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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4

    <244 – 마음의 등가교환>

     

    목요일.

    개인전 종목이 거의 다 끝나고 반대항전 종목을 몰아서 진행하는 날.

    하급반 학생들은 상호부조하여 서로를 도우며 반 전체가 각 종목에서 2위를 거두어 다같이 80점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교내 이벤트를 전부 꿰차고 있는 누군가나 집에서 보내는 용돈이 많은 대귀족이나 왕족, 거상의 자녀들에게는 80포인트가 별 것 아닐지도 모르지만 평민이나 빈곤한 귀족들에게는 일용할 양식(5포인트, 학식정식)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근데 왜 2등을 노려? 이왕 하는 거 1등도 노리면 안 돼?”

     

    학생 한 명이 내뱉은 말에 반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차가워졌다.

     

    “누구야? 저 눈치 없는 놈.”

    “중간고사에서 기절했다가 의료동에서 갓 돌아온 놈이래.”

    “와… 어떻게 아직까지 퇴학을 안 당했지?”

    “필기를 진짜 잘 봤대.”

    “재수 없어.”

     

    된통 욕만 먹고 눈물을 찔끔 흘리던 학생을 보다 못한 모브가 철컥철컥 갑옷 이음매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다가갔다.

     

    “ㅁ, 머야! 때릴 것까진 없잖아!”

    “…1위는 상급반의 몫이야.”

    “휴. 미안. 전신갑옷을 입은 폭력적인 싸이코인줄 알고 긴장했지 뭐야.”

     

    괜히 도와줬나.

    투구 너머로 모브의 시선이 후회에 가까워질 무렵.

    때마침 멀리서 많은 학생들의 비명이 들렸다.

     

    “따라와. 우리도 참여할 종목이니까. 마침 어느 얼간이들이 당하고 있나보네.”

     

    모브를 중심으로 뭉친 50인의 하급반 학생그룹은 기다란 줄이 놓인 운동장 한편에서 흙바닥을 구르며 콜록콜록 기침을 하는 학생들을 발견했다.

    바닥에는 용이 춤이라도 춘 것처럼 세차게 파인 줄 자국이 가득했는데 이리저리 끌려다닌 학생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엉엉. 나 무릎 까졌어.”

    “엄마한테 맞을 때도 멍밖에 안 들었는데!”

    “이딴 게 무슨 줄다리기야…”

     

    반대편에서는 우리가 너무 심했나 싶은 얼굴로 반성하는 학생들과 못마땅한 표정의 오크노디가 뚱한 얼굴로 서있었다.

     

    “아이 참. 스피드런 보상보다는 하늘을 날다 보상이나 풍차돌리기 보상이 더 좋다고요. 원을 그릴 때까지 곱게 끌려 다니던지 아니면 아예 하늘로 들림 당하던지. 자꾸 어설프게 땅에 발을 디디니까 보상이 애매하잖아요!”

     

    괴력소녀 오크노디를 필두로 상급반의 괴물들이 모조리 모여 있는 상급반 학생들.

    당연히 저딴 팀과 싸워야 하는 하급반은 더 크게 안 다치려면 발이 땅에 닿아야한다, 그러다 다리 까진 거 안 보이냐 2세트에선 몇 명 죽을지도 모르니까 힘 빼고 끌려 다니자 등등 듣기만 해도 숨 막히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게 1등을 노리지 않는 이유야.”

     

    의료동에서 갓 퇴원한 학생은 눈을 껌뻑거리다가 말했다.

     

    “그럼 재들은 바보야? 상급반이랑 왜 대결을 해?”

    “보정보너스가 있어. 강팀이랑 싸우면 무조건 보너스를 주는 대운동회 특수규칙. 근데… 그것도 기권하면 보상이 십분의 일로 줄어드니까. 30포인트 받을 걸 3포인트 받기 싫어서 이 악물고 버티는 거지.”

    “…치료비로 다 나가게 생겼는데?”

    “그니까 불쌍한 거지. 잘못된 선택을 한 불쌍한 녀석들. 쯧쯧.”

    “근데 니 갑옷도 오크노디한테 받지 않았어?”

     

    잘못된 선택을 한 불쌍한 녀석 1호가 울적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모브 그만큼은 저 불쌍한 학생들을 남 얘기 하듯이 다룰 수 없었다.

     

     

    * *

     

     

    반대항전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사벨과 도로시는 꽤나 걱정거리가 많아보였다.

     

    “제국진영은 어차피 잡일은 우리 변방진영이 알아서 다하라고 손 놓고 있지 않을까?”

    “손만 놓으면 다행이게? 저 치사한 녀석들, 내가 다니는 숲에 멋대로 트랩도 설치했다고. 사람이 다칠 수도 있는데 제 멋대로 구는 꼴을 봐서는 방해를 해도 이상하지 않아!”

    “뭘 해도 특수그룹인 C그룹은 의욕도 없고.”

     

    카시아가 뭘 보냐고 뚱하게 쳐다봤다.

    이사벨은 의욕이 푹푹 깎이는 무기력한 시선에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괜찮을 거예요! 포인트는 다 같이 받으니까요.”

    “진짜 괜찮으면 좋겠네…”

    “여기서 포인트를 버는 일을 방해하는 사람은 상급반 전체의 적이 된다고요?”

     

    그런 짓은 오크노디라도 감히 저지를 수 없다.

    배짱 한 번 부렸다가 호감도 감소 메시지가 줄지어서 시야를 다 뒤덮을 정도로 떠오르면 아무리 바보라도 단단히 사고 쳤다는 사실을 깨닫겠지.

     

    “흥. 운동회가 끝날 때까지만 도와주는 거야. 착각하지 말라고.”

    “용사 쟤는 뭐가 잘났다고 잘난 체야?”

    “중간고사에서 우리들 다 버리고 지만 골인했으면서. 오크노디는 변방애들 점수라도 챙겨줬지.”

    “저래놓고 드래곤교장의 협동성 점수에서 밀려서 공동수석 자리도 놓쳤지.”

    “재수 없어.”

     

    용사의 얼굴에 충격이 감돌았다.

    마냥 자신을 지지할 줄만 알았던 제국학생들의 차가운 시선과 매도하는 말에 자신이 이런 대우를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눈치였다.

    제국학생들도 고향에서는 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학생들인데 자신들을 나 몰라라 내팽개친 용사를 곱게 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푸풉. 바~보♡ 멋대로 설칠 거면 이렇게 될 줄도 알았어야지♡”

     

    물론 제국학생들의 냉대에는 배후에서 용사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는 제국 2황녀 매스각키가 있었다.

     

    “저쪽도 참 피곤하게 사네. 숲속 친구들처럼 그냥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좋을 텐데.”

     

    도로시의 말에 이사벨은 속으로 생각했다.

    동물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 아닌가?

     

    “하아. 아무튼 좋은 시간은 이제 다 끝났네.”

     

    양학의 즐거움을 잔뜩 누렸던 상급반 학생들도 다가오는 금요일을 맞이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내일 다가오는 일정은 무려 학년대항전.

    1등 1000점, 2등 800점, 3등 500점, 4등 0점이 걸린 최대배점 이벤트!

    안전상의 이유로 1학년은 2학년과, 3학년은 4학년과 싸우도록 되어있지만 그 의도는 명백하다.

    어차피 학년 순으로 등수가 정해질 거라는 뜻!

     

    “오크노디. 이길 수 있을까?”

    “무리죠?”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불가능한가보네.”

    “2학년이니까요! 이사벨은 1년 뒤의 자신을 이길 수 있겠어요?”

    “1년 뒤의 내가 방심하지 않는다면 무리겠지.”

     

    그런 싸움이다.

    2학년은 전부 알고 있다.

    1학년이 무엇을 배우고 어떤 실력을 지니고 있을지.

    상급반이야 조금 특수하겠지.

    하지만 학년대항전은 50인 이내의 반별 대결이 아니라 이천 명이 넘는 학년 전체가 겨루는 대규모 전쟁에 가깝다.

    개인의 강력함도 이 정도로 수에서 차이가 나면 무색해진다.

    심지어 상급반은 1학년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2학년에도 상급반은 있다.

     

    “정통파 귀족영애 만델라, 백색의 성기사 루, 푸른주먹 이오, 공포의 데드캣. 2학년 상급반들도 면면을 봐서는 용사나 오크노디에게 크게 밀리지 않대. 방금 말한 네 명은 특별히 강한 넷이라서 2학년 4천왕이라고도 불리고.”

     

    도로시는 자신이 들은 소문을 슬며시 들려주었다.

    옆에서 같이 듣던 이사벨이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데드캣 그 선배는 오크노디한테 된통 깨지기 직전에 기권하지 않았어…?”

     

    겨우 그 정도가 2학년 사천왕 중 하나라면 최고전력 측면에서는 의외로 해볼 만하지 않을까?

     

    “너무 기대하지 마요. 어차피 학년대항전은 모두가 다 같이 하는 걸요.”

     

    이사벨은 시작도 전에 체념부터 하는 오크노디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모두에게 욕을 먹는 자신은 대운동회라는 이벤트를 즐길 자격이 없다는 것처럼 숨어 다니던 때처럼 소극적인 태도.

    보는 사람이 더 열이 받는 자신감 없는 모습에 걱정부터 들었다.

     

    “그래도 오크노디가 있는데 다들 그리 쉽게 포기할까…?”

     

    이사벨은 반신반의했다.

     

    “오크노디 있지. 개인전 피구에서도 엄청 즐기지 않았어?”

    “분명 그랬었다. 쥐방울 녀석, 누구는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도 혼자만 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신났었지.”

    “도로시는 오크노디가 어땠건 다른 사람들은 돕지 않을 거래.”

    “정 그러면 지젤에게 물어보지 그러냐? 정보라면 그 샌님보다 해박한 사람이 없을 텐데.”

     

    정보력이 뛰어난 지젤은 냉정하게 말했다.

     

    “포기하십시오. 1학년의 반 이상이 이미 패배를 기정사실로 보고 있습니다.”

    “오크노디가 있어도? 마음엔 들지 않아도 용사도 있잖아. 981기 1학년은 역대 최강 급으로 뛰어난 1학년들 아니야?”

    “그렇게 무리해봤자 지면 다들 오늘 있을 남은 개인전 종목에 참여도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대운동회 기간 동안에는 의료동 이용이 무료라고 해도 다들 포인트를 벌 기회를 놓치기는 싫겠죠.”

    “그래도…”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또 뭐가 있는데?”

    “우선 오크노디 대신 저와 손오천이 손을 써왔던 대운동회를 망치려던 1학년들, 재단의 장학생들의 수가 상당합니다. 현재까지 잡아낸 수만 50명이죠.”

     

    2000명이 넘는 1학년 중에 50명.

    간단히 계산해도 40명 중에 한명 꼴로 스파이가 있다.

    도저히 정상적인 대결을 예상할 수 없는 수치다.

     

    “우선이라는 건 다른 이유도 있다는 뜻?”

    “C그룹도 문제입니다. 그쪽은 교내활동에 전체적으로 열의가 없습니다. 다들 아카데미에 팔리듯이 넘겨지거나 달아나듯이 도피성 입학을 한 사람들이죠.”

    “아…”

     

    포인트를 벌고 싶으니까 도와줘, 라고 설득하기에는 그들이 원하는 바는 입학 그 자체이거나 그저 살아서 숨 쉬는 것인 이들이 대부분!

    설득을 하고 싶어도 애초에 설득이 통하지 않는 상대들이었다.

     

    “카시아.”

     

    청단발에 삶에 달관한 것처럼 무심한 눈을 한 소녀.

    무작위로 신체 주변에 파직파직 스파크가 일어날 때마다 뒤에 선 교관이 손에 든 제압봉을 꾹 움켜쥐는 언제나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

    삶에 가장 미련이 없어 보이는 사람 1위 혹은 인생이 가장 힘들어 보이는 사람 1위에 가볍게 랭크인 할 그녀에게 이사벨은 찾아갔다.

     

    “이사벨.”

    “내 이름을 알아?”

    “들렸으니까.”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뻔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실은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어.”

    “좋아.”

    “오크노디는 많은 애들에게 미움 받는 아이지만 그래도 막상 기회가 되면 누구보다 즐겁게 즐기는 아이야. 꼭 도움이 되어줬으면… 어?”

    “좋다고.”

    “정말로? 좋아? 어째서?”

     

    혼란스러워하는 이사벨에게 카시아는 무심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애는 나를 닮았어. 재단과 연구소도 비슷해. 단지 나보다 깨닫는 것이 느릴 뿐. 지금 누리는 자유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언젠가 깨닫게 되겠지.”

    “…!”

    “외면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눈 감아도 돼. 때가 되면 싫어도 깨닫게 될 테니까. 그런 딱한 아이의 놀이라면 도와줄 수 있어.”

     

    오크노디의 마음을 가볍게 풀어주기 위해 나섰던 이사벨은 등가교환이라도 하는 것처럼 제 마음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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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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