면, 이번 전투는 기꺼이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레나가 내 쪽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그 모습은, 뭐랄까. 조금 표정을 감추려는 것 같은 분위기이기도 했다. 표정을 억지로 확인할 필요는 없으리라.

        

       “감사합니다.”

        

       나는 레나에게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하고, 이번에는 소피아 쪽을 보았다.

        

       나와 마주친 소피아의 동공이 흔들렸다.

        

       “소피아, 당신도—”

        

       “황녀님.”

        

       내가 소피아에게 말을 거는데 레나가 끼어들었다.

        

       “말씀을 하시기 전에, 제가 먼저 의견을 밝혀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죠.”

        

       무슨 말이 나올지 알 것 같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레나와 소피아 모두를 데리고 갈 거라면 이런 오해…… 음, 오해라고 하기에는 한없이 ‘사실’에 가깝겠지만, 아무튼 서로 마찰을 일으킬만한 이야기는 최대한 풀어놓고 가는 쪽이 중요했다.

        

       정말 중요한 순간, 내 목숨을 확실하게 맡겨야 하는 순간에 상대를 믿지 못하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파티원을 모두 살리면서 이야기의 끝을 보는 거지, 도중에 파티가 붕괴하는 유열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모두를 데리고 가는 것 보다는 혼자 가는 게 낫지 않겠냐’라고 물어보는 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원작에서는 주인공과 떨어진 히로인이 사망하게 되기도 한다. 원작에서 파티를 구성하는 인원은 최대 네 명이고, 서포트 캐릭터로 두 명을 더 넣어서 교체하며 전투한다.

        

       당연히 최종전에서 파티를 구성하고 나면 남는 인원들은 ‘주인공의 시야 밖’이 된다.

        

       클레어는 게스트 캐릭터로 등장해 앨리스를 위해 죽는 역할이라 그 죽음이 고정되어있지만, ‘선택에 따라 사망하는 캐릭터’는 시야 바깥쪽 트리거에 고정되어있다. 겨우 상황을 끝내고 돌아와 보니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캐릭터가 있고, 주인공은 그 죽음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시야 바깥의 트리거도 어느 정도 고정되어있어서, 로티와 제이크를 함께 최종파티에서 제외하면 로티를 지키기 위해 제이크가 확정적으로 사망한다던가, 제자를 지키기 위해서 제니퍼나 캐롤린이 희생한다던가 …… 여러 조건이 있었다.

        

       그러니, 만약 이 세계가 조금이라도 원작을 따라간다면, 가장 안전한 방법은 주인공인 ‘레오’ 근처에 모든 주요 등장인물들을 모아버리는 것이다.

        

       게임에서는 시스템의 한계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세상에는 그런 제한 따위 없으니까.

        

       “소피아 비앙키 님은, 간밤에 우리가 맞섰던 그 교단 측의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그때 추기경이 소피아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만약 법국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백 퍼센트 신뢰할 수는 없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나는 너를 그냥 믿지 않는다’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레나와 소피아가 티격태격하고 있었던 이유도 소피아가 나를 몰래 따라다녔기 때문이라는 것 같고.

        

       그렇다면 레나는 나를 몰래 따라온 것은 아니라는 말일까? 음, 내가 제이크와 로티를 찾아다녔던 것처럼 찾아다니는 중이었을지도 모르지. 반면에 소피아는 대놓고 의심스러운 행동을 했을지도 모르고.

        

       “…….”

        

       소피아는 레나의 그 말에 차마 뭐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본인이 생각해도 지나치게 의심스러울 테니까.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소피아 편을 조금은 들어주기로 했다.

        

       “그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내 말에 레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놀랐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설명을 요구하는 눈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내가 구구절절하게 그 사실을 말하기 전에 소피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 맞아요. 황녀님은 이미 저의 정체를 눈치채고 계셨어요. 사실 감시라는 명령은 그 순간 의미가 없어졌을지도 모르죠.”

        

       소피아가 나를 감시하건 말건, 나는 그냥 내 할 일 다 하면서 살았다. 사실 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다 보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대체 어떻게 보고를 해야 할지 막막했으리라. 특히 마치 미래를 보고 있다는 듯 지하 시설을 죄다 꿰뚫고 있고, 법국이 하려던 위험한 짓을 미리 방지하는 것까지 봤으니까.

        

       “그렇다면 더욱—”

        

       “하지만.”

        

       소피아의 말에 레나가 반박하려고 하자, 소피아는 바로 뒷말을 이었다.

        

       “저도 저대로 생각이라는 걸 하고 살거든요?”

        

       레나가 짜증 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조금은 당당하게 나서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지, 소피아의 그 목소리는 조금 앙칼졌다.

        

       말하자면, 원작의 소피아의 목소리에 한없이 근접한 목소리였다.

        

       솔직히 나는 그 목소리가 조금 웃겼다. 원작이었다면 굉장히 짜증 나는 목소리였겠지만, 언제나 내 앞에서는 조심조심하던 소피아가 드디어 그 목소리를 내는 것을 들으니 오히려 조금 반가울 지경이었다.

        

       뭐, 원작에선 더빙이 일본어였고, 여기서는 한없이 영어에 가까운 가상언어였으니 그 느낌이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었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제국이고 법국이고 뭐고 간에 황제를 막아야 한다는 게 명백하잖아요? 그리고 황녀님은 당당하게 그 황제를 막으러 가겠다고 하고 계시고요. 설령 제가 법국 사람이고, 법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황녀님의 편을 드는 게 훨씬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내가 이렇게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그래, 사실 지금 시점에서 황제에게 당당하게 맞서려고 나서는 게 나 뿐이긴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좋아요, 그럼.”

        

       소피아의 말을 듣고도 끝까지 의심을 벗지 못하는 레나를 보고, 소피아는 손으로 조금 거칠게 자기 앞섶을 뒤졌다.

        

       당연히 옷을 벗으려는 것은 아니었고, 목에 걸고 있는 펜던트를 꺼낸 것이었다.

        

       물방울 모양의 작은 은제 장식에는 한 여인의 옆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목 언저리까지밖에 새겨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림에 표현된 부분만 보자면 머리카락이 무척 길어 보이는 미인이었다. 물론 극사실적으로 새긴 것은 아니고, 채색 안 된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모양이긴 했지만.

        

       눈을 감은 여신의 옆모습은 여신교의 상징이다.

        

       “여신님께 맹세하겠어요. 저는 적어도 그 작전이 끝날 때까지는 황녀님을, 그리고 황녀님을 따르는 다른 분들을 적대하지 않을 거예요. 배신도 하지 않겠어요. 여신교도가 여신님께 한 맹세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고 계시죠?”

        

       “하지만 그러면 작전이 끝난 직후에—”

        

       “아, 진짜!”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 맹세에 태클을 거는 레나를 보고 소피아는 다시 한번 짜증을 낸 뒤,

        

       “작전이 끝나고도 ‘한동안은’, 그러니까 며칠 정도는 어떤 일이 있어도 황녀님과 황녀님을 따르는 이들과 적대하지 않겠어요. 제 감정이 상하건, 종교적인 이유에서건. 그리고! 황녀님과 동격이라고 생각되는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함께 싸우는 이들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고, 여신님 앞에서 맹세! 합니다!”

        

       말하는 도중에 다시 레나가 입을 열자, 그 입에서 말이 나오기 전에 소피아가 빽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그 장식을 꽉 쥐고 있던 소피아의 오른손 손등에서 푸른 빛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왔다. 한순간이지만 반투명한 문신 같은 모양이 선명하게 보였다.

        

       저건 성당 기사의 규율이었다.

        

       세상에는 한 입으로 열 말이고 천 말이고 하는 이들이 널렸다. 본인이 여신교도라고 자부하면서도 여신의 이름을 빌어 거짓 맹세를 하는 이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이 몇 번이고 반복되면 그 여신의 이름에 대고 한 맹세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니 법국에서 가장 중추가 되는 성당 기사단의 단원들은 맹세할 때 신성 마법으로 자기 몸에 문양을 새긴다. 저 은제 목걸이 자체에 있는 신성력과 결합하여, 그 맹세는 맹세가 이루어지는 순간까지 그 기사의 족쇄가 된다.

        

       죽는 것은 아니지만, 고통을 느끼게 된다고 했던가.

        

       말하자면 그 추기경에게 걸린 마법의 약화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지. 추기경에게 걸린 마법은 원작에 나오지 않았지만, 소피아가 보인 저 맹세는 원작에서도 한 번 나왔다. 나에게는 오히려 저게 더 친숙했다.

        

       “……알겠습니다.”

        

       물론 레나가 그것까지는 알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저 맹세에 ‘어떤 마법’이 관여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챘을 것이다. 빛은 레나에게도 보였을 테니까.

        

       “됐죠?”

        

       소피아는 새침하게 말하더니 다시 자리에 앉아, 식어버린 찻잔을 들어 확 들이켰다.

        

       뭐, 굳이 맹세까지 하지는 않아도 데리고 갈 생각이었긴 한데.

        

       그럼 이쯤에서 마무리할까, 하고 입을 여는데—

        

       똑, 똑.

        

       문 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시죠.”

        

       내 말에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 서있는 사람은 내가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걸 보면 루테티아 왕궁의 사용인이겠지.

        

       “황녀님, 국왕 폐하께서 황녀님과 면담을 청하셨습니다.”

        

       사용인이 꺼낸 말은 그냥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드디어 법국의 동향에 대한 보고가 올라온 걸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굳이 알고 계실 필요는 없습니다만, 작중에서 제국이 쓰는 가상언어는 ‘베이식 잉글리시’를 기반으로 합니다.

    여기에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쓰일법한’ 여러가지 단어가 섞인 가상언어입니다. 따라서 진짜 베이식 잉글리시만큼 딱딱 맞아떨어지는 언어는 아니다… 라는 정도의 느낌으로만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벨부르어는 일반 프랑스어 기반이지만, 역시 여기에도 ‘일본 애니메이션에 쓰일 법한’ 단어가 다 있다는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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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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