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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2

       “자, 그럼 처음부터 이야기해보자.”

        

       나는 마주 앉은 윤다호를 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내가 불러서 따라왔지만, 본인도 굉장히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앉아있던 윤다호는, 나의 말에 굉장히 뚱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말고. 한번 말해보라니까. 언제부터 너희 할아버지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걸 알았어?”

        

       “……하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해보려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던 윤다호는, 결국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여기까지 따라와서 뭘 하는 건지…….”

        

       본인도 따라와 놓고 이제 와서 투덜거려도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다.”

        

       그래도 내가 굴하지 않고 빤히 바라보자, 결국 윤다호는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때라면,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 시절부터?”

        

       “그래.”

        

       윤다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알 수 있는 거야? 너희 할아버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도 느껴?”

        

       “그래. 내 특기니까. 기분이 좋거나, 나쁘거나. 짜증 나거나 하는 감정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지지.”

        

       흠.

        

       “공감의 영역이라는 건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만.”

        

       “공감을 그렇게 하는데 성격이 그렇게 개ㄸ”

        

       개떡 같냐고 물으려다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미 단어의 반 정도가 이 밖으로 튀어나온 뒤였는지라 그 뒤에 이어질 말을 상상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윤다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랑 절대로 결혼하기 싫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어?”

       

       내 질문에,

        

       “나한테 부정적인 감정이 있던 인간과 평생 함께할 생각은 없어.”

       

       윤다호는 가늘어진 눈 그대로 나를 보며 대답했다.

        

       “그건 그랬을 거야.”

        

       그리고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도 내가 윤다호라는 인간에게 가진 감정은 결코 ‘호의’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

        

       “뭘 그렇게 봐.”

        

       보통 내가 이렇게 쳐다보면 상대는 얼굴을 붉히거나 눈을 피하는 법이었는데, 윤다호는 굉장히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뭔가 불쾌한 것이라도 본 것 같다는 표정이다.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확한.

        

       오히려 그 감정이 너무 쉽게 전해져서 상쾌할 정도였다.

        

       확실히, 예쁜 얼굴에 현혹되지는 않았다는 말인가.

        

       첫 만남부터 나를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긴 했어.

        

       사라가 말했다.

        

       당시의 사라는 오로지 최나경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다른 존재들은 그냥 돌덩어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그 돌덩어리들을 좀 많이 무서워하긴 했지만.

        

       “부정적인 감정만 가지고 ‘있었던’?”

        

       내가 마지막 단어를 강조해서 물어보자, 윤다호의 미간이 사정없이 찌푸려졌다.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야?”

        

       재차 물어보자, 윤다호는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불쾌하다는 표정보다는, 뭔가 아리송한 것을 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질문의 의미를 모르겠는데.”

        

       “지금은 내가 너를 그다지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냐고.”

        

       “아니.”

        

       “맞아. 정확하네.”

        

       내 대답에 윤다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나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뭔가 감정이 바뀌었다는 건가?”

        

       “그래, 지금 너의 감정이 훨씬 더 ‘구체적’이니까.”

        

       “구체적이라 함은?”

        

       “나를 ‘싫어’하는 것. 그전에는 무관심에 가까운 짜증이었고.”

        

       “설마 내 관심을 끌어보자고 그런 태도를 보였었던 건 아니지?”

        

       첫 만남에서 비쩍 마른 사라를 보고 돼지처럼 처먹는다는 소리를 하려고 했던 미친놈이다. 하긴, 그저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면 그런 강력한 말은 하지 않았겠지. 그보다는 가스라이팅이라도 시도했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맞는 것 같다. 어쨌거나 윤다호 입장에서는 사라와의 약혼 관계를 이어 나가야 했으니까.

        

       그 과정이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간에.

        

       인간관계 이어가는 것을 더럽게 못 하는 나머지 전부 개짓거리가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흐음.”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뭔가 내 추측이 맞는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다.

        

       막말로, 윤다호가 정말로 호명 그룹의 전 회장의 꼭두각시나 다름없어서 나한테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있는 녀석은 아니었으니까.

        

       “자, 그러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아까부터 계속 그 비슷한 말을 하는 건 알고 있나?”

        

       내가 손뼉을 짝 치자 윤다호가 눈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너의 할아버지한테서 느껴졌다는 그 감정, 다시 한번 제대로 말해봐.”

        

       물론 나는 윤다호의 그 말을 그대로 무시하면서 말했다.

        

       “할아버지는, 요즘 기분이 좋아. 뭔가 일이 아주 잘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전에도 몇 번이고 그런 낌새를 느꼈으니까. 그리고 아마 할아버지가 생각하기에 그 잘 굴러가는 계획은 하나뿐이고.”

        

       “너랑 내가 결혼하는 거.”

        

       윤다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 내가 진짜로 싫구나?”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윤다호는 진심으로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래. 물론이지.”

        

       “그 감정이 향한 방향은 알 수 없다는 말이지?”

        

       “방향은 알 수 없지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의 감정을 온전히 느껴온 나니까.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다.”

        

       “알았어.”

        

       나는 기본적으로 윤다호를 엄청나게 싫어한다. 솔직히 지금 이 순간에도 한 대 치고 싶을 정도로 싫다. 나름대로 자제하고 있을 뿐.

        

       당연히 신뢰하지도 않는다. 내가 그만큼 싫어하는 사람이니,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별로 믿고 싶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윤다호에게서 신뢰하는 구석이 하나 있다면, 딱 하나다.

        

       윤다호도 나를 엄청나게 싫어한다는 것. 나를 포함한 ‘예사라’라는 존재를, 정말로 싫어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로 결혼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

        

       참, 덕분에 드디어 상대를 이해할 수 있었다니, 얄궂은 일이다.

        

       *

        

       그런데 결국 윤다호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할아버지가 무슨 계획을 짜고 있는지 물어다 준 것도 아니고, 그냥 ‘계획이 잘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만 했을 뿐이니까.

        

       아니, 그 계획이 뭔지가 제일 중요한데, 그런 말을 들어봐야 조심하는 것 외에는 뭐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내 약점이 뭘까?”

        

       집으로 돌아와 그렇게 물었더니, 하늘이, 수아, 소희는 조금 부끄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

        

       “당연히 나지.”

        

       “나라고, 생각해.”

        

       그래, 뭐.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세 사람의 고민은 내가 돈으로 틀어막아 버리면 그만이다. 당장은 상실감에 시달릴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돈이 있다면 회복은 가능하니까.

        

       호명 그룹도 일단은 찔러보는 느낌이 강했고.

        

       그렇다면, 그 약점은 나, 혹은 사라의 약점이다.

        

       체력? 그런 건 납치당하는 상황이 있지 않으면 뭐 어떻게 약점이 될 수도 없다. 회장 자리를 달리기로 따먹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돈은 너무 많아서 탈이고, 친구들 외에는 딱히 인질로 잡고 협박할 가족도 없었다.

        

       호명 그룹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무려 나를 무력으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못할 테니까. 이미 한 번 납치되었던 나다. 한 번 더 납치되는 것은 유진그룹에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아.”

        

       생각났다.

        

       약점이, 있기는 있다.

        

       사라의 안에 내가 있다는 것.

        

       그게 어떻게 약점이라는 거야?

        

       왜냐하면, 외부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다중인격 장애처럼 보일 테니까.

        

       뭐, 나와 매일 점심을 같이 먹는 아름이도 몰랐던 걸 보면 나름대로 위장은 잘 하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만약 누군가에게 들키거나 탄로 나면 약점으로 쓰일 수도 있긴 했다.

        

       정확히 어떤 약점으로 쓰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가 알고 있을까.

        

       일단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세 사람. 하늘이, 소희, 수아.

        

       그리고 전속 메이드인 양혜인.

        

       최근에 알려준 아름이 정도인가.

        

       전부 쉽게 정보를 흘리고 다닐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름이의 경우에는 조금이나마 확률이 있기는 했다. 하늘이, 소희, 수아는 애초에 나와 붙어 다니고, 아예 생활 자체를 함께 하긴 했지만, 아름이는 따로 지내니까.

        

       누군가가 어떻게든 구슬리거나, 협박하면 흘러나갈 수도 있지.

        

       그리고 아주 미약한 가능성으로는 최나경 본인이 깨닫는 거다.

        

       나와 사라는 아주 미묘하게나마 성격의 차이가 있고, 태도의 차이도 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사라에게 극도로 집착하던 그녀라면 그 미묘한 차이를 눈치챌 수 있을지 모르지.

        

       게다가, 나는 납치 당했을 때 그 여자한테 고래고래 악을 쓰기도 했으니까.

        

       ……어, 이거 생각해보면 꽤 심각한 거 아닌가?

        

       만약 내가, 혹은 사라가 심신미약이나 뭐 그런 게 되어버리면 최나경이 엄청나게 유리해질 거 아니야. 친권이 아직 정지된 것도 아니고.

        

       웬만큼 심각한 아동학대를 저지른 인간들이라도, 친권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경우는 잘 없다. 재판을 통해 박탈되거나 하는 경우는 있지만, 일단 당장은 최나경이 잡히지 않은 상황이니까.

        

       ……수배 상태에서도 친권을 휘두를 수가 있나?

        

       잘은 모르겠다.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대비는 해둬야겠지.

        

       혹시 잊었을까 봐 말하는데, 너는 지난번에 나와 평생 함께하겠다고 했어.

        

       그 마음이 바뀐 적은 없다.

        

       나도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조금 더 확실한 방비를 생각해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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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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