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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3

        

         “이봐, 꼬마 아가씨. 뭔가 할 말이 있는 표정인데, 하고 싶으면 후딱…….”

         

         상황에 맞지 않는 딴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잠시 괜찮을까?

         다름이 아니고… 그냥 한 명의 게이머로서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쳤을 오픈월드 장르의 경범죄와 그에 대한 처벌 시스템에 대해 짤막하게 얘기해보고자 한다.

         

         거지 같은 측면이 좀 있긴 해도, 나는 개인적으로 네오 헤이븐이 그 게임적 허용과 현실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훌륭히 해냈다고 생각한다.

         

         무법 플레이에 적당히 제한을 두고, 합당한 페널티를 먹인다는 의도야 넉넉하게 만족했고.

         유저의 캐릭터가 다른 NPC나 동물한테 실수로 주먹질 몇 번 휘둘렀다고 거품 물고 달려드는 경찰? …오히려 NHPD 친구들은 너무 유도리 있게 처신해서 악용이 더 쉬웠지.

         

         “…음? 어이, 잠깐. 잠깐잠깐잠깐 스탑…!!”

         

         그럼 현지인이 된 지금은 어떻냐?

         이런 말하면 의외일 수도 있는데… 더욱 편해졌다.

         

         여기저기 깔린 CCTV? 크흠, 문제가 될 법한 일을 저질렀다면 나중에 싹 훑어서 밀어버리면 그만.

         애당초 반기업 정서가 넘치는 인간들이 하도 파손해대서 미래 세계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으슥한 장소에는 달려있지도 않다. 차라리 한국의 사회 감시망이 더 촘촘하지 않았을까 싶다.

         

         목격자의 증언? 사설 탐정이라면 모를까, 경찰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상호 신뢰가 바닥이다 보니 피해 당사자가 아닌 이상 잘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경우도 드물고.

         

         “이게 무슨, 우옷!? 끄아아아아악—! 놔라! 놔으아아아악!!”

         

         더군다나. 부흥에 성공한 인류, 메트로폴리스 별 전체 인구수에 비한다면 기술력은 몰라도 공권력은 가진 맨파워가 만성적으로 부족 상태.

         

         괜히 말단 경찰엔 양아치가 많은 게 아니라니까? 범죄 기록이 있으면 있는 대로 약점 삼아서 수형시키듯 채용하기까지 하니 말 다했지.

         그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법보다 일상 생활에 가까워진 건 주먹. 즉, 폭력의 경계선이 애매해졌다는 것이다.

         

         무려 지급받았던 경찰 수칙에도 ‘일상적인 시비라면 못 본 척 넘기거나, 공평하게 양측의 전투 의사가 사라질 때까지 진압봉으로 두들겨 팬다.’라 적혀 있을 줄은 정말 몰랐었다.

         

         당시엔 정말 선택의 폭이 좁았기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간 데다가.

         

         차마 이력서에 한 줄 적기도 부끄러울 1개월 조금 넘는 경력이지만… 이렇게 이것저것 따져야 할 때는 참고하기 좋은 경험이 되었으니, 이래서 어르신들이 뭐든 일단 해보고 말하라 충고하시는 걸지도?

         

         “끄오오오오옥?! 내가, 내가 뭔가 존나게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예쁜 아가씨!! 여사님!! 여기저기가 빠질 것 같습니다! 그렇게 당기면 끊어져버린다고오옷!!”

         

         아, 그래서 최종적으로 무슨 말을 하려던 거였냐면.

         

         한 손으로 머리통을 움켜쥐고, 아프지 않게 다른 쪽은 발목을 쥔 채 상하로 살짝 힘을 주는 건 폭행보다는 굳은 몸을 스트레칭 시켜주는 일종의 의료 행위에 가깝지 않나…? 싶어서.

         

         그냥 그렇다고.

         왜 그 마사지나 때밀이 서비스를 처음으로 받는 익숙지 않은 사람이 이러다 진짜 죽겠다며 비명을 지르는 것과 비슷하게! 음!

         

         “그… 진짜 어디 부러뜨리고 있는 건 아니지?”

         

         – 대상의 미발달 연골 등 신체 조건을 고려하여 완벽하게 힘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엄살에 현혹되면 안 됩니다. –

         

         “내가! 설마 이 나이 처먹고 요령을 부흐헉리게에에에엣나—!! 충분히 알아들었네! 알아먹었다고호혹!!”

         

         그래도 가게가 떠나가라 꽥꽥대며 반성 중인 헤멧의 비명이 너무 애잔했기에.

         활동 보조용 외골격으로부터 건방진 탑승자만을 쏘옥 잡아 뽑아내 열심히 내 제안의 진심을 주입하고 있는 우리 물리 치료사 제로에게 물어봤지만, 아직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흠…… 그런가?

         

         확실히. 이 난쟁이 헤멧 씨는 벌이 문제에 있어선 칼 같아도, 자기 보신과 관련된 다른 부분은 신뢰하기 조금 어려웠으니까.

         

         지금도 사실 돈냄새를 맡고 귀신같이 달려들 줄 알고 일부러 이곳으로 찾아온 건데 다짜고짜 어린애 취급부터 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여기서는 조금 더 신용 점수가 높은 제로의 말을 따르는 게 맞겠지.

         

         ……절대 개 빡쳐서 괴롭히는 게 아닙니다? 왜소증 걸린 드워프가 꼬마꼬마~거려 봐야 아이러니할 뿐이잖아요. 암.

         

         하지만 이 금속 표면만큼이나 차가운 철권 제재가 이루어지는 장소는 상점 한복판.

         심지어 붙잡힌 대상은 지엄하신 가게 사장님. 얼빠진 모습에 잠시나마 모두가 얼어붙었어도 금방 우리를 만류하러 다가오는 점원이 있었으니.

         

         하여 진심으로 다치게 하려는 건 아니었다는 의도를 담아 선뜻 물러날 준비를 했는데.

         

         

         “아무리 사장님이 말을 개좆같이 하셨어도 다짜고짜 머리를 뽑아 버리시면 안 됩니다! 만약 하실 거라면 제발 저희가 퇴근한 다음에 해주세요!”

         

         

         “……아, 예.”

         – 점원 분의 표정 분석 결과, 약 98%의 기쁨과 2%의 걱정을 감지. 작업을 속행하겠습니다. –

         “토미! 너 이 의리 없는 개…끄오아아악!! 말, 말이라도 끝까지 하게 좀…!! 악. 꺽! 죄송, 사… 살려만 다오!”

         

         대체 이게 만류야 응원이야.

         세상 해맑게 웃는 얼굴을 보니까 살짝 부추기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최저 시급 아르바이트생의 업무에 살인 드로이드로부터 고용주 구출하기는 포함되어 있지 않던 모양인지, 매정하게 폐점 시간 안내를 해주는 남자를 힐긋.

         

         더럽게 인덕 없는 헤멧을 다시금 짜게 식은 시선으로 쓰윽 보고는, 턱짓으로 이제 그만 그 작은 털북숭이를 원위치 시키라고 눈치 줬다.

         

         덜컹, 털썩!

         

         “흐어… 어어어…….”

         

         “…어휴.”

         

         묘하게 기장이 늘어난 것 같은 멜빵 바지가 조종석에 무사히 안착한다.

         

         고작 일이 분 사이에 확장된 동공과 비교되게 안색이 핼쑥해진 헤멧이 무슨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것과 비슷한 소리를 내며 숨을 가다듬는 사이.

         조용히 신원을 확인할만한 데이터 목록에서 암시장 해커 ID를 팝업 시킨 다음 카운터에 설치된 스캐너에 인식시켰다. 그의 시선만이 간신히 닿을 건너편 모니터에 자격 증명이 살짝 나타나도록.

         

         사실 시민증과는 다르게 용병 ID에는 제대로 된 사진 한 장도 첨부되어 있지 않아서 증빙이 좀 힘들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그걸 위조할 솜씨나 배짱이 있음을 내보이는 것도 이쪽에 한 발 걸친 기술자의 소양이 아니겠나?

         

         게다가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에- 따로 거드름을 피운 건 물론이요, 업계 표준과 일부러 비교한 적도 없지만. 간략하게나마 표시되는 내 경력은 꽤나 화려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비대면 의뢰를 지극히 선호하고. 문제 체질을 걱정한 내가 좀 일감을 까다롭게 고른 탓에 활동 기간에 비해 총 수주 건수는 낮았지만, 무려 임무 성공률 100%에 만족도 조사 평균 9.72점 정도면 신흥 강호가 아닐까?

         

         ……0.28점은 집에서 간단히 용돈벌이 할 수 있는 데이터 복구 의뢰를 하다가 좀 까먹었다.

         

         보안 이슈로 내용물을 정확히 안 알려줘서 손에 잡히는 대로 모조리 건져냈더니 쓸데없는 자료까지 드러나서 곤란해졌다나 뭐라나? 더러운 진상 손님들 같으니라고, 자영업이 이렇게나 가혹하다. 크흑.

         

         하여간 그 외에도 하베스트 플래닛에서 딴 메가코프 휘하 대규모 작전 경험자 인증 딱지라던가, 자료 금고 건으로 마켓에서 공식적으로 남겨준 최상위 해커 분류 마크.

         

         최근 레오나르가 은근슬쩍 바꿔준 걸로 추정되는 인증 용병(Partnership Mercenary) 등급까지 끼얹으면 얼추 크게 나무랄 데 없이 멋들어진 지표를 가진 수수께끼의 전문 해커 아이보리가 완성된다는 말씀.

         

         “이건…… 거 상상이상으로 진짜배기 전문가셨구먼?”

         

         “그래? 그렇게 평가해준다면 고맙고. 사양하진 않을게.”

         

         표정이 확 달라지며 경박한 목소리를 낮춘 헤멧을 향해 은근하게.

         딱히 익숙하진 않으나, 떠보는 태도가 능숙해 보이도록 데스크에 한쪽 팔을 올려놓은 채 몸을 수그렸다.

         

         최대한 게임 캐릭터가 취했던 동작들을 떠올리며 속삭이는 듯한 디테일을 추가로 더했고.

         

         “아무튼, 소프트웨어 하나를 팔고 싶어서 찾아왔고. ……아, 저작권을 완전히 넘긴다는 게 아니라 판매를 위탁하는 방식으로 인프라만 빌려 쓰는 계약을 하고 싶은데. 혹시 지금 바로 상담 받을 수 있어?”

         

         “소프트웨어라… 나쁘지 않지. 이거 기대해도 괜찮을 것 같구만? 달콤한 향기가 아주…… 야! 토미! 계산대 좀 보고 있어라!”

         

         뭐, 실은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는커녕, 현장에서 상황을 좀 보고 즉석으로 뽑아내고자 완전 빈 손으로 온 상태지만… 물건을 넘겨야 할 시점에 만들어내면 안성맞춤이 아닐까?

         

         아 그래, 이런 상담은 또 공공연하게 남들 보는 앞에서 하기엔 애매하지.

         조심스럽게 들어진 손가락이 까딱까딱. 나머지 얘기는 안쪽에 있는 사무실에서 계속하자는 헤멧의 손짓에 따라 내부로 들어갔다.

         

         물론 피차 안 좋았던 첫인상은 테이블에 앉기 전에 말끔히 털어내자는 의도로 겸사겸사 스몰 토크도 좀 곁들여가면서.

         

         “요즘 그 신종 바이러스인가 뭔가로 많이 바쁜가 봐? 시답잖은 사기꾼까지 몰려들 정도라면.”

         

         “크흠…! 뭐, 자기 골방이나 폐쇄 네트워크에서 테스트로 굴려보는 것도 아니고. 대범하게 기업을. 그것도 고가 제품군을 주로 노리는 바이러스를 살포한 미친놈이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하지. 만약 이게 유출이 아니라면… 실사용을 위한 시험 운용이나, 판매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한 쇼케이스라는 추측도 무성하지 않나?”

         

         “어…… 그렇구나. 응.”

         

         탁!

         미친놈…이라는 악의 없지만 다소 과격한 표현에, 또 슬며시 뻗어 나가려는 제로의 팔을 다급하게 쳐서 말리며 영혼 없는 말투로 대꾸했다.

         

         우리의 인터넷 여포 해커 친구들은 오랜만에 화끈하게 놀 줄 아는 놈이 나타났다며 불구경 하느라 정신없는 분위기가 더 강했는데 말이지.

         

         막상 밝은 곳에서 일하는 근면성실한 엔지니어 무리들은 상황을 꽤 심각하게 여기며 다각도로 분석하느라 바빴던 모양이다.

         

         이것 참. 따지고 보면 최루 스프레이와 유사한, 어디까지나 호신용 방범 무기에 가까운 녀석한테 너무 과한 의미 부여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정보라는 건 비대칭일 때 더 강력한 법이니까 굳이 나서서 정정할 필요는 없으리라.

         

         여기서 내가 직접 해결법을 제시하면 그냥 깔끔하게 끝날 문제이기도 하고.

         

         “이 바닥이 한두 달쯤 잠잠했으면 사실상 세계 평화를 이룩한 셈이긴 하니 그다지 놀랍지도 않지. 그래도 이번 건 꽤 특별해! 엘리시움에서 크게 현상금까지 걸었으니 말 다 했어 아주!”

         

         “음… 엘리시움에서 몸소 현상금을~….”

         

         …………아니 잠깐, 저기요.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시발?

         어디서 대체 뭘 하셨다굽쇼??

         

         “저기… 방송에선 아직 엘리시움 같은 곳이 나서지 않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공유되는 신종 바이러스나 프로그램을 자동 포집하는 알고리즘까지 짠 녀석들이 무슨! 아마 공식적으로 요청 들어온 게 없다 뿐이지, 온갖 IT, 데이터 마이닝 기업들을 포함해서 물밑에서는 하나같이 미친듯이 뛰고 있었을 걸?”

         

         쫓아가던 손님이 갑자기 입꼬리가 당겨 올라간 아찔한 표정과 느린 발걸음으로 일이 흘러가는 추세를 되묻거나 말거나.

         

         되려 그런 양지 쪽의 소문에 어두웠던 내 상태가 썩 재밌는지 헤멧 아재는 신나게 남의 속을 뒤집어 놓으셨다.

         

         쓰읍.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Wanted, 아나스타샤 씨.

    Q. 제로가 무슨 짓을 시도한 건가요?
    A. (대충 찰리와초콜렛공장에서 껌 잡아늘리는 기계 묘사)

    고맹 님의 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저야말로, 재밌게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렇게 후원까지 해주셔서 영광입니다!

    항상 재밌게 읽어주시고, 바쁜 하루에 시간 내서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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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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