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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4

     그레이 지브롤터를 건드리면 두 명의 아버지가 죽이러 온다.

     한 명은 크림슨 지브롤터이며, 다른 한 명은 실질적 장인어른인 합스베르크 황제가.

     아직 결혼을 한 건 아니지만 공공연하게 약혼 이야기가 오가고 있으며, 공공연하게 약혼식의 날짜가 정해지기도 했다.

     “제국력 99년 12월 24일.”

     

     공식적으로 바르셀로나 총독부를 방문한 여인, 어쩌면 이 자리에 있으면 가장 어색할 것 같은 여인-‘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날짜를 알렸다.

     “아카데미 학사일정을 조정하여, 12월 24일에 대연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사실상 ‘졸업’연회죠.”

     “감사합니다, 나리아 학생회장.”

     “별말씀을.”

     집무실에 배석해있는 이들은 서로 눈치를 본다.

     “그나저나, 총독. 요즘도 암살에 시달리고 있습니까?”

     “아니요. 어떤 분께서 신경 써주시는 덕분에 암살 빈도가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그렇군요. 노스트럼 왕가에서는 도울 일이?”

     “암살과 테러에 있어 노스트럼 왕가의 도움을 받을 일은 없습니다.”

     나리아가 대동한 학생회 임원들이라거나, 모르가니아에서 파견을 나온 나리아의 수호기사라거나, 내 뒤에 서 있는 로버트 경이나 제국출신 행정관이라거나.

     다들 서로 눈치를 보며, 차가워지는 분위기에 침만 꿀꺽 삼킨다.

     “그보다 나리아 학생회장. 오늘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카데미의 일은 조금 전, 학사일정을 전한 것으로 끝났습니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건 나리아 ‘여왕’으로서 해야 하는 이야기.”

     “공식적인 이야기입니까?”

     “당연히.”

     나리아가 옆으로 손을 뻗자, 그녀의 뒤에 있던 주황빛 머리의 청년이 앞으로 나섰다.

     “롤랜드 경.”

     “예, 여왕전하!”

     

     팰우드 롤랜드가 우렁찬 목소리로 제법 넓은 양피지를 직접 손으로 펼쳐들었다.

     제국이라면 저기 게시판에다가 전지로 달아뒀을텐데, 노스트럼은 이렇게 손으로 든 채로 내게 명령을 전하고 있다.

     “저건….”

     “황금선에 대한 의뢰입니다.”

     “…황금선?”

     “예.”

     팰우드가 들고 있는 양피지에는 황금으로 반짝이는 마도자동선 한 대가 그려져있었다.

     기존의 캐러벨 정도가 아닌, 대형함보다도 더 넓은 거대한 배가 당당히 양피지를 꽉 채우고 있었다.

     “의뢰라고 하심은….”

     “만들라고 하시더군요. 우리의 자랑스러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전하께서.”

     “왜요?”

     “약혼식을 하려면 이 정도 연회장은 필요하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아.

     그렇구나.

     “황금으로 된 마도자동선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약혼식을 열어주지 않겠다, 뭐 그런 겁니까?”

     “정확히는 약혼식에 필요한 모든 과정에 방해가 있을 거라는 것 같더군요.”

     점점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양피지를 들고 있는 팰우드도 그렇고, 나리아의 뒤에 따라온 학생회 임원들도 그렇고, 그 사이에 침투해있는 제국 유학생들도 그렇고-

     “총독.”

     내 뒤에 서 있는 로버트 경을 비롯한 바르셀로나 총독부 사람들도 그렇고, 다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렇군요. 황금으로 된 마도자동선이라. 적당히 모형으로 만들어드리면 되는 겁니까?”

     “실제 사람들이 타고 다닐 배로 만들었으면 한다고 하더군요.”

     “…….”

     “바르셀로나 금광에서 캐낸 황금이라면 분명 전체가 황금으로 된 배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

     잠시, 머리가 지끈거린다.

     “여왕 전하.”

     “예, 총독.”

     “잠깐, 단 둘이 이야기를 좀 합시다.”

     “그렇게 하죠.”

     내가 나리아에게 독대를 요청하자, 나리아가 곧 뒤를 향해 손짓을 했다.

     “나가보도록.”

     “하오나….”

     “명령이다. 10초 주지.”

     “…예.”

     나리아의 손짓에 팰우드를 위시한 나리아의 사람들이 일제히 빠져나갔다.

     “총독부 인원들은 전원 나를 따라 나오도록.”

     그리고 총독부 사람들은 내가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로버트가 먼저 지시를 내려 모두를 끌고 나갔다.

     끼이익.

     문이 닫히고, 나리아가 품에서 마석을 하나 꺼내 차음막 결계를 펼쳤다.

     그리고는-

     “미친 소리죠.”

     그대로 소파에 늘어지며 허리를 만지작거렸다.

     딸칵, 거리는 소리가 들린 걸로 보아 분명 코르셋을 풀어버린 것이리라.

     “황금으로 된 배를 만들라니. 심지어 이 사이즈는….”

     “전열함, 급이라고 봐도 되는 겁니까?”

     용골만 따지고 보면 거의 40m.

     “예. 세이레네 해협을 오가는 제국의 철갑선을 보고 감명이 깊으셨는지, 황금으로 된 금갑선을 만들라고 하시더군요.”

     “저한테 짬때리는 거잖습니까, 여왕.”

     “아, 들켰다.”

     나리아는 나를 향해 엄지를 척 들었다.

     “예.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제게 명령했습니다. 금이 마구 늘어날테니 왕가의 상징을 위해 연회용 황금자동선을 만들라. 모든 것이 금으로 이루어진 가장 큰 배를.”

     “제국의 철갑선보다는 크게. 그러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 황금으로 이루어진?”

     “예.”

     “미친 거 아닙니까? 시간은요?”

     “간신히 협상을 한 끝에, 올해 연말로 미룰 수 있었습니다.”

     올해 연말.

     세인트 지오의 참을성과 인내심을 생각하면 결코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을 줄 리가 없는데, 제작 기한을 연말로 미뤄냈다? 

     “저를 걸고 넘어졌군요.”

     “예. 그건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충 예상이 간다.

     금광의 책임자는 그레이 지브롤터 바르셀로나인 만큼, 황금선을 만들어 연회장으로 이용하는데 한 번 정도는 ‘대여’해주자는 방식으로 협상을 이끌어나갔을 터.

     “아니요, 괜찮습니다. 잘 이용하셨습니다. 아니었으면 아마도 그 인간, 10개월 안에 배를 만들어내라고 떠들었을테니.”

     “원래는 6개월이었습니다.”

     “대단하군요. 그 미치광이로부터 4개월을 더 얻어냈다니.”

     “예. 마치 완성을 진짜로 한다면, 그걸 기대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조금 소름이 돋았지만요.”

     “…….”

     전국민이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성인이 되는 제국력 100년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다.

     누군가는 그 이유가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서 자유인이 되어 국고를 탕진하며 놀기 위함이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글쎄.

     “황금선이 만들어질 때까지 1년 동안 느긋하게 기다리겠다…?”

     “뒤로는 온갖 공작을 해댈 겁니다. 그걸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군요. 어차피 충성병자들은 그걸 방해하려고 할테고, 암살자들과의 전장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것도 낫겠군요.”

     “괜찮은 겁니까?”

     “예. 잘하셨습니다.”

     나리아가 잘못한 건 아니다.

     세인트 지오가 정신이 나간 것이며, 나리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결과를 가져왔다.

     “12월까지 남은 개월 수만 따지고 보면 11개월 정도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10개월인데, 11개월이면 배 한 척 하나 만들어내지 못할 것도 없죠.”

     “황금으로 된 배입니다. 뭔가, 방법이 있는 겁니까?”

     “예.”

     아마도 나리아가 이곳에 찾아오는 동안은 엄청 걱정이 많았겠지만, 그렇기에 더 잘 찾아왔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레이.”

     나리아가 진지하게 자세를 잡았다.

     “도와주세요.”

     “…….”

     “그냥 배를 만드는 거라면 남부의 귀족들에게 협조 요청을 넣어서 발주하면 됩니다. 하지만….”

     “황금으로 만든 배를 내놓아라. 심지어 지금까지 역사에 없던 가장 큰 배를.”

     캐러벨이나 갤리선, 심지어 제국의 철갑선도 그 길이가 40m 전후.

     사실 길이나 폭, 내부에 들어갈 구조보다 더 큰 문제는 그걸 전부 황금으로 만들라는 것.

     “나리아. 이거….”

     “…어쩌면, 이건 그냥 추측이며 예상일 뿐이지만.”

     나리아가 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세인트 지오에게는 이런 황금으로 된 배가 꼭 필요한 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런 걸 만들라고 시킨 거겠죠.”

     “…….”

     만일 이 대화를 황제가 듣고 있다면, 그는 그런 가설을 세울 것이다.

     -회귀에는 황금으로 된 배가 필요한가?

     

     아니다.

     그런 건 필요없다.

     회귀의 조건은 알 수 없지만-

     ‘또 모르는 일이긴 해.’

     그로부터 파생되는 가설 하나.

     

     지브롤터의 협곡 지하에는 황금으로 된 배가 파묻혀있다!

     라거나.

     “아닙니까? 그게 아니고서야 이런 배를 만들라고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나리아는 딱히 회귀에 대해 잘 모른다.

     그건 망국의 공주가 아마도 왕족으로서의 특권, 회귀에 대한 권한을 양도하면서 생긴 일종의 비극이자 축복일 것이다.

     완전기억능력을 가진 이가 회귀 이전의 기억까지 모두 가진 채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분명 끔찍할 저주일 터.

     

     지금의 나리아는 회귀에 관한 그 어떤 정보도 알지 못하는, 그저 정신병자 아버지에게 어렸을 때부터 주기적으로 살해 위협을 받고 자란 공주이자 여왕일 뿐이다.

     “나리아. 짐작가는 이유가 있습니까?”

     “……엿 먹어봐라?”

     나리아는 진지하게 답했다.

     “비상식적인 조건을 내걸어 면박을 주거나, 혹은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으니 연회는 열어주지 않겠다’라거나. 뭐 그런 생각으로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황금마도선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왕의 자리에서 내려가지 않겠다. 그런 생떼를 부리는 것 같습니다.”

     나리아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자기 노후를 보장하라. 자기 안전을 보장하라. 자신에게 그만큼의 황금을 넘겨라. 왕위를 온전히 넘겨받고 싶다면, 나에게 평생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자산을 넘겨라.”

     “황금의 배라는 실물로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살아갈 ‘집’인 셈이죠. 이미 마도자동선을 타고 여러 영지를 돌아다니면서 삥 뜯고 다니는…흠흠. 귀족들의 접대를 받고 다녔죠.”

     여왕답지 않은 다소 거친 표현이 나왔지만, 나리아는 헛기침을 하며 표현을 정정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레이 지브롤터가 추측하고 있는 또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

     “있는 모양이군요. 제가 알아야하는 거라면-”

     “아니요.”

     나는 나리아를 향해 다가가, 가볍게 손등으로 나리아의 머리를 통통 두드렸다.

     “나리아,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당신의 시각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그래도 최소한의 도움은 주고 싶은데.”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정말이지.

     “나리아는 나리아의 위치에서. 그레이는 그레이의 위치에서. 당신은…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여왕님.”

     망국의 공주가 내게 증오를 퍼부으며 했던 말을 내가 설마 이렇게 반대로 돌려줄 줄이야.

     “당신이 만들어준 8년의 시간 덕분에 저는 최소한의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황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회귀자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것을 8년 동안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으로 여기고 예의주시했었다.

     “당신이 13살에 노스트럼에 왔던 그 날 이후로, 당신은 제게 너무나도 확실한 기회를 준 겁니다.”

     “……저는 딱히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제게는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되었죠. 이건 당신이 무능하다거나 그런 게 아닙니다. 당신이라는 존재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만으로 도움이 되는 거죠.”

     진정으로.

     “여왕님. 원래 왕은 아무런 문제 없이 왕좌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처럼?”

     “그 자는 왕좌를 내던지고 마도자동선의 일등석에 앉아있어서 문제죠.”

     나리아가 왕이 된다면 황제만큼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까?

     그건 미지수다.

     하지만 나리아의 근처에는 분명 황제만큼은 아니더라도, ‘황제가 없는 제국’을 상대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 하나둘 나타날 것이다.

     “그래도 너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곤란하니, 제가 도움을 요청하면 그건 도와주세요. 그 도움은 ‘드러나도 되는’ 도움이니까.”

     “알겠습니다. 뭐부터 하면 됩니까?”

     “명령을.”

     나는 양피지를 펼쳤다.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여왕전하의 이름으로, 그레이 지브롤터 바르셀로나 총독에게 명령을 내려주세요. 황금으로 된 배를 만들라.”

     “그러니까, 그것 때문에 왔는데….”

     “나리아.”

     나는 나리아의 볼을 양손으로 잡아 그녀가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들었다.

     “까짓거 한 번 만들어주죠.”

     “…진짜로요?”

     생각해보니 나리아의 볼을 계속 이렇게 잡고 있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나는 손을 바로 내렸다.

     “예. 황금으로.”

     “배에다가 금색을 칠한다거나, 위조금화처럼 구리를 안에 채우고 금을 덧씌운다거나, 마법으로 정신착란을 일으킨다거나 하는 건 어려울 겁니다.”

     “좋은 방법이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팰우드가 남기고 떠난 양피지를 가볍게 훑었다.

     “생긴 모양으로 봐서는 3층 전열함, 대략적인 폭은 15m 길이는 50m…아니, 더 늘어날 수도 있겠군요.”

     “무장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으나, 무장 대신 연회를 위한 설비가 많이 들어가야 할 겁니다.”

     “전열함의 모습을 한 유람선이라.”

     “…수륙양용이어야 할 지도 모르죠.”

     “까다롭군요.”

     몹시 까다롭다.

     “제일 문제는 이게 지금 어디 마땅한 조선소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인데.”

     “아마도 세이레네 백작가에 있는 조선소를 이용하라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거기를요? 세이레네 백작, 반쯤 제국으로 갈아탄 상황인데?”

     “세이레네 백작은 속으로는 군소리를 해도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는 남자입니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불러다가 대놓고 권력으로 찍어누르면 군말없이 조선소 이용에 대한 권한을 넘겨줄 겁니다. 제가 명령을 내려도 마찬가지고.”

     “조선소라….”

     

     마침, 잘됐다.

     “그렇게 하죠.”

     “……저기.”

     “배가 철도를 따라 지상도 달리는데, 조선소라고 육지에 짓지 못하라는 법은 없죠.”

     조금, ‘진심’을 내봐야겠다.

     “나리아. 가서 세인트 지오에게 전하세요.”

     나는 열손가락을 펼친 다음.

     “황금의 배를 만들면 내년, 바로 왕위에서 물러나라고. 무조건 ‘만들면’이라고 해야 합니다. 혹은 12월 24일이 되기 전까지, 라고.”

     나머지 반을 접었다.

     “그레이 지브롤터가 약혼에 미쳐서, 진수식을 여름이 가기도 전에 끝내버릴 수도 있을 테니까.”

     “…여름?”

     “예.”

     1학기가 끝난 뒤.

     “황금으로 만든 배를 타고 남부로 가서, 바다 여행이나 하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카데미 졸업전

    수영복을 입은 여학생을 보겠다는 굳은 의지

    네 아무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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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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