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42

        

       푸르다 못해 검은색의 물빛.

       출렁이며 치는 파도.

       테트라포드에 닿으며 흩날리는 물방울.

       코끝을 찌르는 비릿한 바다 특유의 냄새.

       저 멀리에서 헤엄을 치는 고래의 꼬리까지.

         

       윌리엄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분명히 바다였다.

         

       “바다라고?”

         

       바다가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윌리엄의 눈앞에 존재하는 것은 분명히 바다.

         

       지평선 너머까지 무한하게 이어진 것 같은 짙은 파란색의 물결이.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느껴지는 비릿하고 짠 냄새가.

       파도가 칠 때마다 철썩거리는 소리와 파도가 부서져 내라며 내는 특유의 소리가.

       바닷물을 바람에 실어 온 듯 느껴지는 눅눅한 바람의 촉감이.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자면 코와 입을 간지럽히는 바다 특유의 냄새와 맛까지.

         

       오감이 말한다.

         

       이곳은 바다라고.

       너는 지금 바다의 옆에 있는 것이라고.

         

       윌리엄은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입을 열어 다급하게 자신의 소환수 이름을 불렀다.

         

       “러셀!”

         

       항상 자신과 함께 다니며 자신을 지켜온, 사람보다도 믿음직한 그의 동반자.

       러셀.

         

       하지만 그가 애타게 불러도 방은 잠잠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윌리엄이 부르면 꼬리를 흔들며 당장 뛰어오는 녀석이었고, 거리가 멀다면 공간을 뛰어넘거나 날아서라도 오는 녀석이었는데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도리어 그런 것은 처음에 없었다는 것처럼 기분 나쁜 침묵만이 가득할 뿐.

         

       윌리엄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자기 왼손 중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는 거침없이 손등 쪽으로 꺾어버렸다.

         

       “흐흐흐. 이럴 줄 알았지.”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분명히 손가락이 부러졌으리라.

       손가락이 부러지는 특유의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격렬한 통증이 찾아오고, 윌리엄은 당연히 호텔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어야 했으리라.

         

       하지만 윌리엄의 손가락은 멀쩡했다.

         

       마치 요가라도 한 것처럼 한껏 구부러진 채 손등에 그대로 닿아있었고, 그 어떠한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고무라도 된 것처럼 손을 으면 제자리로 그대로 돌아가 버리고, 탄력이라도 생긴 것처럼 앞뒤로 움직였다가 다시 평상시의 손가락처럼 단단하게 그 자리에 붙어있었다.

         

       움직임?

         

       멀쩡했다.

       손등 뒤로 꺾은 게 뭐가 문제냐는 듯 평소처럼 움직였고, 그 어떠한 이상도 느껴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윌리엄은 바닥에 침을 퉤 뱉고는 꽃병을 손에 쥐었다. 그리곤 꽃병을 팽이라도 돌리는 것처럼 비스듬하게 기울인 뒤 그대로 돌려버렸다.

         

       그러자 꽃병은 돌았다.

         

       계속.

       계속.

         

       마치 우주에서 돌리기라도 한 것처럼 균형을 잃지도, 힘을 잃지도 않은 채 제자리에서 계속 돌기만 했다.

         

       “엿 같은 악몽이로군.”

         

       두 번의 리얼리티 체크(Reality Check)가 전부 꿈이라고 말하고 있다.

         

       윌리엄은 자신이 깨어난 것이 아니라 꿈속으로 빠져들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 꿈이 평소와는 다르게 자각몽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역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지금 이 상황은 윌리엄에게는 아주. 아주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꿈을 꿨다 하면 악몽을 꾸는 것이 윌리엄의 일상이다.

       그런데 평소의 그냥 악몽도 엿 같았는데, 자각몽에 악몽이 더해진다고?

         

       절대로 좋은 꼴을 보지는 않으리라.

         

       ‘잠깐만, 잠깐만….’

         

       윌리엄이 이곳이 꿈이라고 인식하는 그 순간, 윌리엄은 이 꿈에 여러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마트폰.

       조금 전까지 ‘직원’과 전화하고 있었으며, 지금도 통화가 연결되어있는 그 스마트폰!

         

       윌리엄은 홱 몸을 돌려서 스마트폰으로 뛰어갔다.

         

       『 창문 밖을 확인하셨습니까? 이곳은 원래 바다입니다. 』

         

       하지만 다급하게 스마트폰을 향해 뛰어가서 종료 버튼을 눌렀음에도 전화는 종료되지 않았다. 마치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평상시와 똑같은 직원의 목소리, 아니 어쩌면 ‘직원’인 척하는 악몽의 목소리만 들릴 뿐.

         

       『 이곳은 본래 내륙지방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뷰(View)가 좋지는 않았죠. 그래서 전 오너는 이 호텔에 특색을 만들기 위해서는 질 좋은 서비스와 비싼 가격에 걸맞은 품격이 필요하다고 여기셨고, 많은 돈을 투자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호텔의 웅장한 모습이 완성되었죠. 』

       『 하지만 이번에 새로 호텔을 인수하신 오너는 조금 생각이 달랐습니다. 본래 호텔이라는 것은 위치와 풍경이 아주 중요한 것이고, 그것이 없다면 한계를 맞이하게 된다고 여기셨지요. 실제로 호텔의 매상이 천장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듯 오랫동안 제자리걸음이었고, 요 몇 년 사이에 대체할만한 다른 호텔이 근처에 생겼기에 잠재적 고객이 그쪽으로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게 된다면 이 호텔 역시 여타 다른 호텔들처럼 점차 쇠락하다가 과거의 찬란함을 잊어버리고 그대로 문을 닫을 위기였습니다. 』

       『 그렇기에 새로운 오너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바다를 이곳으로 끌어오자고. 』

       『 그렇습니다. 바다를 이곳으로 끌어온다면 이곳 역시 바다에 있는 호텔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너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이 사실을 현명하게 깨달으셨고, 강력한 힘으로 바다를 앞에 끌어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객님의 앞에 보이는 바다입니다. 』

         

       스마트폰 너머의 ‘직원’은 마치 자신이 미술관의 도슨트(docent)라도 되는 것처럼 호텔의 역사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귀에 잘 박히는 목소리와는 달리 그 말은 개소리나 다름이 없는 내용이었다.

         

       바다를 앞에 끌어왔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엿이나 먹어.”

       『 믿기 힘든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너께서는 진짜로 실행하셨죠. 그 증거로 창밖에 바다가 있지 않습니까? 』

       “꿈인 거 아니까 엿이나 먹으라고.”

       『 꿈이라니요. 바다의 존재를 오감으로 인지하셨을 텐데 어찌 이것을 꿈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단 말입니까? 고객님, 잘 생각해보세요. 바다를 땅으로 메우는 것, 땅을 파서 거기에 바다를 끌어오는 것. 어느 것이 더 현실성이 없어 보입니까? 』

       “하.”

       『 운하는 사람이 팠습니다. 간척도 사람이 했지요. 그렇다면 호텔 앞에 바다가 생기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

       “리얼리티 체크를 했는데 개소리 계속 지껄일래?”

         

       리얼리티 체크.

         

       그 단어를 듣자 헛소리로 윌리엄을 설득하려던 스마트폰 너머의 목소리가 갑자기 뚝 끊겨버렸다.

         

       소름 끼치는 정적이었다.

         

       사람 흉내를 내던 것이 갑자기 무기질적인 무언가로 돌아가 버리는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아니, 거기서 끝나지 않고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98%.

       45%.

       1%.

       0%.

       -3%.

       -44%.

       -1321%.

         

       그렇게 끊임없이 줄어들던 스마트폰은….

         

       툭.

         

       방전된 것처럼 그대로 전원이 꺼져버렸다.

         

       윌리엄은 스마트폰이 꺼져버리자 그것이 역겹다는 듯 그대로 벽을 향해 집어 던져버렸다.

         

       쿠-웅!

         

       ‘그냥 악몽이 아닌 것 같은데?’

         

       위기 상황.

       윌리엄은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것이 그냥 악몽이 아니라, 무언가 더 끔찍한 것이 있음을 느꼈다.

         

       근거?

       없다.

         

       그냥 윌리엄의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 위험하다고 말이다.

         

       ‘위험해. 위험해…. 그러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윌리엄은 자신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자 ‘고민’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살면서 거의 해본 적이 없던 그것을 말이다.

         

       하지만 해답이 없는 질문은 아무리 고민한들 정답은 나오지 않는 법.

         

       윌리엄은 오히려 고민하면 할수록 머리만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그는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평소처럼 본능대로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뭐 어차피 악몽이니까.’

         

       아무리 심각해 보인다고 한들 그 본질은 악몽.

       설마 고문을 당한다거나 죽는다거나 하는 일이 벌어지기야 하겠는가?

         

       윌리엄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는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자신이 지금 위험한 상황이라면 방 안의 모델 역시 위험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은 윌리엄의 손이 딱 멈춰버렸다.

         

       반쯤 돌아간 문고리를 잡은 채, 그대로 얼어붙기라도 한 듯 말이다.

         

       ‘모델?’

         

       문을 열기 전에 윌리엄의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두 글자였다.

         

       모델.

         

       윌리엄과 하룻밤을 지새웠던, 몸매가 끝내줬던, 몸을 윌리엄의 반대편으로 돌리고 있었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이름도 모르는.

         

       모델.

         

       ‘무슨 모델?’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모델인지.

       어디서 만난 것인지.

       어떤 파티에서 만난 것인지.

       어떤 과정을 거쳤고 어떤 대화로 꾀었는지.

       어떻게 정을 나눴는지.

       어떻게 호텔에 같이 들어왔는지.

         

       그 모든 것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연하다.

       악몽이니까.

       지금 그는 악몽 속에 있으니까!

       

       “Fuck.”

         

       터엉.

         

       윌리엄은 문고리를 당기던 손을 그대로 놓아버리곤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

         

       철컥.

       철컥철컥.

       철컥철컥철컥철컥.

       철컥철컥철컥철컥철컥철컥!

         

       쿠웅!

       쿵쿵쿵쿵!

       쿵!

       쿵쿵쿵쿵쿵!

         

       쿠웅!

         

       그가 문고리를 놓고 그대로 뒤로 물러나자 소름 끼치는 일이 일어났다.

       방 안에 있던 ‘무언가’가 문고리를 미친 듯이 잡아당기고, 어서 문을 다시 열라는 듯 미친 듯이 문을 두들겼다.

       문고리가 뜯겨나가는 것처럼 흔들리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문은 당장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처럼 굉음과 함께 흔들린다.

         

       쿠웅!

       쿵쿵쿵쿵!

       쿵쿵쿵!

         

       철컥철컥철컥!

       철컥철컥!

       철컥!

         

       게다가 더 소름이 끼치는 것은 문이 두들겨지는 위치였다.

         

       저 문을 부술 것 같은 굉음은 아주 끔찍하게도 두 군데에서 나고 있었다.

         

       아래에서는 문에 머리를 박는 소리가 났다.

       위에서는 주먹으로 문을 치는 소리가 났다.

         

       고무처럼 늘어나는 팔을 가지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