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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5

       그 말에 대다수 학생은 필기를 그만두었지만 한 명만큼은 예외였다.

       

       유피엘 피어바인.

       

       학구심 강한 저 소녀만큼에게선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받아적겠다는 의지가 맹렬하게 느껴졌다.

       

       “흐음.”

       

       마나 고갈증이 있는 것도 문제인데, 공부법도 별로 좋은 것 같지는 않다.

       

       대입 시험을 보기 위해서라면 몰라, 대학교부턴 잘 외우고 잘 필기한다고 고득점을 받을 수는 없다.

       

       물론 어떤 교수 수업에서는 먹히겠지. 하지만 학업을 이어나가기엔 부적절한 공부 방법이다.

       

       “여러분, 필기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일단 듣고 이해부터 하세요. 공식 자체는 교재에 더 자세하게 쓰여 있으니까요.”

       

       지금 유도한 식이 결론이긴 하지만, 핵심은 아니다. 이번 강의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패리티를 이해하는 것이다.

       

       “식을 미분하면 변화율이 0이 안 되죠? 이것만 알면 됩니다. 우리 눈 자체에도 곡해가 있다는 뜻이에요. 대칭성이 깨졌단 뜻입니다.”

       

       패리티 변환에 대칭성이 없다. 대칭성이 깨졌다. 보존되는 것이 없다.

       

       “여러분, 뭔가 느껴지지 않나요?”

       

       어디선가 아, 하는 소리가 났다.

       

       “첫 시간에 변분 이론을 가르쳐 주신 게…….”

       

       그 말을 꺼낸 사람은 다름 아닌 버멜이었다.

       

       예외였다. 쟤가 저런 날카로운 질문을 다 하게 될 줄이야.

       

       나는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시다시피 패리티 대칭성을 깨뜨리는 요인은 여러가지입니다. 얼마나 많은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니 변수를 무한대로 설정해 두고, 각 지점마다 ‘변분’을 계산해서 일반화된 식을 먼저 도출한 다음 특별한 경우에 적용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몇몇 학생이 차례대로 탄성을 터뜨렸다.

       

       누군가는 놀랐고, 누군가는 앞서 필기했던 것을 뒤적거렸다. 유피엘은 공책을 덮고 교과서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곳이 하이라이트다.

       

       “이것을 사람들은 일반화… 즉, 이론이라고 부릅니다.”

       

       이론.

       

       결국 이론의 명시적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다.

       

       [왜 처음부터 그리 이야기하지 않았지?]

       

       간단하다.

       

       처음부터 이론을 꺼내들면 듣는 사람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원래 가장 중요한 것은 나중에 말하는 것이 중책이고,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깨우치게 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궁금해하기도 전에 말하는 것은 흥미만 떨어뜨릴 뿐, 별로 추천하지 않는 교수법이었으니.

       

       […호오.]

       

       나는 학생들이 여운을 느낄 수 있도록 조금 돌려 말하기로 했다.

       

       “다변수함수의 변분 이론을 첫 시간엔 가르치지 않았죠. 오일러-라그랑주 방정식을 유도하는 것 하나만으로 벅찼을 겁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보조정리이니 뭐니 온갖 복잡한 짓을 다 증명했지만,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패리티의 이해.

       

       학생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저번 시간처럼 따분해하거나 꾸벅꾸벅 조는 친구는 없었다.

       

       그렇다고 활짝 웃거나 입꼬리를 올리는 학생도 없었지만, 나는 이들의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이 더 깊은 사고를 하기 시작했구나.

       

       “다음 시간엔 대칭성과 보존이 무엇인지, 변분 이론으로 증명하겠습니다.”

       

       나는 그 말과 함께 교단에서 내려왔다. 오랜만에 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목이 칼칼했다.

       

       때마침 수업 종도 울렸겠다. 이제 몸의 주도권을 다시 돌려주고 밥이나 먹으러 가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저도….”

       “저도요!”

       

       학생들이 교재를 들고 하나둘씩 나왔다. 그 탓에 나가는 문이 가로막히고 말았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오늘 한정판 메뉴에 연어 있단 말이야.

       

       

       **

       

       

       오늘따라 언니가 이상했다.

       

       평소 잘만 묶던 포니테일을 오늘은 직접 묶어달라고 하질 않나, 조신했던 걸음걸이가 어딘가 삐걱거리질 않나.

       

       심지어 강의하는 태도가 학생 친화적으로 변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틸레트에서 겪었던 일 이래로 인간이나 엘프만 보면 이를 갈던 자신의 쌍둥이 언니가, 오랜만에 희미한 미소를 지어주면서 학부생들을 대하고 있다니….

       

       금안족은 ‘철화의 저주’로 인해 감정표현이 서투르다. 때문에 기계처럼 사고하고, 기계처럼 표현한다.

       

       그런데 저 모습은 마치.

       

       “인간….”

       

       인간 같았다.

       

       몸뚱이는 똑같은데, 혼만 쏙 바꾸어 놓은 느낌.

       

       “아.”

       

       아카샤는 마왕성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영혼이 두 개야. 희미한데,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일부러 주도권을 내어주고 있어.’

       

       클라이스 하스펠트의 친언니인 클라라 하스펠트가 했던 말이다.

       

       클라라는 혼을 세밀하게 느낄 수 있는 정령마도사. 그녀의 말에 거짓 한 점 없을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언니가 이중인격이라는 소리이고, 필요 여하에 따라 언제든지 다른 성격을 꺼내 임기응변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알겠군.”

       

       에테르가 수업을 하는 동안, 아카샤는 씩 웃었다.

       

       쌍둥이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건 쌍둥이다. 아카샤와 에테르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였고, 서로가 서로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제 언니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예리한 창으로 피륙을 찢어내는 것만큼 쉽게 들춰볼 수 있었다.

       

       “이것으로 수업을 마칩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수업 종이 울렸다. 아카샤는 필기구를 싸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마침 우르르, 하며 학생들이 앞으로 빠져나갔다. 오늘 특식 메뉴인 연어덮밥을 먹으러 가는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대부분이 문을 가로막았다. 밥보다 학문이 급한 모양인지, 에테르를 둘러싸며 번갈아 질문하기 시작했다.

       

       질문하는 학생 중에는 로테, 프레이, 버멜도 포함되어 있었다.

       

       “신기하지 않아?”

       “응?”

       

       곁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암적색 머리카락에 금색 눈동자를 한 아름다운 소녀였다. 아카샤는 이 소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레니냐.”

       

       레니냐는 아카샤에게 별사탕을 하나 내밀었다. 아카샤는 별다른 의심 없이 별사탕을 받아먹으며 이어지는 말을 경청했다.

       

       “하이젠버그 선생님 말이야. 어제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아.”

       “너 말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걸.”

       

       원래 에테르였다면 학생들이 가로막기 전에 먼저 도망갔을 텐데.

       

       “선생님이 왜 갑자기 저렇게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좋게 된 일이라고 생각해.”

       

       레니냐의 말에, 아카샤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잘된 일이라.

       

       “확실히.”

       

       언니의 성정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진다면 세계 멸망은 피할 수 있다.

       

       여태까지 언니가 제정신이 아니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신이 사는 세상까지 싹 다 태워버리겠다니.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마왕도 그렇게까진 안 한다.

       

       “그러고 보니 라키아.”

       “응?”

       

       라키아는 아카샤의 가명(假名)이다.

       

       “버멜이 너한테 이걸 전해달라고 했어.”

       

       레니냐는 아카샤에게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공책을 뜯어서 급히 쓴 뒤 접은 듯했다.

       

       “나한테? 왜?”

       “나야 모르지.”

       

       연애편지 따위라고 하기에는 너무 엉성하다. 급조한 모양새였고, 그런 건 직접 전해주면 되지 않은가.

       

       아카샤는 버멜이 에테르와 과거 붙어다녔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로즈마리는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엔 자신들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고.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아카샤는 그것이 유대라고 추측했다.

       

       만약 유대라면 어떤 유대일까.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고, 어디서 만들어진 것일까.

       

       답을 내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또 다른 자아가 한 거로군.”

       “방금 무슨 말 했어?”

       “아니, 아무것도.”

       

       아카샤는 편지를 건네받아 펼쳤다.

       

       그리고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고 말았다.

       

       “뭐라고 쓰여있어?”

       “흐음.”

       “혹시 말하기 곤란하면 안 해줘도 되고.”

       “아냐, 아냐.”

       

       아카샤는 쪽지를 보여주었다. 레니냐의 표정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변했다.

       

       “나보고 기숙사 앞에서 만나자고 한다.”

       “이거, 러브레터 아니야?”

       

       아카샤는 고개를 내저었다.

       

       “세상에 어떤 등신이 관심 있는 애한테 이따위로 편지를 써서 보내냐?”

       “그것도 그렇네.”

       

       그러면 뭘까, 하고 레니냐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곧 레니냐는 관심을 껐다. 다른 친구와 만나고는 별사탕을 나누어 주는 데 여념이 없었다.

       

       저런 건 도대체 왜 나눠주고 다니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흐음.”

       

       아무튼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정체를 들춰낸 뒤 자신을 조져버리려고 하거나.

       

       아니면 협력을 구하려고 하거나.

       

       어느 쪽이든 난감하게 되었다. 아카샤는 허어,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는 사이에 에테르는 학생들의 질문을 전부 받아주고는 식당으로 향했다.

       

       “맞다, 연어.”

       

       오늘 한정판 메뉴가 연어라고 했다.

       

       수량이 정해져 있어서 빨리 가지 않으면 못 먹을 텐데.

       

       복잡한 일은 밥 먹으면서 생각하자. 그리 판단한 아카샤는 부리나케 식당으로 튀어갔다.

       

       

       **

       

       

       방과 후.

       

       학생 기숙사 입구로 다가서자 엘프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훤칠한 키, 잘생긴 외모. 엘프 중에 미형이 많다지만, 그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남학생이었다.

       

       그런 남학생을 보고도 아카샤는 아무런 호감이 안 들었다.

       

       마왕군은 다른 어떤 종족보다도 엘프를 증오한다. 정령의 비호 좀 받는다고 떵떵거리는 놈들. 단체로 모가지를 썰어버려야 한다.

       

       오늘은 특히 그랬다.

       

       “쌍놈의 새끼.”

       

       저 새끼 때문에 마블링이 선명한 고급 연어 맛을 못 보게 되었다.

       

       물론 실제로는 아카샤가 늦어서 못 먹은 것이지만… 아무튼 저 엘프놈 때문이다.

       

       버멜 호르데.

       

       놈도 자신을 본 것인지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척.

       

       어느덧 독대한 두 사람.

       

       “진짜 왔네.”

       “너, 내가 누구인지 알지?”

       “알고말고.”

       “시답잖은 일로 부른 거라면 여기서 주검이 될 줄 알아라.”

       

       버멜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실망할 일은 없을 거야.”

       

       그러면서 편지를 하나 더 내밀었다.

       

       이번엔 제대로 된 편지였다. 겉봉투에는 필리우트 제국의 문양이 찍혀있었고, 곳곳에 금칠이 되어있었다.

       

       뭔가 있구나.

       

       아카샤는 주변을 둘러본 뒤 편지를 가로채갔다. 손톱으로 조심스럽게 밀랍을 뜯어내며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 안에는 편지지 한 장과 함께 사진이 들어있었다.

       

       “이건…?”

       

       사진 속에는 그랜절을 박고 있는 한 소녀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로즈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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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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