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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5

       비서의 선언은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충격에 입을 다물었던 공작은 잠시 후, 느릿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확실한 건가?”

       “……네.”

         

       비서 뒤에 있던 학자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모두의 명예를 걸고 확신합니다, 공작님.”

         

       그들은 그러고는 왜 이 대본이 가짜인지 하나 하나 근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공작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그들을 향해 소리치고 싶었다. 네까짓 놈들이 뭘 아냐고.

       자신의 명예나 자존심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다. 정말로 그는 이 대본이 크리스티앙이 쓴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는 황망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곡예사들을 돌아봤다.

         

       클라라를 제외한 모두가 뜻밖의 소식에 경악했다.

       극본이 가짜라니?

       그들은 홉스가 초연에 들어가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극본이 가짜면 어떻게 되냐는 클라라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어떻게 되긴. 공작님은 물론이고, 여기 있는 11명은 모두 개망신당하는 거지. ‘아니, 2주나 연습을 했는데 그게 가짜라고 못 느꼈나 봐?’ 이런 식으로 말이야. 길만 지나가도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겠지. 어쩌면 업계에서 쫓겨날지도 몰라.

         

       당연히 과장 섞인 농담이었지만, 당사자들이 들을 뒷말들은 그 짧은 몇 마디로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최대한 수습해보겠지만, 아무래도 여기 모인 다섯 서커스단은 오명을 피하긴 힘들겠군. 클라라 양을 제외한 모두 공장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으니 말일세. 정말 미안하네. 내 불찰이네.”

         

       공작이나 되는 높은 신분의 사람이 고개까지 숙여 보이며 정중히 사과했으나 그것을 예의 바르게 받아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항상 그에게 깍듯하던 지몬조차 입술을 씰룩거리며 욕하고 싶은 것을 참는 눈치였다.

         

       <다섯 곡예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공장을 나서는 다섯 명의 단장들과 다섯 명의 단원들에게 기자들이 달라붙었다. 초연이 끝나자마자 기자 회견을 열기 위해 초대해 두었던 것이 지금은 독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벌써 안의 소식을 들었는지 수첩과 펜을 들이밀고 그들 앞을 막아섰다.

         

       “사실입니까?”

       “대본이 가짜라고요?”

       “연습하는 동안 뭔가 이상한 것을 못 느꼈습니까?”

         

       공작의 사병들이 그들을 위해 길을 터주었지만, 기자들은 끈덕지게 그들에게 달라붙었다. 심지어 마차에 오르고 광장을 지나는 동안에도 계속 따라와 질문을 던져댔다.

         

       숙소로 돌아가는 원더스타인의 마차에는 세 사람밖에 없었다. 클라라는 기자들에게 노출되지 않은 덕분에, 그녀는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가 나중에 혼자 오기로 했다.

         

       마차 안은 울적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마야는 헛고생한 것에 대해 가볍게 짜증을 내고 말았지만, 크리스티앙에 큰 애정이 있던 엘라는 당연히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잘난 듯 아는 척해놓고 가짜 대본도 알아보지 못하다니.

       그녀는 자괴감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원더스타인이 웃으며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썼지만, 병석에 드러누운 사람이 그래봤자 애처로운 몸짓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나마 원더랜드에 관한 얘기를 할 때는 조금 신난 듯했다.

       그녀는 숙소로 돌아가는 동안 원더스타인에게 그곳에서 겪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그는 처음 듣는 사람처럼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녀는 사도들에게 맹세한 대로 잠든 혼돈에 대한 정보는 쏙 빼놓았다. 5인 합주도 그저 산 사람의 연주를 듣고 싶다는 사도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한 것으로 각색했다.

         

       원더스타인은 이야기 속에서 허수아비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각별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뿌듯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원래 지상으로 돌아오면 그는 일행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려 했다.

       어차피 퀘스트는 원더랜드에서 탈출할 때까지가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첫째는 아르노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오즈였다는 것을 밝힌다면, 옆에서 환상을 쓰던 요정이 누군지는 바보라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그 자신을 위해서였다.

       엘라는 기억이 돌아오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좋은 시간이 이제 끝나가는 것이다. 다시 자신을 증오했던 원래의 그녀가 돌아올 것이다.

         

       자신이 그녀에게 원더랜드의 일을 솔직히 밝힌다면, 그 추억도 머지않아 원더스타인이라는 검은 먹물 아래 덮여 버리게 될 것이다.

         

       진심으로 권했던 위로도, 함께 나누었던 웃음도 모두 기만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대단하군요. 그런 곳에서 무사히 돌아왔으니 다행입니다.”

         

       얼마 안 있어 마차가 숙소에 도착했다.

       단원들은 엘라와 마야의 부축을 받아서 내리는 원더스타인의 모습을 보고 놀라 달려왔다.

         

       “단장님, 어떻게 된 일이에요?”

       “뭐야, 다친 게냐?”

       “클라라 누나는 어디 갔어요?”

         

       그는 단원들의 질문 세례에 손을 내저었다.

         

       “오늘은 좀 쉬고 싶군요. 내일 이야기 하지요. 클라라 양은 조금 있다가 올라올 겁니다.”

         

       마야의 염동력으로 침실까지 실려 온 그는 부들거리는 팔다리를 간신히 움직여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몸이 무겁지는 않았는데, 숙소에 도착한 순간 맥이 탁 풀리면서 피로가 몰려왔다.

         

       그는 안간힘을 써서 간신히 이불을 끌어당겼다.

       이 꼴로는 혼자 밥 먹는 것조차 힘들 것 같았다. 데볼루트를 통한 개조도 소용없었다.

         

       맨튤라의 칼날이나 일전에 유라크네와 잠자리를 가졌을 때 뽑아낸 팔들도 모두 ‘감각의 연장’을 통해 조종한 것이다. 즉, 팔을 움직이는 감각을 이식한 덕분에 그것들을 쉽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 현재 팔과 다리에 해당하는 혼이 절단된 상태였다. 그것들을 뽑아낸다고 해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아까 혼란을 틈타 몰래 챙겨둔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공작의 자리 밑에 두었던 별빛 가루였다.

         

       절반 넘게 차 있었던 그것은 이제 바닥에 알갱이 몇 개만 보일 뿐이었다.

       그는 이것을 마저 먹어 치우기로 했다. 괜히 남겨뒀다가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것들을 입에 털어 넣은 그는 침대에 누웠다.

       잠들기 직전 그는 아까 원더랜드에서 탈출할 때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위기의 순간에 빠진 호크를 구해준 것은 사도들이었다.

         

       혼돈의 눈이 완전히 감기고 나자, 키르쿠스를 달래는 작업에 매달려 있던 사도들이 모두 밖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수십 명의 사도가 발하는 힘은 강력했다. 그들은 자카누바의 군세를 순식간에 몰아세웠다.

         

       전장의 승기가 잡히자 다이아몬드 퀸이 허수아비를 돕기 위해 달려왔다.

         

       “이익, 넌 또 뭐야!”

       “아까 쟤한테 한 게 미안해서 달려와 봤다!”

         

       그녀는 패티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받아내며 그를 묶어두는 사이, 호크는 허수아비의 몸을 살폈다.

         

       패티는 전황을 둘러봤다. 동족들은 대부분 원더랜드 밖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괜히 여기 더 있다가는 사도들에게 포위될 형국이었다. 그는 분하지만 달아나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빈손으로 갈 생각은 없었다.

         

       “네놈은 나랑 같이 가자!”

         

       그는 원더랜드 밖으로 뛰어내리기 직전에 낫을 휘둘러 첸 호크의 몸을 낚아챘다. 오늘 그가 제일 얄미웠다.

         

       그런 공격을 공중이었다면 호크는 여유롭게 피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땅에 발을 붙인 상태였다.

         

       다이아몬드 퀸이 그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사신의 낫이 가진 영체를 끌어당기는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크하핫, 이 녀석의 혼이 완전히 바스러질 때까지 가지고 놀아주마!”

         

       허수아비는 그를 구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퀘스트 보상을 사용했다.

       사신의 낫에 박혀 있던 호크의 영혼이 쑥 하고 빠져나와 상태창의 보상 항목에 들어갔다.

         

       “너 뭐 한 거야! 어떻게 사신의 낫을?”

         

       패티는 고함을 내지르며 그를 향해 칠흑 마술을 사용했다. 검은 연기가 그를 향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 속도는 그가 티켓을 찢는 것보다 빨랐다.

       꼼짝없이 가슴이 관통당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행히 다이아몬드 퀸의 뒤를 따라왔던 사도 한 명이 그것을 막아주었다.

       검은색 고깔모자에 검은색 망토, 그리고 울퉁불퉁한 감자 같은 녹색의 가면을 쓴 여자였다.

         

       “우리 막내!”

         

       다이아몬드 퀸이 패티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으면서 소리쳤다.

       허수아비는 다이아몬드 퀸이 20년 전까지 막내였다가 후임 둘이 들어오면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막 티켓을 찢고 빛에 휩싸여 사라져가는 오즈를 향해 막내 사도는 속삭였다.

         

       “잘 가, 허수아비.”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목소리와 복장이었다.

       누구였을까.

       게임에서 지나가던 캐릭터였나.

         

       그는 눈을 감았다.

       피로해서일까, 아니면 남은 별빛을 먹었기 때문일까.

       그는 지난번에 꿨던 꿈을 이어서 꿨다.

         

         

       ***

         

         

       벌을 받은 지 24시간이 흘렀다. 허수아비는 독방에서 풀려났다.

       곱사등이 소년이 그를 데리러 왔다.

         

       “목마르지? 이 형님이 물 챙겨놨다.”

         

       꿈들레 축제의 연극에서 양철 나무꾼을 맡았던 그는 배역 명이 너무 길다고 친구들에게 깡통이라 불렸다.

         

       “몸은 괜찮냐?”

       “응.”

         

       깡통은 그의 몸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어제 교관에게 매로 맞은 부위들을 살펴주었다.

         

       “뭐야, 멍이 하나도 없는데? 이 자식 별로 세게 맞은 것도 아니네. 어제는 엄살떤 거였잖아.”

       “아냐, 진짜 아팠어.”

       “지금은?”

       “……안 아프네.”

       “그게 다 자기가 맞는다고 생각하니까 지레 놀라서 소리 지른 거야.”

         

       깡통은 또 어디선가 주워들은 지식을 지껄이며 아는 체를 했다.

       허수아비는 전날 밤에 독방을 몰래 찾아왔던 소녀가 자신을 주물러 주었던 것을 떠올렸다. 신기하게도 그 마사지를 받고 나서 이상하게 아픈 곳이 싹 사라졌다.

         

       그는 그것을 친구에게 말할까 하다가 말았다.

       깡통은 전능원에 있는 아이 중에 안수치료에 가장 부정적이었다.

         

       “그거 다 사기야, 사기. 너 그거 믿냐? 시발, 현대 의학도 못 고치는 걸 무슨.”

         

       물론 그는 그것을 큰 소리로 떠들지는 않았다. 언젠가 목사님께 치료받는 것을 삶의 희망으로 삼고 버티는 아이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자, 저녁 예배 시간이다.”

         

       교관의 명령에 따라 아이들은 예배실로 이동했다.

       저 앞에 턱과 입을 제외한 얼굴 전부가 녹색의 혹으로 뒤덮인 여자애가 보였다.

         

       마녀.

       그녀도 그들과 함께 꿈들레 축제에서 연극을 준비했던 친구였다.

       허수아비는 그녀가 밤에 물을 가져다주었던 것을 잊지 않았다.

         

       “고마웠어. 그 물…….”

       “그 정도로 뭘. 몸은 좀 괜찮아?”

         

       그는 어젯밤 자신을 주물렀던 그녀의 손을 바라봤다.

       지금까지는 몰랐는데 되게 하얗고 가늘었다.

       여자애의 손이라서 그럴까.

       부드러웠지. 따뜻했고.

         

       아이들은 각자 앞에 둔 교전을 폈다.

       그들 대부분이 몸이 멀쩡한 구석이 없었던 지라 책을 펴고 넘기는 것만은 교관들이 도와줘야 했다. 명색이 종교단체라 그런지 이 예배 시간만은 교관들이 친절해졌다.

         

       전능교에서 배부하는 교전은 여느 사이비 종교가 그렇듯 원래 있는 성경에서 핵심적인 어휘를 자기네 입맛이 맞게 바꾸거나 싸구려 철학책에 나올 법한 근본 없는 문장을 제멋대로 심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웃으면 복이 온다니.

       믿으면 몸에 축복이 내린다니.

       세상의 종말이 도래했으니, 신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식의 내용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교관의 지시에 따라 지루한 표정으로 그것들을 읽어 내려갔다.

         

       “낙원 아래 잠들어 계신 전능하신 아버지, 눈을 뜨소서…….”

       ——-

       원더랜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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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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