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저지르는 놈들이 나올 줄이야…”
송경의 도움으로 겨우 일어나는 데 성공한 순찰조장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비급에 눈이 완전히 멀었군.’
들키지만 않으면 돼!
라는 생각으로 일을 저지른 것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번 습격으로 장보도 사건은 한층 더 복잡해지리라.
“저, 저희는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우리 만으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소.”
“허면…”
“상대가 계속 습격해올 작정이면 일이 아주 골치 아파질 거요.”
‘가장 걱정되는 건…’
그의 머릿속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가능성.
이번 사태에 소극적인 무림맹을 어떻게든 끌어들이려 한다는 거라면?
처음부터 비동이 목적이 아니었다면?
판을 크게 벌여 시선을 돌리기 위한 거였다면?
온갖 가능성이 순찰조장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끙. 습격자의 배후를 알아냈다면 좀 더 일이 수월했을 텐데.’
터무니없는 가정이 머릿속에서 군웅할거를 시작한 상황.
만약 그 중에 하나라도 진실이라면 상황이 상상이상으로 복잡해질 터.
그리고 그건 일개 순찰조장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내가 왜 이쪽 담당이어서 이런 개고생을…’
어떻게든 호남성에 도달해서 정보를 전달해야만 하리라.
“이보게, 역관. 아무래도 일이 꼬여도 단단하게 꼬인 것 같다네.”
“후우…단순한 길잡이 일이라고 생각했건만, 왜 이런 일이…”
‘오늘 식사가 돌처럼 딱딱한 빵과 질긴 육포라는 걸 들은 윌리엄 같은 얼굴인 걸 보니 심각한 일이 벌어진 건가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다.
마들레르는 천으로 정성스레 닦던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들레르님. 어딜 가십니까?”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해요. 배고프거든요.”
“아 예…”
일행은 멍청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마들레르님은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걱정보단 짜증이 나네요. 사랑에는 시련이 필요한 법이라지만, 막상 겪고 보니 귀찮기만 하고.”
‘윌리엄이 맞이하러 올 것 같지도 않고.’
‘태평하시군.’
장보도는 이미 안중에도 없는 건가.
“허허…”
순찰대와 송경은 서로를 바라보곤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저 색목인이 우리 중에 가장 고수라는 건 확실하다. 결국 임무를 완수하려면 도움이 필요해.’
어차피 일에 휘말린 이상 서로 협력하는 것이 최선.
생각을 정리한 순찰대장은 차를 마시고 있던 송경에게 넌지시 물었다.
“역관, 이제부터는 힘을 합쳐야 하오.”
“…어떻게 말입니까?”
“상황 자체가 심각하게 꼬였으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호남성으로 향해야 하오.”
습격이 한 번이라도 단정할 수도 없을뿐더러, 마을을 벗어나면 또다시 습격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상대가 작정하고 고수를 동원한다면 일이 아주 꼬이리라.
“알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실…”
“송경. 혹시 여기에는 돈만 주면 정보를 팔거나, 일을 대행해주는 곳이 없나요?”
“…있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송경은 슬쩍 순찰대를 쳐다보았다.
순찰대 앞에서 하오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아무래도 망설여졌던 탓. 하지만 마들레르가 재촉하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그 단체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냈다.
“하오문이라는 곳입니다.”
“하오문…돈만 주면 뭐든 다 해주나요?”
“…살인청부 같은 것만 아니면 괜찮을 겁니다.”
“잠깐, 갑자기 하오문은 왜 꺼내는 것이오?”
“마들레르님께서 물어보셨습니다.”
‘갑자기 무슨?’
하오문.
예상치 못한 이름에 모두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어차피 휘말릴 수밖에 없을 거라면 아예 판을 엎어버리는 쪽이 낫다고 전해줘요.”
“예.”
송경은 마들레르의 의견을 순찰조장에게 전달했다.
순찰조장은 그녀의 말에 헛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오.”
‘이렇게 된 거 아예 판을 망가트려서 골탕 먹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어차피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인 거, 하오문을 이용해 상황을 타개한다면 어떨까.
“허나 하오문과 접선하려면…”
“제, 제가 압니다.”
“이보게,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아무래도 역관 일을 하다 보면 하오문과 엮일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럼 자네가 접촉하면 되겠군. 헌데 정확히 어떤 식으로 일을 진행하려는 건지 물어봐 주지 않겠나? 우리도 뭘 알아야 협력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송경의 고개가 다시 마들레르에게로 돌아갔다. 마들레르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우아한 동작으로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
“하오문에 오신 것을 환영하오.”
“이곳이, 하오문…”
“무림맹에서 하오문에게 먼저 접촉을 하실 줄은 몰랐소이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말이오.”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은 알고 있소.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하오문이 아주 훌륭한 구명줄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도 말이오.”
‘이 여인의 소문의…’
지부장의 눈이 하오문 지부를 둘러보고 있는 마들레르를 훑었다. 어쩌면 이곳에서 가장 요주의 인물은 다름 아닌 그녀라는 예감이 든 탓이었다.
“자자, 그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앞서 말하지만 우리를 고용하는 값은 꽤 비싸오.”
“제가 말하겠습니다.”
마들레르에게서 언질을 받은 송경이 앞으로 나섰다.
마들레르가 직접 말을 해도 알아들을 리가 없으니 당연한 인선.
“저희는 적당한 말 두 필과 한 가지 소문을 내줄 것을 원합니다.”
“흠, 흥미롭구려. 어떤 소문을 말이오?”
“저희가 양산으로 향했다는 소문을 내주십시오. 크게는 아니고, 알음알음 이야기가 들려올 정도로 말입니다. 마치 우연히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처럼.
그리고 만약 하오문에 놈들이 방문한다면, 아닌 척 하면서 정보에 확답을 해주십시오.”
“양산이라?”
‘재밌구려.’
광동성 북서쪽에 위치한 작은 산.
광동성에서도 특별히 유명하다거나, 관심을 받는 산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광동성의 구석에 있을뿐더러 산이 특출나게 웅장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으니.
그저 동네 뒷산보다는 크고 이름난 명산에 비하면 별 볼 일 없는 그런 곳. 하지만 그런 곳이기에, 되려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기엔 좋은 곳.
‘절대 고수들은 대게 자존심 때문에라도 이름난 산에 비동 숨기기를 좋아하지만, 벽력검제는 절대고수라는 이름값에도 불구하고 소탈한 분이라는 기록이 있으니.’
그 사실을 알건 모르건, 비동을 노리는 자는 갑작스레 양산으로 향하는 일행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리라.
저놈들이 우리를 속이고 진짜 비동으로 향하는 게 아니냐?
‘그런 생각을 한 치들은 양산으로 향하겠지요.’
늦든 빠르든, 아직은 무림맹이 개입하기 힘든 상황이니 더더욱.
무림맹이 본격적으로 개입을 시작하기 전에 비동을 파헤치고 비급을 얻는 데 성공한다면, 숨죽이고 무림맹의 분노를 피할 수 있으리라.
작정하고 숨으려 하면 찾기 어려운 곳이 바로 이 중원이란 땅이었으니.
‘아주 재밌는 손님이셨군.’
“보수는 넉넉하게 드리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소.”
“예?”
“이미 보수는 받았으니 말이오.”
‘이틀 정도가 지나면 정보가 무림맹에 닿을 터…’
갑작스러운 지부장의 대답에 마들레르를 뺸 일행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그 돈을 밝히는 하오문이 돈을 받지 않는다고?
“그게 무슨 뜻이오?”
물어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의문.
지부장은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마들레르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장사를 함에 있어 하수는 눈앞에 있는 재물만을 탐하지만, 고수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있는 재물까지 탐하는 법. 저 분에게 약간의 빛을 얹어두는 쪽이 우리 하오문에게 있어서 더 이득이오.”
“그 말은…”
모두의 시선이 마들레르에게 꽂힌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지부를 구경하던 그녀는 갑작스레 자신에게 시선이 꽂히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윌리엄을 만나면 중원어를 배우든가 해야지. 도대체 윌리엄은 이 나라 말을 어떻게 배운 거야?’
“송경, 무슨 일이에요?”
마들레르는 자신의 생체 통역기 송경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게…”
송경이 간단하게 대화 내용을 설명하자, 마들레르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주머니를 다시 품에 집어넣었다.
‘돈을 받지 않는다라…’
“뭐 그렇다면야…말은 최대한 빨리 준비해달라고 전해줘.”
“옙.”
그렇게, 일행의 새로운 경유지가 정해졌다.
병원가기 싫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