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4

   경기도 안양시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

   “흐으음…”

   나는 천천히 턱을 괴었다.

   현재 탑승한 것은 수옥빈의 페라리 스포츠카.

   창문 너머 풍경이 어지럽게 펼쳐지지만,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손가락을 툭툭 건드렸다.

   눈앞에 보이는 붉은빛으로 빛나는 <정보창>이 어지럽게 빛을 내었다.

   ―――――――――――――――

   <스킬 정보>

   ◉이름: 기어 리미터.

   ◉등급: 전설(Legendary) / 고위(High-Rank)

   ◉레벨: 7

   ◉하위 스킬

   [거침없는 질주] [수중 질주] [순보] [전광석화]

   ◉특수효과

   : 지속되는 동안 <하위 스킬>을 일절 사용할 수 없다.

   : 지속되는 동안 <하위 스킬>의 레어도, 레벨, 개수만큼 모든 이동속도, 행동 속도가 상승한다. 추가로 획득하는 <이동속도> 스킬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자동으로 하위 스킬에 기록된다.

   : <기어>를 사용하여 일시적으로 전신을 가속 시킬 수 있다. 기어는 스킬 발동 때 처음 3개가 주어진다. (기어를 사용할 때마다 육체와 정신에 반동이 들어온다. 주의 바람.)

   : ‘기어’는 1시간마다 한 개씩 최대 3개까지 회복된다. 다만 <뇌 속성> 스킬을 사용하는 것으로 회복 속도를 극단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파생스킬

   : (격의 부족으로 아직은 배울 수 없다.)

   ◉상세 정보

   : 고도의 기계 문명과 초상의 결합으로 마공학의 시대를 펼친 어느 한 차원. 그곳의 불세출 천재였던 영웅이 개발하는 데 성공한 능력. 그 영웅의 최후가 어땠는지, 어째서 이러한 능력이 세간에 돌아다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

   ‘흠…’

   역시 예측대로 [기어 리미터]는 속도에 관한 능력이 맞았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고스라’에서도 흔적을 찾기 어려운 ‘마도공학’과 연관된 스킬이라는 점?

   ‘이건 또 골 때리는 스킬이네.’

   [괴력난신]은 육체의 강함을.

   [만류귀종]은 무기술에 대한 숙련도를 보정해준다면,

   [기어 리미터]는 속도에 집중되었다.

   특이하게도 다른 <고위> 능력과 다르게 애는 하위 스킬을 일절 사용할 수 없었다.

   사실상, 독고다이 그 자체.

   아무튼, 설명 덕분에 어깨 위에 둥둥 떠다니던 황금색 가시가 뭔지는 알아냈다.

   <기어>라고 불리는 특수한 자원.

   ‘고스라’에서도 가끔 독립적인 자원을 쓰는 스킬이 있었다.

   [기어 리미터]도 이런 분류인 모양이다.

   ‘가속이라…’

   ‘고스라’에서 속도 상승이라는 말은 있어도, <가속>이라는 용어는 없었다.

   느낌상 아마 속도계통의 최상위 능력인 것 같은데…

   이것 또한 실전에서 직접 써보지 않는 한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기어의 개수는 총 3개.’

   즉, 3번 가속하여 움직이는 게 가능.

   다만 대놓고 정신, 육체에 반동이 온다고 적혀 있었다.

   리스크가 상당한 [난신군림보]도 반동이라는 말은 없었던 걸 고려한다면…

   아마 상상 이상으로 리스크가 큰 힘 같았다.

   여기서 주목할 건 바로 마지막 옵션.

   바로 <뇌 속성>을 사용하여 기어를 빠르게 회복시키는 게 가능하다는 점.

   ‘…사실상 [굉음 치는 뇌격]을 섞으면 기어를 무한정 쓸 수 있다는 거네?’

   느낌상, [전광석화]라는 전기 계통 이동속도 능력이 합성되면서 이런 옵션이 달린 게 아닌가 싶었다.

   ‘…파생스킬이 없는 건 좀 아쉽지만…’

   이것 또한 내가 강해지면 자연스럽게 생길 테니 조급해하지 않도록 하였다.

   여튼 분석은 여기까지.

   제대로 평가하는 건 실전에서 해보도록 마음먹었다.

   * * *

   몇 분 뒤.

   눈을 뜨니 시야가 어두웠다.

   순간 밤인가? 싶던 찰나.

   옥이 굴러간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세하님? 슬슬 도착할 것 같습니다.”

   수옥빈.

   백발의 아름다운 미인이 화사하게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두 눈을 끔벅였다.

   이내, 내가 깜빡 잠이 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자는 모습이 귀여워서 눈 호강했는걸요?”

   “아하하…”

   으리으리한 주차장에 차를 주차.

   나는 수옥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녹지와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주변 시설들.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인 건 역시 눈앞에 있는 거대한 오피스텔일 거다.

   ‘와…’

   멍하니 위를 올려다보았다.

   지, 진짜로 이 으리으리한 게 내 집이라고?

   나는 헤벌레 입을 벌렸다.

   수옥빈이 귀엽다는 듯 쿡쿡하고 웃었다.

   “마음에 드시나요?”

   “…네, 그…저, 정말로 이걸 저한테 주시는 건가요?”

   “물론이죠. 유세하님은 가지실 자격이 충분합니다.”

   말만큼이나 예쁘게도 윙크한 수옥빈은 앞장섰다.

   시설들에 대한 설명과 세금 등에 대한 기타 등등.

   아, 잠시 집안의 먼지라든가 그런 것도 자동으로 청소된다는 말에 조금 경악했지만 넘어가고.

   마지막으로 오피스텔 내부에 대한 안내까지.

   솔직히 말해서 반 정도는 멍하니 들었다.

   그냥 계약서로만 들었을 때랑 현실로 보았을 때는 차원이 달라서 뇌가 못 따라갔거든.

   묵묵히 듣고, 듣고, 듣는 시간.

   우리 므냥이 전용으로 제작된 ‘두 가구’까지 보여주는 시간이 지나고 난 뒤.

   찰랑.

   어느새 내 손에는 열쇠가 놓여 있었다.

   “마법 처리가 된 소유자 명의 열쇠입니다. 유세하님말고는 아무도 사용 할 수 없으니 도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

   “유세하님?”

   “아, 죄송합니다. 잠시 멍때려서…저기…”

   “네, 말씀하시지요.”

   “잠시만 테라스 공기 좀 쐬어도 될까요?”

   뜬금없는 부탁이지만, 수옥빈은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저벅저벅.

   자연스럽게 밖으로 향했다.

   드르륵, 탁.

   ‘…베란다의 테라스마저 엄청 고급스럽네.’

   나는 탁 트인 공간, 정중앙을 가로질렀다.

   선선한 공기가 느껴졌다.

   시선을 내렸다.

   세상 모든 게 내 발아래에 있는 것처럼 작게 보였다.

   “……”

   나는 심장 위에 손을 올렸다.

   ‘…기쁜 건가?’

   모르겠다.

   분명 행복한 일인데 왜 이리 싱숭생숭하지.

   잠시 생각하다 원인을 깨달았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렇구나.’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른 세상이라 보실지는 모르겠지만 넌지시 속마음을 전했다.

   ‘아버지 보고 있으십니까?’

   언제나 사람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들었던 제가 지금 세간에 뭐라고 불리는지 아십니까?

   들으면 웃으실걸요?

   아마 폭소하실 겁니다.

   ‘영웅이랍니다. 어이없죠?’

   여기에 이런 으리으리한 집도 받았습니다.

   추가로 놀라지 마세요.

   이 건물뿐만 아니라, 이 주변 부지들이 전부 제 명의랍니다.

   <교단>이라는 곳에서 통째로 준 땅이에요.

   ‘…원래는 집도 없어서 땅바닥에 누워서 잤는데…’

   형들 죽으면 묻어줄 곳이 없어서, 창고에 집어넣고 그랬는데.

   이제는 모든 게 넘쳐나네요.

   사람 인생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

   한 10분 정도 그렇게 있었다.

   나답지 않게 감정이 좀 차오른 모양이다.

   딱히 뭐 눈물이 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저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똑똑.

   그때, 들려오는 유리창 넘어 노크 소리.

   수옥빈이 바라보고 있었다.

   입모양으로 보이는 ‘괜찮아요?’라는 말.

   나는 쓰게 웃으며 다가갔다.

   “괜찮습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해요.”

   “……”

   수옥빈은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핏빛 눈동자가 일렁인다.

   내가 아는 인물 중 가장 눈치 빠르고 귀신같이 분위기를 잘 읽는 그녀이다.

   내가 왜 테라스에서 궁상을 떠는지 얼추 알아챈 모양.

   살짝 시선을 돌린 그녀는 ‘음…’하고 고민하였다.

   “수옥빈 누님?”

   “유세하님 혹시 지금부터 시간 되시나요?”

   “아, 네. 어차피 애들은 내일 만나기로 해서…”

   “그러면…”

   수옥빈은 가슴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두 개의 빵빵한 흡혈 주머니에서 ‘척’하고 카드를 꺼내 들었다.

   왜 거기에 그게 있냐는 태클은 걸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보았기에 적응했거든.

   “저도 이후로는 별다른 일이 없거든요. 어차피 당분간 서로 바쁜 몸일 테니…”

   잠시…

   “오붓하게 데이트라도 할까요?”

   “…네?”

   * * *

   수옥빈과 함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성남 분당구에 있는 ‘로열 백화점.’

   온갖 사치품과 명품은 물론이요.

   헌터들이 환장하는 장비들도 파는 무지하게 비이이이싼 장소.

   당당히 들어서는 수옥빈.

   품에서 VVIP 검은색 카드를 꺼내 들자,

   직원이 뒤로 넘어지는 촌극이 조금 있었지만, 아무튼 가장 좋은 층으로 걸어 나갔다.

   “와…”

   나는 촌놈처럼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거렸다.

   말 그대로 세상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농담 아니고 지금 발로 밟고 있는 이 타일조차 내 옷보다 비싸 보였다.

   수옥빈은 그런 내 모습이 사랑스럽다는 핑크빛 웃음을 띠었다.

   은근슬쩍 내 손을 붙잡았다.

   보드라우면서도 차가운 손이었다.

   “일단 바로 옷부터 보러 갈까요?”

   “어, 네?”

   얼떨떨한 답변.

   이것은 곧 어딘지도 모를 옷 브랜드 가게 안 탈의실.

   그곳에서 비싼 옷을 두르고 나서도 이어졌다.

   “…어?”

   “흠, 흠…”

   수옥빈은 내가 입은 옷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바짝 군기가 들어있던 직원이 후다닥 다가왔다.

   “나쁘지는 않지만, 유세하님의 매력을 살리기에는 옷이 너무 하찮군요. 직원님? 분명 엘루아 소재로 만든 게 이번에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네, 네! 어, 어제 입고 되었습니다만 그 저기 가격이…”

    “상관없으니 다 가져와 주세요.”

    “네, 네!”

   다시 인형이 되는 시간.

   “……어?”

   어느새 몸에는 번쩍번쩍한 정장이 입혀져 있었다.

   여기에 최소 천만 원은 우습게 호가하는 옷들이 차곡차곡 접혀 비닐 팩에.

   그리고 카드로 다 결제해 버리는 수옥빈.

   “여, 여, 여 여기 계산서입니다.”

   “괜찮네요. 일시불 결제해 주세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부랴부랴 막으려 했지만,

   수옥빈이 예쁘고 고운 검지로 내 입을 가로막는 게 더 빨랐다.

   “이럴 때는 누나를 의지하면 됩니다?”

   “저, 저도 돈 있습니다!”

   다급한 말에 수옥빈은 두 눈을 멀뚱거렸다.

   쿡쿡거리며 웃었다.

   슬그머니 다가와 나를 폭하고 감싸 안았다.

   뒤에서 부랴부랴 포장하던 여직원이 작게 ‘꺅!’ 거리며 몸을 돌렸다.

   “저, 저기 수옥빈 누님?”

   “정말이지 사랑스러워서…확 납치해 버릴까?”

   “으, 에, 네!?”

   “농담입니다~그냥 제가 사드리고 싶었어요.”

   “그, 그래도…”

   “역시, 이런 여자 부담스러우신가요?”

   수옥빈은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급하게 고개를 저었고,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웃더니 손을 잡고 다른 곳을 돌아다녔다.

   뭔가 당한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수옥빈은 여기저기 나를 애착 인형처럼 데리고 다녔다.

   “이건, 마하나님에게 어울릴 것 같네요. 약간 고스로리 느낌이 나는 게…여기 엉덩이 부분에 난 구멍 보이시나요? 꼬리를 집어넣기 위해 제작된 거랍니다?”

   “이건, 용검미르의 아가씨에게 어울릴 것 같네요. 이 정열적인 색상이…-”

   “이건, 달디단 팥빙수 님에게…-”

   *

   어느새 늦은 시간.

   수옥빈과 저녁까지 마친 나는, 그녀의 차를 타고 다시 오피스텔로 돌아가고 있었다.

   뒷좌석을 바라보았다.

   내 옷은 물론이고, 우리 애들에게 전해줄 옷과 향수, 액세서리 등등이 가득 쌓여있었다.

   ‘…이, 이게 도대체 다 얼마야?’

   아까 살짝 보니 억 단위로 나오던데…

   역시 부협회장 정도 되면 돈 단위가 다른 건가?

   대충 그런 생각을 하니 어느새 도착한 입구.

   나는 짐을 챙겨 수옥빈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후후, 저야말로 유세하님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네요.”

   수옥빈은 마지막 인사라는 듯 다가와 나를 폭하고 끌어안았다.

   이번에는 좀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절로 느껴지는 와인 같은 체향.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한참을 내 머리를 쓰다듬던 수옥빈.

   나지막이 귓가에 속삭였다.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불러줘요. 언제든지 도와드릴 테니…”

   “네, 네!”

   그날.

   나는 떠나는 수옥빈 누님과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짐을 맞이했다.

   * * *

   다음 날 오전.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짐 정리를 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

   삐리삐리-!

   삐비빗-! 하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이 느껴졌다.

   이 특유의 뭉클뭉클하며, 므아므아한.

   이 세상에서 오로지 단 한 사람만이 내뿜는 감각!

   ‘말 그대로…’

   므아아하며, 므아아하고, 므아아한 고유 감각!

   틀림없었다.

   나는 짐이고 나발이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테라스로 달려갔다.

   밑을 둘러보았다.

   보였다.

   약 10km 떨어진 곳.

   이 므아아 주파수를 내뱉는 조금만 한 검은색 털 뭉치가.

   삐릿-!

   그리고 이건 검은색 털 뭉치도 느낀 모양이다.

   손에 들린 지도를 보며 ‘므아, 여기가 맞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털 뭉치.

   2개의 꼬리를 쭈뼛 올리며 정확하게 나를 올려다보았다.

   “……”

   “……”

   잠시 침묵.

   곧, 우리는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서로를 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틀림없다.

   틀림없다고!

   나의 최애캐.

   내가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

   우리 천사 같은 므냥이.

   약 2주 만에 다시 보는 그립고 사랑스러운 그녀와의 재회였다.

   나는 서둘러 옷가지를 둘렀다.

   그리고 단숨에 1층으로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