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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5

        

       이세린은 호기심이 많았다.

         

       아니, 단순히 저 말로는 그녀의 호기심을 다 표현할 수 없으리라.

         

       이세린은 호기심이 매우, 아주 많이, 지나칠 정도로 많았다.

         

       정말로 많이 말이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 호기심이 한 방향으로 꽂히게 되면 학자가 되고, 전문가가 되는 것이니까.

         

       언어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언어학자가 되고,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문화인류학자나 여행 전문가가 되고, 동물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연구자나 수의사가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세상은 호기심으로 시작되고, 호기심으로 인해 굴러가며, 호기심으로 알게 된 사실을 쌓아가며 발전해나가는 법이었으니까.

         

       이세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기가 궁금한 게 있으면 입에 집어넣어 그 정체를 판별하듯이, 혹은 미성숙한 아이가 길을 가다가 신기한 것을 발견하면 으레 나뭇가지로 쿡쿡 찔러 보던 것처럼.

         

       그녀는 그저 호기심이 많아질 뿐이다.

         

       다만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의 호기심은 어느 한 방향에 꽂히지 않았다는 것.

         

       이세린의 호기심은 대부분에 향해 있었다.

       다만 그것은 그저 넓을 뿐 깊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연금술사들처럼 세상의 진리를 알고 싶다며 연구하지도 않았고, 수행자나 고행자처럼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제 몸을 학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정도로만 훔쳐보고 말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물론 이러한 모습이 음습해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리라.

         

       넓고 얇게 호기심을 탐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온갖 숨겨진 것들을 알기 위해 돌아다닌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으니까.

         

       숨겨진 것들을 사람들이 보통 ‘비밀’이라고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세린의 호기심은 꽤 음습하고 음침한 면모가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러한 그녀의 호기심이 언제부터 이런 형태가 된 것일까?

         

       아기일 때?

       유치원생일 때?

       초등학생일 때?

       그것도 아니면 그레모리가 이세린과 함께하게 되었을 때부터?

         

       그건 아무도 모른다.

       아마 고명한 심리학자를 데려와도 그 의견은 분명히 갈리게 되리라.

         

       그들은 이세린의 일생을, 이세린의 일상을 알지 못했으니까.

       그녀가 어떻게 이런 성격이 되었는지 그 모든 단계에 대해서 알지 못했으니까.

         

       오직 그 사실을 아는 것은 항상 이세린을 귀여운 고양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상냥한 눈으로 바라보는 초월자, 그레모리뿐이리라.

       부모도, 이세린 본인도 아닌 오직 그레모리만 말이다.

         

       [ 계약자야. 진정 원하는 것이냐. ]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곧 얼마든지 제멋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것과 같다.

       안다는 것은 분명히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전문가들이 보통 사람들이 그냥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올바른 방법’을 통해 거기서 우라늄을 추출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레모리 역시 이세린을 얼마든지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고, 그레모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도록 그녀의 흥미와 취미를 유도할 수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다고 해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닌 법.

       그레모리는 이세린을 결코 제멋대로 주무를 생각이 없었다.

         

       제멋대로 계약자를 이끌어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려는 초월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레모리는 그런 존재들과는 다르다고 자부했다.

         

       손을 타는 것이 인공적이고 손을 타지 않는 것이 자연적이라는 그런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저 그레모리는 인간을 사랑했다.

       인간의 가능성을 사랑했고, 그들의 행동을 사랑했고, 그들의 영혼부터 본질까지 그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그 수많은 사람 중 가장 사랑스럽고 귀여운 것이 바로 이세린, 자신의 계약자였다.

         

       [ 귀엽구나, 귀여워. ]

         

       인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그레모리가 ‘저 귀여운 존재는 지켜줘야 한다.’라고 결심하게 만드는 소중한 존재이자, 그 자체만으로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서 누가 상처라도 입힐까 두려운 존재.

       온갖 악의(惡意)와 끔찍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보호받아 마땅한 존재.

       성격부터 기질, 하는 행동까지 자신과 딱 들어맞는 귀여운 인간.

         

       그레모리에게 있어 이세린은 인간들 가운데서도 가장 사랑스러운 보석이며, 귀하게 품어주어야 하는 알이며, 사랑을 쏟아 마땅한 새끼 동물 같은 존재이며, 사랑은 있으되 힘이 없는 그녀의 핏줄보다도 더 확실하고 상냥하게 지켜줘야만 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무언가를 지켜준다는 것은 마냥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그레모리는 이세린을 자기 멋대로 귀여워하고 재단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닌, 그녀를 지켜주고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 계약한 존재.

         

       그렇기에 그레모리는 이세린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진성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도, 열기마저 피어오르는 것 같은 열망을 품고 알고 싶다고 그레모리에게 말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허락해서는 안 되었다.

         

       버릇이 나빠지니까?

         

       물론 그 이유도 있다.

         

       하지만 그레모리가 진성에 대한 조사를 꺼리게 여기는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 계약자야, 호기심에 피가 이어지지 않은 오빠의 비밀스러운 것을 훔쳐보고자 하는 나의 계약자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는 여기서 멈추는 게 좋아 보이는구나. ]

       “왜?”

       [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

       “왜?”

         

       이세린은 그레모리의 거듭된 만류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레모리가 저렇게 말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

         

       그녀의 자매인 이아린을 못마땅해하는 선생님과 선배, 동급생의 비밀을 캐내고 그들을 협박할 때도.

       모임에 갔을 때 은근히 그녀의 아버지, 이양훈을 우습게 보던 사람들의 비밀을 캐내고 소문을 퍼뜨릴 때도.

       길을 가다가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싸우는 부부가 어떤 비밀을 가졌는지 궁금해서 힘을 썼을 때도.

       뉴스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행적이 궁금해 알아보았을 때도.

         

       그레모리는 이세린을 말리기는커녕 도움을 줬었다.

       비밀은 알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자신은 그 비밀을 훔쳐볼 수 있는 권능이 있다면서.

         

       이세린이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궁금해하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확인하고 다닐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었다. 그리고 그 권능이 부족하다면 간접적인 도움을 줘서 그 비밀에 접근할 수 있게까지 해줬다.

         

       그런데 그런 그레모리가 이세린을 거듭 말리는 것이다.

         

       ‘언제 나를 이렇게 말렸었지?’

         

       이세린은 거듭된 만류에 그레모리가 자신을 말렸던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니까….’

         

       어릴 적 들어가기만 해도 유해사이트 차단 안내가 뜨며 막혔던 사이트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권능을 사용하려 했을 때.

       굳게 잠겨있는 부모님의 침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서 잠입하려고 했을 때.

       유치원에 다닐 적 유치원 선생이 4명의 남자와 사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자세히 조사하려고 했을 때.

       중학교 때 일본으로 수학여행 갔을 때 결제할 수도, 접근할 수도 없었던 ‘유료 채널’에 대해서 알려고 했을 때….

         

       “아.”

         

       이세린은 그레모리가 자신을 막았던 것을 떠올리고는 당황하며 그레모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혀를 쭉 내밀어 입술에 침을 묻히고 있는 낙타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진짜?”

         

       두 글자밖에 되지 않는 물음.

         

       그 안에는 여러 뜻이 함축되어 있었다.

         

       도대체 어떤 자극적인 비밀이기에 나이를 먹은 지금도 보지 못하게 막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피가 섞이지 않는 오빠가 그런 자극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에서 오는 자그마한 배덕감도, 자신은 자랄 만큼 자랐고 알만한 것도 다 알게 되었는데 그것을 틀어막는 것에 대한 반항심도, 그레모리의 상냥한 보호에 대해 기쁘면서도 뭔가 복잡한 감정까지.

         

       그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었다.

         

       그레모리는 이러한 이세린의 함축된 질문을 듣고는 그녀가 귀여워서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술을 부르르 떨면서 웃었다. 게다가 그것만으로 부족한 것인지 코를 푸는 듯한 소리를 내기도 하고, 너무 웃겨 참을 수가 없다는 듯 은 발굽의 발로 바닥을 두드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 정말 귀엽고 귀엽구나. 그런 쪽으로 상상하다니. 푸흐흐흐. ]

       “어….”

         

       이세린은 그레모리의 반응에 잠시 멍해졌다가, 자신을 계속해서 귀엽다면서 놀려대는 얄미운 낙타 때문에 기분이 살짝 상해버렸다. 이세린은 자신이 삐졌다고 광고라도 하듯 입을 삐죽였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검지로 비비 꼬면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삐졌으니 너랑 말을 하지 않겠다는 제스처였다.

         

       물론 진심으로 삐진 것은 아니었다.

       그냥 어서 말을 하지 않으면 진짜로 삐질지도 모른다는 귀여운 항의이자, 그녀와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자기 가족보다도 더 친밀해진 그레모리에게 보이는 애교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그레모리는 이세린의 그러한 애교를 보며 미소를 지었고, 그녀에게 다가가 자기 몸에 기댈 수 있도록 자리에 앉아주었다. 그리고 긴 목을 움직여 그녀의 앞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 그래, 말해주겠다. ]

         

       그레모리는 이유를 말하라는 듯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이세린에게 자신이 그녀를 말린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 나는 귀여운 계약자가 위험한 곳에 발을 디디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

       “위, 험?”

         

       위험.

         

       두 글자이지만 무게가 있는 단어.

         

       이세린은 그 위험하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 오, 오빠가 위험한 일에 끼어들었다는 거야?”

         

       그레모리는 아직도 오빠라는 단어가 어색한지 말을 더듬는 이세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갑자기 집에 나타나 기간제로 오빠가 되어버린 피가 섞이지 않은 남자에 대한 약간의 어색함, 그리고 그 어색함을 덮고도 남을 걱정과 친애의 감정이 있었다.

         

       [ 아니. 네 오빠에게는 위험하지 않겠지만 아직 능력이 부족한 나의 계약자가 끼어들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렇기에 그레모리는 자신의 귀여운 계약자, 이세린에게 진실을 말했다.

         

       그녀가 위험에 발을 디디지 않도록.

         

       위험한 일에 끼어들지 않고, 위험한 사람들과 얽히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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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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