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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3

       국왕과의 면담은 독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까 전처럼 왕국 귀족들이 가득한 것도 아니었지만.

        

       중간에 친구들을 만나서 꽤 긴 이야기를 열심히 나누어서 시간이 오래 지난 기분이 들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루테티아 지하에 다녀온 지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잠은 짧게 잤던 것이 고작이고, 그 뒤로는 거의 쉬지도 않고 루테티아 왕성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굳이 샤를로트의 방에 몰래 들어가려고 했던 것 때문에 더 지치는 감도 있었고. 그렇다고 시간을 돌려 컨디션을 회복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기껏 나누어 둔 이야기가 모두 허사가 되어버릴 테니까.

        

       시간으로 치면 몇 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이라서 왕국 귀족들도 그대로 다 따라와서 또 열심히 떠들어 댈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국왕과 만나기 위해 들어간 회의장에 있는 사람은 오전 회의 때의 절반도 되지 않아 조금 놀랐다.

        

       오전에 나의 말에 태클을 걸었던 귀족이 여전히 있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나 이외에는 해결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일까?

        

       다행히 아카데미 선생들도 모두 모여 있었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 안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조금은 덜 어색할 수 있으리라.

        

       국왕은 오전처럼 자기 왕좌에 그대로 앉아있었지만—

        

       “아, 오셨는가.”

        

       그렇게 말하는 국왕의 얼굴에는 고작 그 몇 시간 사이에 주름이 다섯 개쯤 더 늘어난 것 같았다.

        

       하긴, 생각해보면 이 사람도 밤을 거의 새었을 테니까. 오히려 몇 시간이라도 자고 일어난 나와는 다르게, 그 밤 내내 왕궁으로 몰려든 귀족들과 입씨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기에.”

        

       “그렇지. 중요한 이야기지.”

        

       국왕은 머리를 짚고 있던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어젯밤, 법국 땅에서 이변이 발생한 이후 그쪽으로 사람을 몇 보냈다. 우리 측뿐만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벨리아 왕국 측에서도 사람을 보냈다더군.”

        

       “어떻게 되었습니까? 동태는 살필 수 있었습니까?”

        

       “그게 문제지.”

        

       내 질문에 국왕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법국의 동태를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그 빛기둥 때문이었습니까?”

        

       “그래.”

        

       국왕은 숨을 크게 내쉬면서 왕좌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그 빛기둥의 정체가 무엇이건, 법국을 둘러싼 그것에 닿은 이들 모두가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불과는 성질이 달라서 바로 옆까지 다가가도 통증을 느끼지는 못하는 모양이지만, 거기 닿는 순간 불 속에 그대로 손을 집어넣은 것같이 되었다더군.”

        

       “병사들은 무사합니까?”

        

       “……적어도 사망한 이는 없다. 치료사도 동행한 상태였으니 심각한 장애를 안고 살아갈 일은 없겠지.”

        

       내 질문에 국왕은 눈을 조금 가늘게 뜨면서 대답했다.

        

       “그대는 그 안으로 들어갈 유격대를 꾸려야 한다고 했지. 그렇다는 건, 그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알고 있다는 뜻인가?”

        

       “…….”

        

       아니, 모른다.

        

       사실 확신은 없었다.

        

       다만, 정황상 그 빛기둥은 황제가 만들어낸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들어가는 것 정도는 황제가 용인할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황제에게는 재료가 필요했으니까.

        

       “적어도 저는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은?”

        

       국왕의 말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샤를로트는 지난밤부터 꾸준히 그대를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중이다.”

        

       국왕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만약 그대를 따라갔을 때, 샤를로트가 그 빛기둥에 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는가? 샤를로트는 이 나라에서 유일한 내 핏줄이다. 왕좌를 물려받을 아이이기도 하다.”

        

       국왕은 잠깐 말을 쉬었다가,

        

       “단순히 ‘왕좌’를 이을 이라면 그 아이가 아니더라도 있겠느냐고 물어볼 수 있겠지. 나에게도 친척은 있으니까.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 아이는 나에게 있어서 유일한 딸아이이기도 하다. 그런 아이가 심각한 상처를 입을 위험이 있다면 나는 당연히 그 아이가 그대를 따라가는 것에 반대할 수밖에 없어.”

        

       단단한 목소리로 그렇게 선언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나는 아이가 없지만, 만약 나에게 아이가 있었다면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테지.

        

       아니, 아이가 없어도 마찬가지다. 내 친구들이 그 화염에 당할 위험이 있다면, 나는 유격대를 꾸리는 것을 당장 그만두고 혼자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갈 거다.

        

       “……확실하게 확인해두고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국왕에게 말했다. 국왕이 말했을 때만큼이나 단단한 목소리로.

        

       “만약 위험하다 싶으면 절대로 그 안으로 따라오지 못하도록 단단히 일러두겠습니다. 샤를로트도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는 알고 있을 테죠.”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억지로라도 남겨놓고 가도록 하자.

        

       “만약 그대가 혼자 들어가게 된다면, 상황을 진정시킬 가능성이 있는가?”

        

       “…….”

        

       그거야말로 진짜 모르는 일이다. 원작을 따르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스토리는 원작보다 훨씬 더 급하게 진행되어 아예 내가 모르는 국면까지 흘러와 버렸다. 설령 그 안에서 나의 능력이 제대로 먹힌다고 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황제 ‘혼자서’ 나와 마주하는 것이 아닐 테니까.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다짐하듯 대답했다.

        

       그래. 가능성은 있다. 없지 않다.

        

       그리고 아주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나는 그 가능성을 손에 쥘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니, 반드시 상황을 해결해낼 것이다. 제대로 된 해피엔딩을 위해서.

        

       ……뭐, 원작 스토리 상 그렇다는 거고, 실제로는 그 뒤로도 끝나는 건 아무것도 없겠지만.

        

       우리는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았다. 앨리스가 황제 자리에 오르고, 레오가 그레이스 가를 이어받고, 미아가 크로우필드 영지의 영주가 되고…… 그렇게 수년, 수십 년이 지나도 우리의 삶은 계속될 거다. 그리고 그사이에 온갖 귀찮고 머리 아픈 일들이 연속해서 끼어있겠지.

        

       지금 당장은 관계가 괜찮아도 시간이 지나며 그 관계가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도 있고, 평생 좋은 친구로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미래를 맞이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이번의 일은 확실하게 끝맺음 해야 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황녀님.”

        

       내 생각이라도 읽었다는 듯, 그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제니퍼가 입을 열었다.

        

       아카데미에서와는 다르게 반말이 아닌 존댓말이었다.

        

       “윈터필드 가문은 황녀님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저 빛기둥을 지나서 황녀님을 지원할 방법을 최대한 찾아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 맞아요. 저도 황녀님의 선생으로서 최선을 다할게요. 제가 가진 마법 지식을 총동원해서라도.”

        

       제니퍼의 말에 캐롤린도 말을 이었다.

        

       “……그게 진짜로 ‘불처럼’ 작용하는 거라면, 물론 이야기만 들어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물리적으로 상처를 막아낼 방법이 있을지 모르지. 주어진 시간은 짧지만, 학생 혼자 그 안으로 들려 보낼 생각은 없어.”

        

       그리고 에이다도 그렇게 말했다.

        

       다른 교직원 몇 명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확인하겠다.”

        

       그런 우리를 보고 있던 국왕이 그렇게 말하며, 이번에는 내가 아닌 다른 귀족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전에 그렇게 열심히 떠들던 귀족 중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나에게 말을 건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국왕도 그걸 확실하게 의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귀족 중에서, 저들을 대신해 보낼 병사를 지원할 이가 있는가? 오전에 그대들이 말했던 대로 법국과의 관계를 우리 벨부르의 기준으로 해결하려면 타국의 도움은 받지 않는 것이 더 유리할 터. 만약 자네들의 사병으로 이루어진 부대만으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면 차라리 그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네만.”

        

       “…….”

        

       하지만 국왕의 말에 대답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사실상 사병이 폐지되고 제국군이 영지를 돌아다니고 있는 제국과는 다르게, 왕국은 아직은 봉건주의적인 모습이 다소 남아있었다. 내가 살던 세상의 중세 시대만큼 독립적인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여전히 사병이 지방 영주들의 중요한 자원이었다.

        

       그리고 그 사병들은 수가 아주 많은 편은 아니다. 하나하나 영주의 능력으로 봉급을 줘야 하니까.

        

       그런데 그런 귀중한 존재들을 그저 닿기만 해도 죽을지 모르는 곳으로 밀어 넣을 영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 알아서 그곳에 들어가겠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면 없는 것으로 알겠네.”

        

       국왕은 지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내 쪽으로 다시 얼굴을 돌렸다.

        

       “실비아 팬그리폰 황녀, 부탁하겠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지원해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렇게, 그 전장으로 갈 인원들이 정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화는 최대한 빨리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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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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