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42

        

         지금 일부러 향하는 곳, 칩 샵(Chip Shop)이란 무엇이냐.

         

         마냥 택시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이나 구경하고 있기엔 이젠 나도 네오 헤이븐의 삶이 너무 익숙해진 만큼 이 참에 게임과 현실의 정보를 취합해서 정리하도록 하자.

         

         원래 게임에서도 각종 스킬이나 유틸리티 프로그램 구입, 사이버웨어 업그레이드를 위해 자주 들리는 상점이었고.

         혹자는 23세기에 태어났다면 식당에 가는 것 마냥 밥 먹듯이 꾸준히 들락날락해도 모자랄 가게라고 정의할지도 모른다.

         

         대신 안에 담긴 내용물이 음식이 아닌, 정보와 데이터가 가득 들은 자그마한 전자 카트리지를 판매하는 곳.

         

         네트워크와 인터넷 망으로 무분별하게 공유되는 저질 자료나 하자 있는 프리웨어와는 달리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제대로 된 고품질 고성능 물건을 판매뿐만 아니라 검증, 매입까지 책임지는 만남의 장소.

         

         머시너리 샵에 메카닉이 대기하며 독립된 기계 설비들을 봐주고.

         임플란트 샵은 전문 의료인과 수술 오퍼레이터가 상주하며 몸과 연관된 사이버네틱스 분야의 제품들을 총괄한다면.

         요 칩 샵이란 녀석은 그것들 안에 들어가는 프로그램과 소프트웨어를 좀 더 깊게 판다는 느낌?

         

         흔히들 많이 휴대하는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 휴대 정보 단말기)나 스캐너 겸 홀로그래픽 패드는 당연. 극성맞은 인체개조 신봉자들이 선호하는 생체 칩까지 광범위하게.

         

         사용자가 선호하는 다양한 기기에 따라 종류별로 장비할 수 있게 현장에서 즉석으로 데이터를 이전해주거나 호환성 검사를 해주는 건 기본이오, 경우에 따라서는 원하는 프로그램 커스텀을 위해 사이버 아키텍처를 알선하기도 해준다.

         

         용병 업계나 블랙 마켓이 의뢰의 일선 격전지라면 여기는 테크 매니아와 너드들의 만남의 장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어찌 보면 게임 CD나 타이틀 팩이 벽면에 쫘아악 깔린 전자 상가를 떠올리는 게 딱 맞을 수도 있다. 오락 좋아하는 악동 꼬마들의 낙원 비슷한 느낌으로다가.

         

         악동이라…… 그러고보니 우리집에도 비슷한 녀석이 있네요.

         

         “제로? 너는 뭐, 칩 샵에서 따로 가지고 싶은 거 없어?”

         

         – 제 전투 교본 업데이트가 1년 가까이 뒤처지긴 했어도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 부족함은 일절 없습니다. 다만 평상시에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드론이나 다목적 로봇의 수가 적은 게  

         

         “야! 그건 한두 푼 드는 것도, 칩 샵에서 어떻게 해 볼 문제도 아니잖아! 하… 사실 언제까지고 레오나르한테 신세지긴 뭐하니까, 중개업자인 리처드 씨가 적당한 물품 창고를 수배해줄 때까지만 좀 참아 봐.”

         

         가지고 싶은 장난감이 있냐는 말투로 가볍게 물었더니, 사설 기갑 사단을 하루빨리 완성해서 굴리자는 바보를 찌릿 하고 흘겨봤다.

         

         얘는 무슨 그런 기반 시설이 하루 아침에 뚝딱 완성되기를 바라네?

         

         게임처럼 아군 숫자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나도 가는 곳마다 네가 조종하는 기계 부대에 백업 받을 수 있으면 너무 든든하겠지.

         

         그런데 크레딧을 숨쉬듯이 쓰고 살려면 마찬가지로 숨쉬듯이 벌어야 한다고! 콱 씨.

         

         크흠, 도중에 말이 좀 옆으로 샜는데 아무튼. 그런 쓸모 많은 칩 샵을 내가 왜 여태 안 들렸냐 하면… 굳이 갈 필요성을 못 느껴서?

         

         아니, 하베스트 플래닛에서 싸구려 단말기 살 때 현지 가게를 가보긴 했었거든?

         

         근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까… 어라? 사는데 필요한 기초 프로그램은 이미 내 시신경 및 통신 임플란트에 다 있고, 다른 펌웨어나 사이버웨어는 하던 대로 내가 그냥 개조해서 쓰는 게 낫지 않나~ 하는 허망한 결론에 도달한 탓에 그간 관심을 끊고 소홀히 지냈었다.

         

         하지만 여기는 이제 주무대인 네오 헤이븐.

         지금 향하는 대형 칩 샵 ‘서킷 리파이너리(Circuit Refinery)’ 또한 아는 얼굴도 확인해둘 겸 미리미리 눈도장을 찍어 놔서 나쁠 건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목적지로 낙점한 거라고. 음음.

         

         뭐, 현실에서는 완전 첫 방문이라도. 게임으로나마 익숙하다는 점이 가산점으로 작용한 데다가 거기 사장님이 귀찮게 구는 성격이 아닌 걸 이미 알기도 하니까, 사실상 이점밖에 없는 셈이다.

         

         [ 입력하신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엔터크루즈 택시 서비스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가시는 길에도 저희 택시를 호출하길 원하신다면 지금 간편하게 출발지와 도착지를 바꿔서 할인된 가격으로 예약하실 수 있습니다! 희망하시는 귀가 예상 시각을 입력…. ]

         

         “한 시간…. 아니지, 두 시간 뒤. 이 자리에 똑같이.”

         

         매장 분위기 좀 엿보고, 백신 프로그램 즉석에서 만들어서 넘기고, 검증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하면 얼추 그쯤은 되리라는 마음으로.

         

         약삭빠르게 추가 영업을 시도하는 무인 택시 회사의 상술에 기꺼이 넘어가준 나는 제로를 대동한 채 훌쩍 차에서 내렸다.

         

         

         

         

         

         “큼…!”

         

         자동차의 에어 필터를 거치지 않은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자마자 간질거리는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역시, 오늘도 절찬리에 뿌옇고 힙한 대기를 자랑하는 게 수도 도심다웠달까.

         

         플라자에서 좀 떨어진 상업 구역-식료품점과는 대분류가 달라서-의 번화가 초입에 위치한 샵 근처는 벌써 오고 가고, 바쁘게 들락날락하는 유동 인구가 적당히 있어 보였다.

         

         딱히 나쁜 짓을 하러 온 것도 아닌 만큼 얼굴 팔리는 건 신경 쓰지 않았을뿐더러, 애당초 그게 싫었다면 그냥 적당히 해커 커뮤니티에 백신을 슬쩍 업로드했으면 끝나는 일이었기에 다른 손님이 많은 건 상관없었지만.

         

         여타 로봇이 많이 돌아다니는 이런 전자 상가에서도, 명백히 전투 목적으로 커스텀 된 드로이드를 양팔에 낀 이상 호기심 어린 시선을 피하긴 아무래도 무리였다.

         

         제로 0호기는 그나마 겉으로 드러나는 무기가 없기라도 하지, 연구소에서 노획한 애들은 등에 중화기를 메고 있어서 이젠 변명도 못한다.

         

         이래서 내가 외출하기를 점점 꺼려하는 거라니까? 카지노 탐방 때도 그렇고, 날이 갈수록 받는 관심의 그라데이션이 진해져요. 다음부턴 마스크라도 챙겨 쓰고 다녀야지 원.

         

         이건 차라리 용병들이 모여드는 마켓 같은 곳이 나았다. 그것들은 뒤통수 한 대 맞거나 견적을 내고 나면 시선처리라도 알아서 잘했지.

         

         “……얼른 들어가자. 밖은 덥네.”

         

         자각한 부끄러움이 얼굴까지 올라오기 전에 후딱 발을 놀려서 건물 그늘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렇게 총총.

         자동문이 열렸다가 금방 등 뒤편에서 닫히고, 부츠 밑창이 입구에 깔린 먼지제거용 매트에 연신 쓸리고, …왠지 전방에 있던 일부 손님들이 갑자기 다른 급한 관심사가 생겼는지 옆쪽으로 사라지기까지 하자 칩 샵 내부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투명한 케이스에 담긴 집적 회로판들이 무수히 걸린 벽면.

         시험 가동 및 확인용으로 제공하는 건지 중간중간에 부착된 터치 패드를 비롯한 전자기기들.

         두서없는 기업 제품 광고 대신 사이버웨어나 프로그램 관련 최신 소식을 재생하고 있는 모니터와 스피커.

         마지막으로 미술전 마냥 널찍하게 설계된 가게 중앙에 있는 대형 카운터까지.

         

         와… 실제로 보니까 중고 게임 매장 같은 느낌이 더 물씬 드는데? 혹시 레트로 게임이나 컴퓨터도 파시나요! 구체적으로는 200년쯤 지난 모델로…!

         

         “드로이드 운용 소프트웨어는 지하 2층 H78번 매대에. 팔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 교체는 못 해준다 꼬마야. 괜히 뚜껑 열었다가 망가졌다고 보상해달라는 건 사절이거든.”

         

         “!!”

         

         중후한 말투와는 어울리지 않는 하이 톤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다니는 점원들의 눈길이 슬쩍 이쪽으로, 별난 손님과 더욱 유별난 사장에게 향했다가 본인들이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떨어져 나갔다.

         

         웬일로 꼬마라고 불린 것에 짜증내지 않냐고? 순수하게 키를 따지자면 이 사람이 나보다 작아서 저어어언혀 문제가 안 된다. 아마 등장인물 일람을 쭉 펼쳐 놓고 훑어도 이 남자보다 작은 사람은 미성년자밖에 없을 터이니.

         

         중요한 캐릭터? 전혀 아니다. 관련 퀘스트나 몇 개 있는 상점 주인이지.

         친밀감? 당시엔 개성적인 외형이라며 그냥 신기하게 여기고 말았다.

         종합 평가? 돈을 밝힌다는 컨셉이 강해서 외려 비호감 쪽에 가까웠었지 아마.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큰 고민없이 편하게 대해도 되는 아는 얼굴이나 다름없는 셈이기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고개를 돌려서 소리의 근원을 마주했다.

         

         “음…! 헤멧 사장님, 맞으시죠? 아쉽게도 전 뭘 사러 온 게 아니라 팔러 왔네요. 그러니 매입 상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덥수룩한 수염과 기다랗고 앙상하게 쭉쭉 뻗은 기계 팔다리.

         

         엑소 스켈레톤 아머가 아니다. 장갑판은커녕 내부를 가리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뼈대와 전선이 다 드러난 그건 이 작은 탑승자의 원활한 일상 생활을 위한 전용 휠체어 같은 물건에 가까웠으니까.

         

         왜소증(Dwarfism; 난쟁이병)이라는 안타까운 질병이 있다.

         

         보통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성장기 도중에도, 끝나고 나서도 키가 심하게 작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걸 말하는데.

         

         이 헤멧이란 아저씨는 어릴 때 형편이 나빴는지, 재수없게 치료가 힘든 게 발병 원인이었는지는 몰라도 23세기라는 배경이 무색하게 이런 보조 수단에 의존해서 활동하신다.

         

         상체에 탑승한 짤막한 손과 발이 센서를 건드리면 연장선에 있는 금속 부품들이 쫘라락 따라서 움직이는 형식으로,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끝에 끼워 둔 고무 장갑이 애처롭게 흔들렸다.

         

         하지만 특별히 동정하는 기색은 내비치지 않았다.

         차가운 무관심 보다는, 이렇게 당당하게 활동하시는 자수성가한 사업가에게 함부로 그런 시선을 향하는 게 더 실례라는 생각이 앞섰기에.

         

         “…드로이드를 팔 거라면 아예 번지수를 잘못 찾아왔다만.”

         

         “아뇨, 얘는 판매용과는 거리가 멀고. 저는 실물 상품이 아니라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을 좀 팔려고 찾아왔는데요.”

         

         대체 탑승형 로봇에 올라탄 채로 의자에 앉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성급한 오해를 지적하자.

         상당히 시크하게 대꾸하며 카운터 안쪽, 사장석으로 훌쩍 넘어 들어가던 헤멧 사장님이… 머리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그러더니 이내 보란듯이 한숨을 내쉬었고.

         

         “꼬마야… 그 미안한데, 기초 강좌나 어디 가이드를 보고 따라 만든 시계 프로그램 같은 건 여기서 사주는 물건이 아니란다. 가서 부모님한테나 보여드리련? 아마 정말 좋아하실 게다.”

         

         “…….”

         

         움찔.

         

         과연 게임에서도 ‘돈이 무조건 최고야!! 봐라, 돈만 많으면 나 같은 병신 땅딸보도 고급 창녀를 셋씩 불러서 둘은 가위치기 시키고 나머지 한 명에겐 입으로 하라고 명령할 수 있다니까!?’ 같은 어지러운 막말을 퍼붓는 인간다웠다.

         

         손님이 아닐 것 같은 애송이를 상대론 한정된 체력이던 시간이던 조금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리라.

         

         ……그런데 시발 난 진짜 팔거리가 있는 손님이 맞다니까요?

         

         “누구보다 알만하신 분이 사람 외형 가지고 왜 이렇게 나쁜 지레짐작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 똑바로 상담 안 해 주실 거라면 다른 가게에다 팔겠….”

         

         “모르긴 왜 몰라 요 철부지 꼬맹아! 최근 무슨 3주만에 정복하는 엔지니어링 강좌라고 해서 온갖 멍청이들이 기웃거리질 않나. 신규 바이러스 대책용 방어 시스템 사업을 구축했다길래 까봤더니, 그냥 저기 사무실에다 스크립트 키디들 가득 채워 넣은 인간 방화벽이질 않나 아주!”

         

         “….”

         

         찌릿한 시선이 교차한다. 요컨대 시기가 많이 나빴던 모양인데… 거기까지 내가 배려할 의무는 차마 못 느끼겠다.

         

         게다가 헤멧 사장, 그거 아십니까?

       

        귀하가 아끼는 체력과 시간만큼이나, 사람의 인내심도 한정 자원이라는 걸?

         

         

         이 망할 드워프 새끼 씨가 뒤질라고 진짜 자꾸 누구더러 꼬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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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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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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