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44

       

       

       나는 시간이 늦어 송병오 녀석을 집으로 먼저 돌려보내고는, 기숙사 사감실의 전화를 빌려 내가 알던 유일한 진짜 ‘탐정’을 불러냈다.

       

       그는 여름인데도 기다란 레인 코트를 걸치고, 머리에는 체크무늬 빵모자를 썼다. 

       

       레인 코트의 오른팔이 바람에 맞춰 헐렁하게 흔들거리는 그는, 저번 늑대인간 공팔자 사건 때 오른팔을 잃어 경찰을 그만둔 뒤 탐정이 되었다는 사내, 

       

       야마자끼 다로(山崎太郎)였다.

       

       『요오, 시라바야시 군.』

       『늦은 시간에 불러내서 죄송합니다.』

       『목숨의 은인인데 언제든 도와주어야지. 그래서 내가 도와줄 일이 뭔가?』

       

       나는 야마자끼에게 간략하게 사건을 설명했고, 내 이야기를 들은 야마자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의 친구인 료오 양이 혼수상태가 되었다라…… 그렇다면 주야를 막론하고 반드시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안내해 주게.』

       

       기숙사 밖에서 만나 인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사감의 협조를 얻어 양복자가 묵었던 기숙사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서는 야마자끼는 내가 말해준 것을 다시 한번 재확인하듯 말했다.

       

       『료오 양에게 이렇다할 원한관계는 없고, 료오 양을 제외하면 아무도 이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고.』 

       『예.』

       『그리고 선풍기의 탓이거나 또는 창문을 닫은 악동의 탓은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추측해 달라고.』

       『그렇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 방 안에 분명히 일종의 트릭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살펴보겠네.』

       

       그렇게 말한 야마자끼는 말없이 방 이곳저곳을 뒤적거리거나 살펴보다가, 지나가듯 

       

       『료오 양은 어떤 사람이었나?』

       

       하고 나에게 문득 물어왔다.

       

       『예? 어떤 사람이냐고 하면……』 

       

       갑자기 어떤 사람인지 물어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뭐 특징적인 것을 알려줘야 하는 건가.

       

       『글쎄요. 분홍색 머리에다가, 다른 여자애들보다 신체발육이—』

       『아니, 그녀의 성격이나 성향같은 것 말일세. 순종적인가, 아니면 일탈적인가? 이를테면 학교의 교칙 같은 것에 대해서 말일세.』

       『어…… 일탈적이라고 봐야겠죠.』

       『외향적인가?』 

       『그렇죠.』 

       『흐음……』

       

       야마자끼는 방을 살피던 것을 멈추고 품에서 담배 케이스를 꺼냈다. 아직 왼손으로만 사물을 다루는 것이 익숙치 않아 보였지만, 어떻게든 한 손으로 담배 케이스를 열고 하나 꺼내 입에 물고서는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한참을 말 없이 담배를 피우던 야마자끼는 담배를 끄고는, 

       

       『트릭은 없군.』

       

       라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아니, 트릭을 찾아내라고 부른건데 한참있다가 하는 말이 트릭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예?』

       『아무리 살펴봐도, 방 안에 숨겨진 트릭은 없어. 상식적으로는 선풍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아. 방 안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고, 방 안에는 다른 어떠한 수상한 장치나 흔적도 없으니까 말일세.』 

       『…….』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쩐지 현타가 오는 기분이었다.

       

       ‘……괜히 불렀나?’ 

       

       생각해보면, 경찰을 그만둔 뒤 탐정업으로 직종을 변경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이 사람도 전직 경찰. 다른 경찰들과 그리 다른 견해를 내놓으리라는 기대를 한 내가 잘못인 걸까.

       

       늦은 시간에 와준 것은 고맙지만 이래서야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실망해서 몰래 한숨을 내쉬려는데, 

       

       『음…… 시라바야시 군.』

       

       야마자끼는 왼손으로, 면도를 하다 만 듯한 턱을 쓸며 문득 입을 열었다. 그렇게 깨낸 이야기는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나에게는 변화가 있었네.』

       『……? 변화라. 혹시 팔을 잃은 뒤에 각성이라도 하신 겁니까?』

       『아니, 그것과는 달라. 뭐라고 할까, 정신적인 변화라고나 할까, 관점의 변화라고나 할까…… 그것도 각성이라면 각성일 수 있겠군.』

       

       야마자끼는 싱긋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나는 마수에게 오른팔을 잃고나서 한동안 실의에 빠져있었던 적이 있었네. 자네 덕분에 살아남기는 했지만, 불구자가 사회의 무엇에 쓸모가 있겠나? 이 몸뚱이로는 구직을 해서 생계를 세울 수도 없었지. 』

       『어……』

       

       갑자기 신세한탄이라. 뭐라 장단을 맞춰줘야 하지. 딱히 내 대답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었는지 야마자끼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몸이 불편해지고, 뭐 하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 그 중에서도 가장 서러운 것은, 아내가 차려준 아침밥을 한 손으로 먹을 때였어.』

       

       뭐라 마땅히 위로할 말이 없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적당히 맞장구를 쳐 주었다.

       

       『고생하셨겠네요.』

       『그래. 자네도 알겠지만, 나와 같은 내지인들은 밥그릇를 들고 먹지. 왼손으로 밥그릇를 들고,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들어서 말일세.』

       『그렇지요.』

       『하지만 나에게 남은 것은 왼손뿐이라 더이상 그렇게는 못 하고, 어쩔 수 없이 밥그릇을 내려놓고 먹을 수밖에 없었어.』

       『…….』

       『자네가 나쁘게 들을지 모르겠지만, 밥그릇을 내려놓고 밥을 먹는 것은, 일본인들에게 있어서는 개가 바닥에 놓인 것을 먹는 것과 같은 모습이라는 이유로 금기시되어있는 일이네.』

       『그 정도야 저도 알죠. 이해합니다.』

       『그래…… 그런데, 이상한 일이야. 우선 한 번 내려놓고 보니 꽤나 편하더군. 그러자 그런 생각이 들었지.』

       

       야마자끼는 자신만의 생각에 빠진 듯, 왼손으로 턱을 받치고 시선은 아래로 향한 채 말을 이었다.

       

       『이건 어차피 인식의 차이일 뿐인 것이 아닌가? 일본의 밥그릇이나 조선의 밥그릇이나 모양도 용도도 같은 물건이지만, 다만 사용하는 방법만이, 사람의 인식만이 다른 것이 아닌가.』 

       『뭐, 그렇지요……?』

       『그 뿐만이 아니라, 응당 두 손으로 하던 일을 한 손으로 해야 할 때마다 새로이 느끼게 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네. 먹을 때, 씻을 때에도 물론이고 옷을 입을 때, 구두의 끈을 묶을 때 등등……』

       

       나는 별다른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보던, 내 주위를 둘러싼 사물을 달리 보고, 달리 사용하고, 나름대로의 요령을 체득하고, 스스로의 인식을 고치며 깊이 궁리하게 되지. 매번 생활 속의 발견을 하는 셈이랄까. 그런데 그 사소한 차이가, 의외로 많은 것을 말해주더군.』 

       『…….』

       

       결국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야마자끼는 말을 마치고 왼손을 올리더니, 머쓱하게 웃으며 자신의 허벅지를 탁 쳤다. 아마 원래의 버릇대로 박수를 쳐서 화제를 전환하려고 했던 모양이리라. 

       

       『잡설이 길어 미안하네. 다시 사건으로 돌아오지.』 

       

       야마자끼는 다시 한 번 상황을 정리하며 말했다.

       

       『누가 봐도 선풍기 때문이지만, 자네는 선풍기 때문도 아니고, 외부에서 창문을 닫은 사람도 범인인 것은 아니다, 라고, 그걸 전제로 가정해달라고 했었지.』

       『예.』

       『그렇다면 내 추측은 이것일세.』 

       

       나를 향해 몸을 돌린 야마자끼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역으로, 이 방에서 나갔다면?』

       『예?』

       

       나는 되물었다.

       

       『누가 말입니까?』

       『이 방에 들어온 사람은 당사자인 료오 양 한명 뿐이니, 이 방에서 나갈 사람도 한 사람 뿐이지. 료오 양 말일세.』 

       

       그러니까, 야마자끼의 추측이란, 

       

       ‘양복자가 이 방을 나갔다가, 혼수상태가 된 원인을 밖에서 겪고, 다시 방에 들어왔다’ 라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그것이 말이 되지 않음을 지적했다.

       

       『글쎄요. 이 방의 문에 설치된 보안결계식에는, 저녁에 입실한 이후 아침까지 문이 열린 기록은 없다고……』 

       『창문이 있지 않은가.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저 창문으로 드나들 수 있을테지. 물론, 이곳은 3층 높이이니 료오 양에게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지는 또 다른 문제겠지만 말일세.』

       『아.』 

       

       양복자의 염동력이라면 사람 한 명을 잠깐이나마 공중에 띄울 수는 있었다. 그걸 만약 자신의 몸에 적용했다면 이 방에서 몰래 빠져나가기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 그게…… 도미꼬는 염동력을 가졌습니다. 몰래 빠져나갈 정도는 될 거예요.』

       『나루호도(과연), 그렇군.』 

       

       야마자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가 근처로 다가가 협탁 위에 올려져있는 손전등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회중전증, 누가 이곳에 옮겨둔 것은 아닐테지?』

       『어…… 그럴걸요. 경찰들도 물건에 손은 안 댔으니까요. 원래부터 거기 있던 물건이겠죠.』

       『이것 역시 내가, 료오 양이 밖으로 나갔다 왔으리라고 추측하는 이유 중 하나일세. 방 안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회중전등이 무엇에 필요하겠나? 마치 금방 사용한 것처럼 협탁 위에 올려져 있을 이유도 없고 말이지.』

       『……!』

       『내가 료오 양의 성격에 대해—학교 교칙에 일탈적이니 외향적이니 물은 것은 이것 때문이었네. 그런 성격에다가 회중전등을 사용한 흔적까지 있다면, 거기에 능력까지 받쳐준다면…… 분명 교칙을 무시하고 바깥으로 몰래 빠져나갔을테니 말이야.』

       

       그의 말대로였다. 기숙사 밖으로 나갔다가, 뭔가 혼수상태가 될 만한 일을 겪은 뒤에 기숙사로 돌아왔다고 하면, 범행이 꼭 방안에서 일어났으리라는 고정관념에 갇혀있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과연…….’ 

       

       아까는 실망할 뻔 했지만, 역시 이 사람을 불러오길 잘 했다. 나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생각해보면 양복자 성격에 이 방에서 가만히 있었을리가 없었다.

        

       애초에 양복자가 기숙사에 들어온 것도 밤 동안에 학교를 돌아다니며 비밀을 파해친다니 뭐니 하는 목적이었으니, 기회다 하고 밤중의 학교를 싸돌아다닐 생각부터 했겠지.

       

       내가 아무리 그러지 말라고 당부했어도 내 말을 들을 위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료오 양이 방을 나갔다고 가정하고, 이후의 행적을 추측해 보자. 나가보도록 하지.』

       『예.』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가 기숙사 건물 뒷편으로 향했다. 엊그제 나와 송병오가 확인해봤던 그곳이었다. 나는 사감에게 빌린 손전등을 들고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여기서 어디로 향했을지…… 알 수 있을까요.』

       

       내가 그렇게 묻자 야마자끼가 나에게 물었다. 

       

       『시라바야시 군. 자네는 족적(발자국)을 읽을 수 있나?』

       『예. 그럭저럭요.』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쉽지. 료오 생도는 기숙사 사감이나 당직 교수의 시선을 피해, 포장된 인도가 아니라 숨겨진 샛길, 즉 발자국이 잘 남는 흙길로 다녔을테지. 그렇다면 이대로 족적을 따라가면 되지 않겠나.』

       『흐음…….』

       

       발자국을 따라간다라. 물론, 나도 발자국 정도는 식별해낼 수 있었다. 21세기에서 헌터생활을 했을 때, 갓 생성된 게이트 안에 선발대로 들어가면 우선 바닥에 뿌려진 흔적을 통해 서식하는 몬스터의 종류 등을 알아내는 것은 기본이었으니까.

       

       기숙사 뒷편은 흙으로 덮힌 곳인데, 이미 여러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이런 흙바닥에서 사람의 발자국을 읽어내는 것 정도야 그리 어려울 것은 없었다. 하지만,

       

       『어…… 그런데 그게 쉬울까요?』

       

       분명 흙바닥에는 발자국이 꽤나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걸 따라가는 것은 특정 발자국을 구분할 수 때에나 가능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곳 기숙사 뒷편은 다른 학생들도 종종 오고가는 곳이고, 근래에는 경찰들은 물론 나랑 송병오도 다녀왔던 만큼 발자국이 많았고, 어떤 것이 양복자의 것인지는 나로서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엄청 많은데요. 이 중에서 어느 것이……』

       『우와바끼(上履き; 실내화).』

       『예?』

       『아까 기숙사로 들어올 때 보니, 구두는 기숙사 현관의 게다바꼬(下駄箱; 신발장)에서 벗고 고무로 된 우와바끼로 갈아신도록 되어 있었지. 료오 양은 기숙사 현관을 거치지 않고 방에서 창문을 통해 바로 바깥으로 나갔으니, 구두가 아닌 우와바끼를 신고 있었을테지. 그렇지 않은가?』

       『오…….』

       

       생각해보니 진짜 그렇네. 나는 구두와는 확연히 다른, 고무 실내화의 흔적을 찾아냈다.

       

       『아무래도 이거 같네요. 사이즈도 여자 신발 사이즈고.』

       『예리한 눈을 가졌군, 시라바야시 군.』 

       『기본이죠.』

       

       양복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실내화 발자국은 기숙사 뒷편에서 오솔길로 이어졌다. 오솔길 역시 다른 발자국이 많았지만 실내화 발자국은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발자국을 따라 오솔길을 걷던 나는,

       

       『어! 저거…….』

       

       문득 수풀에 걸려있는 깃털 하나를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비춰보니 샛노란색 깃털이었다. 

       

       ‘긴따마?’ 

       

       색깔을 보니, 양복자가 기르는 애완 게다마인 긴따마(金玉)에서 빠져나온 털 같았다. 내가 깃털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야마자끼가 물었다.

       

       『그곳에 뭐가 있나?』

       『도미꼬가 기르는 애완 마수의 털 같아서요. 아무래도 도미꼬가 이 쪽으로 간 것이 확실한 것 같네요.』

       『자네도 꽤 탐정의 소질이 있군.』

       『부끄럽네요.』

       

       현직 탐정에게 칭찬받고 말았다. 사실 나도 명탐정의 소질이 있는 것이 아닐까? 명예 경찰을 넘어서서 명예 탐정……!

       

       아무튼 오솔길은 도중에 몇 번 갈림길이 있었지만, 우리는 실내화 자국과 긴따마의 깃털을 단서로 양복자의 행적을 추적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오솔길이 끝나고, 여기서부터는 포장된 인도였다. 때문에 희미한 발자국을 쫓는 것도 여기까지. 

       

       하지만 양복자의 긴따마 털이 드문드문 떨어져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양복자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었고, 어느샌가 어느 건물의 벽면에 다다랐다. 고개를 들자 눈 앞에 드러난 건물은……

       

       ‘교수 연구동?’

       

       교수들의 개인 연구실이 밀집해 있는 연구동이었다.  게다가 긴따마의 노란 깃털이 유난히 다른 곳보다 더 흩뿌려져 있는 그곳은—

       

       ‘아니, 이 양반이 여기서 왜 또 나오는데.’

       

       다름아닌, 구로베 교수의 개인 연구실 창문 바로 앞이었던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여기까지!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저는 내일 다시 돌아오겠습니당! 맛저하세용!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