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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5

    ‘루크가 동성애자였다니.’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이야기다.

     

    헬레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오늘 공부가 전혀 손에 잡히지 않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시험을 제대로 칠 수는 있으련지 모를 지경이다.

    도저히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치기 어려웠던 헬레나는 5교시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쏴아아…….

     

    수도꼭지에서 물을 틀어 가만히 바라본다.

    물이 흐르는 것을 보니 어느정도 가슴이 진정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후우…….”

     

    그건 헬레나가 스스로 찾아낸 정신집중의 방법이었다.

    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렇게 한번 마음을 가다듬으면, 새로 집중하는 것은 쉬웠다.

     

    “좋아.”

     

    헬레나는 그렇게 받은 물로 세수를 한번 하여 얼굴을 식히며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니, 문득 루크가 했던 말이 귓가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레니에 아린세이아처럼 의지가 강하고, 아름다운 용모와, 붉은 기가 감도는 여성이 나의 이상형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

    그리고 갑자기 머리를 스치듯 강타하는 생각.

     

    “아니, 잠깐만……!”

     

    헬레나는 자신의 생각에 경악했다.

     

    이제보니 그것은 모두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을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의지? 물론 자신의 의지는 강한 편이다.

    혹자는 고집이 강하다 평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의지라고 생각하면 자신은 충분히 그에 해당한다.

     

    용모? 물론 자신은 굉장히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가꾸는 것에 비용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데다, 뚜렷한 이목구비를 보면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자신보다 아름다운 여자아이들은 별로 없는 편이다.

     

    붉은 기가 감도는 머리카락?

    자신의 머리칼은 분홍빛이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진해진다면 붉은 색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째서 자신이 그토록 루크의 이상형이 신경쓰이고 있었는지 이제야 온전히 깨달은 헬레나였다.

    무의식적으로 루크가 말한 이상형이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상상은 그냥 망상이 아니다!

    충분히 의심해볼 만한 정황이 존재하지 않은가!

     

    ‘그러고보니……!’

     

    그러고보면, 그동안 루크는 자신에게 묘하게 친절했다.

    굳이 반도 다른 자신에게 직접 만든 빵을 주질 않나, 자꾸 마음씨나 외모를 칭찬하질 않나!

    생각해보니 자신을 향하는 루크의 눈빛도 어딘가 다른 아이들을 보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저번에 생일 파티를 할 때도 이따금 자신과 눈을 마주치면 눈웃음을 짓기도 했고, 자꾸 시루드를 핑계로 말을 걸어오기도 했었다!

     

    그 모든 것이, 어쩌면…….

     

    ‘내가 루크의 취향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곤란할 뿐이다.

    자신은 동성애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반으로 돌아가던 헬레나는,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놀라 상념에서 깨어날 수 밖에 없었다.

     

     

    “아, 헬레나! 기다리고 있었단다.”

    “히, 히익! ㄹ, 루크!?”

    “왜 그렇게 놀라느냐?”

     

    루크는 너무 크게 놀라는 헬레나의 반응에 오히려 궁금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하지만 헬레나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아, 아무것도 아냐! ㄴ, 내 반은 어떻게 알았어?”

    “그야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지.”

     

    뭐, 그럴 것이다.

    누가 어떤 반인지는 비밀이 아니니까.

     

    “그, 근데 왜 내 반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아, 이걸 전해주고 싶어서 말이다.”

     

    헬레나가 용건을 묻자, 루크는 환하게 미소짓고는 헬레나에게 어떤 공책을 건네며 말했다.

     

    “이, 이게 뭔데?”

    “저번에 공부를 가르쳐준다고 했을 때, 네가 마법파트에 대해서는 전혀 듣지 않고 가버렸던 것이 떠올라서 내가 따로 정리해둔 개념들이다. 이대로 공부를 하면 이번 시험을 잘 치를 수 있을 게야.”

    “아……. 그, 그렇구나. 고, 고마워.”

     

    헬레나는 노트를 받아들며 생각했다.

     

    ‘어떡해, 진짜인가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굳이 이런 호의를?

    헬레나의 마음 속의 의심이 더욱 깊어졌다.

     

    그 때, 루크는 헬레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나저나, 고맙구나. 헬레나.”

    “으, 응? ㅁ, 뭐가?”

    “내게 시루드의 마음에 대한 것을 알려주어서. 덕분에 잘 정리할 수 있었다. 네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나는 계속 시루드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거야. 네 덕분에 그 소년의 마음이 더 깊어지기 전에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싶구나.”

    “그, 그래?”

    그래, 시루드의 마음을 알고 거절할 수 있던 것은 루크에겐 정말로 다행인 일인 것이다.

    그야, 루크는 사실 동성애자였으니까.

    남자아이를 사랑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 루크가 이렇게 감사를 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음, 아마도.

    “그리고, 수영장에 대해 제안해준 것도 고맙고 말이다.”

     

    루크는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수영이 자신의 약점인 것은 사실이다.

    본래 약점이란 줄일 수 있다면 줄이는 편이 최선.

    그런 약점을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준다는 것은 그야말로 감사한 일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수영 자체는 싫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즐거운 편에 속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렇다보니 어느샌가 루크는 시험이 끝나고 수영장에 가는 일이 기대되기 시작한 참이다.

    ‘아!’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헬레나는 그제서야 그 약속이 떠오르고 말았다.

    어쩌지, 그거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그, 그거 말인데……. 혹시 네가 부담스러우면 가지 않아도 좋아…….”

    “응? 그럴 필요 없다, 나는 괜찮아.”

    “아니, 생각해보니까, 너는 국제 마법 경시대회도 준비해야 한다면서? 부담될까봐 그러지…….”

    “그런 배려를? 하하, 너는 참으로 사려가 깊은 아이로구나. 얘야, 일부러 내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단다.”

    “……!”

     

    헬레나는 루크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건네는 칭찬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이 행동과 눈빛은 루크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보면 왠지 예전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런데, 아까부터 왜 그리도 안색이 창백한 것이지? 무슨 걱정이라도 있느냐?”

    “응? 아, 아니야! 아무것도 아냐!”

    “그래?”

     

    헬레나는 차마, 루크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실습창고 뒷편에서 엿들어버렸기 때문이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엿듣는 것은 원래 변태들이나 하는 일이고, 그런 얘기를 대놓고 했다가는 루크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루크는 그런 헬레나의 표정을 잠시 살피다가, 이내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잠깐만, 넥스카프가 비뚤어져 있구나.”

    “어? 그, 그래?”

     

    헬레나가 시선을 내려 자신의 넥스카프를 보니, 루크의 말이 사실이었다.

    항상 옷과 몸가짐을 단정히 하던 헬레나였으나, 오늘은 잡념이 많아 차마 넥스카프 따위에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루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헬레나의 넥스카프를 매어주며 말했다.

     

    “저런, 평소에는 단정한 아이가, 어찌 이런 실수를 다 했느냐?”

     

    루크는 꽤 정성스럽게 스카프를 다시 채워준 후, 스카프를 좌우로 벌리며 주름을 보기좋게 정리했다.

    꽤 우아한 솜씨였다.

    하지만, 헬레나는 그런 루크의 호의가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사실은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하지만, 수많은 경험으로 단련된 루크의 손놀림이 상당했던지라, 차마 거절할 틈도 없이 작업은 끝나버리고 말았다.

     

    “자. 이제 되었다.”

     

    때문에 타이밍을 놓친 헬레나는 그저 감사를 표하는 수 밖에 없었다.

     

    “……! 으, 응! 고, 고마워…….”

    “그럼, 시험공부 열심히 하거라, 귀여운 아이야.”

     

    루크는 또 한번 헬레나를 칭찬하며 손을 흔들어주고는 발길을 돌렸다.

     

    사실, 루크는 헬레나가 칭찬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되도록 많은 칭찬을 해주기 위해 그런 말을 했을 뿐이다.

    실제로 헬레나는 아주 귀여운 아이이기도 하고.

    하지만, 헬레나는 그 칭찬을 이전과 같이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진짜로 날 좋아하는 것 같아! 어, 어떡해! 루크에게 나는 동성애에 관심이 없다고 어떻게 전하지?’

     

    그렇게 헬레나는 루크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다가, 자신의 손에 들린 루크의 노트를 향해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이건,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이걸 정말 순수한 호의로 받아도 되는 걸까?

     

    ———-

    다이튼이 한차례 루크 숲의 순찰을 마치고 휴게실로 다가가자,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 꽤 많이 보였다.

     

    하지만 숲지기로서 순찰을 준비하는 손길은 신병보다는 훨씬 숙련되어 있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지만 사실 그들은 신병이 아니라, 리엔느 숲에서 근무를 하던 숲지기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스치듯 지나쳐 사무실의 문을 여는 다이튼은, 서류에 둘러쌓인 엘프를 향해 물었다.

     

    “이번에 리엔느 숲의 지원, 생각보다 엄청 많네?”

     

    그 말에 서류들 사이에서 고개를 스윽 들어올리는 예르나.

     

    “응, 아직 리엔느 숲의 사태의 영향 때문에 그쪽은 인력이 많이 남나봐.”

    “그 서류들이 다 지원병력들이야?”

    “맞아. 이번에 들어온 병력들이 꽤 많아서.”

    “진짜 엄청 많네…….”

     

    보이는 사람이 많아서 많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 일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람의 숫자를 서류로 실감하게 될 줄이야…….

    다이튼은 꽤 색다른 경험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서류를 살피던 예르나는 ‘으음…….’하는 소리를 내며 턱을 쓰다듬었다.

    무언가 고민에 빠진 듯하다.

     

    하지만 그 버릇은 본래 예르나가 가지고 있던 버릇은 아니었다.

    하도 루크와 오래 있었더니 버릇이 옮아버린 걸까?

     

    다이튼은 그런 예르나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내가 도와줄까?”

    “이런 거 해본 적 없잖아? 괜찮아. 어차피 나는 대충 살펴만 본 뒤에 다프네 시키면 되니까.”

    “아.”

     

    뭐라도 도와주고 싶어서 꺼낸 말이기는 했지만 자신은 사실 서류 정리에는 딱히 소질이 없었다.

    실수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만약 자신이 서류정리에 재능이 있었다면 숲지기 같은 일을 하고 있지는 않았으리라.

     

    “그보다도, 잠깐 이리 와서 앉아봐?”

     

    예르나는 자신의 앞에 놓인 의자를 가리키며 가볍게 웃었다.

    그 미소에 다이튼은 마치 홀린 듯 그 앞에 앉는다.

     

    “그나저나, 우리 결혼식은 언제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예상치 못한 질문에 놀란 것은 오히려 다이튼이었다.

     

    “겨, 결혼식?”

    “응, 결혼식.”

    “갑자기 결혼식 이야기는 왜?”

     

    이미 서류상으로는 결혼을 한 상태였다.

    자신도 물론 결혼식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예르나가 먼저, 그것도 이렇게 뜬금없이 꺼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이튼의 당황스러운 물음에, 예르나는 조금 부끄럽다는 듯이 시선을 피하며 우물쭈물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게……. 저번에 루크가 친구네 집에서 생일파티를 했었잖아?”

    “응, 그랬지.”

    “그 때 루크의 드레스 모습을 보니까, 어쩐지…….”

    “……아하.”

     

    예르나는 뒷말을 삼켰지만, 다이튼은 그 뒷말을 금방 유추할 수 있었다.

     

    바로, ‘웨딩드레스’를 말하는 것이리라.

     

    “…….”

     

    그 속마음을 들켰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예르나의 볼은 조금 더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 말에, 다이튼은 조금 놀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탓하는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치만 다른 숲지기들 한테는 우리의 결혼은 비밀로 하고 싶다면서?”

    “그렇게 말하긴 했어도…….”

     

    이곳이 기업도 아니고, 사내연애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권장되는 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모범을 보여야하는 위치에 있는 예르나는 차마 자신의 결혼 사실을 다른 숲지기들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뭐,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것 같지만.’

     

    예르나는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하는 것이 굉장히 부끄럽다는 듯이 볼을 긁었다가, 뒷목을 문질렀다가, 이내 몸을 배배 꼬아대기 시작했다.

    상당히 귀여운 장면이었던지라, 다이튼은 웃음을 터트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아하하하! 일단 알겠어. 결혼식 날짜 말이지?”

     

     

    다이튼은 오늘 하루, 굉장한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백합에서 ‘넥타이가 비뚤어졌네’는 약속의 장면이라고 들었습니다.

    근데 백합? 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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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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