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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2

     금은 상당히 무른 금속이다.

     순금을 확인하는 방법이 ‘이로 깨물어본다’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금방 망가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금이라는 게 생각보다 많이 나온다.

     

     골드 드래곤이 무슨 500년 동안 캐내도 거의 고갈되지 않을, 500년 동안 채광해야 이제 막 그 끝이 보일 정도로 많은 금을 지하에 매장해둔 게 아닐까.

     혹자는 이야기한다.

     

     대륙 전체의 금을 골드드래곤이 모든 인간을 협박하여 모은 다음, 그걸 노스트럼 땅 지하에 광맥의 형태로 녹이고 굳혀 묻어놓은 거라고.

     가설 중 하나였지만, 정설 중 하나였다.

     협곡 너머에 있는 땅에서는 금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테르시안 제국이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관이 금으로 된 왕관이 아니라 은으로 된 월계관이라는 것부터 노스트럼이 얼마나 축복받은 땅인지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제국은 금화를 위조하여 금화를 빼돌리는 걸로 몰래몰래 금을 챙겼다.

     

     사치품이 아닌 반드시 필요한 곳에서 쓰이는 금.

     

     금이 가진 특수성을 이용하여, 제국은 금을 다양한 곳에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마나전도성’.

     

     금에 전기가 잘 통하는 것처럼, 마나 또한 금을 타고 흐르는데 있어 손실이 적은 편이다.

     그래서 제국의 마도연금술을 비롯한 마도공방에서는 마나를 전하는 핵심 부품 중 외부충격이 없는 곳에 금으로 된 마력선을 심어두고는 했다.

     마법진의 모양으로.

     이번 테러에도 금이 활용되었다.

     

     테러의 핵심은 ‘상급 폭발 마법’이 걸린 마석.

     테러범을 죽인 폭발마석-폭탄은 테러범과 비룡을 터뜨렸으나, 테러범이 처음 유리창을 깨뜨리며 던진 폭탄은 로버트 경에 의해 반으로 갈라져 망가졌다.

     그 때, 금이 갈라졌다.

     금으로 된 마법진이 반으로 갈라졌다.

     구체형으로 된 마석 내부에 금으로 된 마법진이 중첩되어 있고, 그 마법진은 상급 폭발 마법.

     그게 테러에 쓰인 폭탄의 실체.

     지브롤터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기로 했다.

     금으로 된 마법진 모양으로 마나만 통하면 언제든지 마법이 발현되도록 하면서, 동시에 마법진이 망가지지 않도록 위에 단단한 금속을 덧대면 어떻게 될까?

     내부에는 마법이 설치되어 있으면서 겉으로는 평범해보이는 금속이 만들어지는 셈.

     이걸 폭탄테러가 아닌 일상 생활에 쓴다면, 기존의 풍석엔진을 몇 배는 더 효율이 나오도록 조정할 수 있다.

     기존 풍석은 마법진의 모양을 ‘마석을 깎아서 음각하는 방식’으로 이용했다면, 부식되지 않고 망가지지 않는 금으로 된 마법진을 설치한다면 금이 비어있는 공간보다 더 확실하게 마나를 전달할 수 있으니까.

     ‘전쟁이 기술의 발전을 가져온다. 그다지 내키는 논리는 아니지만, 실제로 그러한 걸 보면 참 어처구니 없기는 하지.’

     이렇게 금은 활용할 방법이 무궁무진하며,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지금 오로솔 아카데미 부총장 자리를 양도하겠다고 황제에게 부탁할 정도로 금은 넘쳐나고 있는 상황이지만-

     ‘금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든, 금으로 사고를 일으키든, 정말 좀처럼 눈 제대로 붙일 새가 없군.’

     노스트럼도 테르시안도, 대부분의 인간들은 금 자체에 눈이 돌아간 상태로 온갖 사건사고를 일으키고 있다.

     정정.

     이건 단순한 사건사고라고 정의할 수 없는 사안이다.

     테러다.

     단순히 금을 훔치기 위한 경제적 약탈이나 절도가 아닌, ‘노스트럼의 땅에서 나오는 금’을 가지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섞인 명백한 황금의 정쟁이다.

     ‘모처럼 영지전에서 피를 최소한으로 흘리려고 했었는데, 정작 그 뒤에 더 많은 피가 흐르게 생겼군.’

     어제만 하더라도 그랬다.

     아니, 새해-자정부터 마력테러가 일어났고, 사람 하나가 죽었는데 그 의도가 ‘총독 암살’이었다.

     총독이 밤 늦게까지 총독부 집무실에서 일을 한다는 걸 알고, 비룡을 이용하여 공중에서 마석 폭격을 통해 일으킨 테러 행위였다.

     정작 총독은 안 죽었고, 배후는 알아냈고, 그 시신은 총독부에서 수습되자마자 사라졌으나.

     총독부가 새해부터 테러를 당했다.

     테러의 방식은 점점더 기상천외해지고 있으며, 기존 기술과는 차원이 다른 방식으로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투쟁은, 인류 문명 발전의 불씨다.

     우리가 마도자동선에 풍석을 달아 성벽을 뛰어넘어 후작성을 들이박은 것처럼. 

     테러범이 금으로 된 마법진이 새겨진 마도폭탄을 만들어 야심한 시각에 폭탄테러를 일으키려고 한 것처럼.

     -변경백. 전쟁은 말이야, 인간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네.

     “…쯧.”

     그 사실은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 * *

     [제국력 99년 1월 1일 오후 12시 32분, 바르셀로나 총독부 집무실.]

     “총독부 근처 공중의 폭발. 암살만 벌써 13번째.”

     나는 마도윤전기로 찍어낸 신문의 따끈따근한 온기를 느끼며, 느긋하게 막 도착한 제국신문 ‘당일호’의 헤드라인부터 살폈다.

     “작년까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횟수만 12번입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소식을 듣고 꼭두새벽부터 달려온 지브롤터 기사단 단장, 카를로스 경이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지브롤터 용기병단의 순찰 범위를….”

     “한 달 내내 순찰 돌다가 연말에 하루 이렇게 되었는데 죄송할 건 없지. 하지만 상대도 아군의 순찰 기조를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니까, 새롭게 비룡기사단에 들어온 이들의 순찰 편성을 다시금 점검하도록.”

     “예!”

     금광에 사람들이 많이 들어온 것처럼, 지브롤터 또한 많은 이들이 들어왔다.

     지브롤터에서도 자체적으로 용기병을 편성하였고, 카를로스 경은 용기병단의 리더가 되어 용기병을 운용하고 있다.

     아직 실력은 부족하다.

     모르가니아의 흑장미 기사단처럼 랜스를 들고 공중강습을 한다거나, 비룡이 소용돌이처럼 빙글빙글 돌며 상대 용기병을 향해 회전돌격을 한다거나 그런 건 못한다.

     신생.

     이제 막 새롭게 만들어진 부대.

     심지어 용기병들이 탈 비룡이 대부분 갓 성체가 된 와이번이라서 ‘공중을 날아다닌다’라는 기동성 말고는 딱히 장점이 없지만, 공중에서의 전투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신생 용기병단은 열심히 지브롤터를 누비고 있다.

     “저기, 도련님. 혹시 이번 암살에 동원된 비룡은….”

     “폭사했다네. 상급 익스플로젼 마법이 담긴 마석에 그대로 폭발에 휘말렸으니.”

     “하아. 아쉽군요. 지난 번처럼 생포되었다면 저희가 써먹을 수 있었을 텐데.”

     “이번에 테러를 일으킨 인간은 비룡 살리겠다고 뛰어내리지는 않아서 말이야.”

     용기사단이 만들어지고 지브롤터 상공을 누비는 이유?

     암살자나 테러 용의자들이 비룡을 타고 오기 때문.

     “오는 길에 죽은 비룡의 상태를 확인하고 왔습니다. 인식표나 그런 건 전혀 없었지만, 역시 저희 쪽에서 정보가 샌 것 같습니다.”

     “어째서?”

     “날개뼈의 방향이 위가 아닌 아래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왕국 남부에서 자라는 와이번의 특징이지요. 그리고 아침부터 아빌레스 남작가의 장남, 그레스 아빌레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구지?”

     “이번에 새로 용기병단에 추천을 받아서 들어온 기사입니다. 아마도 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제 오후 9시부터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아빌레스 남작가는 남부에 있다.

     “용기병단에 직접 들어와서 순찰 시프트를 파악한 다음, 제국력 98년 12월 31일 오후 9시 이후 영지 외곽으로 몰래 빠져나갔다. 그곳에서 자기네 가문에서 운용하던 비룡을 타고 경계가 느슨해진 연말의 밤하늘을 날아와 기어이 총독부에 도착한 다음, 테러를 일으키려고 했다. 정리 끝.”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끝.

     “…왜 그랬을까요?”

     “왜, 라.”

     “동기에 대해서는….”

     “그건 추측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알아낼 수 없지. 이미 죽어버렸으니 취조도 안 되고.”

     나는 햇빛이 잘 드는 집무실 한켠, 넓은 책상 위에 올려진 잿빛의 가루를 눈으로 가리켰다.

     “그렇지 않나?”

     “아빌레스 남작가의 반응을 지켜보겠습니다. 남작이 어떻게 나설지는 모르겠지만….”

     “장남이 남의 영지에 와서 실종되었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가만히 있으면 공범이고, 아니라면 시신을 보여주게.”

     “저거 범인 아니었습니까?”

     “설마.”

     카를로스 경은 햇볕에 바짝 말라가는 잿빛 가루를 보며 잠시 사색이 되었지만, 나는 잿빛 가루를 향해 다가가 가볍게 손으로 찍어 그걸 혀로 가볍게 핥았다.

     “지하가 아닌 평야에서 자란 솜누스 꽃가루야.”

     “…휴. 전 또 벌써 시신 치운 줄 알았습니다.”

     “괜히 시신 치웠다가 ‘내 아들 어디있냐’고 떠들어댈 아빌레스 남작에게 빌미를 제공할 수는 없지.”

     “어디있냐고 묻는다면, 제가 직접 시체안치소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래. 아니다. 아예 내가 서신을 보내도록 하지.”

     “당신의 아들이 위장잠입을 하여 총독을 암살하려고 했다고요?”

     “그래. 같이 연좌제로 엮여서 어떻게 되기 싫으면….”

     나는 솜누스 가루의 옆, 일렬로 쭉 늘어져있는 검집들을 가리켰다.

     “면죄검 사라고.”

     “……..”

     “아직 한 번의 기회는 남아있어. 말했잖나. 시켰으면 공범이니 썰어버리면 되지만, 모르고 저지른 일이라면 자식 잘못 키운 죄만 다스리면 끝이니까.”

     전자는 지브롤터에 대한 도전이지만, 후자는 일말의 정상참작 여지가 있다.

     “그래도 한 번 알아는 봐봐. 배후에 무능왕이 있는지.”

     “예.”

     카를로스 경이 고개를 숙인 뒤, 곧장 굳은 표정으로 집무실을 나갔다.

     “새해부터 고생이 많군. 테러 소식을 듣자마자 아버지의 명령으로 여기까지 날아왔을테니.”

     차라도 한 잔 하고 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간지 1분도 되지 않은 시간만에 바로 비룡을 타고 날아가는 카를로스 경이 보였다.

     “한 달 내로 총독부와 후작성 사이의 직통 노선을 짓든가 해야지.”

     나는 한 번 끓였다가 따스하게 보온 중인 물병에서 미온수를 컵에 따른 다음, 말리고 있던 솜누스 꽃가루를 살살 뿌려 스푼으로 휘저었다.

     “그나저나, 자식 잃은 아버지라.”

     색깔은 금색에 가깝다.

     양지에서 자라 태양을 바라보며 자랐기에, 노을의 색과 비슷하게 차의 색깔이 변한다.

     호로록.

     “자식이 무능왕에게 속았든, 아니면 본인도 함께 넘어갔든….”

     차가 쓰다.

     “테러의 배후에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있다.”

     차 맛이 쓴 이유가 있다면.

     “…나 건드리면 죽는데.”

     아빌레스 남작의 아들 곁으로, 아버지인 아빌레스 남작도 함께 저승으로 가게 될 예정이라는 것.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 * *

     그 시각, 아빌레스 남작가.

     “예, 단장. 꼬리가 밟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금발의 중년 남자가 마석 너머를 향해 허리를 굽신거리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알아서 잘 수습하도록.]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중년 남자, 아빌레스 남작이 둥근 마석을 향해 손을 올리자 곧 마석의 빛이 사라졌다.

     “…젠장!”

     아빌레스 남작은 바로 마석을 들고 바닥에 내던졌다.

     중년 남자가 전력으로 내던졌어도, 기사가 아닌 한 마석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으아아!”

     

     아빌레스 남작이 분노를 내지른다.

     자신의 아들이 그레이 지브롤터 바르셀로나 총독을 향해 암살 테러를 하는 바람에 죽었다는 슬픔-

     “이 멍청한 놈! 실패를 해!”

     보다는, 적어도 주어진 임무에 실패했다는 이유가 더 클 터.

     “형님.”

     

     집무실 문이 열리며, 아빌레스 남작과 비슷한 얼굴의 또다른 중년 남자가 찾아왔다.

     “크흠. 그래. 마르코서스. 지브롤터에서는?”

     “형님이 증명하라고 하더군요. 그레스의 짓인지, 아빌레스의 짓인지.”

     “당연히 그레스 개인의 짓이지! 아버지와 가문에 먹칠을 했으니, 목을 잘라서 효수를 해도 모자랄 판이야!”

     “…형님.”

     마르코서스가 빈 와인잔을 꺼내더니, 곧 와인잔에 와인을 따르기 시작했다.

     “가레스는 형님의 자식이기도 하지만, 제 아들이기도 합니다. 딸만 있는 형님이 양자로 들이셨죠.”

     “그래서 뭐?”

     “임무에 실패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명복 정도는 빌어줍시다.”

     “…흥.”

     아빌레스 남작은 순순히 잔을 받았다.

     “네가 언제부터 아들을 챙겼다고.”

     “사람이 죽었는데, 한 번 정도는 챙겨줄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쓸데없는 소리를…. 응?”

     와인을 입에 댄 순간, 아빌레스 남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맛이…커, 커헉…?!”

     “형님.”

     마르코서스는 입을 댄 와인잔을 그대로 내려놓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빌레스 남작가가 세인트 지오 같은 머저리와 함께 목이 달아날 바에는, 제가 올바른 길로 이끌겠습니다.”

     “너, 이…! 더러운 매국노…!”

     “매국노가 아니라, 현명한 겁니다.”

     마르코서스는 쓰러진 아빌레스 남작을 부축하며 소파에 앉혔다.

     “조, 조사 마법이 사용되는 순간…!”

     “그런 건 없을 겁니다.”

     마르코서스의 등 뒤.

     “저도 아무런 준비없이 이러는 건 아니라서.”

     “너, 너 이…. 제국의 개가 되었구나…!”

     “개라뇨.”

     검은 옷을 입은 집사와 같은 청년의 머리칼은 어딘가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진짜 짐승같은 놈이 누군데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 * *

     제국력 99년 1월 X일.

     아빌레스 남작가의 장남이 실종된 이후, 아빌레스 남작은 목숨을 잃었다.

     사인은 음독자살.

     현장에는 ‘어리석은 짓으로 왕국과 지브롤터에 분란을 일으킨 자식에 대한 부끄러움과 아빌레스 남작가의 위신에 해를 끼쳤다’라는 취지의 유서가 남아있었다.

     독을 어디에서 구했는지 그 출처는 알 수 없었으나, 조사는 이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작위를 이어받은 죽은 남작의 동생은 제대로 조사를 할 겨를도 없이, 줄초상에 통곡하며 장례식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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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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