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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4

        

       꿈은 끝이 났다.

       꿈속에 들어가서 직접 겪는 윌리엄의 고초도 끝이 났으며, 기생충을 매개로 꿈을 훔쳐보고 있는 진성의 관찰 역시 같이 끝을 맺었다.

         

       “흐음.”

         

       윌리엄은 살아남았다.

         

       주술을 매개로 자신의 꿈에 침입해 자신을 죽이려는 악령의 손을 피해서, 무사히 ‘칩’을 사용해서 강제 기상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예언과도 연관이 되는 것이라.

         

       “예언이라고 보여주었던 그림에서 두 번째라고 말하는 것이 있었으니, 필시 그사이에 살의를 갖고 손을 뻗지는 않겠다.”

         

       아나스타시아가 등장해서 윌리엄을 악령 넷에게서 구해주는 예언에서 악령이 ‘두 번째 만남’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것을 생각해본다면 윌리엄은 그 예언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안전하다는 이야기였다.

         

       참으로 좋은 일이었다.

       적어도 윌리엄에게는 말이다.

         

       “어떤 방법을 쓸지 궁금하였는데, 저런 방법을 쓰다니.”

         

       하지만 기대를 품고 꿈을 관찰했던 진성에게는 꽤 실망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진성은 이미 저 흑주술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벨리(Illhveli)의 꼬리 징벌.’

         

       다른 이름으로는 ‘사악한 고래의 저주’라고도 불리는 저주였다.

         

       아이슬란드의 전설 속에서는 사악한 고래들이 나오는데, 이를 그들의 말로 일벨리(Illhveli)라고 말한다. 이들은 말이 고래지 바다 괴물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며, 선량한 고래나 지나다니는 배를 공격하고 사람을 죽이고 뜯어먹기를 좋아하는 사악한 괴물들이었다.

         

       게다가 그 성질 역시 사악하기 짝이 없어서, 그저 자기 즐거움을 위해 사람을 뜯어먹거나 선량한 고래를 공격하기도 하며,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입에 담으면 반드시 찾아가 보복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아이슬란드의 선원들은 일벨리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을 금기로 여겼고, 그 금기를 어기는 사람은 흠씬 두들겨 맞고 선실에 갇히거나, 심한 경우 바다에 제물로 바쳐지는 경우까지 있었다.

         

       제물로 바쳐지는 것 역시 꽤 잔혹했다.

       대구의 간에서 나온 기름을 몸에 바르고 몸에 불이 붙은 채 바다에 던져지거나, 유황과 소와 양의 배설물, 썩은 미끼를 강제로 먹이고 그대로 바다에 떨어뜨리곤 했다.

         

       일벨리들이 먹음직스러운 ‘제물’을 먹었다가 탈이 나서 배를 잠깐이나마 쫓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반드시 일벨리가 나타날 것이 분명했으니까.

         

       ‘실제로 일벨리를 쫓는 효과는 없고, 액운액살(厄運厄煞)을 물리치기 위한 기원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몇몇 학자들은 이러한 선원들의 행위를 관습과 문화에 깃든 주술적 행위와 연관을 지어 해석한다.

         

       제물에 불을 피우는 것은 예로부터 초월적인 존재에게 제물을 바치는 번제와 연관이 있는 것이며, 불이 그 자체로 ‘정화’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부정한 것을 쫓아 보낼 수 있다고 여겼다는 것.

       제물의 안에 ‘사악한 것’이 싫어하는 것을 숨겨놓고 삼키게 하는 것은 인간이 꾀를 짜내서 사나운 것들을 물리치고 다녔던 것에서 기원하는 ‘퇴치 주술’의 의미가 담긴 것.

         

       즉, 인신공양의 탈을 쓴 부작(附作)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악한 고래’에 대한 전승은 대를 지나면서 점차 강력해졌고, 일벨리를 물리치는 방법과 일벨리의 힘을 빌려 만드는 주술이 만들어졌다.

         

       진성이 목격한 저주는 ‘일벨리의 꼬리 징벌’이라고 부르는 저주 중에서도 붉은 볏의 사악한 고래의 힘을 빌리는 저주.

         

       ‘라우드켐빙어(Raudkembingur)의 끝없는 악의’라는 이름의 저주였다.

         

       일벨리의 꼬리 징벌 흑주술 중에서도 그리 큰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저주였으며, 사용하기에 따라 다른 저주보다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 저주였다.

         

       저주의 대상이 점차 식욕을 잃게 만들고, 운기를 흐트러뜨려서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게 하며, 영적 방어력을 부숴서 악령과 악귀의 표적이 되기 쉽게 만든다.

         

       즉, 저주로 분류되는 것은 맞지만 직접적인 해코지를 하기보다는 해코지하기 쉬운 환경을 만드는 흑주술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 효과이기는 했으나….

         

       ‘쯧.’

         

       이 ‘라우드켐빙어의 끝없는 악의’는 진성의 처지에서 보면 효율적이지 않은 흑주술이었다.

       

       그 이유?

       간단하다.

         

       너무 널리 퍼진 흑주술이었으니까.

         

       흑주술에 손을 대려고 하면 한 번은 꼭 듣게 되는 것이 ‘일벨리의 꼬리 징벌’이었다.

       게다가 ‘일벨리의 꼬리 징벌’ 중에서도 ‘라우드켐빙어의 끝없는 악의’는 재료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데다가, 직접적으로 상해를 입히는 흑주술과 비교하면 그나마 대가가 낮은 편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강령술사나 부두술사같은 주술사들이 사용하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주술의 메커니즘이란 많은 주술사가 사용할수록,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수록 그 위험이 늘어나게 되는 것.

         

       아마 이 흑주술을 사용하려고 한다면 정말 큰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사람 목숨을 직접적으로 빼앗는 흑주술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말이다.

         

       ‘게다가 이 비효율적인 저주에 이어서 악령의 침입이라.’

         

       몸, 정신, 영혼을 약화한 뒤 악령을 투입해 홀리게 만드는 것.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한 30년 전 기준으로는 말이지.’

         

       저 방식은 옛날 강령술사들이 쓰던 방식이었다.

       일벨리의 꼬리 징벌 흑주술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적에나 쓰였을 법한, 교과서 한구석에나 등장할법한 구세대의 산물이나 다름없는 것.

         

       ‘점괘마저 쉬이 할 수 없을 정도로 운기를 흐트러뜨렸기에 내심 기대했건만. 고작 라우드켐빙어의 끝없는 악의를 강하게 건 것에 불과하구나. 실망이로다, 실망이야.’

         

       강하게 걸기는 했다.

       진성이 자신이 모르는 주술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정말 강하게 말이다.

         

       하지만 강하게 걸면 뭐 하는가.

       효율적이지 못한 흑주술에 힘을 잔뜩 줘서 의식을 치러서 주술을 걸 정도라면, 그냥 다른 흑주술을 걸어버리거나 악령 쪽에 힘을 줘서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데.

         

       게다가 악령을 다루는 방법 역시 문제였다.

       현실과 착각하게 하는 방법은 나쁘지 않았으나, 금방 꿈이라는 것을 인식시킬 정도로 어설펐다.

       게다가 리얼리티 체크를 막을 방법 역시 제대로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고, 겁을 집어먹게 만드는 방법 역시 공포영화에서나 볼법한 상투적인 방법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마치 꿈의 경계를 부수고 악령을 침투시킨 이후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 악령을 침투시키면 악령이 알아서 해줄 거야, 저 멍청한 놈은 이런 것에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손쉽게 죽겠지. 』

         

       낙관적이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술자의 생각이 그대로 읽히는 것 같은 행보였다.

         

       윌리엄에게 흑주술을 건 술자가 강령술사라면, 전투나 저주에는 정말 재능이 하나도 없는 주술사이리라.

         

       그런데 여기서 또 묘한 점이 있다.

         

       전투나 저주에 재능이 없다고 치기에는, ‘라우드켐빙어의 끝없는 악의’가 꽤 잘 강화되었다는 것.

         

       진성이 아무리 점괘를 전문으로 삼고 있지 않다고 한들, 그의 경지가 낮은 편이 아니다.

       그런 그의 점술을 완벽히 막아버리고 경고까지 전할 정도로 운기를 뒤틀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상대편 역시 결코 낮은 경지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그냥 악령을 잘 다루거나 수호령을 붙여서 막아낸 것이 아니라, ‘저주’라는 수단으로 진성의 점괘를 막아낸 것이다.

       

       참 모순되는 일이 아닌가?

         

       투박하고 어설프고 경험이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그 경지는 낮아 보이지 않는다.

         

       너무 불균형하지 않은가.

         

       마치 연구만 미친 듯이 파고들었던 사람이 난생처음 저주를 한 것처럼 보인다.

         

       아니면….

         

       ‘흥미가 생기는구나.’

         

       진성은 이 알 수 없는 불균형에 흥미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래, 개입은 하지 않되 얼굴을 보는 것 역시 나쁘지 않으리라.’

         

         

         

        * * *

         

         

         

       [ 계약자야, 나의 계약자야. 귀여운 나의 계약자야. ]

         

       은 발굽의 낙타가 자신의 귀여운 계약자, 이세린에게 말했다.

         

       [ 네 오빠에게서 비밀의 기운이 느껴진다. 어떠한 재미난 것을 보고 비밀스러운 것을 가슴에 품고, 안개를 마음에 담고 움직이려 하는구나. ]

         

       그레모리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이세린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곤 혓바닥을 날름 내밀어 자기 콧잔등을 한 번 핥았고, 유황 냄새가 나는 침을 바닥에 타악 뱉었다.

       그러자 치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유황이 매캐한 향을 내며 타올랐고, 그 향은 잠시 머물렀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허공에 녹아들어 갔다.

         

       그렇게 허공에 녹은 유황은 아지랑이가 피어나듯 사방에 흔들리며 매미의 날개 같은 얇은 천의 형상이 되었고, 그것은 허공에서 솟아나 허공에 늘어지는 벽이 되었다.

         

       그 벽은 바람이 불지 않는 실내임에도 의지를 가진 듯 흐늘거렸고, 그 중심부에 뻥 뚫린 구멍 세 개가 역삼각형의 형태로 나타나며 눈과 입의 모습을 만들었다. 그리곤 보자기를 뒤집어쓴 유령처럼 이리저리 끝을 움직이더니 이세린에게 다가갔다.

         

       그 유령은 이세린의 주위를 몇 바퀴 맴돌더니 그레모리와 똑같은 말투로 물었다.

         

       [ 계약자야, 귀여운 계약자야. 오빠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나 내 생각에는 여기서 멈추는 것이 좋아 보이는구나. 하지만 귀여운 나의 계약자는 그것을 원하지 않겠지? ]

         

       이세린은 보자기를 뒤집어쓴 귀여운 유령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음침하게 말했다.

         

       “궁금해.”

         

       그녀의 목소리는 음침했지만, 그 끝에는 분명히 열기가 담겨있었다.

         

       진성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보고 싶다는 열망에서 피어난 열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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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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