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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3

       우자는 적을 적으로 두고, 현자는 적을 우방으로 둔다는 말이 있다.

       

       엘프족을 멸족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가까이 지낼 필요가 있다. 이것은 거사를 치르기 위해 참는 것이지, 결코 진실된 신뢰를 건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에테르는 가시밭길을 걷는 심정으로 유피엘에게 일렀다.

       

       “혹시라도 모르니 세계수 방비는 단단히 하는 게 좋겠지. 마수들이 어떻게 나올 줄 알고 말이야?”

       “맞는 말씀이세요.”

       “예산을 적게 들일 것도 없어. 국가 재정이 허락하는 한 많이 쏟아부어 시설을 재정비하는 편이 확실하고 좋다.”

       

       유피엘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국목 세계수는 모든 엘프의 희망이다. 또한 현재에 이르러서는 인간들의 희망이며, 대륙 최후의 빛줄기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서든 바람의 로드스톤을 빼앗겨서는 안 돼.”

       

       에테르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되뇌었다.

       

       “아, 그리고 유피엘.”

       “네 선생님.”

       “전투마도를 익히기 어려운 몸이라고 했지?”

       “부끄럽지만 그래요.”

       “내가 도와주겠다.”

       

       그 말에 유피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녀의 눈동자가 화등잔처럼 커졌다.

       

       “도, 도와주신다니요?”

       “말 그대로다. 쥐꼬리만한 마력만으로도 최상급 마도를 난사할 수 있도록 내가 이론을 가르쳐주도록 하지.”

       

       유피엘은 몇 초간 멍하니 서 있었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게…. 정말 가능한가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재미있는 걸 보여주마.”

       

       에테르는 품에서 스크롤을 하나 꺼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복잡한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만드는 것도, 발동시키는 것도 어려울 것처럼 보였다.

       

       “이걸 누가 만들었는지 아니?”

       “설마 선생님이신가요?”

       “똘똘한 학생이구나.”

       

       대학원생 감이야. 농담삼아 그리 말하고는 스크롤을 후욱 펼쳤다.

       

       에테르는 스크롤을 이루는 각 부분을 개략적으로 설명해나갔다.

       

       “이곳은 개화부, 여긴 축퇴부. 또 여기가 격발부.”

       

       토끼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설명을 듣는 유피엘.

       

       에테르는 피식 웃고는 마력초를 꺼내들었다.

       

       “수련장으로 가자.”

       

       두 사람은 수련장에 도착했다.

       

       “이 스크롤은 오래전 누군가가 만든 ‘아쿠아틱 블레이즈’를 경량화한 것이다.”

       “최상급 수계마도 말인가요?”

       

       에테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예비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각 스크롤 마법 중 이것을 꺼냈다. 그래야만 주특기가 수계(水界)인 유피엘의 관심을 끌 수 있을 테니까.

       

       모든 부분은 에테르가 재구성했다. 기존의 ‘아쿠아틱 블레이즈’는 쓸데없이 마력을 많이 잡아먹었기에 회로를 개조하고 또 변형하여 지금에 이르도록 하였다. 마치 플레어에 백야를 붙여 경량화한 것처럼 말이다.

       

       경량화된 스크롤을 본 유피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선생님께선 화계 전공이신데 어떻게 이리 어려운 수계마도를 다룰 줄 아시나요?”

       

       유피엘의 질문에 에테르는 딱 한 마디만을 답했다.

       

       “이론.”

       

       말 그대로였다.

       

       “이론만 완벽하면 화계든 수계든 지계든 공계든……. 그 어떤 마법이든 스크롤에 담아 축조하고 격발할 수 있어.”

       

       유피엘이 와, 하며 탄성을 터뜨렸다.

       

       이걸로 절반…. 아니, 빡빡하게 잡아서 3분의 1은 넘어왔다.

       

       “수백 번 들려주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게 낫다고 아까 이야기했지?”

       

       에테르는 자연스럽게 라이터를 꺼냈다. 이에 유피엘이 의아해하며 손을 들어 질문했다.

       

       “왜 직접 불을 지피지 않으시는 건가요?”

       

       이 질문을 기다렸다.

       

       “눈높이 교육이지.”

       

       유피엘은 태생적으로 적은 마력만을 담을 수 있는 몸이라고 했다. 그러니 ‘아스테야 교수’는 그런 유피엘에게 맞춰주어 선심을 쓰는 것처럼 보이게 해야 한다.

       

       “마력초 한 모금 분량의 마력만으로도 정상에 서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잖아.”

       

       설명을 들은 유피엘의 눈망울이 더욱더 빛났다.

       

       역시, 의심하지 않는군.

       

       이로써 유피엘과 있을 땐 마력초 없이 마법을 못 쓴다는 걸 들킬 염려가 없고, 따라서 금안족이라는 의심을 살 가능성도 현격하게 낮아졌다.

       

       세계수에도 접근하고, 카우렐리아의 재정도 갉아먹으며, 눈치 안 보고 마법까지 쓸 수 있는 활로를 열었으니.

       

       그야말로 일거삼득이었다.

       

       “좋아, 어떻게 되는지 잘 보고 느끼렴.”

       “네, 선생님!”

       

       에테르는 라이터를 돌렸다. 마력초 첨단에 불길을 옮기자 그냥 물고만 있을 땐 느낄 수 없었던 담배의 진정한 맛이 느껴졌다.

       

       사탕처럼 달콤하고 박하처럼 알싸하다.

       

       그렇게 용트름과 같은 연기를 흩뿌리길 십수 초.

       

       “여기 개화부에 0.003 시버트를 투입하고, 경외부에 다시 0.008 시버트를 투입하면 된다.”

       

       에테르는 점자책을 읽는 것처럼 손을 짚어가며 스크롤을 문질렀다. 마력을 주입하고 있는 것이다.

       

       겨우 밀리시버트에 불과한 마력량.

       

       최상급은커녕 하급 마도 하나도 동작시키기 어려운 세기였다. 끽해봐야 마력을 감지하는 훈련에나 사용될 법한 미미한 양이었는데.

       

       “…….”

       

       꿀꺽.

       

       유피엘은 일이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았다.

       

       콰앙─!!

       

       그리고 머지않아 1시버트가 채 되지 않는 마력만으로 스크롤을 작동시키는 광경을 직관할 수 있었다.

       

       유피엘이 놀라며 물었다.

       

       “어, 어떻게 하셨어요?”

       “내가 보여준 것만 잘 따라하면 된다. 자, 담배를 물려줄 테니까 한 번 해 보렴.”

       

       유피엘도 마력초를 물고 스크롤을 만지작거렸다.

       

       곧 몸에 마력이 들어찼다. 그러나 그중 9할은 척추를 타고 폐부로 몰려들더니, 날숨을 통해 이산화탄소와 함께 빠져나갔다.

       

       현재 유피엘의 몸에 저장할 수 있는 마력은 10시버트가 고작. 일반인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모자란 양이었다. 이것이 ‘마나 고갈증’을 앓는 환자들의 평균치였다.

       

       상관없었다.

       

       이 스크롤을 동작시키는 데는 0.1시버트면 충분했으니까.

       

       유피엘은 심호흡을 했다.

       

       아스테야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만 하면 된다. 조심스럽게, 배운 내용을 떠올리며 정확한 위치에 정확한 양을 흘려넣는다.

       

       슈유우우.

       

       몸에서 마력이 빠져나가는 감각이 느껴지고 얼마 뒤.

       

       화아아악─!!

       

       물과 얼음의 불꽃이 스크롤을 뚫고 튀어나왔다.

       

       맹호가 내달리는 기세로 나아간 물길이 수련장의 더미를 명중시켰다. 그러더니 사방으로 뜨거운 증기가 흩날렸다. 반경 수 미터가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사아아악! 유피엘의 양 뺨에 시원하고도 따스한 맹풍이 불어닥쳤다.

       

       “아….”

       

       유피엘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었다.

       

       말이 안 된다.

       

       위력만 치면 상급.

       

       에테르가 보여준 것에 비하면 나약한 세기였지만, 그래도 성공했다.

       

       제 손으로 이렇게나 강한 마법을 사용해 본 적은 없었다.

       

       “선생님…….”

       “처음치곤 아주 잘했다.”

       

       코끝에 찡한 감각이 들었다. 유피엘은 감동에 젖거나 하지 않았다. 몰려오는 울음을 참아내며 어떻게 자신이 내쏜 마법이 아스테야 선생님의 것보다 약했는지를 분석하고 추량해나가기 시작했다.

       

       “위력이 떨어졌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니?”

       “부하 조절이 서툴렀던 것 같아요.”

       

       에테르가 되물었다.

       

       “한 마디로 뭐가 부족했지?”

       “이론이요.”

       

       이론이 부족했다.

       

       “인간의 뇌는 절차적 기억과 서술적 기억으로 나뉘지. 네가 이 마법을 절차에 따라 반복해서 연습하면 상급을 중급의 위력으로, 최상급은 상급의 위력으로 다룰 수 있을 거야. 소싯적 구구단을 외우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되긴 싫어요.”

       “그렇다면 명시적으로 이해하는 방법밖엔 없지.”

       

       유피엘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첫 수업시간 때 네 질문에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나니?”

       “이론만 되면 아무리 적은 마력량만을 타고나도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하셨어요.”

       “비슷해.”

       

       첫 수업시간, 아스테야 선생님이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이 스크롤.

       

       이 스크롤의 원리만 제대로 깨우치고 축조할 수만 있다면 스태프를 휘두르지 않더라도 남방 해안전선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다.

       

       유피엘은 가슴이 북받치는 기분을 느꼈다.

       

       “학생, 학생만 괜찮다면 밤 아홉 시부터 세 시간 정도 개인 교습을 해 줄까 하는데.”

       “서, 선생님께선 연구 안 하시나요…?”

       “연구과제라면 일 년치를 미리 해 두었다.”

       

       사실 구라다.

       

       그러나 그것을 알지는 못하는지, 유피엘은 교수가 하는 말이 전부 진실인 줄 알며 무음으로 탄성을 흘렸다.

       

       “…저한테 어떤 이유로 이런 은혜를 베푸시는지 모르겠어요.”

       “선생이 제자 가르치는 데 이유가 있겠니.”

       

       마음에도 없는 말이었지만 유피엘은 좋아할 뿐이었다.

       

       피어바인 가문의 엘프라는 것이 어떻게 이리도 순진한지.

       

       에테르는 킬킬 새어나오려는 미소를 억지로 참아냈다.

       

       “저, 그런데 선생님.”

       “말해 보렴.”

       “선생님께선 이리도 설명을 잘 하시는데, 왜 학교 수업때는 차근차근 가르쳐 주시지 않는 건가요?”

       “…뭐?”

       

       에테르가 무어라 답변하지도 못하는 사이, 유피엘이 추가타를 날렸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수업시간은 많이 힘들었어요.”

       

       순간 머리에 플레어를 맞은 것 같았다.

       

       

       **

       

       

       유피엘을 보낸 후.

       

       ‘에테르’는 뜻밖의 고민에 신음하기 시작했다.

       

       “본관이, 내가….”

       

       그렇게 못 가르친다고?

       

       그런 말은 들어본 적 없다.

       

       과제를 조금 빡세개 내준 탓에 원성을 살 거라고는 예상했어도, 가르치는 걸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건 이것대로 충격이었다. 1천 년이나 지나서 애들 수준이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교수법이 영 션찮아서 이러는 건지.

       

       일단 유피엘에겐 다음 수업부터 성의껏 강의 태도를 바꿔보겠다고 대답하긴 했는데, 솔직히 걸리는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냥 가르치는 걸 못하던데.]

       “뭐?”

       [수업시간 때 말이야. 지금은 내가 도와줘서 망정이지.]

       

       그 말에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심상 주도권을 꽉 쥐고 있던 건 자신인데, 또 다른 자신이 튀어나와서 유피엘과 대화를 나눴다고?

       

       언제부터?

       

       어떻게?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생각해 보니 불가능할 것도 없었다. 또 다른 자신의 말소리가 이리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걸 보면 말이다.

       

       지금 기억이고 생각이고 죄다 뒤섞여 있는 것이겠지. 합심(合心)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적의도 얕아지기 시작했고 말이다.

       

       ‘내 친구잖아─!!’

       

       그 요호족 꼬맹이만 아니었더라도, 일 벌리는 게 이렇게나 심란해지지는 않았을 텐데.

       

       짝!

       

       ‘에테르’는 뺨을 때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정신 차려야겠군.”

       

       갱신한 약속이 아직 남아있다.

       

       삼진아웃.

       

       세 번 확증될 때까지는 1천 번이나 겪은 오욕을 씻어낼 수 없다. 아직 심상(心象)의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었다.

       

       “정말 네가 끼어든 게 맞나?”

       [꼬우면 내일 강의에서 애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나 잘 보던가.]

       

       그러고 보니 유피엘이나 레니냐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질문한 학생이 없었다.

       

       그냥 다 알고 있어서 질문하지 않는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아니지?]

       

       ‘에테르’는 흠칫 몸을 떨었다.

       

       이대로라면 내일 강의도 재미없게 진행되고 말 것이다.

       

       이제 막 유피엘의 환심을 사 놓은 참이다. 다음 날 평소처럼 가르쳤다가 실망을 안겨주어선 안 되는데…….

       

       “모르겠군.”

       

       이 점에 대해선 명백한 초짜였다. 연구는 잘하지만, 상대방 마음을 읽는 건 영 못하는 까닭이다.

       

       자신도 이건 안다. 알고 있었단 말이다.

       

       [그걸 알고도 고칠 생각을 안 했으니 뒤통수를 1천 번이나….]

       “닥쳐.”

       

       저도 모르게 침음이 흘러나왔다.

       

       교수법을 익히는 건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설명하는 습관을 들인다고 익혀지는 것이 아니고, 교육학 도서를 수십 권 탐독한다고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수많은 학생과 진솔하게 대화하며 의사를 주고받을 때만 익혀지는 것이 바로 교수법이었으니.

       

       “큰일이군.”

       

       오늘 일진한 것이 바로 내일 일퇴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이제 오늘이다. 벌써 자정이 지났다. 다음 강의까지는 불과 몇 시간 남지 않았다.

       

       기구한 일이었다.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여 타락하고, 타락하여 세계수에 앙심을 품었다. 그러나 세계수를 불태우려면 다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해야만 했으니. ‘에테르’의 입에선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나여.”

       [왜.]

       “한 가지 부탁이 있다.”

       

       이렇게 된 이상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 화 분량부터 12시(자정)으로 연재시각을 옮길 예정입니다.

    작가의 수면패턴이 박살나서 그런 것이니 독자분들께선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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