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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3

       윤다호가 눈치챘을 정도였으니, 당연히 내가 뭔가하고 있다는 걸 윤다호의 할아버지도 눈치챘다.

        

       “초대장?”

        

       “예. 호명 그룹의 전 회장님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

        

       양혜인이 공손하게 내민 편지는, 문자 그대로 초대장이었다. 나름대로 돈 많은 집이라는 것을 어필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고급 봉투 안에 고급 종이에 쓰인 편지였다.

        

       의외로 편지 자체는 친필이었다.

        

       [이번 주말에 함께 식사라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나. 기대하고 있으마.]

        

       마치 자기 손녀에게 보내기라도 하는 것 같은 짧은 전언이었다.

        

       이런 거라면 전화로도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긴 하지만…… 뭐, 잘 사는 집이니까 그만큼 겉모습도 중요하다는 거겠지. 체면을 차리고 자신을 치장하는 것은 자기가 어느 정도 사는지 알리기 위해서 그러는 것도 있었다. 수컷 공작새가 화려한 깃털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나름대로 생존 방법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굳이 치장할 필요도 없이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십 대였으니까.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 굳이 티를 낼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숨길 이유도 없고, 숨길 수도 없다.

        

       그런 나에게 구애하려면 그만큼 자신들이 격에 맞는다는 걸 증명해야겠지.

        

       “초대받았으면 응해야겠죠.”

        

       나는 편지를 양혜인에게 돌려주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해주세요.”

        

       적어도 장소는 이쪽에서 정해야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유진 그룹의 건물 중에서 최대한 높은 곳이면 좋겠네요.”

        

       나는 이미 일 대 일로 대화하러 갔다가 납치당한 적이 있다. 그 전 회장이라는 인간이 진짜 노망이 나지 않은 이상 나를 납치할 일은 없다고 보지만, 그래도 그런 일을 당하고도 조심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그건 그거대로 엄청나게 멍청하다는 증명밖에는 안 된다.

        

       나를 확실하게 보호해 줄 사람이 잔뜩 있는 고층 건물의 꼭대기라면, 나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게 성공하더라도 나를 밖까지 데리고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진 그룹에도 미리 알려주시고요.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경호 인력을 뽑아달라고 요청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식사하는 도중에는 제 근처에 있어 주세요. 혹시라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예, 반드시 자리를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와 양혜인의 대화를 바라보는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너희 세 명도 따라와 줬으면 좋겠어. 같이 식사하지는 못하겠지만 같은 층에 있으면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세 사람만 있는 저택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물론 경비 인력을 못 믿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경비 인력을 밀고 누군가가 들어와 이 세 명을 해코지할지 모른다고 생각할 뿐이다.

        

       너무 지나친 걱정인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쁜 것은 없으니까.

        

       “사라야…….”

        

       하늘이가 엄청나게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소희와 수아도 마찬가지였다.

        

       얘네들은 이젠 내가 어떤 행동 하나만 하면 다 감동하는 것 같아.

        

       저 콩깍지는 언제쯤 떨어질 수 있을까?

        

       언제쯤 떨어질 수 있을지가 아니라, 떨어질 수나 있을지 걱정하는 게 우선 아니야?

        

       ……너의 콩깍지는 언제 떨어질지 궁금하네.

        

       그럴 일 없어. 애초에 눈에 콩깍지가 씐 적이 없으니까.

        

       아, 그러세요.

        

       나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

        

       분명히 초대받은 존재는 나인데, 장소는 내가 준비하는 요상한 형태가 되어버린 식사 자리에서, 의외로 호명 그룹의 전 회장은 꽤 예의를 차렸다.

        

       지난번 생일 파티 때 봤던 이미지만 보면 자기 위치만 생각하고 예의 따위는 차리지 않는 사람일 줄 알았는데.

        

       아마 내가 무섭다기보다는, 유진 그룹 자체를 경계하는 거겠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내가 유진 그룹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로 보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소중함의 기준은 인간적인 관계보다는 내가 직접 소유하고 있는 재산에 무게가 쏠려 있을 것이다. 나 하나의 존재만으로 국내 초거대기업 급의 돈이 있나 없나가 결정되니까.

        

       막말로, 내가 이 노인네의 말에 넘어가 윤다호와 진짜 결혼이라도 해 버리면 큰일이 날 테니까.

        

       윤다호가 가스라이팅을 시도했던 것도 정신이 불안정해진 사라를 뒤에서 조종해보려는 이 노인네의 계략 중 하나였을 것이다.

        

       기분 나쁘네.

        

       뭔가 한 방 먹여주고 싶을 정도로.

        

       “음식은 입에 맞으신지요.”

        

       “그래.”

        

       내가 불쑥 물어봤지만, 내 정면에 앉아있는 이 노인네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적진 한가운데 들어와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손자며느리가 준비해준 것이라 맛이 더 좋은 것 같구나.”

        

       농담인지 진심인지 모를 대답.

        

       “제가 준비한 게 아니라 유진 그룹 측에서 준비한 거죠. 저는 요리 같은 건 할 줄 모르니까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직접 요리를 하나, 돈을 써서 요리사를 고용하나. 둘 다 결국 자기 능력으로 하는 일이니까.”

        

       마치 인자하게 다독이는 것 같은 목소리.

        

       “…….”

        

       “…….”

        

       내가 대답하지 않자, 저 사람도 굳이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한동안 나이프와 포크가 움직이는 소리만이 들렸다.

        

       “아, 그래.”

        

       한동안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가져가던 노인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요즘 주식을 사다 모으고 있다던데.”

        

       “네.”

        

       내 짧은 대답에도 개의치 않고, 노인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 일을 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는 것, 알고 있니?”

        

       마치 내가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은, 다정하고 인자한 물음.

        

       “……무슨 말씀이시죠?”

        

       목소리가 조금 날카로워졌다.

        

       내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당연히 저쪽에서도 알고 있었다. 그걸 물어보니 당연히 신경이 집중된다. 저쪽에서 반격해오면 이쪽에선 대응법을 생각해야 하니까.

        

       “혹시 주가 조작이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구나.”

        

       “주가 조작이요?”

        

       그런 말이 여기서 갑자기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주식의 가격이라는 것은 의외로 단순한 방식으로 오르고 내리니까. 네가 만약 계속해서 호명 전자의 주식을 사 모은다면, 당연히 그만큼 주식도 오를 거다. 그리고 그 오르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또 사다 모으고, 그게 반복되면 언젠가 한 번에 되팔았을 때 굉장한 차익이 생기겠지.”

        

       “차익이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이 할배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네.

        

       “아무리 우리가 싫다고 해도, 주가가 조금 내려간 정도로 회사가 망하지는 않는단다. 이 정도로 거대한 회사라면 아무리 주가가 내려가도 계속 손에 들고 있으려는 인간들이 있거든. 미련을 못 버리고 붙어있는 인간들이.”

        

       “그런가요?”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지.

        

       “원래 작전이라는 것은 여럿이 모여서 정보를 만들어 돈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지만…… 너라면 혼자서도 가능할 테니 하는 소리다. 단순히 혼자 사서 판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 자체가 주식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충분히 조작이라고 볼 수 있을 거야.”

        

       “그런가요?”

        

       나는 이 할배의 생각을 따라잡으려고 머리를 굴리다가, 마침내 왜 이런 소리가 나왔는지 깨달았다.

        

       아, 그러니까 이 할배는, 내가 호명 그룹의 주가를 왕창 올려서 팔아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

        

       그리고, 그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왜 그러느냐?”

        

       “아, 아뇨, 그냥.”

        

       나는 조금은 마음을 놓고 다시 스테이크를 썰면서 말했다.

        

       “서로 생각이 조금 많이 다른 것 같아서요.”

        

       “생각이 다르다니?”

        

       “저는 제가 산 호명 전자의 주식을 되팔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 안에 넣고 씹으면서 노인을 보았다.

        

       “팔 생각이 없다니?”

        

       그 질문을 듣고도 느긋하게 고기를 씹어 삼키고 나서야 나는 대답했다.

        

       “말 그대로예요. 그냥 사는 거죠. 계속. 계속. 남들이 보기에는 꽤 많은 돈을 쓰면서.”

        

       “…….”

        

       노인은 미간을 찌푸리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설마, 경영권이라도 가져가겠다는 말이냐?”

        

       “그럴 리가요.”

        

       내가 계속 주식을 사면 주가는 꾸준히 오른다. 당연히 내가 혼자 호명 그룹을 인수해버릴 만큼 사려면 내 재산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부동산이나 주식을 처분해야 하는데, 당연히 나는 그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다.

        

       그건 사라의 재산이기도 했으니까.

        

       그래도 밑천은 남겨놔야지.

        

       하지만, 그래도 최종적으로는 ‘수 퍼센트’의 지분을 사는 것이 목적이긴 했다.

        

       어쨌거나 올라봐야 내가 자사주 매입하던 것 보다는 훨씬 싸게 먹힐 테니까.

        

       “그냥 오랜 시간을 들여서, 계속, 계속, 주식을 사다 모으며 제 지분을 계속 높일 뿐이에요. 배당금 꼬박꼬박 타 먹고, 주주총회에도 꼬박꼬박 나가서 얼굴 비추고, 필요하다면 발언도 할 거고요. 그리고 언젠가, 그 몇 퍼센트의 주식이 필요한 순간에,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생각이에요.”

        

       “……그게 무슨 소리냐?”

        

       노인은 여전히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대체 너에게 어떤 이득이 있다고?”

        

       그래, 이득은 없다. 적어도 당장은.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이득은 없을 거다.

        

       하지만 내 행동을 그저 그렇게 둔다면……

        

       호명 전자의 지분은 계속, 계속, 내 쪽으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꾸준히 움직일 거다.

        

       “호명 전자의 시가 총액이 150조 정도 된다고 했던가요?”

        

       나는 시선을 잠깐 위로 올리고 말했다.

        

       “제가 유진 그룹에서 받는 배당금이 조 단위고, 테마파크에서 제 몫으로 떨어지는 것이 수천억이고, 부동산 수입도 있으니까…… 뭐, 1년에 1조 원 정도씩 쓴다면 대충 백 오십 년 걸리겠네요.”

        

       나는 즐겁게 말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냐? 인수합병이라도 하겠다는 소리냐?”

        

       노인은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나를 막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그냥 호명 그룹의 목에 걸린 생선 가시 같은 존재가 되겠다는 말이다.

        

       딱 그뿐이다.

        

       그것을 위해, 일 년에 조 단위로 돈을 쓰겠다는 소리였다.

        

       나라면 할 수 있으니까.

        

       나는 스테이크를 한 조각 썰어서 입 안에 넣었다.

        

       주식이 오르건, 떨어진 건 알 바 아니다. 나는 어차피 사기만 할 것이므로,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다만 호명 전자는 절대로 잊지 못하겠지. 매년, 꾸준히, 남들은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의 돈을 쏟아 부어 자신들의 주식을 끌어모으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그 어떤 이득도 없으면서도 꾸준히 자기네 지분을 잠식해가는, 미친 암 덩어리가 있다는 것을.

        

       호명 전자는 앞으로도 나를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무시하는 것은 더더욱 못 할 거고.

        

       한가람 팀장이 그랬던가.

        

       이 나라는 유진 그룹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작다고.

        

       실로 그렇다.

        

       노인은 여전히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해 못하는 게 당연하겠지.

        

       돈을 가진 사람은 돈에 얽매이는 법이니까.

        

       하지만 내가 이쪽 세상으로 와 배운 것이 있다면,

        

       그렇게 얽매이는 사람들은 그냥 어중간하게 돈이 있기 때문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날 스테이크는 맛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신채화님, 후원 감사합니다!

    소설을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소설을 쓰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쓰는 과정 자체가 정말 미친듯이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글자수를 채워가는 것은 생각보다 고된 작업이니까요. 하지만, 뭐랄까, 그 글이 채워져 나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그 고생은 분명 할 만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러다가 한 화를 다 쓰고 나면 그만큼 뿌듯함을 느낍니다. 그 감각 때문에 오늘도 계속 글을 쓰는 것 같아요.

    지난번 소설을 완결내고 나서 한동안은 몸이 무척 편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간이 엄청나게 가지 않고, 일상에서 느낄만한 성취감이 없었습니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니 그런 감각이 전부 사라졌네요. 역시 저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성취감은 모두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어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 덕분에 저는 오늘도 글을 연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글을 좋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저의 글을 매일 읽어주시고 이렇게 응원해주시는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지금까지 읽으신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도록, 완결낼 때까지 꾸준히 글을 쓰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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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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