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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4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나는 너를 순수하게 제자로서 좋아하는 것이니, 그 이상으로 나에게 감정을 품지 않았으면 해.”

     

    그리 말하며, 루크는 주머니에서 익숙한 목걸이를 꺼내 시루드에게 건네며 말했다.

     

    “혹시 이 목걸이가 그러한 감정이 담긴 선물이라면, 나는 받을 수 없겠구나.”

    “뭐……?”

     

    사실, 루크는 타인에게 무언가 정보를 전달할 때는 상대방의 감정과 상황이라는 것을 깊이 고려해본 적이 드물었다.

    마법사이기도 했고, 애초에 성격이 그렇게 섬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족적인 예의 정도야 학습해서 아는 것이지만, 진심으로 타인에게 공감해서 예절을 취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애초에 그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는 위치에 있기도 했고.

    때문에 그런 루크의 ‘눈치없음’ 때문에 벌어진 싸움도 조금 있었다.

     

    이를 테면, 전쟁으로 어미를 잃은 소년에게 아비는 남아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지 않겠냐는 식으로 말했다가 레니에와 케일에게 혼난다거나, 전투에서 크게 패배하여 간신히 생존해 돌아온 병사가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묘사하는 것을 끊고, 필요한 전체적인 피해상황과 상대병력의 정보나 보고하라며 일렀다가 방금 사지에서 돌아온 병사에게 할 소리냐는 말을 듣는다거나 했다.

     

    뭐, 점차 그런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대략적인 경향을 학습하게 되며 그런 눈치는 나중엔 나아졌다는 평가를 듣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지금의 이 상황은 루크에게 전혀 학습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대체 언제 어떻게 자신이 서클마법이 도태된 풍족한 현대사회에서의 혼혈수인 여자아이가 갖는 사회적 위치와 시선에 대해 완전히 적응할 만한 지식을 습득 할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그 사실은 여태껏 자신이 겪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거의 무조건적인 호의를 보장할 정도였으니, 굳이 그러한 사실에 깊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쓸데없는 것을 고민할 시간에, 마법이론이나 더 갈고 닦는 것이 훨씬 이득일 테니까.

     

    하지만, 그런 루크의 머릿속을 알 수 없는 시루드로서는 그렇지 않았다.

    얼떨결에 루크에게 목걸이를 받기는 했지만, 시루드는 여전히 뜬금없는 루크의 말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갑자기?

    지금 이 타이밍에?

    방금 상황과 대화 어디에서 비호감을 살 만한 곳이 있었나?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역시 있을 턱이 없다.

    고작해야 ‘봤느냐?’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하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정상적이며 건전한 대화가 아니었던가.

     

    아무래도 이해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시루드는 문득 오늘 아침에 꾸었던 꿈의 장면이 겹쳐지는 것 같았다.

     

    꿈을 꾸었을 때는 정말 말도 안되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그 꿈이 그냥 개꿈이 아니었던 거라면?

     

    “……!”

     

     

    그렇다.

     

    어쩐지, 그렇게 고백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루크의 태도는 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까, 자신과는 그냥 친한 친구로 지내고 싶었을 뿐, 그 이상으로 나아갈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은 루크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오빠’라고 불리울수도 없는 꼬맹이일 뿐이고, 그녀의 취향은 남자 ‘아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 생각하면 차라리 말이 되니까.

     

    시루드는 루크에게 돌려받은 월영석 목걸이를 쥐고 일어나며 말했다.

    “설마, 그 서드라는 형 때문에 그런거야?”

    주었던 선물을 도로 돌려준다는 것은 엘프식으론 절교나 마찬가지인 커다란 의미다.

    게다가 그것이 심지어 생일선물로 건네주었던 목걸이라면, 그건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꽤 오래된 엘프의 문화이고, 잘 모르는 사람도 많아서 딱히 그런 의미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지만, 온갖 예법과 지식에 능통한 루크가 그런 걸 모르고 행동했을 거라고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만약에 그런 뜻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설명을 하지 않았을까.

     

    그 생각을 하며 시루드는 이를 악물었다.

    갑자기 절교라니, 도저히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서드? 그의 이름이 여기에서 또 나오는군. 그가 네게 무슨 짓을 했나? 무슨 소리지?”

     

    루크는 모르겠다는 듯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시루드는 답답함을 숨기지 않고 외치듯 말했다.

     

     

    “서드형이 나보다 더 커서 좋은 거잖아!”

    “응……? 커서 좋……. 뭐라고?”

     

    루크는 순간 시루드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흠칫했다.

    왜냐하면, 그 대사가 과거 예르나의 집에서 보았던, 아이들이 보면 안되는 소설 속의 대사와 거의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설마, 그런 소설을 보고 오해를?

    ‘아니, 보통은 키의 이야기겠지.’

    루크는 순간 흐트러진 정신을 가다듬으며, 일단은 시루드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게냐?”

    하지만, 시루드는 그런 루크의 반응에 심증을 굳힐 수 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갑자기 순간적으로 저렇게까지 표정이 망가질 이유가 없으니까.

     

    “만약 그런 거라면……!”

     

    당연히 다른 뜻을 생각하지 못한 시루드는 분한 듯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지금은 내가 네 눈에 차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도 나중에 크면 서드 형보다 헐씬 더 멋있어질 수 있어. 그러니까…….”

     

    왠지 답답한 느낌이 든다.

    보통이라면 이렇게 절교를 하더라도 아카데미에서 오고 가며 볼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지 않더라도 그리 절교라는 것이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루크는 말 그대로 언제든 아카데미를 그만두어도 상관이 없지 않은가?

     

    그야말로 자신과 루크를 잇는 단 하나의 연결고리는 루크에겐 별로 큰 의미도 없는, 졸업장을 따기 위해 다니는 아카데미 하나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영영 루크를 못 볼 것 같아 아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다.

    눈물이 조금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절교는 하지 마. 그동안 네가 하는 기행이 싫은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네 덕분에 서클도 많이 나아졌고, 아카데미를 다니는 것도 좋아졌어. 여자애랑 대화하는 것도 이제 괜찮고, 마법 공부도 재밌어졌단 말이야. 그러니까…….”

     

    루크는 말을 토해내듯 하는 시루드를 안아 말을 멎게하고, 동시에 등을 쓰다듬으며 서클을 진정시켜줌과 동시에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절교라니? 어째서 그런 생각을? 그런 건 절대 아니니 안심하거라.”

    “하, 하지만. 목걸이를…….”

    “목걸이가 왜?”

     

    시루드는 울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토해내듯 말을 뱉었다.

     

    “내, 내가 준 서, 선물을 나, 나한테 돌려주는 건, 절교하겠다는 뜻이잖아. 너, 내가 갑자기 싫어진 거잖아.”

    “그, 그 행동에 그런 뜻이 있었나? 단언컨대,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루크는 원래 엘프식 예법은 별로 조예가 깊지도 않았고, 그런 의미가 있다는 것은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들어본 적도 없는 문화였다.

    그러니까 적어도 자신이 생활했던 5000년 전에는 그런 예법이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것을 뽑자면 전쟁중에 죽은 자, 또는 죽을 전투에 나서기 전의 병사가 자신이 평소 지니던 의미 있는 선물을 돌려주는 일 정도는 있었지만, 그것이 절교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문화는 모든 종족에게 두루 존재하는 보편적인 상황이었다.

     

    뭐, 더 긴 삶을 사는 엘프의 경우엔 더 많은 추억과 정성이 담겨있는 물건을 주고받기는 했을 테지만.

     

    “그리고, 너보다 서드를 특별히 더 좋아한다거나 한 것도 아냐. 나는 내 제자들을 동등하게 좋아한다. 이성으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닐 뿐이지.”

    “정말?”

     

    어느정도 안정된 것 같아 루크는 시루드를 품에서 떼어내고 한쪽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그래. 혹시 그런 느낌이 들었다면 내가 미안하구나.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게냐? 말해주면 고치마.”

    “그냥, 평소에 서드 형이랑은 자주 만나는 것 같아서……. 그래서…….”

    “그건 그냥 서드가 너에 비해 훨씬 불안정한 상태라 자주 보아야 했을 뿐이다. 그는 너처럼 사회적인 연도, 부모도 없으니 말이야.”

     

    게다가, 자신의 서클 복구시술로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서드는 과거의 기억도 상당부분 잃었기 때문에 현재 삶을 바로 이어나가기엔 여러가지로 애로사항이 많았다.

    그리고 그 어려웠던 과거를 기준으로해도 꽤 고달픈 삶을 살았을 서드에게 더 많은 손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런 거구나……. 나는, 틀림없이 서드형 같은 어른이 네 이상형인줄 알고…….”

    “하하하. 정말 재미있는 오해를 했구나, 너는.”

     

    이상형이라니!

    루크는 서드를 이상형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솔직히 말해 외모는 아직 그 흉측한 흉터가 고쳐지지 않아 고려대상조차 될 수 없고, 성격도 스승인 자신에게야 깍듯하지만 타인에겐 기본적으로 과거의 상처 때문에 쌀쌀맞고 날카로운데다, 재력은 말할 것도 없이 빈곤했다.

    그런 남성을 좋아할 수 있다면 정말로 대단한 여성이 아니겠는가.

     

    “물론, 그에게도 그런 여성이 하나쯤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하다. 당연히, 나는 아니겠지만 말이야.”

     

    그렇게 말하니 시루드는 자신이 정말 이상한 오해를 했구나 싶어 얼굴을 붉혔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그, 그럼 너는 이상형이 뭔데?”

    “내 이상형?”

     

    이상형이라, 루크는 사실 그에 대한 생각을 그리 깊게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잘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굳이 꼽자면, 딱 한명이 있었다.

     

    “만약 내게 이상형을 고르라면, 레니에 아린세이아 같은 여성이 좋겠군.”

    “……응? 레니에……?”

    “그래, 레니에.”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며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여성은 그녀가 유일했다.

     

    그녀의 미소는 그 무엇보다 값진 보상이었고, 그녀의 행복이 루크가 그 전쟁에서 얻은 유일한 교훈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영혼은 그 누구보다 불사에 걸맞는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아마도 그녀가 자신의 이상형이 아닐까.

     

    “레니에처럼 의지가 강하며, 아름다운 용모와 붉은 기가 감도는 머리칼의 여성이 나의 이상형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

    “……어, 어어. 그, 그래……?”

    “그러니까, 내가 너를 좋아하더라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알겠지?”

     

    그야말로,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

    적어도 어떤 남성상이 나오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루, 루크가 여자를 좋아할 줄이야…….’

     

    남들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답을 선택한다는 것은 확실히 루크다웠다.

    그래서 루크는 항상 그런 느낌이었던 걸까?

     

    “…….”

     

    남자 ‘아이’라서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남자’아이라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라니…….

    ————-

     

    헬레나는 예상치 않게 엿듣게된 충격적인 사실에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마, 말도안돼!’

     

    루크가 사실은 동성애자였다니!

    실습창고의 뒷편으로 걸어가고 있는 시루드를 우연히 발견한 헬레나는 사실 시루드를 몰래 쫓아가고 있었다.

    길을 걷다가, 이따금씩 눈을 감고 방향을 가늠한 뒤에 다시 걸음을 옮기고 있는 남자애는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 모습에 대체 왜 그렇게 걷는 거냐며 물어보고 싶기는 했지만 갑자기 말을 걸기엔 좀 부끄럽고, 그렇다고 신경을 끄자니 너무 궁금해서 그냥 조금 멀찍이 시루드를 쫓았던 것이다.

    그러다 루크랑 시루드가 대화하는 걸 우연히 보게 되어 홧김에 엿듣게 되었을 뿐, 정말 다른 의도는 없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싶지는 않았다!

    ‘……어, 어떡하지?’

    속으로 우왕좌왕하던 헬레나는 숨죽여 발소리도 내지 않고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뒤에, 마구 달려서 자신의 반으로 돌아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의 이상형이 충격적인 두 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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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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