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44

       오늘은 평소보다 걷는 게 어색했다.

       

       나는 한 손에는 학생명부를, 다른 한 손에는 어제 밤새워 뽑아낸 문제지를 들고 연구실을 나섰다. 입에선 저절로 하품이 흘러나왔다.

       

       머리를 묶는 법을 몰라서 아카샤에게 부탁했다. 아카샤는 의아해하면서도 포니테일을 만들어 주었다.

       

       좋아, 나쁘지 않군.

       

       “모두, 좋은 아침입니다.”

       

       격식 넘치는 서양식 인사를 하며 교단을 밟았다. 학급 친구들의 눈이 예사롭지 않았다. 저 새끼를 또 보는구나, 그러는 느낌.

       

       얼마나 학생 돌보는 일을 무심하게 했으면 이리 되나 싶었다. 그래, 유피엘 정도면 착한 거지. 대학원생 감으로 딱 아닌가.

       

       그녀는 하이엘프라는 이유만으로 반장이 되었다. 내가 보기에 유피엘은 그런 성격이 아닌데 말이다. 오히려 기득권층 따님치고는 꼬장부리는 일 없이 검소해서 문학소녀 포지션에 어울린다.

       

       “출석 부를게요.”

       

       나는 나긋나긋한 투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한 명씩 이름을 읊어가며 눈을 맞춰주었다. 헤를라인 선생님이 주로 사용하던 방식이었다.

       

       “…좋아, 한 명도 빠짐없이 왔네.”

       

       탁. 학생부를 덮고 문제지를 들었다.

       

       “오늘은 과제부터 배부하도록 하겠어요.”

       

       그 말에 학생들이 싫은 얼굴이 되었다. 어린애처럼 징징거리지만 않을 뿐이지, 표정이 하나같이 똥이라도 씹은 것 같았다.

       

       뭐 어쩌라고.

       

       밤새워서 만든 과제 폭탄을 받아라.

       

       “오늘 과제는 중간고사 기간에 제출하면 됩니다.”

       

       그 말에 누구는 좋아했고, 또 누군가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중간고사 전까지면 시간 충분한 거 아닌가? 아니, 하이젠버그 교수니까 그만큼 어려운 걸 내줬겠지. 이런저런 말이 오갔다.

       

       “여러분이 받은 것은 스크롤 이론식의 기초 도해입니다. 쉽게 말해, 그림 그려오는 게 숙젭니다.”

       “어떤 그림이요?”

       “원하는 거 아무거나 하나.”

       

       제시한 틀에 맞추어 동작할 수 있는 마도진을 구축하기만 한다면 일단 점수를 줄 예정이다.

       

       또한 채점 기준은 다음과 같다.

       

       “가능한 많은 이론을 적용해 볼 것. 입력 대비 출력이 30배를 웃돌 것. 최상급 마석은 단 네 개만을 쓸 것. 오늘부터 앞으로 세 시간에 걸쳐 진행할 수업의 핵심 개념이 들어가 있을 것.”

       

       지키지 않아도 영점 처리는 되지 않으나, 지키면 지킬수록 고득점을 받을 수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수행평가 방식에, 학생들의 표정이 못 그린 유화처럼 뭉개졌다.

       

       “그럼 수업을 시작하도록 합시다.”

       

       나는 칠판을 내리며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난 패리티 수업은 개떡으로 가르쳤다.

       

       패리티는 변분 이론에 이어 물리학을 하는 데 중요한 이론이니 가능한 한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고 학부 2학년 친구들에게 대학원 이상의 수준을 가르친다?

       

       어불성설이다. 그건 학생들이 못난 게 아니라 교수자가 멍청한 것이다.

       

       리처드 파인만은 말했다. 그 어떤 이론도 대학 1학년 수준의 친구들에게 설명하지 못하면 완벽한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 지금은 철저하게, 고등학생도 알아먹을 수준으로 분필을 놀려야 할 것이다.

       

       “저번에 배운 개념은 그런 게 있다 정도로만 알아두시고, 패리티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알아봅시다.”

       

       나는 그러면서 칠판에 거울을 그렸다.

       

       복잡한 수식을 적는 것도 아니고, 뜬금없이 그림부터 그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모양인지 학생들의 눈가가 좁아졌다.

       

       “패리티는 거울입니다.”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다.

       

       “거울은 사물을 비춥니다. 정 반대 방향으로 말이에요. 거울 앞에 서서 오른손을 들어보세요. 거울 속의 자신은 어떤 손을 들고 있는지.”

       “왼손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진 경험적으로 아는 사실이다.

       

       “혹시 거울 속 세상을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여기선 오른손잡이인 내가, 저쪽 세상에선 왼손잡이인 겁니다.”

       

       얼핏 보면 그런 게 있을 수 있느냐, 말이 안 된다 생각할 수도 있다.

       

       거울에 비친 건 상에 불과한데 실존한다니.

       

       그러면 모든 사람에게 도플갱어가 있다는 소리나 비슷하지 않던가.

       

       “궤변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미신이 많던 옛날에는 그리 믿는 사람이 많았답니다.”

       

       이제 좌표축을 그리고 거울 그림을 원점에 놓았다.

       

       그리고 아무 지점에 점을 찍었다. 얼추 보니까 (3, 4) 지점에 있었다. 나는 점의 좌표를 표시하고는 물었다.

       

       “이 점에 거울을 투영하려고 합니다. 어느 방향으로 갈까요?”

       

       학생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3, -4). 그와 동시에 유피엘이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양이 음으로 뒤집혔네요.”

       “그렇죠. 오른쪽이 왼쪽으로, 위는 아래로 뒤집혔습니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가 되었다.

       

       “이 과정을 ‘패리티 변환’이라고 합니다.”

       

       행렬식이 -1이니 뭐니 하는 표현보다 훨씬 직관적이다.

       

       나는 오른손을 든 채로 움직였다. 교단 앞에는 중간 크기의 평면거울이 있었다. 거울에 손을 투영시키며 강의를 이어갔다.

       

       “이렇다 하더라도 손은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제 손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죠.”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것을 ‘패리티 대칭’이라고 부릅니다.”

       

       복잡한 수식 없이 이 정도 설명만으로도 학생들은 알아듣는다. 또한 숙고할 시간을 가져보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실은 거울 속의 허상일 수도 있다는 것이 여러모로 과학적 사고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학부생 시절 자주 이랬다. 교수가 툭, 하고 무언가를 내던지면 그 순간부턴 수업이 귀에 안 들어왔다.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봅시다. 이건 평면거울일 때만 성립하는 이야기잖아요? 거울이 달라지면 어떻게 되나 한번 보자고요.”

       

       이번에는 똑같은 좌표평면을 그리고 원점 자리에 볼록거울을 세웠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요?”

       

       내 질문에 학생들은 저마다 생각한 대답을 내놓았다.

       

       “…초점 거리가 어떻게 되는지를 모르잖아요.”

       “다른 위치 쪽으로 뒤틀리지 않을까요?”

       “점이 아니라 손을 가져다 놓는다면 길이가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정답이다.

       

       “그때 가면 거울 속 손은 내 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문제를 조금만 더 명료하게 해 봅시다.”

       

       나는 벽걸이 거울을 들었다.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겠노라고 미리 말했다.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있는 사이, 나는 거울을 있는 힘껏 교탁에 내리쳤다.

       

       와장창─!!

       

       거울을 깨뜨리자 몇몇이 몸을 움찔 떨었다.

       

       유피엘과 로테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레니냐는 볼을 긁적였고, 프레이는 귀를 접었다 폈다 하며 눈치를 보았다. 버멜은 얘가 또 무슨 병신짓을 하나 싶은 얼굴로 쳐다보았다.

       

       거울 곳곳에 균열이 나 있었다. 나는 손으로 흠결을 다듬었다. 그러고는 거울을 교탁 위에 바로세웠다.

       

       “깨진 거울은 상을 제대로 못 맺습니다. 이제 우리가 거울을 볼 땐 손가락이 있어야 할 자리에 머리가 있고,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엔 명치가 있습니다. 물어볼게요. 이런 걸 대칭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학생들은 아니라고 답했다.

       

       정답이다. 아이들은 잘 따라오고 있다.

       

       “그래서 패리티를 논할 땐 대칭이 중요합니다. 대칭성이 있으면 패리티 변환을 할 때 오른손이 왼손으로 바뀔지언정 손이 손이라는 것 자체는 그대로죠. 이걸 ‘패리티 보존’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깨진 거울에는 보존되는 게 없는 건가요?”

       “그렇죠.”

       

       변환, 대칭, 보존.

       

       “이 세 가지가 핵심입니다.”

       

       나는 2층 칠판을 위로 올렸다. 하나가 올라가자 다른 하나가 내려왔다.

       

       지금부턴 수식을 조금 쓸 계획이었다. 물론 대학교 1학년 수준의 미적분만 동원해서 말이다.

       

       “문제를 확장해 봅시다.”

       

       이번에는 동그라미를 그렸다.

       

       “뭔가요?”

       “눈입니다.”

       

       사람의 눈.

       

       “안구의 단면도가 원형이라는 건 다들 알죠?”

       

       이것을 왜 그렸느냐.

       

       “대칭을 확인한다는 것, 보존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 복잡합니다. 저번 시간에 가르쳐 준 수학적인 툴을 정확히 써야만 명료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난도가 높으니 우리 사람의 눈이라는 직관을 통해 패리티 붕괴를 이해해 봅시다.”

       

       인간의 눈에는 곡해가 있다.

       

       구형으로 되어 있기에 시각적 정보를 받아들일 때 변형이 생기고, 따라서 우리가 보는 세상은 평면이 아닌 곡선형이다.

       

       “미술에서 4점, 5점, 7점 투시 등을 가르치는 이유는 우리 눈의 특성 때문입니다.”

       

       나는 막대를 그려놓고 우리 눈에 어떻게 상이 맺히는지를 삼각법으로 계산했다.

       

       대학 시절, 잠깐 미술에 재미를 붙인 적이 있었다. 그때 투시 이론을 공부했는데, 우리 눈에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궁금했던 탓이다.

       

       왜 우리 눈은 물체의 실제 위치와 보이는 위치를 다르게 측정하는가. 과투시란 왜 생기는 것이며, 어떤 원리로 보이는 것인가 등등.

       

       탁.

       

       복잡하게 써내려간 수식에 답이 보였다. 나는 다른 부분은 제쳐 두고 마지막 적은 식에만 동그라미를 쳤다.

       

       그러자 학생들이 헐레벌떡 펜을 들고 연습장을 꺼냈다. 이 수식을 그대로 베껴 적으려는 것이다. 

       

       “잠깐.”

       

       나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시험 범위 아니에요.”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