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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4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악한 사람은 아니지만, 특별히 선한 사람도 아닌. 범상한 장삼이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저런 음해를 받았고, 받고 있기는 한데. 오해란 부득이한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함부로 타인을 평가하는 건 꺼려지는 일이었다.

         

        실력이 있고 없고 따위야, 당연히 평가할 수 있고……또, 평가해야만 하겠지만.

         

        누군가가 착하다거나, 나쁘다거나- 그런 판단은, 내가 감히 손을 대기는 어려운 영역이다. 나도 이런 저런 잘못을 하는 주제에, 남에게 뭐라고 한다는 것이 꺼려지는 탓이다.

         

        명확한 규칙이 정해져있지도 않은 게임 내 세계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무엇이 매너고, 뭐는 사건 사고 게시판에 올라갈만한 악행이고……이런 저런 규칙이야 있었지만, 내가 그런 룰에 기댄 적은 없다. 그런 규칙을 근거로 누군가를 비난한 적도 없고.

         

        아무렴, 나오나에서야……억울하면, 상대의 머리를 베어내서 증명하면 그만이었으니.

         

        베어낼 수 없었다면, 억울함의 진정한 원인은 상대의 비매너 따위가 아니라 내 실력인 거고.

         

        그럼에도.

         

        그럼에도, 결코 용납하기 어려운 짓거리가 하나 있다면-

         

        “……일부러……같네요. 응. 일부러, 저러고 있어.”

         

        진지하게 임하는 상대를 장난감 취급하는 일이었다.

         

        전생, 망해가는 나오나의 초보존에서 초짜 흉내를 내다가 양학을 시작하곤 했던 그런 놈들처럼.

         

        대등한 승부를 펼치던 중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기 위해 티배깅을 하는 건 좋다. 때로는 그 작은 도발 탓에 생겨난 조급함이 승부를 가르기도 하니까.

         

        끝난 승부의 장식이자, 다음 승부의 조미료가 되는 세리머니도 괜찮다. 그런 게 다 쌓여가는 서사니까.

         

        하지만……승부 자체를 우습게 만드는 건.

         

        -까드드득!

         

        화면 속. 광전사의 도끼가 기울어진 버클러를 타고 거칠게 흐른다. 절묘한 타점 흘리기다. 소형 방패로 쉽지 않은 묘기.

         

        방패의 각도 조절이 제법이더라. 저리 잘난 체를 할 정도의 실력은 있다는 거겠지.

         

        병기의 경로를 강제로 교정당한 광전사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며 균형을 되찾는 사이,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기사의 검이 번뜩였다.

         

        -퍼억!

         

        마지막 순간에 몸을 뒤틀어가며 직격은 피했지만- 광전사의 옆구리에선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데미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정말 아픈 건 저……광전사의 자존심이리라. 애초에 직격은 피할 수 있는 위치로 찔러 들어갔고- 맞상대중인 당사자가 그걸 못 느낄 리가 없으니.

         

        《파골! 파골 선수! 기회입니다! 저돌적으로 달려들던 레반 선수의 기세를 일거에 꺾어버리는 한방이에요!》

         

        《파골 선수, 들어가나요! 아, 여기서 안정적으로 횡으로 빠져나오는 선택을 합니다. 스태미나 우위 잡았는데, 무리하게 딜 더 넣었다가 폭주 켜질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이겁니다. 침착해요! 정말 침착합니다! 평소의 파골 선수라면, 지금쯤 앞뒤 안 가리고 인파이팅을 시작했을 법도 하거든요. 다음 시즌의 파골 선수를 기대하게 되는데요, 이거.》

         

        《아, 말씀드리는 순간 다시 뛰어드는 레반 선수! 아직 폭주가 켜지지 않았는데도, 매섭습니다!》

         

        치열한 승부인 듯한 외양에, 해설진은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경기 초반,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던 레반의 움직임에, 마치 그가 승기를 잡은 양 흥분했듯이.

         

        하지만, 아니다. 애초에 폭주가 켜지는 선까진 한참 남았다. 저건 폭주를 피하려고 빠진 게 아니야.

         

        극적인 쇼를 연출하느라 한 템포 빠진 거지.

         

        ……좀, 그런데.

         

        『파꼴 왜케 차분해짐ㄷㄷ』

        『둘다 잘하네ㅇㅇ』

        『퇴레기 컷 1분 전』

        『그래도 잘 비비네』

         

        흘긋 살펴본 채팅창에서, 나와 같은 불만을 표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기야, 쉽게 보일 디테일은 아니니. 당사자와……몇몇 정도나 알아보고 있지 않을까.

         

        “……저 선수, 유명한가요.”

         

        『ㅇㅇㅇㅇ』

        『1옵션이지 솔까』

        『습관성 꼴박 증후근만 아니면 일타임』

        『얼빠 ON』

        『리그 진짜 아예 안 보는구나』

        『걍 탑신병자 아닌가』

        『잘생기긴 했어』

        『파꼴이가 또 여스를 꼬셨구나……』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무력 100 지력 10 정치 0 매력 100이라고 유명함】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세리머니 존나 화끈하게 조지다가 징계먹은 거 뉴스도 났는데 진짜 모르는 거냐 모르는 척이냐】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또또 유니콘들 뿔을 부러트리려고 빌드업하는 거니 따먹따먹아……】

         

        어지러이 쏟아지는 채팅 속에서, 여러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오고 있었다. 패기 넘치는 신인, 문제아, 탑신병자……아, 어떤 스타일인지 알겠네.

         

        다만. 공격적이고 화려한 플레이스타일에 외모까지 더해져서 여자 팬들이 많다……는 건, 뭐지.

         

        내가 이해하긴 어려운 감수성이다. 한수 아래의 상대를 화려하게 두들겨 패는 게 팬이 생기는 요인이 되나. 그것도 쇼맨십이라고 한다면 할 말 없긴 하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 기분이 나빠지는 건 어쩔 수 없더라.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근데 누구 응원하는 건가요】

       

        “……원랜 당연히 기사였는데. 애매해졌네요.”

         

       도네이션에 대충 대답하며 미간을 살며시 좁히는 사이, 화면 속에서는 레반의 도끼가 다시 성대하게 빗나가고 있었다.

         

        이번엔 확실히 성급했는데. 상대가 자기를 이용해서 화려한 하이라이트를 연출하려 드는 걸 느낀 걸까. 그럴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럴수록 침착해야 할 터인데.

         

        게임에서도 감정 조절에 미숙하구나.

         

        어째 화를 자주 내더라니……이건 단련이 더 필요한 거 아닐까. 왜, 국가대표 양궁 선수들은 일부러 소음 속에서 훈련한다고 하니까. 그 비슷한……아무튼.

         

        《파골! 절묘한 회피입니다! 레반 선수, 위기예요! 이걸 대체 뭘로 막나요!》

         

        허리를 깊게 숙이며 공격을 여유롭게 피해낸 기사가, 무게중심을 급격하게 옮기며 앞발을 내딛어 광전사의 품에 파고들었다. 어느새 검은 역수로 쥔 상태. 왼손은 크로스가드에서 조금 뻗은 지점, 포르테를 단단히 쥐고 있다.

         

        근거리 태세다.

         

        한 호흡으로 자세를 바꾸고, 노출된 광전사의 턱을 향해 폼멜을 올려친 순간.

         

        -쾅!

         

        “오.”

         

        과감하게 왼손 도끼를 버린 광전사가, 마지막 순간에 왼팔로 방어에 성공하고-

         

        -퍼억!

         

        살짝 벌어진 틈새로 우겨 넣은 다리를 길게 뻗어, 기사를 저 멀리 밀어낸다. 데미지는 미미한 공격. 하지만, 치명적이었을 연격은 끊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대치.

         

        제법 멋진 그림이다.

         

        연명의 대가로 왼팔이 부러져버린 광전사는, 피를 철철 흘리고 있지만- 두 눈은 드디어 붉게 물들었다. 폭주다.

         

        그 맞은편. 푸른 휘장을 두른 기사는 저 멀리에서 검을 가벼이 고쳐 쥐어, 눈이 쏟아지는 하늘을 향해 높게 들어 보이고-

         

        왼팔의 버클러를 풀어 헤쳐, 바닥에 던진다.

         

        팔이 부러진 페널티 따위가 승부를 가르는 건 원치 않는다는 듯이.

         

        《아-! 파골 선수! 버클러를 땅에 던졌어요. 명예로운 결투의 끝을 부상으로 낼 순 없다는 겁니다! 너 외팔이야? 그럼 나도 왼팔 버린다, 대등하게 싸우자! 이러는 거거든요, 지금!》

         

        《광기의 신인이다, 싸움 한번 붙으면 물불 안 가린다, 뭐 그랬었는데- 차원이 다릅니다! 파골 선수, 팀전에선 형들 눈치 봐서 참고 있는 거였어요.》

         

        《이 선수, 진짜 격돌 모드 출시 안 되면 어쩔 뻔했나요! 아무리 탑에서 싸워도, 이런 투지를 다 해소할 수 있을 리가 없거든요!》

         

        호들갑을 떨며 분위기를 띄우는 해설들의 목소리. 그에 반응하듯이, 카메라는 자연스레 대치 중인 두 영웅을 넓은 화면으로 잡아 주고- 이어서, 각 선수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비춘다.

         

        쓸데없이 비장한 연출인데.

         

        쌍수도끼 광전사가 한 팔을 잃은 것과, 자그마한 버클러 하나 치운 건 비교하는 게 우스울 정도로 다르다. 전자는 사실상 전력의 7할 가량이 날아간 상황이고- 후자는, 가벼운 쇼맨십으로도 할 수 있을 정도니.

         

        그걸 마치 진정한 기사도처럼 연출하는 건-

         

        조금, 음.

         

        “……이미 끝난 게임인데. 저기 이 악문 나무꾼 아저씨 얼굴이나 잡는게 더 재밌는 장면 나오지 않을까요. 언제 욕하는지로 포인트 토토도 하고.”

         

        기분이 썩 좋진 않네.

         

        * * * *

         

        ‘후- 씁. 이거, 어렵겠는데.’

         

        1세트가 끝난 직후. 시훈은 깊은 한숨을 몇 차례 반복해서 내쉬었다. 스트레스로 가득한 방송 생활에서 체득한 나름의 루틴이다.

         

        그러나 가슴 속에서 울렁거리는 수치심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농락이었다.

         

        첫 수를 맞대는 순간 알았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애초에 빌드부터 상성으로 먹혔고- 그걸 결코 뒤집을 수 없을 정도의 실력 격차가 있었다.

         

        상대, 파골도 알고 있었겠지. 치명적인 일격을 넣을 기회는 일부러 외면하며, 화려한 공방을 유도해댄 건- 언제든지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했을 터였다.

         

        티배깅이니 뭐니 말을 하기도 애매하다는 점이 특히 악질적이었다. ‘상대가 봐주면서 가지고 놀았다’라니……아무리 그래도, 자존심상 차마 꺼낼 수 없는 말 아닌가.

         

        “……프로는 다르네요. 다음 세트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저, 최대한 멀쩡한 척 말하며 다음 세트를 생각하는 수밖에.

         

        애초에 16강까지 올라온 게 기적 같은 일이었다. 빌드 가위바위보 싸움에서 운 좋게 연이어 승리해낸 결과였고. 어쩌면-

         

        ‘질 때가 되기도 했고……그렇게 생각하면, 프로랑 비등비등하게 비비다가 멋진 연출로 끝나는 게 오히려 좋은……아니, 아니. 나중에. 나중에 생각하자.’

         

        약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다잡는 시훈의 머릿속에서, 수없이 많은 빌드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상대는 다음 세트에 무얼 가지고 올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해서, 판단이 서지 않았다. 무난한 올라운드 빌드로 버티면서 방심을 노려 볼까. 아니, 차라리……거대 양손도끼에 불굴 트리로 일발역전 한방만 노릴까. 아니면-

         

        -우우웅

         

        짧은 진동소리가, 유독 크게 울려퍼졌다.

         

        톡 알림은 분명 꺼뒀을 터였다. 달리 알림이 올 만한 곳도-

         

        [GP은행 입금 알림 – 지는거예요물음표 1,000원]

         

        “하.”

         

        은행 알림이다. 이름을 어떻게 해놔도, 누구인지는 뻔히 보이는.

         

        무언가, 팽팽하게 목을 조여가던 끈이 탁 풀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

         

        왜 그렇게 약한 생각을 했을까.

         

        ‘무난하게 떨어지는 건……의미 없지. 여기서 떨어지면, 그 얄미운 머리에 한 방 먹이지도 못하고.’

         

        의표를 찌르지 않고는 이길 수 없는 상대다. 그렇다면, 도박을 하고- 또, 절대 예상할 수 없는 수를 던져야겠지.

         

        “이걸로 가보겠습니다. 쌍수는 익숙한 편이어서요.”

         

        * * * *

         

        《도적! 도적! 레반 선수, 여기서 갑자기 도적을 꺼내듭니다! 빌드 장인으로 유명한 레반 선수! 이것도 준비된 빌드일까요?》

         

        《아- 도적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듯한 파골 선수. 이번엔 아예 대검 기사를 준비하는 것 같은데- 설산에서는 상성이 좋지 않아요. 도적이 지형지물 활용한 아웃파이팅을 하기 시작하면, 대검으로 따라잡긴 힘들 텐데요.》

         

        《네. 아마, 레반 선수의 빌드를 카운터형 거대도끼로 읽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1세트에서 제법 위험한 순간들이 있기는 했거든요. 아- 말씀드리는 순간, 두 선수 모두 락인! 기사 대 도적이 성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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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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