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42

       아홉 명의 곡예사는 오베론과 첸 호크의 호위를 받아 가며 사법 극장을 나섰다.

       한여름 밤의 서커스단은 커다란 환수를 탈것으로 길들이고 있었고, 덕분에 그들은 그것을 타고 광장 위를 날아 아치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마귀들은 싸우느라 바빠서 위로 뭐가 날아가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원더랜드 외곽의 한 동산 위에 착륙했다. 그곳은 그들이 처음 도착했던 곳과 비슷한 장소였다. 그들은 각자 발급받은 티켓을 손에 쥐고 결계가 해제되기를 기다렸다.

         

       원더랜드를 나가는 방법은 간단했다. 티케터에게 퇴장권을 구매한 다음에 외곽으로 나가서 그것을 찢으면 끝이었다. 그러면 그들이 떠나왔던 장소가 서서히 나타나면서 자연스럽게 공간이 전이되었다.

         

       로드 판타스틱은 사람들을 모아두고 돌아갔을 때의 처신을 단단히 일렀다.

         

       “사도님들에게 맹세한 걸 잊지 않았겠지? 지상의 다른 동료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잠든 혼돈’에 대한 것은 절대 발설하면 안 되네.”

         

       그는 특히 엘라, 마야, 클라라 세 사람을 쳐다보며 강조했다.

       엘라와 마야는 원더스타인에게까지 말할 수 없는 것에 불만스러워했지만, 이미 약속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라는 마지못해 동의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미소를 지었다.

       바보들. 주인님은 너희 머리 꼭대기에 있어.

         

       그녀는 그들 중에서 허수아비의 정체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들이 이곳에 오게 된 것이 전부 원더스타인의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까 그가 키르쿠스를 재우러 내려간다고 했을 때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자신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만은 그가 정말로 키르쿠스의 정신 공격에도 끄떡없을 거라고 믿었다.

         

       물론 클라라가 직접 키르쿠스를 봤었더라면 그렇게까지 자신 있어 하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일행 중에서 유일하게 키르쿠스를 직접 보지 못했다. 처음 기회가 왔을 때, 그녀는 홀에 기절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오늘 잠 모래를 들어주겠다고 나선 것도 공동에 내려가 혼돈을 관찰할 기회를 잡기 위해서였다. 안 그랬다면 자신을 노예처럼 부려 먹은 오베론이 뭐가 이쁘다고 도와줬을까.

         

       그녀는 듀얼에 지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전혀 없었다. 원더스타인이 그녀가 수치심에 자살이라도 할까 봐 오베론에게 기억을 지워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여관에서 잡일을 했다고만 여겼다. 그녀는 돌아가면 주인님에게 원더랜드에 온 목적이나 계획에 대해 여쭤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들은 언덕에 앉아 저 아래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확실히 마신의 영역에서 그 신도들은 강했다. 그 흉폭하기 짝이 없던 자카누바들이 경비대에게 밀려 서서히 카드순 밖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엘라는 오즈가 걱정되어 계속 사법 극장 방향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발을 까딱거렸다.

         

       “그렇게 걱정되냐? 그 아저씨랑 정이 많이 들었나 보네.”

       “일주일이나 함께 있었으니까?”

         

       카렌의 말에 엘라는 그렇게 둘러댔지만, 자신의 속마음은 그것이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첸 호크가 원더랜드를 둘러싼 하늘에서 푸른 빛이 번쩍하는 걸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결계가 해제됐네.”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로드 판타스틱의 신호에 따라 하나둘 퇴장권을 찢었다. <다섯 곡예사>의 공연을 준비했던 홀의 환영이 나타나 그들의 몸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다들 지상으로 떠나는데 엘라만은 퇴장권을 찢지 못하고 계속 카드순 방향을 돌아봤다.

         

       “넌 안 갈 거냐?”

         

       오베론의 질문에 엘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 보고 나서 갈 거야…….”

         

       그녀의 말에 그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얘기할까?”

       “…….”

       “그 녀석 못 올 거다.”

         

       엘라가 그를 찌릿 노려봤다. 그러나 오베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을 계속했다.

         

       “나 정도니까 할 수 있었던 일이야. 평범한 인간의 영혼이 잠든 혼돈의 저주를 감당하긴 힘들지. 솔직히 나는 모래를 뿌리는 것도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용케 해낸 모양이군.”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카드순의 아치문이 흔들렸다.

       마귀들이 밀려나는 속도가 빨라졌다.

         

       “휴면에 들어가셨던 사도님들이 다 나오신 것 같군!”

         

       첸 호크가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기뻐할 일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이 서 있는 동산 가까이 마귀들이 들이닥쳤다. 얼핏 사신의 모습도 보였다.

         

       오베론은 주변에 환상 벽을 둘러 혹시나 하는 상황에 대비했다. 자카누바의 박살 난 몸뚱이들이 뻥뻥 날아와 근처에 떨어졌다.

         

       “이러다 잘하면 저기 휘말리겠는데……. 너 정말 여기 계속 있을 거냐?”

       “……아저씨는 살아 있을 거야. 약속했단 말이야.”

         

       오베론은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그래. 누님이 따라갔으니까 어쩌면 그럴 확률도 높지. 하지만 여기로 바로 달려올 만한 상태가 못 된다는 것은 너도 짐작할 수 있을 텐데?”

       “그, 그건…….”

         

       엘라가 우물거리면서 뭔가 반박할 거리를 찾자, 오베론이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반년 정도 뒤에 우리는 숲속의 연회를 즐기러 지상에 올라갈 거다. 너도 들었지? 클라라를 해방해주는 조건으로 두 사람이 우리 일을 며칠 돕기로 했다고. 오즈와 누님은 우리를 따라 지상으로 올라와 거기서 일을 하기로 되어 있다. 그때, 너도 초대해주지. 어떤가?”

         

       그의 말에 엘라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저, 정말이야?”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그의 확언에 엘라는 마침내 고집을 꺾을 수 있었다.

         

       그녀도 오즈가 이 자리에 나타날 확률이 적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떠나 버리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미처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기억한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첸 호크 같은 이름 높은 흥행사들도 자신을 잊은 마당에 어떻게 그것을 확신하겠는가?

         

       하지만 몇 개월 뒤라면 그럴 리 없었다.

       그때면 그도 건강한 모습으로 지금보다 느긋한 상황에서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부, 부탁할게! 약속한 거야. 반드시 불러줘, 응?”

         

       그녀는 몇 번이나 오베론의 확답을 받아내고는 비로소 퇴장권을 찢기 위해 그것을 손에 쥐었다. 떠나기 직전, 그녀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오베론을 돌아봤다.

         

       “잠시만 그런데 내가 어디 있는지는 어떻게 알아?”

         

       오베론은 당연히 원더스타인 옆에 네가 있지 않겠냐는 말은 하지 못하고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 오즈라는 녀석은 알 수 있다더군.”

       “아.”

         

       엘라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갈색 눈동자는 뭔가를 확신한 듯 빛을 발했다.

         

       “알았으면 어서 가. 반년 뒤에 보자고…….”

       “잘 가시게, 젊은 곡예사.”

         

       엘라는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준 뒤 퇴장권을 찢었다. 그녀가 떠나왔던 곳의 풍경이 반투명한 흑백 톤으로 안개처럼 그녀를 감쌌다.

         

       그녀가 오즈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은 다른 게 아니었다.

         

       -원더랜드를 관광하고 싶은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산 사람’분?

         

       경비병들도 그녀가 듀엣 가요제의 무대에 서기 전까지는 그녀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인스피라도 없는 무명의 광대가 어떻게 그녀를 찾아낸 것일까.

         

       -혈연끼리는 서로 혼으로 연결되어 있다네. 죽고 나서도 상대를 느낄 수 있지.

         

       레이나와 호크가 나누는 이야기를 지나가는 길에 얼핏 들었다.

       그녀는 그 순간, 첸 호크와 오즈가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혹시 이 아이가 자네가 말한 그 가족인가?

         

       호크는 가족의 혼을 찾으러 외곽을 어슬렁거리던 오즈를 만났다고 했다.

       그 날짜는 그가 자신을 찾아왔던 날이었고, 그가 돌아다녔다던 장소는 자신들이 들어왔던 장소 근처였다.

         

       그 외에도 실마리는 몇 개 더 있었다.

       얼핏 들어보면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모아 놓고 보면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자신을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

       친구들을 만나고 난 뒤 몇 번이나 엘피가 아닌 ‘엘라’라는 이름을 주워들었는데도 지적하지 않는 것.

       산 사람의 곡예를 대가로 받아내겠다고 해놓고 전혀 독촉하지 않는 것.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자신에게 헌신적인 것 등.

         

       -제 이름은 잊어도 엘피 양의 이름은 절대 잊어먹지 않을 겁니다! 30년, 40년이 지난다고 해도 말이죠!

         

       그녀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되묻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어쩌면 이미 나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희미해져 가는 원더랜드를 돌아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저씨, 무사한 거지?

       다음에 만날 때 꼭 물어보고 싶어.

       당신이 누군지.

         

       그녀의 몸이 완전히 사라졌다.

         

       오베론은 지친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루미가 부탁한 임무를 완수하자 모든 긴장감이 탁 풀렸다. 그도 다친 몸으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것이었다.

         

       첸 호크는 그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오베론 단장은 가서 쉬는 게 어떻겠소? 여기는 나 혼자 있으면 될 것 같은데.”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그럼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나중에…….”

         

       재회를 기약하려던 오베론은 그가 오늘 환생에 들어갈 예정이라는 걸 기억해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괜찮다고 손을 젓는 호크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가이드 두 사람이 그곳에 도착했다.

         

       허수아비는 루미가 소환한 양탄자 위에 누워서 가고 있었다. 그의 잘린 팔다리는 붕대로 묶여 있었다. 그걸로는 걷는 것은커녕 서지조차 못했다.

         

       “매 조장 혼자 있네. 다른 일행은 모두 떠났나 봐.”

       “다행이군요.”

         

       루미는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보며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공황 상태에서 벗어났는데도 그는 여전히 근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떤 위험을 마주하고도 여유롭게 웃던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역시나 키르쿠스에게 너무 가까이 접근한 탓에 정신적으로 취약해졌음이 틀림없었다.

         

       바보같이 센 척하더니.

       그녀는 어떻게든 그의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애썼다.

         

       “팔다리는 괜찮을 거야! 1, 2주면 나을걸? 그 개자식들이 최대한 깔끔하게 베어냈다고 했으니까 맞겠지. 물론 혼이 손상되었으니 걷기는 힘들겠고……. 당분간 휠체어를 타는 게 좋겠지?”

         

       허수아비는 그녀의 말에서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그는 그녀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루미 씨.”

         

       평소와 달리 진지하기 짝이 없는 그의 목소리에 루미는 얼굴을 붉혔다.

         

       “흐, 흥! 정말 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멍청이.”

         

       허수아비는 후다닥 앞서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래에서 얻은 정보를 정리했다.

         

       괴물서커스가 일반 공연보다 수십 배는 효과가 좋다니.

       어째서 원더랜드의 중심부에 ‘사법 극장’ 같은 흉흉한 건물이 있는지, 어째서 ‘형벌’을 그렇게 정신적인 살해에 가까운 방식으로 집행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그는 원더스타인이 세상을 위해서 괴물서커스를 꾸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서커스 그랑프리를 공격하고, 무대 밖에서 사람들을 학살한 것이 설명되지 않았다.

         

       원더스타인의 목표는 서커스 그랑프리를 성공시켜 키르쿠스의 눈이 완전한 붉은색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마 괴물서커스는 혹시나 보석이 완성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준비한 패에 불과할 것이다.

         

       원작에서는 예선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스테이지 보스로 등장한 괴물 단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원초적인 괴물서커스를 진행한 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그들은 동산에 거의 다 올랐다.

       그때, 그들이 오르는 것을 위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첸 호크가 갑자기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호크 씨?”

         

       그는 둘을 향해 소리쳤다.

         

       “피하게!”

         

       커다란 돌풍이 불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흙과 바위의 파편이 허공에 솟구쳤다.

         

       만약 루미가 양탄자를 뒤로 빼는 것이 조금만 늦었어도 허수아비는 저기에 휩쓸려 부서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사지를 움직이지 못한 채 자신을 공격한 존재를 올려다봤다.

         

       “캇피 어디 갔어?”

         

       부두교 마도사들을 폭발시켰던 그 뚱뚱한 사신이 그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일전에 이모티콘을 제작해주셨던 XONE님께서 다시 팬아트를 그려주셨습니다!
    정말 서양 횡스크롤RPG에 보스몹으로 등장할 법한 멋진 디자인입니다!

    아틀리에에도 올리셨는데, 그때 한창 글을 쓰고 고치던 도중이라 미처 저번 화에 언급한다는 걸 깜빡했습니다.
    마침 이번 화 마지막에 패티가 등장해서 올리기 좋은 타이밍이 됐네요.

    다시 한 번 XONE님께 감사의 말 전해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